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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34화 (34/152)

콜렉터(1)

후-.

담배를 손에 든 남자가 연기를 뿜어내며, 폐허의 사이를 느긋하게 걸어간다.

붉은 코트 사이로 치렁치렁 금빛 줄이 번쩍인다. 과도한 악세사리가 걸치적 거릴 법도 했건만 남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듯 검은 선글라스를 올려 썼다.

콜렉터 염태준.

아이템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해결사.

멸망의 탑 10층, 암시장에 들려 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누구든지 한 번씩은 들어봤으리라.

원하는 아이템이 있다면 소유주를 죽여서라도 손에 넣는다는 잔혹한 성정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었다.

“야, 저거 뭐야? 미친놈이네. 멸망의 탑에서 패션병이 도졌나?”

7층 한복판을 당당히 걸어가는 염태준의 아이템은 플레이어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았다.

특히 10층에 올라 본 적 없는 플레이어가 보기에는 악세사리랑 옷 좀 껴입은 사람처럼 밖에는 안 보였다.

아이템을 보는 눈이 없기도 했거니와, 염태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보지도 못했으니.

“야, 미친 새끼야. 저 사람 담배 피우고 있잖아.”

퍼억.

옆에 있던 동료가 실없는 소리를 내뱉은 플레이어의 뒤통수를 갈겼다.

그의 동료는 7층에 장시간 머물며 잔뼈가 굵어진 탓에 어느 정도 사리판별은 할 줄 알았다.

“아씨, 담배가 뭐?”

“담배에 불까지 붙였잖아. 최소한 10층까지는 다녀온 사람이란 뜻이야. 여기서 담배 피는 사람은 건드리는 거 아니다. 임마.”

7층 이전에는 어찌어찌 담배는 구한다 해도, 라이터까지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아니면 라이터만 있거나. 천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담배를 핀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했다.

반면 10층 플레이어 거주 지역에서는 NPC들이 플레이어들을 위한 기호품을 팔고 있었다.

불 붙은 담배.

사소한 것이었지만 위쪽에서 온 플레이어를 감별하는 기준 중 하나였다.

“괜히 건들였다가, 피 보지 말고 우리 일이나 잘하자.”

“쩝. 아쉽네.”

괜히 건드려 스스로 무덤을 팔 필요는 없었다.

주제를 깨달은 플레이어들이 몸을 숨기고, 염태준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어 도착한 곳은 그랑블루의 거점 앞이었다.

무너져가는 빌딩 앞으로 허가되지 않은 존재를 가로막는 마력장이 존재했다.

“귀찮은 일은 빨리빨리 끝내 버려야지.”

탁.

담배를 한 손으로 털어 냈다.

염태준은 레드 리버에서 상당한 계약금과 함께 직접 의뢰를 받았다.

7번째 회귀자가 10층에 도달하기 전에 사살할 것.

마침 15층에서 큰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고민할 것도 없이 7층으로 내려왔다.

15층의 보스가 난동을 부리며 그랑블루, 레드리버 할 것 없이 병력이 투입된 상태.

해결사가 활개 치기에 딱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 허가되지 않은 플레이어입니다. 입장을 거부합니다. ]

마력장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려 하자 붉은 정보창이 경고음을 울렸다.

거점의 레벨이 높은 만큼 침입자를 배제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치지직.

염태준이 발끝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려는 찰나.

또 다른 정보창이 떠올랐다.

[ 아이템 ‘이카루스의 날개 모형’의 효과로 거점 방어를 일부 무시합니다. ]

콰드득-.

염태준이 발길질에 마력장이 우그러졌다.

본래대로였다면 침입자를 강한 척력으로 밀어냈을 마력장이 부숴지고 있었다.

[ 아이템 ‘거점 파괴 훈장’의 효과로 거점 방어를 일부 무시합니다. ]

[ 아이템 ‘번개의 흔적’의 효과로 경미한 수준의 전격이 무시됩니다. ]

우득, 우득.

염태준은 미간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발로 마력장을 우그러뜨렸다.

기이잉.

마력의 응축을 견디지 못하고 한계에 다다른 마력장이 형태를 잃고 소멸하는 건 금방이었다.

마력장이 사라진 걸 손을 저어 확인한 염태준이 거점 안으로 편안하게 들어왔다.

“이거야, 원. 손님이 왔는데 아무도 마중을 안 오나?”

[ 허가받지 않은 거점 침입 ]

[ 거점 침입 : 침입자의 능력치가 80% 감소합니다. ]

[ 침입자에게 인식저해 Lv.3, 감각둔화 Lv3, 마력감소Lv3, 체력저하Lv3 디버프가 적용됩니다. ]

물리적인 입장을 막는 방어막을 뚫어낸다고 끝이 아니었다.

거점에서 제공하는 디버프가 남아 있었다.

길드에서 코인을 투자해 쌓아 올린 거점인 만큼 그 효과는 대단했다.

“내가 온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벌써 8층으로 튀었나?”

그럼에도 염태준은 느긋하게 삐뚤어진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곧바로 그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 대응을 시작했다.

[ 아이템 ‘순백의 링’의 효과로 디버프가 일부 해제됩니다. ]

[ 업적 ‘지고지순’의 효과로 디버프가 경감 됩니다. ]

[ 히든 피스 ‘영원한 바람’의 효과로 디버프의 50%를 완전 무시합니다. ]

빽빽하리만치 몸에 걸치고 있는 아이템들은 폼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염태준의 앞으로 정보창이 무섭도록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가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서 말했다.

“아, 다행이네. 여기 있······.”

콰아앙!

순간,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마력이 담긴 채찍이 날아들었다.

채찍의 끝부분이 염태준의 머리를 정확히 강타했다.

“아이고. 아가씨, 인사치고는 거창하네.”

“······!”

다소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염태준은 멀쩡했다. 오히려 여유롭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침입자가 들어 오는 순간부터 민아영은 메뉴얼에 따라, 침입자를 기습할 수 있는 자리에 숨어 있었다.

단숨에 상대의 머리를 날려 버릴 일격이었으나 염태준은 이상하리만치 멀쩡했다.

“아가씨, 예쁜 얼굴만큼만 타인에게도 좀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을 텐데 말야. 받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탁.

염태준이 코트 속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튕겼다.

“콜렉터 염태준······.”

명함에 써진 이름을 본 민아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누군데?”

“콜렉터 염태준이라고 몰라?”

“모르겠는데.”

“······.”

머리를 긁적인 염태준은 옆구리에 있던 장도를 빼 들었다.

스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발도한 검날 위로 푸른 빛이 감돌았다.

“뭐, 내 이름은 모를 수 있다 치고. 회귀자 주오령이라고 여기 있지? 나는 그 사람만 데려가면 돼.”

“순순히 넘겨줄거라고 생각해?”

“내가 데려 갈거니까, 아가씨는 신경쓰지마.”

남자의 발언은 막무가내였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란 걸 알아차린 민아영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8층으로 넘어가는 건 최후의 수단이야.’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8층으로 이동하면, 위치가 흩어지고 만다.

조금이나마 디버프가 걸려 있는 거점에서 다 같이 싸우는 게 유리했다.

조금 전 공격으로 확인했지만, 상대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거점을 뚫고 들어 온 것부터 전력을 다한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맞아낸 것까지.

긴장한 민아영의 이마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촤아악!

변칙적인 움직임과 함께 채찍이 염태준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채찍을 피한 뒤, 오히려 민아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탁.

재빠르게 반응한 민아영의 왼손에 들린 검이 염태준을 향해 쇄도했지만, 그는 한 손으로 가볍게 공격을 비틀어냈다.

“!”

민아영의 눈이 커졌다.

짧은 순간 이루어진 한 수였지만, 이 한 수로 인해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눈으로 못따라갈 정도로 빨랐어.’

눈앞의 남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민아영은 그러한 실력 차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스탯, 경험, 아이템을 포함한 압도적인 차이는 가히 절망적.

그랑블루에 속한 스스로를 최상위 플레이어라고 자부했던 순간들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민아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쿠웅!

기회를 엿보고 있던 주오령의 발차기가 염태준의 안면을 향해 작렬했다.

여유롭게 팔을 들어 막아낸 염태준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회귀자가 여기 있었네.”

타앗.

공격이 통하지 않자 주오령은 거리를 벌렸다.

염태준을 주시한 주오령의 한마디.

“그럭저럭 강하군.”

그 말에 염태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내가 ‘그럭저럭’ 강하다는 말을 들을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데.”

주오령이 강하다는 말을 꺼낸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으나, 염태준이 알 리 없는 이야기였다.

염태준은 장도를 횡으로 들어 올렸다. 시퍼런 검날이 푸른 마력으로 달아올랐다.

“그럭저럭 강한지 어떤지 잘 봐봐.”

* *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을 온전히 주시합니다. ]

진영이 자리를 비운 시간은 40분 남짓이었다.

히든 플레이스에 있는 동안 바깥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건만.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군.’

엉망으로 부서진 그랑블루 거점의 입구를 확인한 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회유에 실패한 레드 리버가 또 다른 암살자를 보낼 거라는 건 예측하고 있었건만, 자리를 비운 40분 사이에 찾아올 줄이야.

지금 시점에서 거점을 무시하고 행동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춘 자는 손에 꼽았다.

이런 형태의 흔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한 명뿐.

입구를 지나침과 동시에 침입 흔적에서 적의 정체를 가늠해낸 진영이 거점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거점 로비에서는 살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파트너. 알맞게 왔군···.”

“그래, 잘 버텼네. 고생했다.”

깔끔한 호텔 로비 같았던 거점 1층이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김지훈과 민아영도 보였다.

진영을 확인한 둘이 진영을 불렀다.

“진영씨···!”

“형!”

반갑기보다는, 절망스러운 목소리였다.

진영이 왔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눈앞의 상대는 강력했다.

콜렉터 염태준.

붉은 코트와 각종 장식을 난잡하게 걸친 그의 장검이 주오령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주오령은 알맞게 왔다고 말했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쿨럭,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염태준이 기침과 함께 붉은 피를 토해 냈다.

주오령에 비하면 가벼운 상처였지만, 그 또한 그리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산산 조각난 선글라스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

주오령은 붉은 눈을 빛내며 염태준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주오령을 바라보는 염태준의 낌새가 이상했다.

“잠깐만······.”

염태준의 왼쪽 눈에 푸른 불꽃이 맺혀 있었다.

불꽃을 통해 주오령을 확인한 염태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 회귀자가 아니잖아. 베르세르크 클래스? 이런 멍청한 착각을 대체 누가···.”

획.

그제서야 진영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염태준의 고개가 돌아갔다.

“넌 또 뭐야?”

[ 아이템 ‘호루스의 눈’이 플레이어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

의안으로 대체 된 염태준의 한쪽 눈이 진영을 쏘아봤다.

아이템의 전용 스킬이 진영의 정보창을 꿰뚫어 보려는 그 순간.

파지직!

강렬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크윽.”

염태준이 고통스러운지 눈을 찡그렸다.

[ 이계 주시도가 대폭 상승해 다른 존재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

[ 히든피스 ‘진실을 밝히는 샘물’이 정보 열람 스킬을 방어 합니다. ]

진영의 정보는 새롭게 얻은 히든 피스와 이계의 근원에 의해 완벽히 보호되고 있었다.

정보를 엿보려다 오히려 카운터를 맞은 염태준이 한쪽 눈을 감은 채로 웃음을 흘렸다.

“흐흐, 상황 웃기게 돌아가네.”

촤악-.

염태준은 주오령에게서 뽑아낸 장검을 진영을 향해 겨누었다.

치열한 전투로 희미해진 마력이 검 끝에서 일렁였다.

“설마 네가 회귀자야? 쓸데없이 정보를 숨기고 그러냐.”

진영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발끝부터 머리까지를 쓱 훑었다.

유니크, 유니크, 레어, 레어, 유니크, 유니크, 레전더리···.

스캔을 끝낸 진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랑 싸우면 후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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