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렉터(3)
염태준은 돈을 받고 움직이는 해결사다.
보통 해결사였다면, 아이템만 보고 의뢰를 던지는 일은 없겠지만 이놈은 좀 달랐다.
멸망의 탑 둘째가라면 서러운 광적인 아이템 수집욕.
‘한마디로 아이템에 미친놈’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돈을 때려부어서라도 구매하고, 구매하지 못하면 강탈하며, 강탈할 수 없다면 소유주를 죽여서라도 아이템을 손에 넣는다.
그렇게 얻은 희귀한 아이템이 염태준의 비밀 창고에 전시되어 있다는 소문은 유명했다.
그가 멸망의 탑 암시장에서 콜렉터로 불리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염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진영이 든 투구 파편을 가리켰다.
“야, 그걸 그렇게 함부로 들고 있으면 어떡해? 좋은 말로 할 때 그거 당장 내려놔.”
아이템을 확인한 염태준의 얼굴이 붉게 상기 되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건이 진영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
“염태준, 이게 가지고 싶으면 레드 리버에서 받은 의뢰를 포기하고 우리쪽에 붙어라.”
충분히 그럴만한 가지가 있는 물건이었다.
“레드 리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염태준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아이템이 탐난다곤 해도 염태준은 프로였다. 의뢰인을 밝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염태준은 가소롭다는 얼굴을 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굳이 의뢰주를 배반할 필요는 없지. 널 쓰러뜨리고 그 보물을 빼앗으면 되는데 말이야. 의뢰도 하고, 보물도 챙기고. 그게 진짜 꿩 먹고 알 먹는 거 아닌가?”
그의 말대로였다.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염태준이었다.
그에게 투구 파편이 가지는 의미가 아무리 크더라도, 진영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죽이고 뺏으면 그만.
죽인다 해도 보수가 줄어들 뿐 의뢰의 실패는 아니었으므로.
그때였다.
휙.
진영은 투구의 파편을 염태준을 향해 던졌다.
“야, 그 귀한걸!”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 투구 파편을 염태준이 조심스레 받아냈다.
신줏단지 모시든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뭐냐? 살려달라고 목숨 구걸이라도 하는 거야?”
“아니, 그냥 주는 거야. 대신 내 이야기나 한번 들어 봐.”
진영은 이어서 말했다.
“지금 네 손에 들려 있는 영혼 파쇄자의 투구가 끝이 아니야. 나머지 탑이 품고 있는 다섯 가지 보물의 위치. 궁금하지 않아?”
“그럴 리가···.”
진영의 말을 듣는 염태준의 동공이 명백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그걸 찾으려고 이 탑을 얼마나 뒤지고 다녔는데···. 그걸 알고 있다고?”
당황하는 염태준을 바라보며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나는 회귀자라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그는 이미 진영이 회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귀자라고 다 같은 회귀자가 아니다.
진영이 염태준의 말허리를 잘랐다.
“너는 고작해야 11층에서 회귀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
15층 이후의 세상은 인류에게 있어 완벽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리고 진영은 그런 완벽한 미지의 세계에서 왔다.
“너, 몇 층에서 온 거냐.”
“네가 맞춰봐.”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기교와 센스.
염태준도 처음 보는 강력한 정보 차단 아이템.
위치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영혼 파쇄자의 투구’.
“아무리 적게 잡아도 15층 이상···.”
염태준의 눈이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영원 불멸의 고리, 창조자의 걸쇠, 육망성의 귀걸이 마지막으로 타이탄의 창.”
아직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보물의 이름이었다.
“위치는 물론이고, 얻는 방법까지 전부 알고 있다. 가지고 싶어 미칠 것 같지 않아? 어차피 이번 레드 리버의 의뢰는 극비일텐데, 포기하고 이 쪽에 붙어.”
진영의 말을 듣는 염태준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넘어오고는 못 배길 거다. 염태준.’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
그 다섯 가지를 한 자리에 모으면 초월의 좌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미래의 염태준은 멸망의 탑에 그 보물들을 찾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죽는 순간까지도 보물의 이름을 중얼거릴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그것.
멸망의 탑에 숨겨진 모든 보물을 찾아내는 건 그에게 있어 평생의 숙원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진영은 그 틈을 확실하게 파고들었다.
“스읍, 이거 이런 식으로 속아 넘어가는 게 기분 나쁘긴 한데.”
염태준이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아이템!
그것만으로도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탑이 품은 다섯 가지 보물은 그 정점에 존재하는 아이템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진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기는 한데···. 네가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믿어?”
씨익.
그 말을 들은 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염태준은 낚아 올리기 직전의 물고기나 다름없었다.
남은 건 미끼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흔들어주는 것 뿐.
“믿는 게 나을 걸. 지금쯤이면 네가 찾고 있는 건 창조자의 걸쇠일 텐데, 미안하지만 넌 그거 못 찾고 죽어.”
마지막 진영의 말이 망설임에 쐐기를 박았다.
툭.
염태준이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졌다.
“하···. 별 걸 다 아네.”
염태준이 떨떠름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놈들도 이런 기분이었나.”
진영은 꿰뚫어 보듯 염태준을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당하는 처지가 될 줄이야.
그 또한 5번째 회귀자였다.
정보의 우위에서 사람들을 압도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 반대의 입장이 되고보니···.
짜릿했다.
염태준에게 딱 들어맞는, 그의 속마음을 읽고 정확히 저격한 듯한 제안.
오랜 시간 앞을 가로 막고 있던 짙은 안개가 한순간에 걷힌 기분이었다.
더 이상 뜸 들일 필요는 없었다.
“좋아!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군. 그딴 의뢰, 과감하게 포기하지. 네 쪽에 붙겠다.”
염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심이었다.
보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
보물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미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변모해있었으므로.
“우리가 10층까지 올라가는 걸 돕고, 사람 찾는 걸 좀 도와주면 좋겠어.”
“얼마든지 돕고말고. 계약의 두루마리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니다, 내가 배신하지 않을 거란 건 나보다 미래에서 온 네가 더 잘 알테니 상관 없겠군.”
협상의 타결.
터억.
염태준이 내민 손을 진영이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스스슷!
붉은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
콰앙!
주오령의 발차기에 무방비 상태로 있던 염태준의 목이 꺾였다.
찰나의 순간, 그의 눈이 경악과 배신감으로 물들었다.
“커헉! 이, 이 자식 사기를 치다니···.”
당황한 진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아니, 오해야. 협상은 유효해.”
“다행···.”
털썩.
염태준은 말도 끝까지 못 마친 채 그대로 기절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탓에 여러 방비를 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주오령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훌륭한 작전이었다. 파트너.”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사악함에 경악합니다. ]
* * *
기이이잉-.
의식을 잃은 염태준의 주변으로 강력한 마력장이 생겨났다.
자기 목숨이랑 아이템은 철저하게 챙기는 놈이었다.
깨어날 때까지는 줄곧 저 상태일 거다.
기절한 염태준을 싹 다 벗겨 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이후를 생각하면 그대로 두는 게 좋다.
그랑블루 클랜이 양지의 지배자라면, 염태준은 음지의 큰 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형, 제가 위층에서 의자 몇 개 가져올게요.”
“어, 그것만 하면 대충 끝나겠다.”
난장판이 된 거점을 얼추 정리해서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나니 대충 상황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부서진 거점의 수리는 민아영이 코인을 사용하자 금세 복구되었다.
“후우, 갑자기 쳐들어 왔을 때는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잘 해결이 됐네요.”
“진영씨, 저 사람 정말로 괜찮은 거 맞죠?”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민아영은 테이블 위에 엎드렸고, 주오령은 평소처럼 가부좌를 틀었다. 꽤 심각한 상처였건만 거점의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니 주오령은 금세 나았다. 진영이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미친놈 중에서는 그나마 정상이라고 봐야죠.”
“그거 괜찮은 거 맞아요?”
지훈이 위층에서 뽑아 온 음료수를 홀짝이며 물었다.
“형, 아까 저 사람한테 보여준 건 대체 뭐였길래 공격을 멈춘 거에요?”
진영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영혼 파쇄자의 투구라고, 탑이 품고 있는 다섯 가지 보물 중에 하나야. “
“그건 아이템이랑 다른 거에요?”
“성능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아이템이지. 탑의 기원에 관심 있는 녀석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물건이야.
오파츠나 오컬트에 심취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려나. 아니지, 오히려 탑 내의 신화나 신앙에 가깝나.”
그중 하나가 그랑블루 창고에서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했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걸 저 사람한테 넘겨줘도 되는 거에요?”
민아영의 물음에 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창고에 잡동사니처럼 방치되는 것보다는 낫죠, 뭐.”
“사냥 시즌이 아니라 그런 거였지, 평소에는 관리 잘 되거든요?”
보물들에 대한 단서는 탑 곳곳에 수수께끼처럼 뿌려져 있었다.
다섯 개의 보물을 모두 모으면 초월적인 힘과 함께 새로운 육신을 얻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게 보물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이었다.
염태준 말고도 탑의 광신도나 보물 사냥꾼들이 찾아 헤매는 말 그대로 꿈의 아이템.
‘당연하지만 그런 편리한 물건이 있을 리가.’
결론적으로 보물이란 이름이 붙은 물건들은 모두 쓰레기였다.
장식품으로 쓰기도 애매한 모양의 그냥 쓰레기.
탑의 수수께끼는 플레이어들을 농락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20층 언저리쯤 갔을 때 보물이 전부 모였던가.’
우습게도 보물을 모두 손에 넣은 건 탑 내의 광신도들이었다.
그 사이비 종교 단체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의식을 행했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폭동이 일어났다.
교주는 광신도들에 의해 사망하고, 해당 사이비 종교의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뭐, 쓰레기 위치 알려주고 염태준을 이용할 수 있으면 나한테는 이득이니까.’
진영의 시선이 염태준을 향했다.
끄으응···.
바닥에 머리를 쳐박고 볼썽사납게 쓰러져 있는 염태준은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정신을 차리려면 한참 남은 듯 싶었다.
‘이제 10층까지 쭉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레드 리버의 방해도 다 떨쳐냈으니 당분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저 놈은 언제 일어나나.”
보호막이 없어져야, 스틸 스킬이라도 시도할 수 있다.
훔쳐야 할 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이 아니라, 녀석이 지닌 비밀 창고의 열쇠다.
염태준의 비밀 콜렉션이 모여 있다는 10층 비밀 창고.
10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느긋하게 열쇠를 훔쳐낼 기회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같은 편이 되었으니,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어야 하는 법이었다.
“으윽, 머리야.”
“아, 드디어 일어났네.”
진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깨어난 염태준을 바라보았다.
* * *
[ 8층 : 아몬 산맥 근방 - 원 코인 원 라이프 ]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 맞죠? ”
“그래, 7층에서 올라오면 후딱 코인 털어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거야.”
“캬, 이렇게 쉬운 걸 헛고생을 하고 있었네.”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작은 공터를 둘러싸고 매복해 있었다.
“다 내 스킬 덕 아니겠냐.”
지형탐색 스킬로 플레이어가 올라올 위치를 알고 미리 준비한다.
아래 층에서 온 플레이어라면 대부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에 스무 명이 달려드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만 믿고 따라와라. 바깥에서도 떵떵거리면서 헌터 생활하게 해줄 테니까.”
우오오!
스무 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8층에서 호의호식 할 수 있는 건 대장을 잘 둔 덕이었다.
이대로 가면 편안하게 10층까지 올라 헌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무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샤아아-.
“어! 올라 온다!”
“다들 준비해!”
“하던 대로만 하자.”
어려울 거 하나도 없었다.
쪽수로 밀어붙이면 대개 겁에 질려 가진 아이템과 코인을 술술 뱉어낸다.
몇 번 해봐서 자신감도 생겼겠다.
그들은 두려울 게 없었다.
하얀빛이 잦아들고, 위층으로 올라온 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야, 대박 아닙니까?”
일행 중 하나가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올라 온 건 총 5명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두 명.
몸에 고급스런 아이템을 둘둘 두르고 있는 남자랑 멋진 귀걸이를 한 미모의 여자.
“저희 바로 8층 뜰 수도 있겠는데요?”
“크흐, 좋아라.”
“야야, 대장 나가신다. 조용히 해.”
스무 명의 사람들은 위협적인 기세로 5명의 일행을 원처럼 둘러쌌다.
‘이거 제대로 건수 잡았는데?’
뚜벅. 뚜벅.
그들의 대장이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심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다.
탑 7층까지 오면,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눈앞의 플레이어들은 딱 보기에도 호화로운 아이템을 걸치고 있었다.
의심을 한 번 쯤 해볼만도 했건만 그는 연이은 성공에 취한 탓에 수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어이,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지? 일단은 좋은 말로 할테니.”
진영 일행 앞에 선 대장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20명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니까.
그러나 자신만만한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죽기 싫으면··· 커헉?!”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한 마력이 실린 주먹이 날아들었다.
콰아앙!
사내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서는 그대로 나무 기둥에 처박혔다.
그 충격에 나무의 기둥이 꺾일 정도였다.
“허억···.”
“······?”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스무 명의 무리가 일제히 숨을 삼켰다.
“뭐야, 이 새끼는.”
염태준이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 주먹을 손을 털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주오령이 튀어나갔으리라. 주오령이 아쉬운 듯 손을 내렸다.
“허억···."
“방금 대장이 한순간에 날아간 거 맞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무리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저벅-.
그러한 경악스런 분위기 속에서 진영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느릿하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죽기 싫으면 가진 거 다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