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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49화 (49/152)
  • 너희는 내 밑이다(2)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진영과 김지훈은 체이서 클랜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는 깔끔한 신식 건물이었다.

    “어···.”

    김지훈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한순간 뿐이었다.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김지훈은 조용히 진영을 따랐다.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굽니까? 간부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시는데.”

    진영을 레드 리버의 간부라고 착각한 남자가 김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답해 줄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진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궁금한가?”

    그 태도에 남자가 몸을 움츠렸다.

    “아뇨, 아닙니다. 그보다 조만간 오신다는 연락을 들었었는데, 이렇게 빨리 오실 줄 몰라서 제대로 된 준비를 못 한 점 죄송합니다.”

    레드 리버 내의 비밀 조직은 상당히 비밀스럽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한국 제 2위의 클랜이 온갖 더러운 일에 연루되어 있고, 심지어 주도적으로 이끌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체이서 클랜은 명령을 하달받는 입장.

    특히 조직의 특성상 계속해서 담당 간부가 바뀌기에 얼굴을 모르는 건 당연했다.

    ‘타이밍이 좋군.’

    남자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간부가 방문할 예정이었던 것 같았다.

    그 틈을 운 좋게 비집고 들어 온 모양이니, 의심을 피하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넌 여기서 대기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진영이 김지훈에게 말했다.

    김지훈이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진영은 남자를 따라 유리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섯 명인가···.’

    널찍한 사무실에는 플레이어들이 꽤 모여있었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평균 등급 3단계 정도···.’

    주의해야 할만한 인물은 없는 듯했으나 진영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만한 인원이 동시에 밀어붙여 온다면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 있었다.

    “팀장님. 간부님 방문하셨습니다.”

    “아,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던 팀장이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는 레드 리버 특유의 수신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손을 까딱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드 리버 내의 비밀 조직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그런 신호.

    진영은 눈썹과 손가락을 움직이는 간부 특유의 동작을 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팀장은 밝은 미소와 함께 뒤에 있는 금고를 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셔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요. 뭐, 그래도 저희가 워낙 일을 금방 하지 않습니까. 물건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건이라.

    금고에서 꺼내지는 아이템을 바라보는 진영의 눈빛이 깊어졌다.

    “앉으시죠. 야, 커피 안 내오고 뭐하냐?”

    팀장이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다른 클랜원이 허겁지겁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진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았다.

    “명령 내려 주신대로 구해 놨습니다. ‘천계의 나팔’.

    팀장은 진영이 레드 리버의 간부라고 철석같이 믿은 채, 아이템을 싼 보자기를 풀어냈다.

    클랜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수신호가 어느 정도 보편화 된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레드 리버 내에서도 소수만이 알고 있는 극비 신호.

    방문 일정까지 겹쳤으니 의심하려야 할 수가 없는 상황.

    “가지고 있던 놈이 얼마나 악착같던지, 처리하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새하얀 뿔을 깎아 만든 나팔에서는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팔을 바라보는 진영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레드 리버도 ‘탑이 품은 보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건가.’

    콜렉터 염태준이 그리도 열심히 찾아 헤매는 극상의 아이템.

    5가지 보물을 모두 모은 자를 초월의 좌에 올려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순히 플레이어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탑 곳곳에 숨겨진 수수께끼 같은 글귀들과 단서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섯 보물을 다 모으게 되는 건 탑 내에 있는 한 사이비 종교 단체이지만.

    ‘천계의 나팔은 보물 중 하나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인데···. 뭐, 준다니까 잘 받아가야겠지.’

    콜렉터 염태준하고 교환하면 레전드리 아이템 하나는 가볍게 받을 법했다.

    진영은 나팔을 들고 이리저리 확인했다.

    “그래, 천계의 나팔이 틀림없군.”

    귀찮은 듯, 날카로운 목소리.

    팀장은 그런 진영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클랜원 하나가 조금 의심스러운 눈길로 진영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비공식 레드리버 산하 체이서 클랜.

    클랜원 중 하나인 김우건은 자신의 촉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처음 레드 리버의 간부가 클랜을 방문했다고 했을 때도 기분이 싸했다.

    ‘뭔가 이상해.’

    김우건은 심각한 표정으로 줄곧 진영을 관찰했다.

    ‘간부치고는 너무 온화한 거 아닌가?’

    그는 직책은 낮았지만, 체이서 클랜에 있던 시간은 가장 길었다.

    체이서에는 지금까지 총 두 번의 간부 방문이 있었다.

    그 때마다 다른 사람이었으니,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오는 건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간부가 너무 온화하다는 것이었다.

    레드 리버의 간부들은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전 간부 방문 때는 간부에게 맞은 클랜원들이 전부 몸져누웠었다.

    ‘그중에 하나 정도는 정상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수신호까지 확인한 마당. 괜히 의문을 표하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간부가 아니면, 우리 진짜 다 끝장나는 건데.’

    지금이라도 팀장에게 말해 봐야하나 고민하던 와중.

    “거기 너. 이리 좀 와봐.”

    그런 김우건에게 진영이 손짓했다.

    갑작스레 지목 당한 김우건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기 너 말고 누가 있냐.”

    김우건이 진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뻐억.

    묵직한 충격에 김우건이 바닥에 쓰러졌다.

    “커헉,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표정이 마음에 안들어서.”

    배를 감싸쥐고 앉은 김우건을 바라보며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영도 레드 리버의 간부들이 얼마나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김우건의 모호한 표정을 진영이 놓칠 리 없었다.

    99층까지 오른 진영이 깊게 깨달은 것은 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조심해야 할 것은 마수가 아닌 플레이어라는 것.

    타인의 표정을 읽어내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었다.

    의심스러워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게 도리.

    효과는 상당했다.

    ‘아, 씨. 뭐, 이런 미친 새끼가 있어.’

    고통에 신음하던 김우건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순간 간부가 아니지 않나 싶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정도.

    한 대 맞아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안심했다.

    이 완력. 그리고 폭력.

    “아, 마음에 안 드네.”

    뻐억!

    진영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김우건을 다시 한 번 내리쳤다.

    “크헉!”

    강렬한 충격에 김우건이 바닥에 쓰러졌다.

    팀장의 얼굴이 사색이 됐지만 별다른 말은 못하고 있었다.

    “야, 거기 너 이리 와봐.”

    “저, 저요?”

    진영은 다른 클랜원을 가리켜, 손가락을 까닥였다.

    당연히 그 클랜원에게도 일방적인 폭력이 가해졌다.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을 살려둘 생각은 없다.’

    진영은 얼굴을 숨기지 않고 왔다.

    처음부터 여기에 있는 클랜원들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플레이어 중에서도 지독한 놈들.

    대개, 바깥에서 큰 범죄를 저지르고 왔거나 하는 그런 놈들이 대다수였다.

    갈 곳이 없기에 탑에 자리를 잡은 범죄자.

    ‘미리 좀 때려 놓으면 조금 있다가 수월하니까.’

    퍼억, 퍼억.

    세 명 정도를 일방적으로 때려 눕힌 후에야 진영이 후련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아, 아뇨. 오히려 주먹이 호쾌하신 게···. 제가 다 시원하더군요.”

    식은땀을 삐질 삐질 흘리는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레드 리버에서 간부가 가지는 위상이 높았다.

    특히 배후에서 비밀리로 운영 되는 조직일수록 그랬다.

    진영은 대놓고 손을 까닥였다.

    수신호가 아니었다. 코인을 챙겨 달라는 의미.

    ‘여기까지 해줘야 의심을 안 하지.’

    팀장이 급하게 하나 남은 클랜원을 향해 눈짓했다.

    ‘여기까지 했으면 내가 간부라는 건 의심할 리가 없겠고.’

    수신호만 해도, 이미 증명된 상황에서 행동까지 간부와 비슷하게 취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는 게 아닌 이상 진실을 알아채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그렇고, 다른 클랜원들은 지금 어디 있지?”

    “아! 명령 주신대로 12층 F구역에서 교육 중에 있습니다.”

    긴장한 팀장이 술술 뱉어냈다.

    진영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교육이라···.’

    이곳에서의 교육이 의미하는 것은 세뇌였다.

    체이서 클랜에 충성을 다하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다.

    클랜을 운용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클래스는 이런 식으로 충당하곤 했다.

    진영이 아랫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심각한 표정에 팀장이 덩달아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진영이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은 상황.

    자세히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김영훈···.”

    김지훈의 형의 이름이었다.

    미리 받아 온 포츈텔러의 예언에 따르면, 이곳에서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적당히 뒷말을 흐리며 이야기하자, 팀장이 궁금했던 부분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 놈도 지금 12층에서 교육 중에 있습니다. 조만간 교육이 끝나면, 실전 투입도 가능할 겁니다.”

    역시. 김지훈의 형은 현재 이곳에 잡혀 있었다.

    바깥의 법이 닿지 않는 멸망의 탑 특성상, 이런 일이 꽤 일어나고 있었다.

    ‘······.’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 전에 여기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처리한다.’

    받기로 한 코인은 우선 받고.

    * * *

    “이건 그냥 저희 성의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클랜원이 가져온 코인 주머니를 팀장이 내밀었다.

    진영은 곧장 코인을 계좌에 넣어 양을 확인했다.

    그리고선 자연스레 미간을 찌푸렸다.

    “200코인···? 나에 대한 성의가 겨우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팀장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게, 저희도 지금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온 것 때문에 따로 코인을 모으기가···.”

    눈에 띄게 안절부절하는 모습이었다.

    “이게 끝이냐고.”

    지금 당장 모두 처리하고, 코인을 뺏어도 되지만 진영은 그러지 않았다.

    ‘그걸로는 모자라지.’

    이런 식으로 뒤가 구린 조직일수록 내부 인원이 코인이나 아이템을 횡령하는 일이 잦다.

    다른 장소에 숨겨둔 아이템이 있다면, 직접 꺼내오게 만들어야 했다.

    진영이 독촉하자, 팀장은 죽을 맛이었다.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클랜원들의 모습이 자신이 되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까.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간부에게 점수를 제대로 따놓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거라면···.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팀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이건 간부님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그 말에 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언가 숨겨 놓은 게 있긴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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