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48화 (48/152)

너희는 내 밑이다(1)

폐쇄 구역의 불타오르는 건물을 뒤로하고 진영은 현장을 빠져나왔다.

신화준은 죽었다.

진영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였던 그 자식에게 복수했다.

성취나 흥취, 감흥 따위는 진영에게 없었다.

복수가 무의미하다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쉽지 않겠어.’

100층에 존재하는 최후의 시련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1인을 가리는 것.

즉 탑에 살아남은 플레이어가 모두 모일 때까지 미션은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끝이 아니라 이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를 가로막는 무언가.

수 없는 회귀로 막대한 힘을 끌어모았을 신화준조차 그것을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신화준의 클래스는 무신(武神)이었다.

무예의 정점에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방해가 되는 존재를 압살하는 신.

그러나 그 방법은 탑의 끝에서 먹히지 않았다.

최상위 전투 클래스의 신화준이 모든 히든피스를 독점하고도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 탑의 누가 100층을 정복할 수 있을까.

진영의 마음에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잠시였다.

‘나는 신화준과는 다르다.’

진영은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이진영과 신화준의 결정적인 차이.

무언가가 그 차이를 낳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영이 도둑 클래스라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템이든 훔쳐낼 수 있는 탐욕의 왼손.

두근.

진영의 심장이 뛰었다.

앞으로 자신이 해낼 일들에 대한 기대감과 고양감이 솟아 올랐다.

단 한 번의 회귀였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는 충분하다.

고맙게도 과거의 신화준이 주절거려준 덕분에, 이미 머릿속에 든 정보는 한 번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훔칠 수 있는 것은 무기나 장비, 재료 말고도 다양하다.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게 이 탑에서 어떤 의미인지 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아직 훔쳐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일단은 보상부터 받을까.’

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한 진영이 허공에 떠오른 금빛의 구를 살폈다.

[ 이계의 근원이 자신의 제안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어필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당신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립니다. ]

진영의 히스토리를 살펴 본 이계의 존재들은 이번 복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복수는 그들에게 충분한 ‘활약’으로 느껴진 모양.

두 이계의 존재가 진영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성좌처럼 진영을 후원하던 녀석들이 오히려 거꾸로 선택을 기다린다니.

이번 보상은 확실히 무언가가 달랐다.

[ 선택 받은 이계의 존재의 위계가 상승합니다. ]

‘위계라···’

이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정확히 위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녀석이 기대하고 있다는 건 메시지 너머로 잘 느껴졌다.

즉, 이 둘은 진영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

‘우선은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봐야지.’

[ 이계의 근원이 ‘이계 유적 입장권(40층 이상 입장 권장)’을 제시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이계 던전 입장권(20층 이상 입장 권장)’을 제시합니다. ]

보상을 확인한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을 직접 주는 게 아닌 이계 관련 히든 플레이스 입장권.

그 안에 상당한 아이템이 들어 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근원이 제시한 건 유적 입장권···.’

처음부터 진영을 주시해 온 만큼 진영의 흥미를 끄는 제안이었다.

유적과 같은 장소에는 필시 그에 따른 아이템이 숨겨져 있다.

‘이계’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건 당연하겠으나.

문제는 권장 난이도가 40층이다.

‘지금 들어갔다가는 찍소리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만큼 이계의 근원이 진영의 실력에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다음은 던전 입장권.’

이쪽은 지금 당장 입장해도 괜찮은 정도의 난이도다.

보상은 유적에 비하면 별로일지 몰라도, 공략하기에 무리가 없다.

공략이 불가능하면 입장이 의미가 없어지니.

선택지를 살핀 진영이 눈빛이 깊어졌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에게 기대를 겁니다. ]

[ 이계의 본질이 긴장을 숨기지 않습니다. ]

이윽고 진영이 입을 열었다.

뭘 골라도 나쁘지 않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리고 그 선택의 주도권이 진영에게 있다면.

당연히 해야하는 선택이 있다.

“이거 굳이 지금 고를 필요 없잖아? 당분간 하는 거 보다가 내 마음에 드는 녀석 걸 고른다.”

[ 이계의 존재들이 당신의 선택에 경악합니다. ]

* * *

[ 이계의 본질이 ‘이계 스킬 강화석’을 제공합니다. ]

[ 이계의 근원이 ‘이계 스킬 강화석’을 두 개 제공합니다.]

[ 이계의 본질이 ‘이계 스킬 강화석’을 세 개 제공합니다.]

[ 이계의 근원이 눈물을 흘립니다. ]

[ 이계의 본질이 웃음을 흘립니다. ]

아무래도 이계의 존재들에게 있어 ‘위계’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모양.

지금까지 보상에 인색했던 녀석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게 무한하지는 않은 거로 보아 녀석들도 어떤 자원을 소모해서 진영에게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나한테는 잘된 일이지.’

순식간에 진영의 손에 6개의 스킬 강화석이 들어 왔다.

“그래, 아주 좋아. 이계의 본질이 지금 우세하네.”

[ 이계의 본질이 미소 짓습니다. ]

어차피 당장 선택지를 고를 필요도 없고, 생각도 없다.

보상을 안 받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므로.

진영은 우선 뜯어낸 이계 스킬 강화석을 사용했다.

파사삭!

[ 이계 스킬 강화석 6개를 사용하셨습니다. ]

[ 기존 스킬에 랜덤하게 부가 효과를 부여하거나 강화합니다. ]

[ 스틸의 부가효과 ‘탐욕의 왼손S’의 성공 확률이 4% 증가합니다. ]

[ 스킬 ‘절대 은폐’가 강화 되었습니다. ]

5%로 모든 대상에게서 아이템을 뺏어오던 탐욕의 왼손의 확률이 9%가 되었다.

점차 늘어나는 확률을 보니 괜스레 뿌듯해진다.

‘거기에 절대 은폐 강화까지.’

강화가 되었다는 것은 부가 효과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스킬 창을 열어 확인해 보자, 아니나 다를까 굉장한 부가 효과가 붙어 있었다.

- 부가 효과

+ 절대 은신 : 은폐 구역을 생성하는 대신 사용자의 모습을 감춥니다. 대량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은신!’

도둑 계열 플레이어 중에서도 운이 좋은 플레이어만 가질 수 있는 스킬이었다.

심지어 ‘절대 은폐’에 붙은 부가 효과이니, 절대적인 은신을 보장한다고 볼 수 있었다.

- 절대 은신

시험삼아 골목으로 들어간 진영이 스킬을 발동시키자, 주변이 고요해지는 감각과 함께 진영의 모습이 감춰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전투에서의 압도적인 우위.

그리고 아이템을 훔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마련된다는 것.

“잠깐······.”

그러나 진영은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력 소모가 미친 것 같은데.’

은신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초였다.

어떤 존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는 ‘절대 은폐’ 스킬의 성능을 생각하면 합당한 소모량이기는 했으나,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마력 관련 아이템을 따로 끌어 모을 필요가 있겠어.’

이계의 지원을 받아, 진영의 스킬이 한층 풍부해졌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구해야 할 아이템과, 탑을 완벽하게 공략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 * *

“허억, 너무 힘들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스킬도 새로 습득하셨고, 사용도 능숙해졌으니.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땀범벅이 된 김지훈이 게이트를 쓰러지듯 빠져나왔다.

옆에 서 있던 그랑블루의 도우미가 김지훈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정보 교환을 대가로 얻은 S급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코인과 아이템을 주고, 게이트를 돌게 해 실력을 쌓게 해주는 단기 속성 과외였다.

김지훈이 허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 근데 왜 저만 여기서 혼자 이러고 있는 거죠.”

주오령 형도 함께 시작했건만, 코인을 받은 뒤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그 사람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같이 지원 프로그램을 받을 줄 알았는데, 결국 남아 있는 건 김지훈 혼자였다.

‘그래도 진영이 형이 날 위해서 얻어 준 기회니, 최대한 열심히 해야지. 계속 빚만 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

코인으로 능력치도 강화하고, 마수를 사냥하는 법도 익혔다.

지훈은 한 번 진 빚을 절대로 잊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탑에 들어 왔을 때는 친형을 찾아 나가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탑을 오르면서부터였다.

운 좋게 진영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미 자신은 죽었거나 탑의 아랫층에서 빌빌대고 있었을 테니까.

김지훈은 진영에게 더없이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내려가시죠.”

“아, 넵.”

훈련이 끝나고, 11층에서 10층으로 내려가려는 그때였다.

“형!”

“지원 프로그램은 할만해?”

“네, 뭐 그럭저럭···.”

이진영이 웃는 얼굴로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주오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오령은 어떻게 된거죠?”

“그게···.”

진영의 말에 지원 프로그램 도우미가 다가왔다.

“진영씨 맞으시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칠원이라고 합니다.”

“아, 네.”

“주오령씨는 코인만 받고 다른 곳으로 사라지셔서요. 저희 쪽에서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워낙에 기인인지라 진영도 주오령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긴 힘들었다.

코인은 챙겨갔다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력만을 생각하면 주오령은 끝까지 살아남을 녀석이다.

신화준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죽을 이유도 없던 놈이니.

진영이 입을 열었다.

“주오령은 굳이 찾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이만이라도, 잘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정칠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S급 지원 프로그램에는 코인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도 투여된다.

정칠원 또한 바깥에 나가면 A급 헌터로 대우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

주오령을 찾지 않아도 되면, 그랑블루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아, 그리고 진영씨. 저희 부마스터님께서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내일 점심 즈음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마스터에게서 반응이 있다.

아무래도 한 차례 있었던 정보 교환이 꽤 흡족스러웠던 모양이다.

“훈련은 끝난건가요?”

“네. 이맘때 쯤이면 끝납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지훈아, 나랑 어디 좀 가자.”

“아, 네. 근데 어디로요?”

김지훈이 고개를 기울였다.

진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 형 찾으러 가야지.”

* * *

잠시 후, 진영과 김지훈은 클랜 지구에 있는 깔끔한 2층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여기에 저희 형이 있는 건가요?”

지훈의 물음에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포춘텔러에게 예언을 받아 찾아낸 장소가 여기였다.

신화준의 경우, 진영이 녀석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예언도 잘 나와 찾기 수월했지만.

실제로는 예언은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

‘그건 그렇고, 우연치고는 절묘하군.’

체이서 클랜.

이곳은 이름은 다르지만, 레드 리버나 다름없었다.

본부에서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주로 맡고 있다.

전문 암살자 플레이어를 양성하는 등 외부에 공개하기 힘든 일들은 이곳에서 전담한다.

진영을 습격했던 녀석들도 여기서 전문적으로 키워진 플레이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들릴 생각이었는데 잘 됐어.’

회귀 전 일어난 그랑블루와 레드리버의 클랜 전쟁에서 진영은 레드 리버의 편에 서 있었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클랜 전쟁의 불씨가 생겨난다.

레드 리버와 그랑블루의 대치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그랑블루가 이곳 클랜을 공격하는 일이 생긴다.

레드 리버는 그랑블루가 클랜 싸움과 관련 없는 클랜을 공격했다는 것을 명목으로, 도덕적 지탄과 함께 전쟁을 선포한다.

모든 건 계획된 일이었다.

탑을 공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지금.

플레이어끼리 전쟁을 벌이는 일은 없어야 했다.

“그냥 들어가도 되겠죠?”

간판에 적힌 이름을 읽은 지훈이 머뭇거렸다.

끼익.

그러자 건물의 문이 열리며 우락부락한 남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밖에 서성이는 진영과 김지훈을 본 모양이었다.

남자는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저희는 외부인 출입은 금지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어, 그···.”

그때, 진영이 앞으로 나서며 다짜고짜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아,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죠.”

남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레드 리버의 간부들만이 알고 있는 수신호.

전쟁을 겪은 진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지금.

이 신호를 알고 있다는 것은 레드 리버에서도 비밀스런 직책을 맡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들어가지.”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지훈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