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32화 (32/152)

이계 외곽(3)

[ 히든 플레이스 : 이계 외곽 엘로임 숲 ]

[ ‘거짓을 쫒는 샘물’을 손에 넣으면 해당 플로어를 탈출 가능합니다. ]

청록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숲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가 말로만 들었던 히든 피스가 숨겨진 장소···.’

독특한 생김새의 식물들이 크리스탈처럼 반짝이고 있어,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 그 숲은 장관이었지. 머릿 속에 있는 기억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네. 응?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를 데려오겠다고? 야, 뭘 그렇게 까지 해? 적당히 해. 지랄하지 말고 쫌.

정색하는 신화준이 남겼던 말을 진영은 어렴풋이 떠올렸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마디 한마디가 수상한 놈이었다.

[ 남은 시간 : 7h 59m 22s ]

[ 플레이어가 현재 장소에 머무는 동안 멸망의 탑 내부의 시간 흐름이 느려집니다. ]

민아영에게 남긴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적용된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움직일 수는 없지만.’

2층의 히든 플레이스처럼 이곳에도 제한시간이 있었으므로.

진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형, 식물, 숲의 모습까지···. 여기는 확실히 처음 보는 장소야. 특히 저기는···.’

아름다운 숲과 대비되듯 저 멀리 오염된 듯 거무죽죽한 산이 눈에 띄었다.

집중해서 산 위를 보자 검은 드래곤의 형상이 그대로 그려졌다.

진영의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드래곤이 똬리를 틀고 산에 누워있는 것이다.

‘원래 의도대로라면 저 용을 물리쳐야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나본데···.’

물론 8시간 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편법을 사용해야했다.

‘이계 외곽 엘로임 숲’

멸망의 탑 바깥에 숨겨져 있는 히든 플레이스.

탑의 모든 층들은 여러 세계를 짜집기 하듯 구성되어 있다.

이 곳도 그 중 하나인게 분명했다.

‘히든 플레이스의 이름도 꽤 의미 심장하네.’

이계의 외곽 엘로임 숲. 줄곧 진영과 함께 해 온 이계 근원이 떠올랐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찾아 온다고,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팔찌에서 황금빛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파직!

[ 이계와 근접하여 이계 근원의 힘이 강화 됩니다. ]

[ 이계의 근원과의 연결이 강화 됩니다. ]

“이건······?”

정보창을 확인한 진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팔찌의 색이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었다.

검은색이었던 부분이 물감이 번지듯 하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빛을 낸 적은 있어도, 직접 색이 변하는 건 처음이라 진영은 잠시 멈추어서 팔찌의 변화를 관찰했다.

치직, 치직.

팔찌는 몇 번 더 약한 스파크를 내뿜더니,

【 아, 아, 들려? 】

이질적인 음색을 내뱉었다.

* * *

히든 플레이스의 이름에는 이계 외곽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이계와 관련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일까.

【 뭘 멍하니 서 있는거야?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텐데. 】

목소리의 주인은 이계 근원인 게 확실했다. 상상 했던거랑은 좀 달랐다.

녀석의 훈수에 기가 찬 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이계의 근원······? 예상했던거랑 꽤 다른데.”

이계의 근원과의 인연은 팔찌에서 시작되었다.

팔찌를 가진 채로 2층에 숨겨진 히든 피스를 습득한 순간, 이계의 근원이 진영을 주시하기 시작했었다.

성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될 줄이야. 실제로 성좌들도 직접적인 연결이 이루어지면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기도 했으니 신기할 것은 없었다.

【 맞아,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으니 모를리가 없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움직이면서 하는 게 좋겠지? 】

이계의 근원은 진영이 스킬 강화석을 사용할 때 도움을 주거나, 스킬석을 제공해 주었다.

그만큼 권위적이거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왔는데 생각보다 녀석의 말투는 털털했다.

초월자의 엄숙함은 어디에도 없었고, 오랜 친구 같은 친숙함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 잠깐, 여기서 멈췄다가 가자. 괜히 정령들한테 들키면 좋은 꼴은 못 볼거야. 】

이계의 근원의 말은 진영의 정신 속으로 직접 꽂혀 들어왔다.

녀석의 말대로 잠시 나무 뒤에 숨어 있자, 녹색 형상의 정령이 나무 사이를 지나쳐갔다.

“크룽!”

때마침,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 정령을 향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온 몸이 크리스탈로 뒤덮힌 아종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은 겁도 없이 나비를 붙잡 듯 정령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

촤자자작.

정령과 닿은 아종 고블린의 몸에서 고속으로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뱀이 먹잇감을 조이듯 녀석의 몸을 휘감았다.

“쿠릉!”

식물은 거침없이 고블린의 신체 내부로 파고들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종 고블린이 단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 정령 녀석들은 성깔이 더럽거든. 같은 종족 외에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이기도 하고. 그걸 잘 모르는 놈들이 섣불리 건드렸다가 저런식으로 호된 꼴을 당하는거야. 】

묻지도 않은 설명을 줄줄이 해대고 있었다.

소리가 아니라 정신을 그대로 뚫고 들어오는 음성이었으니, 듣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진영은 숲의 중심부로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이계의 근원, 물어볼게 있다.”

【 얼마든지. 네 활약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하나의 주시자로서 네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 】

진영의 예상대로 이계의 근원은 진영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호의와는 별개로 그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야했다.

‘ 어쩐지 쉽게 말해줄거란 생각은 안드는군.’

우선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이계 규율이란 뭐지?”

숲이 새로운 침입자를 막아내듯 숲 속의 식물들이 진영의 발목을 잡기 위해 줄기를 뻗고 있었다.

이런 식의 함정은 대응하는 법도 어느 정도 일정했다. 진영은

크리스탈로 된 식물을 나이프로 잘라내며 길을 만들었다.

촤악.

대화를 하면서도 진영의 처리는 깔끔 정확했다.

【 이계 규율은 말 그대로 이계의 규율. 네가 회귀하는 순간부터 따르게 되며 따라야하는 영원불멸한 규칙. 】

“별로 대답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설명하는 듯 하면서도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어. 이계 규율은 각 존재마다 다르게 적용되니까. 네가 ‘이계 규율 - 절대 회귀’를 가지고 회귀한 순간부터 이계 규율에 종속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지만. 】

“정답은 내 안에 있다. 뭐,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진영의 말에 이계의 근원이 잠시 침묵했다.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이계 규율은 정해져 있어.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를 뿐이지. 】

이계 규율은 보이지 않는 규칙이란 건가.

그러나 이어지는 이계의 근원의 말이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 가장 중요한 건, 이계 규율에서 벗어나는 것은 존재의 말소를 의미한다는 거지. 】

존재의 말소?

이것에 대한 기억이 진영의 머릿 속 어딘가에 어슴푸레하게 남아 있었다. 흐린 안개 속을 헤메는 것처럼 잘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떠오를듯 말듯한 애매함 속에서 무언가 건져내려는 찰나, 눈 앞으로 무언가가 획 지나갔다.

“잠깐.”

진영의 앞으로 아까와는 다른 정령 하나가 푸른 잔상을 남기고 이동하고 있었다.

녀석은 마력의 흐름을 쫒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 서식하는 마수 및 정령들의 전투력은 20층에서 30층 정도일 것이다.

정령은 보기에는 신비로운 모습이지만, 방금 전 아종 고블린의 최후를 생각하면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을 터.

코인을 다른 곳에 아껴두기로 작정한 이상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우우우···.

고운 바람 소리와 함께 정령이 진영을 향해 날아왔다.

정령을 피해다닐까 싶었던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어차피 계속 숨어 다닐 수도 없어.’

【 안 숨고 뭐하는 거야? 너 그냥 죽을텐데. 】

히든 피스는 정령들이 잔뜩 모여 있는 정령수 중심에 숨겨져 있다.

정령들과 마주치지 않고 정령수 안에 있는 히든 피스를 가져 오는 건 불가능했다.

“이봐.”

진영은 푸른색 정령을 향해 말을 걸었다.

【 잠깐만, 위험해! 】

이계의 근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진영은 정령 앞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령은 가볍게 진동하더니, 마력의 형태를 읽어 진영을 파악해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신록의 향기’ 효과로 자연계 NPC와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합니다. ]

[ 청아한 물의 정령이 당신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

“휴.”

진영은 정보창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효과가 다른 정령들하고 마찬가지로 적용되서 다행이야.’

정령이 자연계 NPC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히든 플레이스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모를 일이 었기에 망설였는데, 결과적으로 잘 되었다.

우우!

정령은 진영의 주변을 빙글 돌며 반짝이는 빛을 뿌리며 날아다녔다.

이계의 근원이 놀란 듯 진영에게 말했다.

【 담도 좋네. 아이템이 발동될지 안될지 어떻게 알고. 】

아이템의 본 주인인 이성철은 이 신록의 향기의 진가를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마력 8%를 올려주는 스탯도 좋기는 하지만, 진짜 가치는 NPC와의 관계 향상에 있었다.

거기에 더불어 자연 친화력까지 상승 시켜주니 정령과의 상성은 더욱 좋을 수 밖에.

“혹시 정령수가 있는 곳까지 안내 해 줄 수 있어?”

우웅, 우웅.

정령은 진영의 말을 흔쾌히 승낙하며 반짝이를 뿌려댔다.

곧장 나아갈 길을 향해 날아가며 안내하듯 원을 그렸다.

녀석의 뒤를 쫓으며 진영은 아까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하고자 했다.

“그럼···.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하지. 네 목적은 대체 뭐지?”

【 당연한 걸 묻고 있어. 멸망의 탑 공략. 그거 말고 무슨 목적이 있겠어. 】

이계의 근원의 말투에서 씁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 다만 내 입장에서 너 하나만을 편애하고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건···. 아니지, 여기까지는 말해 봤자겠고. 하여튼 네 편이라는 것만큼은 알아줬으면 하네. 】

‘나 하나만이라···.’

전부터 느꼈지만 이계의 규율은 진영 외의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시도가 항상 진영을 향해 있지도 않았고,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도 항상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가장 가능성 있는 플레이어에게 투자하겠다는 건가.’

녀석은 성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걸까?

하지만 녀석은 성좌처럼 플레이어를 좌지우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구경하고 가능성에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더욱더 진영은 이계의 근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계의 근원이 부여하는 힘은 탑의 규칙을 비틀 정도로 강한 힘이니.

【 오, 도착했나본데. 】

빽빽했던 청록색 활엽수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정령의 안내를 따라 도착하자, 압도적인 크기의 정령수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다보아도 끝을 확인할 수 없는 나무의 높이에 진영이 숨을 삼켰다.

‘여기까지는 왔는데, 이제부터가 중요하지.’

안내역을 맡았던 청아한 물의 정령은 정령수를 자랑하듯 날아다녔다.

진영이 지금부터 훔칠 것은 정령수 꼭대기에 고여 있는 거짓을 쫒는 샘물.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면 저 샘물이 있어야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다.’

진영의 시선이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산을 향했다.

검은 산 꼭대기에 둥지를 튼 드래곤과 그 주변으로 보이는 새까맣게 오염된 땅.

정령들이 사는 청록색 숲과는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검은 산 위의 드래곤을 처치하면, 정령들이 감사의 표시로 직접 샘물을 건네 주는 식이었으려나.’

탑을 공략하며 나오는 미션의 레퍼토리도 어느 정도 익숙했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접근했다가는 히든 피스를 얻기는 커녕 드래곤한테 목이 달아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냥 샘물을 훔치자니, 정령들의 공격이 두려웠다. 정령수 근처로 수 천마리의 정령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대놓고 도둑질을 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 그건 갑자기 왜 벗어? 】

‘그래도 도전해 볼만한 가치는 충분해.’

진영은 컴뱃 나이프를 꺼내 장착되어 있던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뽑아냈다.

붉은 색의 구슬이 액체처럼 손바닥 위로 흘러나왔다.

【 어, 설마? 】

1층에서 손에 넣은 ‘이름 없는 에고’는 아이템의 등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진영은 목에 매고 있던 유니크 아이템 ‘신록의 향기’를 벗어 손에 쥐었다.

‘이걸 레전더리 아이템으로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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