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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31화 (31/152)
  • 이계 외곽(2)

    “그 둘이 실패했다, 이거지.”

    레드 리버의 수뇌부에서는 회귀자의 동향을 상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더욱 탐나는군. 그 자가 우리 편에 붙어주기만하면 그랑블루를 제치는 것도 가능할텐데 말이야.”

    레드 리버의 부마스터의 미소 사이로 금이빨이 드러났다.

    현재 탑 1위의 클랜이라는 그랑블루의 아성은 명백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랑블루의 실질적 관리자였던 진청이 클랜원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간 뒤 그랑블루는 기울고 있었다.

    현 부마스터가 이리저리 실패하는 동안, 레드 리버가 앞으로 치고 나가야했다.

    “계약금이 300억이면, 우리 조건이 나빴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말이야. 그대로 묻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단 말이지.”

    1층부터 탑을 올라 온 회귀자가 레드 리버의 헬퍼이자 암살자 두 명을 제압했다.

    그랑블루의 헬퍼는 말단들이 맡는 자리지만, 레드 리버의 헬퍼 역은 충분히 훈련되지 않으면 맡을 수 없는 자리였으니 대단한 일이었다.

    이번에 나타난 회귀자는 여태껏 등장한 회귀자와는 결이 다른 이유였다.

    흔히 회귀자들은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기연을 독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회귀자가 앞서 있는 것은 정보 뿐.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튼튼한 기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회귀자라고 해도 고작 한 번 더 살아본 게 고작이다.

    단 한 번의 삶에서 얻어내는 정보를 사용해, 인연을 확장시키고, 능력을 키워나가는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자가 유능해도 너무 유능한 건 사실이지. 잘라낼 거면 새싹일 때 철저히 짓밟되, 키울거라면 확실히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암살자를 보내서 협박한 마당에 우리 쪽으로 붙을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방법을 쓰는 게 좋겠어.”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레드 리버의 부마스터 유경규가 마법석을 들어 올렸다.

    치이익-

    작은 노이즈와 함께 마법석은 어떤 인물에게로 연결되었다.

    - 무슨 일이지?

    “의뢰를 하나 할까 하는데.”

    - 얼마 줄건데?

    “여전히 싸가지가 없구만. 대뜸 비용부터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 됐고 용건이나 말해.

    “7번째 회귀자에 관한 거야. 어때?”

    - 7번째 회귀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무감정하던 그의 목소리에 궁금증이 실렸다.

    미끼를 물었단 생각에 유경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맞아. 보수는 최대한 넉넉하게 줄테니까. 아, 살려서 데려오면 보수는 두 배로 주지. ”

    굳이 그를 레드리버에 영입할 필요는 없었다.

    암살자들이 당한 걸로 보아 회유 작전은 실패했다.

    최소한 그가 죽기만 하더라도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레드 리버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통화를 마친 유경규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통신석을 내려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나설 필요도 없지.”

    레드 리버의 헬퍼가 당한 마당에 더 이상 직접 나서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멸망의 탑에 주둔하고 있는 실력 좋은 암살자에게 의뢰를 맡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결과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의뢰를 받은 자는 멸망의 탑 5번째 회귀자이자, 히든 피스와 온갖 귀중한 아이템을 모아 힘을 키운 것으로 유명한 ‘콜렉터’였으므로.

    * * *

    “가져 가도 되겠죠?”

    “아, 네. 뭐···. 그거라면.”

    그랑블루의 장비 창고에서 진영이 든 것은 부숴진 투구였다.

    구석에 있는 채로 계속 방치된 아이템이라, 진영이 집어들지 않았더라면 계속 먼지만 쌓여 갔을 것이다.

    아이템 같지도 않은 아이템.

    사라진다고 해서 찾을 사람도 없는 아이템을 인색하게 아낄 필요도 없었다.

    “그럼 들고 가겠습니다.”

    정말 뭘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장비 창고 밖으로 나가는 진영을 바라보며 민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행이 있는 2층까지 올라 오자, 주오령과 김지훈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트너, 어서 와서 먹어라. 기계에 넣고 돌렸더니, 굉장한 음식이 됐다.”

    “넌 어디 오지에서 살다 온 거냐.”

    입 안 가득 음식을 채워 넣는 주오령의 눈빛은 석달 굶은 사람의 것을 하고 있었다.

    주오령은 걸신 들린 듯 먹어치우고 있었지만 결국엔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꽤 종류가 다양해요. 햄버그도 있고, 미트볼도 있어요. 형도 좀 드세요?”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려 열심히 주오령에게 서빙하던 김지훈이 진영을 발견하고 말했다.

    주오령의 말마따나 7층에서 얻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만찬이기는 했다.

    7층부터 레이드를 위해 플레이어가 여럿 모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건물을 기지로 삼고 거점 점령하는 게 가능해진다.

    ‘이 거점은 끝까지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나보네.’

    코인을 사용해 거점 내부를 업그레이드 할 수록 더 많은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자판기나 전자레인지 같은 전기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7층에서는 10층에 올라 간 뒤에도 파밍을 하러 내려오기도 하고, 플레이어마다 오래 머물기도 하니 그랑블루로서는 당연한 투자였으리라.

    “그럼 나도 맛이나 볼까.”

    진영이 스읍 침을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따지고보니 오랜만에 하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99층으로 올라 갈수록 상황은 열악해지고, 먹을 수 있는 식량에도 제한이 생긴다.

    마수 고기나 알 수 없는 식물을 요리해 먹던 때에 비하면 인스턴트 음식은 진수성찬이 맞았다.

    “저기요···.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시원한 음료수와 함께 인스턴트 햄버그를 먹고 있자니, 잠시 길드와 연락을 취하러 갔던 민아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요?”

    “원래 이 쪽으로 오기로 했던 헬퍼들이 사정이 생겨서 못 올 것 같다네요.”

    “혹시 15층에서 일어난 일 때문인가요?”

    진영의 말에 민아영이 화들짝 놀랐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자였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고만다.

    진영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포크로 햄버그 조각을 찍어 입에 넣었다.

    ‘15층 보스 레이드 사태’

    먼저 움직인 적이 없는 15층의 보스가 깨어나, 15층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공격한 사건이다.

    진영 또한 정확한 시기는 기억하고 있지 못했었다.

    애초에 진영이 10층에 올라간 시기는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이기도 했고, 진영이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화제성이 떨어졌던 사건이었다.

    “그럼 저희끼리만 10층까지 올라가면 되는 건가요?”

    김지훈의 말에 민아영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지금 상부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라.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는 여기서 대기해야할 것 같은데.”

    그랑블루 상층부에서는 회귀자를 안전하게 위층까지 옮겨오고 싶어했다.

    10층까지 플레이어를 데려오는 플로어 시프트 중에 나는 사고는 꽤 흔한 편이었다.

    진영 일행에게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특히 진영한테는 오히려 기회였다.

    식사를 얼추 마친 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저는 잠시 이 근처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의 말에 민아영이 사색이 되었다.

    “아뇨, 어딜가시려고요? 이 근처에는 위험한 플레이어도 꽤 많아요. 10층에서 내려온 플레이어도 있고요. 혼자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걱정해주셔서 고맙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진영은 단호했지만 민아영은 불안한 기색이었다.

    그랑블루에서 영입해야하는 1순위가 이진영인데, 그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적어도 같이 가요. 7층 지리는 잘 알고 있어요.”

    “아뇨, 같이 못 가는 곳입니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려던 진영이 민아영을 돌아봤다.

    “1시간 안으로 돌아오겠지만, 그 사이에 누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접 싸우기보다 말고 주오령을 앞 세우시는 게 좋을 겁니다.”

    레드 리버도 당연히 자신들이 보낸 헬퍼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을테고, 손을 써두었을 확률이 높았다.

    15층에서 큰 사건이 터졌으니 마침 적절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마 클랜원들을 뒤로 돌리는 대신 용병이나 해결사를 고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누가 올지는 대충 예상이 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7층의 히든피스가 더욱 필요했다.

    “그런거라면 괜찮아요. 저희가 있는 곳이 어딘데요. 그랑블루 거점이잖아요. 미쳤다고 여기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걸요.”

    민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랑블루의 거점은 현재 최대 레벨이었다.

    허가 받지 않은 침입자가 거점 근처에 접근하면 즉시 경보가 울린다.

    거점 입구의 마력장이 우선적으로 침입을 막고, 설사 침입에 성공하더라도 침입자는 능력치에 큰 디버프를 받는다.

    허가 없이 단신으로 돌입하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거점을 중심으로 공성전을 벌이는 게 나을 정도다.

    민아영의 반응을 본 진영은 진지하게 말했다.

    “멸망의 탑에는 그런 미친 사람이 있더라구요. 금방 다녀올테니, 위급해도 주오령을 방패로 세우면 될 겁니다. 아니, 지가 알아서 달려들겁니다.”

    * *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

    거점 밖으로 나와, 히든 피스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계의 근원이 보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검은 드레이크를 찾아라.’

    7층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얻기 위해서는 특별한 마수를 찾아야 했다.

    7층 외곽에 있을 이 놈은 항상 등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했다.

    하늘의 붉은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쯤.

    아마 어디선가 브레스를 흩뿌리며 주변의 플레이어들을 위협하고 있을 거다.

    진영은 근처에 있는 건물을 하나 잡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2단계에 달하는 스탯 덕분에 큰 체력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마수들의 위치가 한 눈에 보였다.

    ‘근처에 보이는 것만 총 10마리 정도인가···.’

    도마뱀을 닮은 놈, 뱀과 비슷한 마수 등등 아파트 9층에서 10층만한 녀석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전투에 들어선 놈들도 있었고,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마수도 있었다.

    그 중에서 검은색인 녀석은 총 두 마리.

    “저 쪽이군.”

    지긋이 관찰하고 있자 마수 두 마리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보였다.

    하나는 두 다리로 보행하며 건물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네 다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중에 진영이 찾는 드레이크는 네 다리로 움직이는 놈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콰아아아!

    붉은 화염의 열기에 이글거리는 아지렁이가 이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달려 가면 금방 도착하겠네.’

    녀석은 미니 레이드에서 상대할 수 있는 마수 중에서도 강력한 놈이었다.

    강철보다 단단한 강도의 발톱과, 비늘 하나 하나에 깃든 마력이 그 이유였다.

    왠만한 실력자들이 떼로 덤비지 않는 이상 상대하기 힘든 마수.

    ‘나 혼자서 쓰러뜨리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고.’

    빌딩에서 내려 온 진영은 블랙 드레이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녀석은 수시로 브레스를 하늘로 쏘아올렸기에 위치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영이 길을 찾는 데 일가견이 있기도 했으니, 녀석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건 금방이었다.

    쿠웅.

    드레이크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울리는 진동은 6층의 오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영은 망설이지 않고 드레이크의 앞으로 나섰다.

    스윽.

    겁 없이 다가온 조그마한 생명체를 발견한 블랙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렸다.

    진영을 발견한 블랙 드레이크의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탑의 규율에 따라 녀석에게 진영은 당장 죽여야 할 무언가였다.

    쿠우우···.

    드레이크의 입 주변으로 뜨거운 열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영은 엄폐물을 찾는 대신, 드레이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드레이크와 정면 승부를 하게 된다면 승산이 없었다.

    코 앞까지 다가 온 이상, 이미 진영은 드레이크의 표적이나 다름 없었다.

    녀석은 한 번 찾은 대상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히든피스를 얻기 위해서라면 도전해야했다.

    쩌억-.

    녀석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붉은 홍염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화아아-!

    쇠조차 단숨에 녹여 버리는 열기 앞에서 진영은 발을 내딛어 앞으로 향했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행동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

    브레스를 피해도 모자를 판국에 그 앞으로 달려드는 짓을 하다니.

    하지만 이번에는 이계의 근원도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 불 속성 내성 100%, 불 속성 공격에 면역됩니다. ]

    2층에서 얻었던 히든 피스 ‘청명한 불꽃’ 덕분에 진영은 불꽃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뜨거워야 할 열기가 오히려 시원하게까지 느껴졌다.

    히든 피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드레이크의 입 안으로 들어가야했다.

    브레스를 쏘느라 머리를 낮춘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한 번 브레스를 쏜 드레이크는 충전 될 때까지, 몸과 발톱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놈을 상대로 혼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근처의 돌을 밟고 도움 닫기를 통해 진영은 드레이크의 입을 향해 뛰어 들었다.

    7층에서 히든피스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

    ‘입이 닫히기 전에!’

    터업!

    브레스를 모두 내뿜은 드레이크의 입이 닫혔다.

    진영은 가까스로 녀석의 목구멍 속으로 뛰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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