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39화 (39/152)

10층을 향해서(3)

투쾅!

기계 인형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후, 여기서부터는 적이 없나 본데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민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영의 예상대로 일행은 어렵지 않게 지름길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쉽게 왔네요.”

“거참 아가씨. 쉽게 왔다니, 말이 심하네. 나 관리자 상대하다가 죽을 뻔한 거 못봤어?”

멸망의 탑에 있는 100개의 플로어는 서로 이리저리 얽혀 있다.

수십 층의 간격을 두고 이어져 있는 지름길도 존재한다.

지름길은 빨리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만큼 난이도가 상당했다.

‘운 좋게 파티가 잘 구성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지나올 엄두도 못 냈을 거야.’

민아영과 염태준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새롭게 참전한 염태준 덕분에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어! 저기! 나가는 문 맞죠?”

김지훈이 손을 뻗어 벽면의 둥근 철문을 가리켰다.

8.5층에서 10층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문이었다.

진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쳐있던 일행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헬퍼 임무를 여러 번 맡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누나, 고생했어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그래? 내가 도움이 됐나 모르겠네.”

김지훈의 위로에 민아영이 허탈하게 웃었다.

이제는 정말 나가는 것만 남았다.

문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한 주오령이 둥근 철문을 밀었다.

끼익. 철커덩.

오랜 시간 닫혀 있었던 철문이 특유의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 10층 : 플레이어 거주 지역 - 홈 ]

[ 환영합니다. 탑의 시련을 돌파하셨습니다. ]

[ ‘외부 출입 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

화악-.

답답한 기운이 걷히고, 바깥의 시원한 공기가 쏟아졌다.

“여긴 시계탑이잖아. 말도 안 되게 이어져 있네.”

바깥으로 몸을 내민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일행이 위치한 곳은 벽에 시계 탑의 꼭대기.

플레이어 거주 지역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여기가 플레이어 거주지역···.”

풍경을 내다보는 김지훈은 숨을 삼켰다.

아기자기한 1~3층 높이의 다양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러면 먼저 가시죠.”

“엥? 진영씨는 안 오세요?”

“네, 저는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금방 뒤따라가겠습니다.”

“아뇨, 그러면···. 뒷일은 대체 어떻게···.”

시계탑의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려던 민아영이 곤란한 표정을 했다.

이진영과 주오령, 김지훈을 모두 10층까지 올렸지만 여전히 회귀자에 대한 오해는 풀리지 않은 상태. 민아영 혼자서 이 모든 사태를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별로 오래 안 걸릴 겁니다. 그리고 이제 사정을 숨길 필요 없이 전부 설명하셔도 됩니다.”

“그걸 제 입으로 말해야 하는 게 큰일인데요.”

10층까지 안전하게 올라왔으니, 더는 회귀자가 나라는 것에 대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레드 리버 암살자의 습격, 염태준의 등장까지 그랑블루와의 교섭 거리는 충분하다.

“뭐야, 넌 안 간다고? 나랑 한 약속 어길 생각은 아니겠지?”

“염태준, 상업 지구 D구역 ‘흑장미 상회’에 있는 말단 NPC 중에 네가 원하는 정보를 들고 있는 놈이 있을 거야.”

“흠, 그래? 뭐 좋아.”

그 말을 어떻게 믿냐며 물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염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에게 죽을 뻔한 걸 구해 준 일이 좋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주오령하고 지훈이. 너희 둘은 민아영씨 따라다니면 될거야.”

“네, 형.”

“······.”

주오령은 입을 꾹 다문 채 진영을 노려보았다.

원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영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아, 맞다. 마지막으로 코인 좀 빌려줘 봐요. 가진 거 전부.”

* * *

일행을 먼저 10층으로 보내고, 진영은 철문을 닫고 돌아섰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

“······. 보고만 있지 말고 메시지라도 좀 보내봐라. 몰빵하겠다던 얘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10층으로 넘어가기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일행이 헤짚어 놓고 온 길을 되돌아가다 보니 균열이 크게 나 있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자, 태엽 형태의 차가운 금속이 만져졌다.

철컥. 드드드···.

태엽을 돌리자 금속음과 함께 맞은편의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세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만들어졌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

“뭔가 보여줘야 줄 수 있다 이거냐. 아몬 피해서 도망친 건 활약 아니야? ”

[ 이계의 근원의 갑자기 주시도가 약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

변명이 틀림 없다. 자기가 쳐다보는 거면서 무슨.

어찌되었든 이계의 근원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스킬석을 사용할 때도 간섭했었고, 2층의 진짜 히든 피스를 얻었을 때도 이계의 근원이 반응했었다.

“이것도 되나 한번 보자고.”

바닥의 태엽을 돌려 생긴 틈새로 진영은 몸을 들이밀었다.

진영이 들어가자마자 순차적으로 벽면에 붙어 있는 발광석들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오래 방치되어 이끼가 잔뜩 낀 방 끝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녹슨 기계 인형이 힘없이 몸을 움직이며 진영을 맞이했다.

[ 8.5층 히든 플레이스 - 녹슨 기계 상인의 가게 ]

8.5층에 있는 지름길은 꽤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된다.

인류가 탑을 공략해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플레이어들의 수준도 점차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갖가지 클래스가 가진 스킬에 의해 숨겨진 장소도 금세 밝혀진다.

이 장소만 해도 사전 지식이 없다면 절대 찾을 수 없었겠지만, A급 이상의 탐색 관련 클래스와 충분한 스킬 레벨이 있다면 찾기 쉬운 편에 속했다.

“무슨···. 아이템을···. 원하십니까?”

이곳 녹슨 기계 상인의 가게 또한 그런 식으로 밝혀진 곳이었다.

유니크급에 달하는 아이템들을 코인으로 파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큰 소문 없이 묻혔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 이곳에서 파는 아이템들은 가격대비 그다지 좋은 상점은 아니었다고 들었다.

던전을 돌아다니는 떠돌이 상인들 중에는 더 귀한 아이템을 싼 가격에 파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인류가 25층을 넘어간 시점이었고, 유니크 아이템이 시중에 많이 풀려 비교적 얻기 쉬워진 때였다.

반면 지금은 탑 공략이 15층에 머문 초반부.

‘가치는 차고 넘친다.’

촤르륵-.

진영은 카운터 앞으로 다가가, 계좌에 있는 코인을 전부 쏟아냈다.

은빛 코인이 기계 장치 상인의 앞으로 이리저리 튀었다.

‘총 4124코인.’

진영이 가지고 있던 1352코인과 일행에게서 빌린 코인을 합치니 그 정도 양이 모였다.

“팔고 있는 아이템 전부 정보창에 띄워.”

“······. 알겠습니다.”

녹이 슨 NPC는 사람의 형체만 간신히 하고 있을 뿐, 로봇과 닮아 있었다.

NPC가 손을 움직이자, 진영의 앞으로 카탈로그가 띄워졌다.

[ 유니크 ]

- 장인의 공구 : 2800 코인

- 도둑의 장갑 : 3100 코인

- 아이템 주머니 : 2900 코인

- 마법 부여 위치 햇 : 3000코인

[ 레어 ]

- 청색 토시 : 1540 코인

- 푸른 구슬 : 1620 코인

···

..

.

목록을 확인한 진영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 저 장갑이 여기에 있었을 줄이야.’

진영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반가운 아이템이었다.

암시장을 거쳐 우연히 동료 플레이어의 손에 들어 왔던 장갑을 그가 죽고 나서 진영이 넘겨받았었다.

진영은 망설임 없이 코인을 사용해서 아이템을 구매했다.

“도둑의 장갑 구매할게.”

“알겠···습니다. 도둑의 장갑···. 구매하셨습니다. 3100 코인 가져가겠습니다.”

기계 상인 NPC가 코인을 계산해 가져가고, 뒤쪽의 공간에서 검은색 광택이 묻어나는 장갑 하나를 가져왔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상점 내부와는 달리, 장갑은 새것처럼 반짝였다.

‘착 달라붙는군. 아주 좋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한 성과였다.

진영이 가진 코인으로 여기에 있는 아이템을 모두 사는 건 불가능했다.

전부 합쳐서 2만 코인이 넘는 가격인데, 진영이 가진 전 재산은 4천 코인 뿐이었다.

그것도 방금 아이템을 사서 남은 코인은 900개 가량이다.

‘아이템 주머니도 탐나는데.’

인벤토리 스킬이 붙어 있는 아이템 주머니였다. 확실히 가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상점에서 아이템을 직접 훔쳐낼 수는 없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하는 게 낫지.’

상점 NPC들은 도난에 민감하다.

탑에는 수많은 플레이어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클래스가 있다.

범죄 계열 플레이어들은 상시 상점을 털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세우곤 했는데, 그들에게도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NPC의 상점은 털지 말 것.

이유는 단순했다.

상점을 지키는 NPC는 유별나게 강했다.

평범한 아주머니도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훔쳐가기만 하면, 특수 버프를 받고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숨겨진 던전의 상점 같은 경우에는 그게 더욱 심했다.

‘아마 아이템을 훔쳐서 나가려는 순간, 입구가 막히고 숨어 있던 병장기들이 쏟아질거야.’

탑은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탑의 규칙도 그렇고, 관리자도 그렇고 밸런스가 붕괴되는 걸 막기 위한 장치가 꽤 많다.

하지만 99층까지 올라 본 진영은 거기에 꽤 많은 허점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터억.

진영의 왼손이 기계 상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코인은 어떨까.’

상인에게로 주어진 코인은 상인의 인벤토리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벤토리에서 코인을 훔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스킬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인벤토리는 흔히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여겨진다.

인벤토리를 훔칠 수 있는 건 도둑이 유일하다.

심지어 그것 또한 스틸 스킬의 레벨이 3이 되어야 가능하니, 사실상 완전한 장소였다.

‘이제는 아니지만.’

지금 진영에게는 인벤토리조차 뚫어낼 수 있는 스킬이 있다.

3% 확률로 모든 아이템을 훔쳐온다는 그 단순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극한의 이득.

코인 또한 아이템이었으므로 예외는 아니었다.

샤아아-.

빛과 함께 진영의 손에 방금 전 지불했던 3100코인이 그대로 쥐어졌다.

“어떤···. 아이템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코인을 도둑맞은 기계 상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진 말만을 반복했다.

그가 지능이 있는 상인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아이템 주머니. 살게.”

어쨌든 녀석은 특정한 동작만을 수행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불합리한 상황을 보고도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알겠···. 습니다.”

2만 코인이 넘는 상점의 모든 물품이 진영 한 사람에 의해 털리는 순간이었다.

* * *

아이템 주머니에 상점의 아이템을 쓸어 담은 진영이 철문을 열고, 10층으로 빠져나왔다.

‘자본은 이 정도면 충분하고···. 이제 그랑블루에 가서 필요한 지원을 뜯어내기만 하면 되겠어.’

민아영과 주오령, 김지훈이 그랑블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진영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웅성웅성.

10층 거리를 지나오자 인파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진영이 도착한 곳은 클랜 지구.

10층은 상업, 클랜, 거주 등 용도에 나라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클랜 지구는 그중에서도 활발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클랜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10층이라는 높은 높이를 자랑하는 그랑블루의 건물.

진영이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서 오십쇼!”

진영이 발을 들이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정장을 입은 남자가 뛰어왔다.

“이진영 플레이어님 맞으시죠?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일행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영이 기계장치 상점에서 소모한 시간 약 1시간.

그랑블루에 먼저 도착한 민아영에 의해, 회귀자가 주오령이라는 오해는 해소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저희 길드가 정신이 없어서요. 조금 어수선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멋쩍은 얼굴로 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15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수 폭주만 아니었더라도, 더 많은 인원이 마중을 나왔을 것이다.

“이쪽입니다.”

진영은 남자의 안내를 따라 복도 한쪽에 놓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로 보이는 장소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가구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 오셨군요···.”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랑블루의 부마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후한 목소리가 특색있는 30대 후반 정도의 남성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그랑블루 간부 고정민입니다.”

“이진영입니다.”

진영은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소파에 앉았다.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연건 고정민이었다.

“일단, 저희쪽 실수에 대해서 사죄 드리겠습니다.”

꾸벅.

앞 뒤 따질 것도 없이 고정민은 머리를 숙였다.

그는 진영이 오기 전에 이미 민아영으로부터 대략적인 상황을 전달 받은 상태였다.

회귀자에 대한 착각.

어찌보면 그리 큰 실수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필히 영입해야하는 회귀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일이라면 문제가 되는 게 맞았다.

“회귀자를 식별하는 과정에서 저희 쪽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정민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그랑블루 쪽 관측자 클래스의 실수로 발생한 일이었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또 저희 쪽에서 파견하기로 했던 헬퍼에 대해서도 사죄 드리겠습니다.”

현재 그랑블루는 대부분의 전력이 15층에 위치해 있다.

15층에서 보스 폭주가 일어나며 전력을 모두 이동시키는 바람에 진영을 안전하게 데려와야 할 헬퍼들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결과 염태준이라는 해결사의 개입을 야기했다.

진영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

꿀꺽.

고정민은 긴장한 듯 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슬며시 들어 진영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을 읽기가 꽤 어려웠다.

‘대충 먹히고 있는 건가?’

그랑블루 입장에서는 진영 스스로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었다는 것을 빌미로 변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정민은 곧장 사과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회귀자 이진영은 어찌되었든 그랑블루를 선택한다.’

두 차례의 암살 시도에도 이진영은 레드리버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게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랑블루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게 확실해.’

회귀자를 여러 번 상대해 본 고정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그랑블루의 실책은 뼈저릴 정도였다.

진영이 레드 리버로 회유되던 납치되었던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가 그랑블루를 고집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남은 건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 된다. 어차피 저쪽도 이쪽으로 오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일 테니까.’

다소 착각이 있었지만, 민아영 헬퍼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번 7번째 회귀자는 굉장한 능력자가 맞았다.

이런 회귀자를 데려올 수 있다면 사과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일단 영입만 하면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클랜원이 된 이상 진영에게는 의무가 생긴다.

그것이 법적이든, 탑의 마법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회귀자의 가치는 어차피 정보를 털어 낼 때까지다. 클랜원이 되면 그게 어쩔 수 없이 불게 될 테고.’

그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위신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고정민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진영이 입을 열었다.

“고정민씨.”

“예?”

진영의 어조는 싸늘했다.

“저는 그랑블루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시죠?”

“레드 리버로 가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그랑블루가 돈과 재원이 많아서입니다.”

“아하, 그 말은 지금 계약에 관련해 부족하신 부분이 있으시단거군요?”

그렇게 물으면서도 고정민은 속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거 꽤 속물이구만.'

고정민 그도 산전수전 겪은 그랑블루의 간부였다.

회귀자를 상대해 본 적도 여러 번이었다.

때문에 진영의 행동은 어차피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면서 말이야.'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진영이 불쾌한 듯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영입 제안은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거래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정보를 그랑블루에 팔 테니 그쪽에서 제 요구를 들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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