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 외곽(1)
“야! 다리 쪽부터 공격해!”
“브레스 온다! 피해!”
“숙이라니까! 죽고 싶어?”
플레이어들의 고함이 폐허가 된 빌딩 사이로 울려퍼졌다.
쿠오오오!
작은 건물 하나에 맞먹는 크기의 도마뱀이 괴성과 함께 꼬리를 휘둘렀다.
콰과과!
무너진 빌딩의 잔해가 산산조각이나며 일대를 휩쓸었다.
그 한 방에 플레이어들이 장난감처럼 쓸려나갔다.
“사, 살려줘!”
“야! 자리 제대로 잡아!”
거대 도마뱀 마수를 잡기 위해 즉흥적으로 달려든 파티였다.
“역시 우리끼리는 안 되는건가···.”
파티장인 고명민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에 입 안을 씹었다.
6층에서 마력 응집을 성공시키고 7층으로 올라 올 때만해도 모든 게 수월했다.
오히려 성공했다는 감정에 너무 젖어 있었던 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 7층 : 잊혀진 도시 - 미니 레이드 ]
7층의 미션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거대 마수 하나를 처치하는 것.
6층에서 함께 했던 6명의 팀원과 함께, 기세를 이어 미션을 클리어하려 했건만···.
그들의 실력은 의욕에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끄아아아!”
거대 도마뱀 마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팀원 하나를 집어삼켰다.
꼬리에 당한 팀원만 해도 두 명.
더 이상 승산은 없었다.
“좀만 참아! 힐러 어딨어? 힐러!”
“치유의 연주 들어갈게요!”
젠장.
힐러라고 해도 제대로 된 힐러도 아니었다.
그녀의 클래스는 힐러가 아니라 연주가.
치유의 연주는 고통을 경감시키고 자체 회복력을 올려주지만, 심각한 상처에는 효과가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안 되겠어! 여기서 포기하자. 다들 도망가!”
애초에 바보 같은 시도였다.
7층에 막 올라와서 상대할 수 있는 마수가 아니었다.
최소한 더 많은 사람을 모았어야했다.
“아, 안돼요! 영후가 잔해 더미에 깔려 있어요!”
“나, 나 버리지마! 제발!”
‘크윽···.’
고명민은 팀원의 절규를 무시할만큼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잔해 쪽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다들 일단 도망치고 있어! 내가 구해서 갈테니까!”
그의 클래스는 A급 천하장사.
7층까지 손쉽게 올라 올 만큼 좋은 클래스였고,
저 정도 크기의 잔해는 단숨에 들어 올릴만큼 강했다.
한달음에 팀원이 깔려있는 잔해를 향해 달려갔다.
“기다려 금방 꺼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명민의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순간, 거대 도마뱀과 고명민의 눈이 마주쳤다.
혀를 날름 거리는 위압적인 도마뱀에 온 몸이 저려올 정도였다.
‘끄, 끝장이다.’
덥썩.
끝을 직감하는 것과 동시에 도마뱀의 아가리가 그를 물어챘다.
“으아악!”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압도적인 크기 차이 앞에서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도마뱀의 혓바닥이 맛을 보듯 입에 문 고명민을 감쌌다.
녀석이 고개를 흔드는 순간 그는 직감했다.
‘아···.’
이제 죽었구나.
질끈.
두 눈을 감고 다가올 고통을 대비한 순간.
콰아앙!
강력한 타격음이 고명민의 귓전을 울렸다.
동시에 도마뱀 마수가 무게 중심을 잃고 기울어졌다.
강렬한 고통에 다물었던 입이 열리며 고명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
땅과의 거리는 15M가 넘었기에, 준비 없이 떨어지는 고명민이 겁에 질려 소리쳤다.
다행히 그가 바닥과 충돌하는 일은 없었다.
타악.
“괜찮으세요?”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학생 하나가 고명민을 받아냈다.
“이게 대체···.”
얼떨떨한 기분으로 바닥에 내려 온 고명민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도마뱀을 바라봤다.
콰아앙!
방금 전 같은 굉음이 울려퍼지며 커다랬던 도마뱀이 건물 잔해 위로 쓰러졌다.
일격의 주체는 맨 몸의 사내였다.
그건 납득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자신들 파티가 죽을 힘을 다해 덤벼도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했던 녀석인데.
“대, 대체···.”
새롭게 등장한 플레이어 둘은 넘어진 거대 도마뱀에게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촤아악!
마력이 실린 채찍이 도마뱀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크오오오!
고통에 몸부림 치는 도마뱀에 의해 흙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7층까지 올라 온 플레이어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인간 이상의 힘을 손에 넣고, 기존의 법칙을 뒤흔드는 스킬을 가진 존재.
그러나 같은 플레이어라고 한들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중형 마수하나 간신히 쓰러뜨리는 자가 있는 반면, 대형 마수를 가지고 놀 듯 유린하는 자도 있기 마련.
쿠웅.
인간의 몸으로 거대한 괴수를 일방적으로 때려 눕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같은 플레이어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고명민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쓰러진 도마뱀 마수의 머리로 훌쩍 뛰어 오른 남자가 오른손에 쥔 단검을 내리찍었다.
번쩍!
한 줄기 붉은 빛이 도마뱀의 머리를 관통하면서 미니 레이드가 끝이 났다.
정보창이 떠올랐다.
[ 미니 레이드 성공! ]
[ 레이드에 참여한 모두에게 8층 입장 권한이 주어집니다. ]
살았다는 감동과 함께 고명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 감사합니다.”
고경민은 옆에 서 있던 남학생을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죽고 말았을 거다.
감사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였다.
어느새 뒤쪽으로 모여든 팀원들도 하나 둘 씩 입을 모았다.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다음 층으로도 올라갈 수 있게 되었고···.”
실력을 가늠하지 못한 실수는 뼈저렸다.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지만 파티원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다.
어쨌든 살았으니까.
그런 파티원들의 뒤로 방금 전 도마뱀 마수를 상대하던 남자가 나타났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어서 도와드린 건데요, 뭘.”
다가온 진영이 그들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거 대체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할지···.”
파티장이었던 고명민이 주머니를 뒤적여 코인 몇 개를 꺼냈다.
코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넣어두세요.”
“와, 이렇게 좋은 분이 계실줄이야···.”
진영을 바라보는 고명민 파티의 눈빛이 선망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대가 없는 선행.
멸망의 탑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일이었다.
나 하나 살아남기도 바쁜 멸망의 탑에서 7층까지 올라오며 각자 얼마나 많은 배신과, 역경이 있었던가.
고명민 파티는 멸망의 탑에서 보기 드문 진영 일행의 선행에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가볍게 악수나하고 올라가시죠.”
그런 선행 앞에서 파티원들이 진영이 내민 손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진영과 악수를 마친 뒤, 하얀 빛과 함께 다음층으로 올라갔다.
‘목숨 값을 코인 몇 개로 퉁치는 건 좀···.’
당연하지만 멸망의 탑에 대가 없는 선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0층과 2층에서 진영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다음 층으로 올리면서 대가를 받지 않았던 것은 진영이 자선사업가여서가 아니었다. 그냥 플레이어들이 코인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여기는 7층이다.
방금 지나간 파티도 고맙다며 눈물까지 글썽이기는 했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면 미래의 일을 생각하기 마련.
고맙다는 플레이어들이 내민 건 고작 코인 몇 개였다.
살려준 대가로 코인을 더 달라고 한다면, 그들이 흔쾌히 동의 했을까?
아마 다른 층으로 도망갔을 거다.
‘다 합쳐서 113개면 목숨 값치고는 싼 편이지.’
악수를 빌미로 훔쳐낸 코인의 수였다.
레드 리버 암살자들에게서 빼앗은 코인까지 합치면 꽤 되는 양이었다.
게다가 방금 미니 레이드 보수까지 받았다.
현재 진영이 가지고 있는 코인의 개수는 1134개.
플레이어들이 사라진 걸 확인한 진영이 일행을 돌아보며 웃었다.
“7층 미션도 클리어 했으니 계속 가죠.”
* * *
“도착했어요. 여기서 다른 헬퍼들하고 합류할거에요.”
한 눈에봐도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군데 군데 드러난 철근이라던가, 금이 간 외관이 위태로워보였다.
“일단 여기 이 배지를 가지고 계셔야 들어갈 수 있어요.”
민아영이 일행에게 파란색 문양이 그려진 배지를 나눠주었다.
7층은 갓 10층에 도착한 플레이어들의 사냥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때문에 그랑블루에서는 거점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클랜원들이 편하게 미니 레이드를 통해 경험과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지금은 사냥 기간도 아니고 해서, 건물이 텅 비어 있을 거에요.”
민아영의 안내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는 다른 깔끔한 내부가 드러났다.
호텔 로비처럼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에 김지훈이 감탄을 내뱉었다.
“와, 멸망의 탑에 이런 곳이 있다니. 탑 밖으로 나온 것 같아요.”
“여기가 그랑블루 클랜의 거점 중 하나거든. 위쪽으로 올라가면 먹을 거나 마실 것도 있으니 자유롭게 사용하셔도 되요.”
멸망의 탑에서 제공하는 시스템 중 하나인 ‘거점’ 기능덕에 건물 내부는 마치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깨끗했다.
“와아, 음식이 있네요. 음료수 자판기까지.”
그랑블루에서 7층 거점에 꽤 많은 투자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국내 1위 클랜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쌓여 있는 음식은 죄다 인스턴트 식품이었지만 7층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으론 최상급이었다.
덜컹, 덜컹.
김지훈과 주오령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기 시작했다.
“대단하죠?”
민아영이 진영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별로 채우지 못했던 그랑블루의 클랜원이라는 자부심을 여기서 채우려는 듯 했다.
물론 회귀자한테 감흥을 주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네, 확실히 대단하네요. 이 정도로 대단하면 장비가 마련 된 창고도 따로 있겠네요?”
“그럼요. 지하에 꽤 쓸만한 장비를 갖춘 창고가···. 잠깐만요, 설마 장비를 훔쳐가려는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서 민아영이 귀를 붙잡았다.
귀걸이를 한 번 도둑 맞았던 터라 왠지 조심스러웠다.
“훔치다뇨.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요. 어차피 그랑블루에서 7층에 온 클랜원들 쓰라고 만들어 놓은 창고 맞지 않습니까?”
“그건 맞죠···.”
7층 거점에 있는 창고에는 그리 귀중한 아이템은 없다.
10층 이상에서 사용하기는 부족하지만, 7층에서는 충분히 사용되는 그런 장비를 모아둔 곳이다.
“그러면 다른 헬퍼들 올 때까지만 잠깐···.”
민아영은 찜찜해하면서도 승낙했다.
애초에 진영을 돕기로 결정 하지 않았던가.
헬퍼 들이 올 때 까지 창고를 돌아 보는 정도는 상관 없었다.
진영은 민아영과 함께 7층 거점의 지하 창고로 내려왔다.
철컥-.
민아영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금속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예상했던대로 일반에서 레어 수준 아이템 뿐이네.’
벽면에 가지런히 정돈 된 무기와 장비를 보며 진영이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장비는 왜 보려고 하시는 거에요? 그랑블루에서 회귀자 오해가 풀리면 진영씨한테는 더 좋은 장비를 제공할걸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챙겨 놓으면 좋을 게 하나 있습니다.”
진영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면, 클랜에서는 좋은 조건과 아이템들을 제시하며 그를 끌어 들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랑블루에서 미쳤다고 그런 아이템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회귀자를 통해서 얻어낼 이익과 투자 비용을 명확히 따질 것이다.
‘그리고 이용가치가 없어진 회귀자는 버려지기 마련이지.’
심한 경우에는 살해 당한 뒤, 사고로 위장해 아이템을 회수 당하는 일도 있다.
회귀 전, 그런 수작을 진영은 수 없이 보고 들어왔다.
회귀자인 것을 숨기며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회귀자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야했고,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수작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가지는 것 뿐이다.
이리저리 창고를 살피던 진영이 구석에 놓여진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흠, 민아영씨, 이거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손에 든 물건을 확인한 민아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요?”
진영이 손에 든 것은 반 쯤 떨어져 나간 투구.
아이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