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절망(3)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신화준이 무기를 꺼내 놓고 있지 않던 것도 한 몫 했다.
진영은 신화준의 눈에 맺힌 공포를 정확히 읽어냈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신화준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사슬에 묶인 채 눈을 부릅뜬 신화준이었다.
`겨우 이런 녀석이 그동안 내가 믿고 따라왔던 신화준이었다니.`
회귀 전 신화준이 보여주었던 모습은 진영의 기억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자랑처럼 늘어놓은 신화준의 일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신화준이 정말 어중이떠중이였다면, 진영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회귀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무한한 회귀라는 가면을 벗은 신화준은 그저 자존심 강한 쓰레기에 불과했다.
"왜 그 팔찌가 니 새끼한테 있는 거야?"
표정을 일그러뜨린 신화준이 진영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뻐억.
진영이 검의 손잡이로 신화준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으, 시발!"
녀석이 고통에 신음하며 머리를 붙잡았다.
진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은 내가 해. 넌 대답만 하면 되는 거고."
"크윽."
불만스러운 듯 이를 악물지만, 신화준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고집을 부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죽고 싶지 않거나.
진영이 자신의 팔 목을 감싼 팔찌를 가리켰다.
"가장 궁금했던 건 이 팔찌에 대해서야. 이런 걸 어디에서 얻은 거지?"
무한한 회귀를 부여할 뿐 아니라, 이계의 존재들을 끌어 모으는 아이템.
이름 하여 `절대 회귀`.
이계의 규율을 지키는 한 사용자에게 무한한 회귀를 보장한다.
신화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알려 줄 것 같아? 알고 싶으면 이것 좀 풀고 말하던가."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스릉-.
진영은 들고 있던 단검의 검집을 뽑아냈다.
"지금 당장 널 죽여도 상관 없어. 지금 회귀가 가능한 건 나야. 뭐가 됐든 내가 직접 알아보면 되니까."
카른웨난의 검날이 신화준의 눈 앞에서 번뜩였다.
그 모습에 신화준이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의 성격 때문에, 회귀에 적응하다보니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왔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죽고 싶지 않았다.
신화준이 입을 여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5층에 도착했을 때 어떤 성좌가 나한테 줬어. 그 때는 성좌인 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계의 존재였어."
25층부터는 성좌들이 등장하며, 플레이어의 후원자를 자처한다.
그들은 탑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탑 내에서 지대한 영향을 흩뿌린다.
"처음에는 평범한 성좌나 다름 없었는데, 내 단독 성좌가 되더니 진명을 까는 거야. 근데 웃긴 게 그 진명이 이계의 절대자랬나.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맨 처음 빼고는 만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건 몰라."
신화준이 알고 있는 바를 술술 뱉어냈다.
`성좌들 안에 이계의 존재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거군.`
히든 피스의 부정확한 정보건도 그렇고, 진영은 신화준의 말을 100% 믿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직접 확인해야했다.
"나도 하나만 묻자. 어떻게 내 팔찌를 훔쳐간거야?"
그 말에 진영이 흥미롭다는 듯 신화준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한 말을 종합하면, 지금 신화준은 진영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예 회귀를 안 한 것은 아니다.
진영이 회귀함과 동시에 신화준도 이전 회차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팔찌가 같이 사라졌다는 건, 진영으로서도 신기한 부분.
진영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너하고 나는 99층에 올랐었다. 그리고 네가 날 죽이려 했었고.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 대답이 마음에 들면 알려주지."
진영이 회귀와 동시에 진영을 죽이려 했던 신화준은 사라졌다.
`왜 나를 죽인거지?`
그에 대한 답은 간접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는 듯 인상을 쓰던 신화준이 대답했다.
"확실히 팔찌만 있었으면 이번 회차에 널 데려갈까 싶기는 했었거든. 아마, 데려갔겠지. 나는 쓸만한 놈들만 골라서 파티를 짜거든. 말 잘듣고 고분고분한 녀석들로 말이야."
최후의 6인조차 신화준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파티였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실력자이기도 했으나 신화준과 큰 마찰을 빚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근데 매 회차마다 동일하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꾸준하게 50층까지 올라가는 플레이어가 있더라고. 그게 너였어. 클래스가 허접한데 그런 식으로 꾸준한 성적을 내는 놈은 못 봤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동행하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진영도 꽤 흥미가 가는 부분이었다.
자신은 모르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그렇다면 왜 99층에 와서 진영을 죽였는가.
"내가 널 죽인다라. 흠, 거슬리지만 않았으면 죽일 리가 없는데. 99층까지 갔다는 건 내 맘에 들었다는 거잖아. 그런데도 죽였다는 건 아이템, 인성은 아닐테고... 스킬, 스킬이 문제였나?"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나열하다가 녀석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나를 쳐다보는 신화준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너, 설마 인벤토리를 훔칠 수 있는거냐? 도둑 클래스한테 그렇게 좋은 능력이 있었단 말이야?"
스틸 스킬은 마스터 레벨인 Lv3가 되면 타인의 인벤토리를 훔칠 수 있다.
지금은 팔찌 덕에 새로 생긴 능력으로 인벤토리를 털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죽이지. 니가 내 아이템을 훔칠 수도 있잖아. 99층까지 올라 봤다니까 하는 말인데, 어차피 100층까지 오르면 결국 살아남는 건 하나거든. 그 싸움에서 네가 내 팔찌를 훔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렇게 말한 신화준이 덧붙여 중얼거렸다.
"아니지 시발, 뺏긴 거구나. 그래서."
100층에 도달하면 살아남는 것은 하나다.
진영조차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신화준은 자포자기 한 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팔찌가 사라진 이유도 알겠네. 이계 규율은 모든 회귀에 우선하거든. 그러려면 하나의 팔찌만 존재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이 정도면 대답이 됐으려나?"
"팔찌는 장착하지 않아도 효과가 적용되는 건가?"
진영의 말에 신화준이 끄덕였다.
"그래, 소유권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그래... 도둑질은 소유권을 가져가는 거니까... 젠장. 미래의 내가 멍청했네."
멍청하고말고.
진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자신을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신화준이 아이템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거다.
"다음으로는 이계의 존재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다 말해 봐."
"나도 몰라. 가끔 이계와 관련된 좋은 아이템을 던져주기는 해도, 그게 전부였어. 이계의 ■■나 이계의 ■■? 날 구경하기는 해도 그게 끝이었다고."
진영이 칼을 들이대자 신화준이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그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잠깐 다시 말해봐."
"뭐? 이계의 ■■?"
신화준이 말하는 단어가 필터링된 듯 진영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이계의 근원이 다른 존재의 이름에 불쾌감을 느낍니다. ]
[ 이계의 본질이 근원에게 동의합니다. ]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계의 존재가 여럿 숨어 있다는 게 더 중요할 뿐.
`어쨌든 내 생각보다 이계의 존재가 꽤 많은가 보군.`
문제는 이것과 관련해 신화준이 그다지 아는 사실이 없다는 것.
그나마 팔찌를 건네 준 이계의 지배자에 대해서는 건져내서 다행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진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몇 가지 질문이 남지 않았다.
"이계 규율을 사용하는데 제약 같은 건 없어?"
이름 없는 여신의 신탁은 회귀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영이 회귀를 사용하지 않은 것도 왠지 모를 찜찜함 때문이었다.
사용할수록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러나 신화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내 맘대로 하고 다닐 수 있었겠어? 심지어 저장 포인트도 과거, 현재, 미래에 국한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데."
확실히 그렇다. 그렇지만, 이름 없는 여신의 신탁 또한 범상치 않았다.
과연 이계의 존재가 아무런 이유 없이 팔찌를 신화준에게 주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사용하겠지만 말이다.
진영이 다음 질문을 했다.
"지난번 테러는 무슨 생각으로 저지른거지?"
회귀도 못하는 주제에, 깽판을 쳐놨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신화준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는 모를 수 있겠네. 꼭 없애야할 놈이 몇 놈은 있거든. 가만히 놔뒀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놈들. 미리 싹을 제거한 거지."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신화준이 하는 일 따위 어차피 뻔했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가장 의문이 드는 건 이거였어."
잠시 침묵한 진영이 뒷말을 이었다.
"너는 왜 그 수많은 회귀 동안 멸망의 탑을 끝까지 공략하지 않은 거지?"
* * *
불가능.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러했다.
100층에 올라, 멸망의 탑으로부터 세계를 구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도취된 파티의 앞에 찾아온 것은.
마지막 층을 공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100층의 보스는 마수가 아니다.
탑이 만들어낸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100층에 오른 플레이어 그 자체였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1인이, 탑의 정점에 선다.
그리고 그 정점의 끝에는.
"뭔가가 있어."
신화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진짜 장난 아니라고! 쫄리니까 그 칼 내려놓자, 젠장."
손사래를 치던 신화준이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나도 모르겠는데. 더럽게 쎈 놈이 있다고. 그 놈은 무슨 짓을 해도 못 이겨. 나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니까? 세계는 무조건 멸망하지,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내가 안 미치고 버틴 게 용하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신화준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지난번 회차에서 신화준은 한 끗 차이로 녀석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살아남아야 했고.
"야, 이진영. 내가 하나 제안할게. 너는 모르는 게 많아. 대신 나는 무수한 경험이 있고 지식이 있지."
진영이 물끄러미 신화준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자. 그러면 안 될 게 어디에 있겠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팔찌를 사용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게. 100층의 그 녀석에 대한 정보도 다 줄게. 어때?"
신화준이 눈이 반짝였다.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스윽.
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더 이상 진영에게 신화준을 향한 증오심이나, 부당함에 대한 분노는 남아 있지 않았다.
`탑을 공략하는 것은 평범하게는 안된다.`
신화준을 처리하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일에 불과했다.
복수 또한 그중 하나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탑의 공략에 있어 방해되는 존재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헌터가 되지 않고 탑을 오르기로 했을 때.
진영은 다짐했다.
가장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하자고.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자고.
목표는 정해졌고, 신화준은 답을 모른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스걱-.
"!"
툭.
신화준의 목이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경악한 표정을 지은 신화준의 얼굴.
변수가 될 수 있는 신화준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이 녀석을 동료로? 미친 짓이었다.
그 성격에 배신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진영은 손을 털어내며, 품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특수 기름병과 성냥 하나를 꺼냈다.
치악-!
기름 병에 불을 뿌린 뒤, 성냥의 불을 내던졌다.
화아악!
불과 함께 모든 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 자체는 발견 되는 즉시 NPC들에 의해 꺼질 것이다.
하지만 특수한 기름을 타고 오르는 불길이 여기 있는 신화준을 누가 죽였는지 알 수 없게 만들 거다.
진영은 서두르지 않고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 이계 규율에 따른 히스토리를 통틀어 ]
[ 핵심이 되는 `복수`에 성공하셨습니다. ]
[ 이계 주시도가 상승합니다. ]
[ 두 이계의 존재가 찬사를 보냅니다. ]
진영의 앞으로 두 개의 황금색 빛이 내려왔다.
[ 이계의 근원이 이계 규율에 따른 특수 보상을 지급합니다. ]
[ 이계의 본질이 이계 규율에 따른 특수 보상을 지급합니다. ]
진영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정보창을 확인했다.
[ 둘 중 하나의 보상을 선택하여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
[ 선택받은 이계의 존재의 위계가 상승합니다. ]
[ 두 이계의 존재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