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렉터(2)
‘쉽지 않겠는데.’
폼은 잡았지만 사실 불리한 상황이었다.
녀석은 세 명을 상대로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민아영은 말단이라고는 해도 그랑블루의 클랜원이었고, 현재 광폭화 모드에서의 주오령은 4단계에 달한다.
그럼에도 염태준이 입은 내상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딱 보기에도 비장의 수단으로 숨겨둔 아이템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염태준이 주렁주렁 달고 있는 장비 아이템들은 폼이 아니었다.
아이템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많다는 이야기.
‘심지어 회복할 수단도 충분할 게 분명하다.’
정면으로 붙어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렇기에 진영은 더욱 담담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염태준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발언 하나는 대담하네. 그럴만 하긴 하네. 아직 10층에도 못 가 본 주제에 아이템도 얼추 갖추고 있는 것 같고.”
퉤.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 염태준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콜렉터라는 별명을 자랑하는만큼 눈썰미 하나 만큼은 끝내줬다.
진영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 벨트, 나이프의 등급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관찰을 마친 염태준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대단한데. 벌써부터 그 정도 스펙을 쌓아 올리는 게 쉬운 건 아니니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10층에 도달한 뒤, 근처 파밍 플로어에서 코인을 얻고 능력을 키워나간다.
10층까지 등반하는 도중에 두각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회귀자여도 이루기 힘든 성장 속도.
때문에 염태준은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확인은 거쳐가야하는 법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회귀자 맞냐?”
레드 리버에서 회귀자라고 점찍어 준 주오령은 회귀자가 아니었다.
그나마 회귀자로 의심이 가는 게 눈 앞의 진영이었는데, 애초에 정보가 잘못 되어 있었던만큼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진영이 대답했다.
“아니라고 하면 그냥 갈 거냐?”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네 정보는 까고 얘기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
염태준은 방금 전 진영의 정보를 확인하려다 데미지를 입었다.
진영이 가진 정보 차단 아이템 때문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진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다시 확인 해봐. 차단 스킬은 꺼놨으니.”
진영은 태연하게 말했다.
“배짱 하나는 마음에 드네. 어디 한 번 보실까.”
기껏 데려갔는데 회귀자가 아니라면 오히려 염태준이 트집을 잡힌다.
해결사로서의 평판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염태준은 다시 한 번 오른눈에 박힌 ‘호루스의 눈’을 사용했다.
화륵.
오른눈에 푸른 불꽃이 맴돌며 상대의 능력치와 클래스를 밝히는 전용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 이계 주시도가 대폭 상승해 다른 존재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
[ 히든피스 ‘진실을 밝히는 샘물’이 정보 열람 스킬을 방어 합니다. ]
[ 간파 스킬을 사용한 대상에게 데미지를 줍니다, 대상의 위치가 발각됩니다. ]
파지직-!
“크윽!”
붉은 스파크와 함께 염태준의 눈 주위로 끔찍한 고통이 일어났다.
눈이 벌게진 염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 그걸 또 당해주네.”
“아오, 이 자식이···. 그런 아이템은 어디서 난거냐?”
녀석은 얼굴을 잡으면서도 아이템의 정체를 물어왔다.
“나 회귀자라니까. 7층 히든 플레이스에서 얻었지.”
“스읍, 이거 참.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뺏어서 내 컬렉션에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의뢰 중이라 애매하네. 그래서 회귀자야 아니야? 아니면 빨리 말해. 죽이고 뺏게.”
진영은 회귀했지만, 회귀자 클래스는 아니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 이계 근원이 당신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음을 어필합니다. ]
히든 피스를 얻길 백 번 잘했다.
7층에서 얻은 히든 피스 ‘진실을 밝히는 샘물’.
상대의 정보 간파 스킬을 100% 방어하고, 역으로 데미지를 주는 아이템.
녀석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진영이 히든 피스를 가져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염태준은 내 클래스를 확인할 수 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이제 남은 건 나를 확실하게 회귀자 클래스라고 믿게 하는 것.’
진영의 클래스는 도둑.
반면 이 탑에 있는 회귀자는 모두 회귀자 ‘클래스’이다.
다른 방법으로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진영이 찬 팔찌가 특이한 것 뿐이었다.
때문에 진영이 회귀자임을 주장하기 위해선 이 히든 피스가 필수였다.
스킬에 간파 당해 도둑 클래스인 것을 들켰다면, 염태준은 아무리 진영이 자신을 회귀자라 주장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단검을 들어 올리는 진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믿게 하려면, 보여줘야겠지.’
그냥 회귀자가 아니라, 녀석보다 더 높은 층에서 내려온 강력한 회귀자라는 걸 증명해야한다.
그래야지만 염태준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었다.
* * *
카아앙!
전조 없는 충격파가 진영을 휩쓸었다.
고농도의 마력과 높은 스탯이 만들어 낸 충격파에 진영이 휘청였다.
“팔이나 다리 하나 쯤, 잘라내면 그 잘난 차단 아이템을 버리고 직접 말하고 싶어지겠지!”
그의 공격은 가공할 위력이었다.
염태준의 장검을 맞받아친 진영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드드득.
진영이 이를 꽉물었다.
검을 맞댄 채 견뎌내는 팔이 뜯어질 지경이었다.
‘쎄긴 더럽게 쎄네.’
생각했던대로 강하다.
검을 맞대자마자 그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염태준이 이죽거렸다.
“이제 막 7층에 올라선 것치고 스탯도 꽤 올려 논 것 같긴한데. 이 정도면 뒤에 있는 저 주오령이라는 놈이 더 쎈데?”
스탯만 놓고 봐도 상황의 유불리는 명확했다.
염태준의 평균 스탯은 4 단계 : 영웅(英雄).
3단계 인외(人外)가 인간을 벗어난 괴물이었다면, 4단계 영웅(英雄)은 그런 괴물을 처죽이며 무용담을 만들어내는 용사다.
진영의 평균 스탯이 2단계 : 철인(鐵人)이니 견뎌낼 여지가 없었다.
“어쨌든 살려놔야 되니까, 까다롭네.”
염태준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둘 사이의 스탯차가 크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방금 전의 공격도 진영이 죽을 걸 염려한 가벼운 일격이었다.
욱신.
그럼에도 방금 전 충격이 팔에 남아 있었다.
진영은 차분한 눈빛으로 염태준을 응시했다.
‘지금이야.’
타악.
진영이 스텝을 밟으며 상대와의 거리를 벌렸다.
좋은 위치를 잡는 걸 염태준이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곧바로 달려들어오는 염태준의 장검과 진영의 단검이 맞부딪혔다.
카가가가가각!
이번에는 달랐다.
방금 전과 같은 충격파는 없었다.
대신 검과 검 사이에서 푸른 불똥이 터져나왔다.
“뭐, 뭐지?”
진영이 공격을 온전히 흘려내자, 염태준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 번 마력을 실어 장검이 휘둘러졌다.
카가가각!
방금과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염태준의 사선으로 내리친 장검이 곡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직.
장검에 담겨있던 마력이 바닥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당황한 염태준이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카가각, 콰직.
몇 번 더 검을 휘둘러 봤지만 진영의 단검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염태준의 공격을 모두 흘려냈다.
“뭐야, 너···.”
죽이지 않으려고 힘 조절을 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압도적인 스탯차가 존재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공격을 모두 흘려내는 건 불가능했다.
경악한 염태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너, 대체 뭐하는 놈이냐?”
“보면 모르겠어? 회귀자다.”
카앙! 카앙!
마력이 실린 검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때마다 진영은 공격을 흘려내며 뒤걸음질쳤다.
심지어 스킬을 하나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모든 건 진영의 몸에 배어 있는 순수한 기술.
99층까지 살아남으며 연마한 검술 능력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다.
“회귀자라고 한다면 더더욱 말이 안돼.”
회귀자는 강하지 않다.
염태준이 아이템을 둘둘 두르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회귀자 클래스는 ‘회귀’ 특성을 제외하면 쓸모가 없었다.
제대로 된 고유 스킬이 없었다.
그 단점을 아이템으로 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해지기 위해 아이템을 모았고, 장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몸에 둘렀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므로.
검격을 빗겨낸 진영이 입을 열었다.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높은 층에서 왔다고 하면. 믿겠어?”
“훨씬 높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또···.”
카아앙!
사선으로 휘둘러진 공격을 진영이 매끄럽게 흘려냈다.
그 모습이 마치 휘청이며 크게 밀려나는 것처럼 보였다.
“형!”
“진영씨!”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아슬아슬한 모습에 불안을 표합니다. ]
하지만 공격을 한 사람과, 받아친 사람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인정하지. 높은 층에서 왔을 법하긴한데, 어차피 내가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아서 말이야.”
염태준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회귀자를 데려오는 것.
진영이 몇 층에서 왔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염태준은 자신도 모르게 믿어버리고 있었다.
눈 앞의 남자가 상당히 높은 층에서 회귀했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스킬 하나 없이 이루어지는 기술.
상대 밟는 스텝과 전투 센스 또한 기가 막히게 완성적이었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 수록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해! 근데 그게 전부야. 스텟도 아이템도 내가 우위에 있어서 말이야.”
염태준은 계속해서 틈을 노리고 들어왔고, 진영은 흘려내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었다.
염태준의 공격은 날카로웠다.
주오령에게 입은 상처도 거의 회복 되어 있었다.
‘이 정도차이로는 버티는 게 최대인가. 스틸을 쓰려고 해도 틈이 없네.’
손이 접촉하지 않으면 스틸 스킬은 사용할 수 없다.
심지어 염태준과의 격차를 생각하면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아진다.
한 두 번의 접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차피 진영은 지금 당장 스틸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회귀자라는 믿음을 확신으로 바꿀 때가 됐다. ’
염태준은 아직 아이템 효과도 발동시키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못 이긴다.
하지만 굳이 이길 필요도 없었다.
‘때로는 이기는 게 더 손해 일때도 있는 법이지.’
그리고 세상에 승리하는 방법이 싸워서 때려 눕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술가라면, 전략적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어야했고.
회귀자라면, 정보의 격차를 이용해 우위를 점해야했다.
그리고 진영은 회귀자이자 도둑이었다.
쏟아지는 검격을 아슬아슬하게 흘려내던 진영이 말했다.
“염태준.”
“수작 부릴 생각 말지 그래?”
최후의 6인까지 살아남은 진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폭력으로 모든 일이 해결 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이걸 봐라.”
슥-.
진영은 검을 들어 염태준의 공격을 막는대신
옷 안 쪽에 넣어두었던 투구의 조각을 꺼내들었다.
그랑블루 창고에서 숨겨져 있었던 볼품 없는 투구의 파편.
“형!”
염태준의 검은 그대로 휘둘러 지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민아영과 김지훈이 깜짝 놀라 염태준을 향해 동시에 달려 들였다.
그러나 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염태준의 검이 진영을 베어내는 일은 없었다.
우뚝.
곧게 내려 오던 검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멈추었다.
염태준이 입이 천천히 벌려졌다.
“···너, 그거 어디서 났냐?”
“궁금해?”
진영은 그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훨씬 먼 미래에서 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혹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승리자는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