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을 향해서(2)
빨갛게 맺힌 불 덩어리들이 사정 없이 쏟아져내렸다.
콰앙! 콰앙!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보석과 금화들이 마구 솟구쳤다.
[ 이 벌레 같은 놈들이! ]
자신의 비밀 장소가 들킨 것이 아니꼬운지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행은 진영을 따라 달렸다.
도착한 곳은 방 한 켠에 마련 된 쪽문.
“제길, 안 열리잖아!”
스탯이 좋은만큼 가장 먼저 도착한 염태준이 외쳤다.
이곳의 입구도 앞서 지나쳐왔던 문들과 작동 방식이 같다.
열 수 있는 사람은 진영이 유일했다.
“염태준, 저 방까지만 들어가면 되니까. 시간 좀 끌고 있어.”
“이럴려고 날 끌고 온 거구만?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되는데, 오래는 못 버텨.”
불평하면서도 염태준은 아몬을 향해 달려나갔다.
관리자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건 염태준이 유일했다.
다양한 아이템을 사용하면 충분히 아몬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샤아아-.
진영은 쪽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연속해서 스킬을 발동했다.
3% 확률로 훔쳐내기에, 운이 없다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진영씨, 저도 저쪽으로가서 도와야할까요?”
민아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관리자 또한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염태준이 금새 나가 떨어진다면, 다음 표적은 우리가 된다.
콰아앙!
열기가 휘몰아치며, 뒤쪽으로 달려나갔던 염태준이 바닥을 굴렀다.
“괜찮습니다. 열었거든요.”
어느새 진영의 오른손에는 톱니 바퀴가 쥐여 있었다.
일행에게 보이지 않도록 몰래 바닥에 버리며 진영이 쪽문을 열어 젖혔다.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거에요?”
민아영의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 한 방 거리도 안되는 새끼가! 응? 너희는 또 어딜 도망치려고 그래? ]
염태준이 바닥에 쓰러지자, 아몬은 고개를 돌려 일행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지금 수준에서 관리자와 플레이어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다.
“들어가세요.”
“형은요?”
“염태준도 데려가야죠.”
저 놈이 있어야 이후의 일도 편안하게 풀어낼 수 있다.
쪽문을 통해 일행을 들여 보낸 뒤, 진영은 염태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아몬의 일방적인 폭격을 받은 염태준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어차피 다음층으로 넘어가면 그만···.”
염태준 또한 죽을 각오로 관리자를 상대한 것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다음층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태창을 확인하는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뭐? 다음층으로 못 넘어가는 구역이라고?”
[ 당연하지, 멍청아. 뭘 믿고 달려드나 했더니만. 크큭. ]
그걸 알기에 진영이 달려 왔다.
“허, 이걸 날 구하러 오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염태준은 감동한 눈치였다.
만난지 몇 시간 밖에 안지났고, 거래를 통해 맺어진 관계일 뿐이니 동료애랄 것도 없다만.
여기서 죽으면 그냥 개죽음밖에는 안된다.
턱.
나는 염태준을 어깨에 붙들어 매었다.
[ 눈물 겨운데, 그렇게는 안되지! ]
고오오-.
허공에서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영은 곧장 쪽문을 향해 뛰었다.
뒤돌아 보지 않아도, 수 많은 불 속성 마법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죽어! ]
아몬은 신체 능력이 약하기에 모든 공격을 마법에 의존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마법은 불 속성이다.
진영에게 있어서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불이라면 얼마든지 쏴 봐라.’
쪽문까지 몇 십 걸음 남지 않은 상황.
콰아아아-!
“야, 야! 뒤에 온다!”
아몬의 마법이 쏟아졌다.
업혀 있는 염태준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입은 살아 있다.
“주오령! 받아라!”
나는 염태준을 쪽문을 향해 던졌다.
“알겠다. 파트너.”
“커허억?!”
3단계 인외 등급의 근력이라면 성인 남자쯤은 어렵지 않게 던지고도 남는다.
주오령이 진영의 신호에 맞춰 염태준의 목을 잡아챘다.
그와 동시에.
허공을 찢고 날아온 불길이 진영을 덮쳤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쿠과과과!
지옥의 불길이 미친 듯이 치솟으며 화마가 근처의 모든 것을 잡아 먹었다.
아몬은 방을 훼손 시키는 것에는 대응책이 없어보였다.
방에 놓인 보물조차도 남김 없이 녹아내렸다.
[ 크큭! 내 불 맛이 어때? 네 놈 같은 플레이어는 구경도 못해 봤을 마법이지. 이제 다른 놈들도 그대로 조져 볼까? ]
진영의 죽음을 확신한 아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솟아 오른 불꽃 사이로 진영이 뛰쳐나오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 뭐, 뭐야? 왜 살아 있는 거야? ]
불에 대한 대비는 이미 완벽했다.
히든 피스 ‘청명한 불꽃’의 효과로 인해 불속성 공격은 진영에게 통하지 않는다.
터억-.
아몬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진영의 발이 쪽문 안 쪽으로 닿았다.
“휴, 예상했던대로네.”
“뭐야, 너 그걸 맞고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바닥에 누워 있는 염태준이 진영을 보고 기함했다.
그럴만도 했다.
자신은 있는 아이템을 전부 발동시켜 놓고도 몸을 못 움직이게 됐는데, 진영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하니.
[ 그 쪽으로 도망치면 내가 못 쫓아갈 줄 알고! ]
아몬은 곧바로 쪽문을 향해 날아왔다.
녀석의 붉은 마력과 함께 문 안쪽으로 달려 들려는 순간.
쿠웅.
주오령과 민아영에 의해 쪽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이글거리는 소음과 열기가 사라졌다.
폭발음도, 화가 잔뜩 난 아몬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민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걸로 된건가요? 문 하나 닫는다고 못 들어 올 것 같지는 않은데.”
“어지간히 화난 게 아니라면 손해를 감수하고 여기까지 들어 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화난 게 아니었다고요?”
아몬의 관리 구역은 6층에서 정확히 8층까지다.
현재 일행이 도착한 곳은 8.5층.
녀석의 관리에서는 벗어나있다.
“방을 침범한 건 열 받을만해도, 탑의 규칙을 어길 정도는 아닐겁니다. 아몬을 직접 공격하거나 곤궁에 빠트린 건 아니니까요.”
관리자들은 탑에게 묶여 있는 존재다.
정해진 룰에서 벗어나려면 그만큼의 패널티를 감수해야한다.
녀석들이라고 탑이 좋아서, 관리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아닌만큼 가능하면 패널티는 어기지 않는다.
“저 형···.”
그때 불안한 기색의 김지훈이 말을 꺼냈다.
“사실 몇 움큼 챙겨왔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죠?”
인벤토리에서 김지훈이 손을 꺼내자, 아몬의 방에 있던 금화와 보석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대충 봐도 몇 억원 어치는 될 법했다.
염태준이 입을 벌렸다.
“뭐야, 꼬맹이. 센스 있는데?”
“스킬로 한 번 전부 가져오려고도 해봤는데, 소유권이 있다면서 안되더라구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영도 씩 웃으며 김지훈의 머리를 헝클었다.
“당연히 괜찮지. 잘했어.”
불덩이로 자기 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녹여 버리는 놈이다.
보물 몇 움큼 사라진다고 알아 챌 리도 없다.
“그나저나, 꽤 감동했다. 날 구하러 올 줄이야.”
염태준이 진영을 향해 말했다. 그는 여전히 몸을 못 가누는 상태였다.
마력을 물리력으로 변환하는 아이템을 사용해 목숨은 건졌지만, 애초에 관리자의 공격은 받아낼만한 게 아니었다.
진영이 가볍게 대답했다.
“고마우면 가지고 있는 아이템 좀 내놔봐.”
* * *
“이, 이런 아이템을 받아도 돼요?”
김지훈이 자신의 몸을 도배한 강철 갑옷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야, 꼬맹아. 주는 게 아니라 대여해주는 거야.”
어느새 부상에서 회복한 염태준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녀석은 가지고 있는 아이템 주머니에서 일행을 위한 아이템을 꺼내주었다.
자신을 구해줬던 진영의 행동에 감동을 꽤 받았던 모양이다.
“야, 벌거숭이. 넌 뭐 필요한 거 없냐?”
“필요 없다.”
염태준의 물음에 주오령이 고개를 저었다.
“등급 뿐만 아니라, 부가 효과도 굉장하네요. 체감상 스탯이 하나씩은 올라간 것 같아요.”
민아영은 레어 등급 이상의 각종 악세사리를 받았다.
유니크급 귀걸이 하나로는 부족한 능력치가 충분히 보완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역시 콜렉터야. 등급은 레어급이어도, 성능은 빠지는 게 없다.’
진영은 찬찬히 염태준이 나눠준 아이템들을 둘러봤다.
친한 듯 굴어도 염태준은 기본적으로 탑의 암흑가에서 살아가는 놈이다.
10층에 도착하고 탑이 숨긴 다섯 가지 보물에 대한 출처를 모두 알아내면, 가차 없이 연을 끊어 낼거다.
‘비밀 창고에는 더 대단한 아이템이 많겠지.’
염태준이 죽고 시간이 흐른 뒤, 녀석이 소유한 비밀창고가 세상에 드러난다.
그곳을 파헤친 것은 다름 아닌 레드 리버.
그 덕에 클랜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했었다.
“너는 필요한 거 없냐?”
“있지.”
진영은 손가락으로 염태준이 입고 있는 붉은 코트를 가리켰다.
“내가 입고 있는 건 안 돼.”
녀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템에 한해서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얻을만큼 대단한 소유욕을 가진 녀석이었다.
당연히 줄 리가 없었다.
“그러면 활동하기 편한 레어급 장비 세트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 정도라면 가지고 있지.”
인벤토리 스킬이 달린 아이템 주머니를 뒤지던 염태준이 장비 세트를 꺼냈다.
“특별히 빌려주는 거니까, 그거 입고 죽거나 다치지 말아라.”
당연히 아이템을 염려한 걱정이었다.
‘오···. 꽤 통 큰데?’
반대로 말하면 이런 아이템을 빌려줘도 될만큼 진짜 좋은 아이템은 따로 숨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콜렉터 염태준은 그런 놈이었다.
[ 창공의 영웅 세트를 전부 착용하셨습니다. ]
[ 세트 효과로 힘, 체력 스탯이 20% 증가합니다. ]
+ 모든 스탯 15% 증가
+ 방어력 10
기존에 장착하고 있던 신발, 자켓, 귀걸이를 버리고 새로 받은 장비를 착용했다.
등급은 레어지만 세트 효과가 작용하니 유니크 급에 필적하는 성능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고맙다. 염태준.”
“그래, 그래. 빨리 10층까지 도착해야 나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테니까.”
진영은 일행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새로운 장비로 능력치도 보강했으니 파티의 전투력은 충분했다.
“8.5층을 쭉 뚫고 나갈겁니다. 중간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최소한으로 처리하고 나갈거에요.”
남은 건 8.5층의 통로를 이용하는 것 뿐.
이후 곧바로 10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럼 출발하죠.”
* *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일행을 주시합니다. ]
이계 외곽에서 분명 몰빵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보내오지만 거기까지였다.
‘내 쪽에서 먼저 특수한 행동을 해야하는 걸지도 몰라.’
보스를 처치한다거나, 아이템을 사용한다거나.
당장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우선은 눈 앞에 있는 길을 뚫고 8.5층의 끝에 도달하는 게 중요했다.
철커덕. 철커덕.
“처음 보는 마수인지 기계인지가 나왔구만.”
“진영씨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되는 건가요?”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계 인형들이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기계의 내부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진영이 담담히 말했다.
“네. 무시하고 쭉 지나가야합니다. 붉은 녀석이 나오면 그 때 말해주세요. 그 놈은 꼭 잡고 넘어가야 합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온다고, 저기 있네.”
염태준이 가리킨 방향을 보자 붉은 기계 인형이 보였다.
“싸우는 게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기잉, 철커덕.
일행을 마주한 붉은 기계 인형의 눈이 점멸했다.
적의 침입을 감지하는듯한 시선이 일행에게 닿자, 주변에 있던 수 십의 기계 인형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쿠웅!
높이 점프한 주오령이 떨어지며 붉은 기계 인형을 짓눌렀다.
그 사이에 염태준과 민아영이 달라 붙었다.
드드득.
붉은 기계 인형의 힘을 체감한 염태준의 눈이 커졌다.
“야, 이거 우리끼리 안 될 것 같은데?”
당연하다.
지름길로 가는 게 8층과 9층을 직접 거쳐가는 것보다 쉬울 리가 없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붙잡고 있는 붉은 기계 인형은 자그마치 20층이 넘어야 볼 수 있는 마수다.
드드득. 드드득!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기이하게 비트는 기계 인형의 심장을 향해, 진영이 왼손을 가져다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기계 인형이 실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털썩. 털썩.
대장격인 녀석이 쓰러지자, 주변에 있는 기계 인형들이 도미노처럼 넘어갔다.
“특수한 부분을 건드리면, 움직임을 멈출 수 있습니다.”
“아무리 회귀자라지만 사기아니에요?”
이제는 진영의 행동이 익숙해질 때도 됬건만 여전히 민아영은 놀란 표정을 했다.
진영이 손에 들린 톱니바퀴를 어디론가 던졌다.
원래대로라면 지름길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이 파티라면 가능하다.
“이대로 세 번 정도만 더하면 끝에 도착할 겁니다.”
이 정도 전투력이라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드디어 10층에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