너희는 내 밑이다(3)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체이서 길드의 팀장은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식은땀에 등이 다 젖을 정도였다.
‘간부놈 성격 더러운 건 알았지만, 진짜 뭐 같네.’
그럼에도 팀장은 그런 불만을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체이서 클랜 레드 리버의 비공식 산하 클랜.
간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입으로 왈가왈부하는 잔챙이가 아니다.
확실한 실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실력자만이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주먹 몇 대에 우리 애들이 다 쓰러질 정도라니.’
클랜원들의 능력치는 3단계 인외였다.
능력치 차이를 생각해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잘 보여둬서 나쁠 게 없겠지.’
후에 자신도 레드 리버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팀장이었다.
끼익.
2층에 위치한 자신의 방에 도착한 팀장이 침대 밑의 금고를 꺼냈다.
비밀번호 입력해 금고를 열자 그 안에서 두루마리가 하나 나왔다.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안은 팀장이 1층으로 내려갔다.
“저, 가져왔습니다.”
“어, 왔어?”
간부의 옆에는 아까 나오면서 마주쳤던 고등학생 정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조수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앞 자리에 마주 앉는 팀장의 시야에 바닥에 쓰러진 클랜원이 들어왔다.
한 명이 추가 되서 총 4명.
클랜에 남아 있던 클랜원이 모두 쓰러진 상황이었다.
‘이거 참···.’
팀장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그러자 진영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오,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예, B급짜리지만···. 지난번 임무때 우연히 발견했었습니다.”
클래스 업그레이드 스크롤.
플레이어의 클래스는 F에서 S급까지 다양하다.
등급이 높을 수록 좋은 특성을 가지며, 상위의 스킬을 익히고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클래스 등급은 한 번 정해지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다만 특수한 아이템이나, 미션을 클리어함으로서 등급을 올릴 수 있는데, 눈 앞의 스크롤이 그러한 방법 중 하나였다.
‘이 귀한 걸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태생적인 클래스를 업그레이드 시켜주는만큼 수요가 높고, 희귀도도 굉장하다.
업그레이드 스크롤은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진영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니 말은 임무때 발견했던 걸 몰래 숨겨뒀단 말인거잖아?”
진영의 말에 팀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자책하고 있을 때, 진영이 말을 이었다.
“뭐,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주니 이번만큼은 넘어가도록 하지.”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진영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지훈의 형의 위치를 알아냈고, 아이템도 챙겼으니 더 이상 볼 일은 없다.
“레드 리버 간부들은 좋겠어, 시찰 한 번 나갔다 오는 걸로 대접 받는 게 많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팀장은 머리를 긁으며 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소리긴. 내가 간부가 아니라는 소리지.”
촤악-!
진영의 품에서 꺼내진 단검이 순식간에 팀장의 심장을 꿰뚫었다.
팀장은 공격을 당하고 나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 대체 왜? 제가 왜···. 처벌 받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털썩.
쓰러지는 와중에도 진영이 간부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소동을 벌일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형 진짜 대단하시네요···.”
김지훈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너는 괜찮니?”
팀장을 기다리는 동안 대략적인 설명은 해둔 상태였다.
체이서 길드와 레드 리버, 그리고 지훈의 형.
형이 현재 납치 되어 세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지훈은 예상외로 침착했다.
“···네. 각오 하고 있었거든요. 여긴 멸망의 탑이니까요.”
김지훈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단단하다.
탑에 들어 온지 며칠 되지 않은 것에 비해 적응력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탑을 오르며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아니다.
비정할지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김지훈도 탑의 네임드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잠깐 뒤처리만하고 올라가자.”
레드 리버의 중요한 수족을 하나 잘라냈으니 애를 좀 먹을 것이다.
심지어 이 시점에서 범인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만한 실력과 동기를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
나머지 플레이어들을 처리하고, 진영은 체이서 길드의 창고에 있는 코인까지 모두 챙겼다.
그렇게 챙긴 코인이 총 4000코인 가량.
이후 김지훈과 함께 진영은 체이서 길드의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바로 가자.”
“네.”
김지훈의 말아쥔 주먹에서 그의 각오가 느껴졌다.
* * *
[ 12층 : 오픈 필드 - 구역 점령 ]
* 클리어 된 플로어입니다.
12층은 다양한 지역이 고루 나뉘어진 곳이다.
숲, 사막, 폐허 등등.
체이서 클랜원들이 위치한 F 구역은 숲 지형이다.
“······.”
F구역을 향해 다가갈 수록 무거운 분위기가 더해졌다.
지금 김지훈의 형은 무사할 것이다.
다만, 무사하다고 해서 멀쩡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탑을 공략하게 된 이유가 형 때문일 확률이 점점 커지는데.’
김지훈의 형인 김영훈은 체이서 클랜원 내부에서 세뇌를 받고 있다. 회귀 전 대로라면 김지훈이 10층에 올라오는 것은 시간이 훌쩍 지난 뒤. 형을 만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반 년은 잡아야했다.
‘교육이 끝나고도 한참 지났을 시간.’
그 때는 김영훈은 이미 체이서 클랜의 충성스런 암살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진영은 걸음을 옮기면서 숲 위 쪽을 바라보았다.
숲 한 가운데에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이 근처에 있겠군.’
주변 플레이어의 스킬을 극대화 시켜주는 거대 토템이었다.
특히 정신 간섭 류의 스킬에 대해서 가장 큰 효과를 준다.
세뇌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머물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지나지 않아 인기척이 느껴졌다.
‘딱히 숨어 있을 생각도 없나 보군.’
10개 정도 되는 임시 텐트가 보였다.
‘교육’에 참여하는 인원은 최소 20명 이상.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김지훈의 형을 찾는 일이었다.
김영훈의 안전을 보장한 뒤, 나머지 클랜원들을 처리해야 했다.
“텐트에는 몇 명 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텐트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김지훈이 말했다.
숲 안 쪽에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원하지 않는데 잡혀 들어 온 사람도 있을테고.
여기서는 간부 행세를 하기보다는, 숲으로 유인해 하나씩 처리하는 게 가장 좋았다.
‘레드 리버랑 연락이 닿으면 곤란하니까.’
진영과 김지훈은 계속해서 숲 안 쪽으로 움직였다.
울창한 수풀을 한 번 더 지나자 거대한 토템아래 옹기 종기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버프를 주는 토템을 아예 장악한 듯 둘러싸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종교 단체가 아닐까 싶은 모양새였다.
토템의 바로 아래에 선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전투 훈련에 들어가겠습니다. 한 명씩 앞에 나와서 제비를 뽑아주세요.”
[ 히든피스 ‘진실을 밝히는 샘물’에 의해 정보 간섭 스킬의 영향력이 약화 됩니다. ]
평범한 말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세뇌 스킬···. 이 정도면 레벨 2인 것 같은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상대를 현혹시키는 마력이 숨겨져 있었다.
진영의 시선이 남자가 착용하고 있는 반지에 머물렀다.
‘저것 때문에 더 효과가 극대화 되는 것 같군.’
정신계열 클래스 전용 아이템일 수도 있었고, 높은 급의 아이템일 수도 있었다.
아이템, 버프, 레벨, 특성.
이 모든 게 중첩되다보니 세뇌 스킬의 효과가 상당히 극대화 되어 있었다.
옆에 있던 김지훈이 비틀거렸다.
“으, 형.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세뇌 스킬 때문이야. 마력을 끌어 올려서, 머리 주변을 감싸봐. 상대가 우리를 향해 직접 스킬을 쓰는 게 아니니까,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오, 확실히···. 괜찮아졌어요.”
“그러면 이제 너희 형을 찾아보자.”
“네.”
김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살폈다.
교육을 받는 플레이어는 총 15명 정도. 나머지는 체이서의 클랜원이다.
“찾았어요. 저기 머리가 짧고, 목에 흉터가 있는 사람이 저희 형이에요.”
김지훈이 눈이 반짝였다.
유일한 혈육을 찾았다는 기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은 정신을 잃은 것처럼 멍했다.
세뇌 교육이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때 진영이 김지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작전을 설명할게.”
이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간부인 척 다가갔다가 진영이 모르는 사이에 보고가 올라가면 곤란하다.
그러니, 은밀히 해결 해야했다.
* * *
A급 세뇌술사 이중훈.
그는 체이서 클랜 소속이나, 가장 레드 리버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스킬 세뇌를 사용하면 효율적으로 클랜원을 관리하고, 인원을 보충할 수 있었다.
레드 리버에서는 그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 교육도 순조롭네.’
이번 교육생들은 다양한 클래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꽤 쓸만한 녀석이 많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었다.
바깥 사회에서 그는 거대한 규모의 사기를 저질렀었다.
사기가 밝혀지고 자포자기하던 상황에 탑에 들어 온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세뇌 스킬만 있으면, 뭐든 내 마음대로 나 다름없지.’
사람을 마음을 파고 들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였다.
어줍잖게 설득하거나, 복잡한 계획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자, 그러면 같은 표식을 뽑은 사람끼리 조를 나뉘어서 안쪽으로 이동합시다.”
강한 암시가 걸린 교육생들이 흐느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뇌의 장점은 이러한 암시가 풀린 뒤에도 대상의 행동을 완전히 조종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세뇌 당한줄도 모르고, 주입 당한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게 주입 당한 가장 첫번째는 이중훈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따를 것.
‘이번 교육만 제대로 끝내면, 레드 리버로 옮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 여겨서 교육할 것은 김영훈이라는 놈이었다.
‘A급 빛의 사제···. 잘만 키우면 대박인 놈이지.’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에게는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디스펠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예 자신에게 디스펠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완벽히 레드 리버의 병사가 되도록 세뇌 중이었다.
‘일주일 정도면 완벽히 세뇌가 끝이난다.’
단기간의 세뇌가 아닌 완벽한 정신 개조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법.
이중훈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런 이중훈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절대 은폐로 완벽히 위장된 공간.
이중훈을 포함한 이곳의 모든 인원이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진영이 헤르메스의 장갑을 고쳐 꼈다.
‘우선은 저 반지부터 빼앗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뇌 스킬을 약하게 하는 것이었다.
진영의 장갑이 희미하게 빛났다.
‘전용 스킬 - 적반 하장 발동.’
[ ‘스틸’의 레벨이 1회간 1 상승합니다. 스틸 Lv1 -> 스틸 Lv2 ]
[ 대상에게 접촉 하지 않고 스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마나와 체력을 크게 소모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지금은 완벽히 모습을 감춘 상황.
상관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서 있는 이중훈을 향해 진영이 왼손을 뻗었다.
‘스틸’
[ 원거리 스틸을 발동합니다. 목표 아이템을 훔쳐올 확률이 상당히 감소합니다. ]
실패해도 다시 반복하면 되지만, 가능하면 마력과 체력을 아껴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 탐욕의 왼손이 발동합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훔칩니다. ]
기분 좋은 알림이 떴다.
‘오!’
강화석으로 9%까지 올려두었던 부가 효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샤아아-!
빛과 함께 진영의 손아귀에 반지 하나가 쥐어졌다.
소동이 일어나는 건 잠시 뒤였다.
이중훈의 괴성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클랜원 및 교육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떤 놈이야! 어떤 새끼가 훔쳐갔어?!”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이중훈.
범인이 있을 수 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 뿐이었다.
“훈련은 취소한다. 다들 모여!”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은폐 구역 안에 있는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