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27화 (27/152)

레드리버(3)

[ 매년 증가하는 게이트 수, 협회의 대처는 부실···. ]

[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드 될 것” 한국 1위 까마귀 길드 성명 발표 ]

[ S급 헌터 유강혁 “헌터 감시 체계 이대로는 안돼.” ]

[ 지나친 갑질···. A급 헌터 K양 자격 논란 ]

“시시하군. 기삿거리라고 할만한 것도 없어.”

툭.

신문의 헤드라인을 훑어보던 남성이 신문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바깥 세상의 신문에서는 연신 길드와 협회, 헌터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탑 바깥의 헌터들이 모인 조직이 길드와 협회.

탑 내부의 플레이어가 모인 조직이 클랜이다.

멸망의 탑 내부의 클랜이나, 플레이어에 대한 기사는 한줄도 찾을 수 없었다.

스읍.

커피를 들이마시는 그의 표정이 언짢은 것도 당연했다.

이마에 새겨진 지긋한 주름과 깔끔하게 빗어넘긴 회색의 머리가 그의 나이를 짐작케 했다.

이제 60대에 들어선 그는 그랑블루 클랜의 부마스터 진철이었다.

멸망의 탑이 세계 곳곳에 솟아난 이후로, 사회는 큰 혼란을 빚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세운 21세기 문명은 그리 쉽게 멸망하지 않았다.

종말론이 세계를 뒤덮었던 가운데, 멸망의 탑을 거쳐 바깥으로 나간 헌터들에 의해 사회는 다시 정상화 된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를 점령하고, 사람들은 헌터의 존재에 익숙해졌다.

지금 바깥의 모든 사람들이 두 발 뻗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바깥에 있는 길드의 덕도, 협회의 덕도 정부의 덕도 아니었다.

멸망의 탑 내부에서 모든 것을 진두 지휘한 클랜 덕이었다···고 진철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 회귀자 건은 어떻게 됐지?”

그랑블루의 부마스터 진철이 비서로 보이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사내는 곧장 품에 안고 있던 패드를 확인했다.

“여태까지 존재했던 회귀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지금 저희 헬퍼와 접촉해서 10층까지 플로어 시프트 중에 있습니다.”

영입에 성공했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보고를 듣는 진철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게 전부인가?”

“예?”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부 전달한 비서가 얼빠진 얼굴을 했다.

“회귀자가 몇 층에서 회귀했는지부터 알아내는 게 기본 아닌가?”

“아! 그 부분은 당장 연락해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쨍그랑!

비서의 옆으로 날아간 찻 잔이 부숴졌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진청 녀석 나간 뒤로는 일을 제대로 하는 놈이 없어!”

부마스터의 친동생인 진청이 자신의 부하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탑의 바깥으로 나간 뒤로 부터 대한민국의 1위 클랜 답지 않은 실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발생한 클랜원 살해 사건, 15층 공략 실패 건에 더불어, 6번째 회귀자를 레드리버에 빼앗겼다. 진철의 심기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진청, 그 자식하나 없다고 그랑블루가 이렇게 뭣같이 돌아가?’

자신이 이끌어 왔다고 생각한 그랑블루가 실은 동생이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진철은 치가 떨려왔다.

실제로 그는 플레이어로서의 실력은 있었지만,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의 능력은 썩 좋지 못했다.

“내려보낸 헬퍼들한테 신신당부해. 그 회귀자 제대로 못 데려오면 다들 각오하라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부하 직원에게 호통을 치는 게 전부였다.

현 시점, 지구 문명의 멸망을 막기 위해 탑을 공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멸망의 탑 공략이 진척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서 돈이 안된다.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

돈.

모든 것은 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헌터들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부산물들은 이미 천문학적인 경제 규모를 가진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었다.

‘이번 회귀자를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길드와의 협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야.’

바깥의 길드와 협회에서는 클랜에게 물품과 재료를 제공 받아 아이템을 생산하고, 세상 곳곳에 생긴 게이트를 제거해 나간다.

‘빌어먹을 길드 놈들.’

초창기에는 그 시발점에 있는 클랜의 역할이 중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주도권은 점점 길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에 이르러 대중의 관심도 전부 길드와 협회에 쏠려 있는 마당에 클랜이 가지는 발언권은 더욱이 적어졌다.

그러니 더더욱 회귀자를 그랑블루의 손에 넣어야만했다.

어떠한 숭고한 의식이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 진철은 회귀자를 영입하고자 했다.

“뭘, 멀뚱히 서있어?! 당장 몇층에서 왔는지 물어보라고 전해야 할 거 아냐!”

* * *

“저, 진영씨···. 방금 클랜에서 연락이 왔는데.”

6층에 도착해서 근처를 살피고 있던 와중 민아영이 진영에게 귓속말을 했다.

“진영씨 몇 층에서 회귀하셨어요? 그게 궁금하데요.”

“그건 주오령한테 물어보셔야죠. 전 회귀자가 아닌데요”

“아니, 진짜. 협조 좀 해줘요.”

민아영의 애원에 진영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77층?! 일리는 없고···.”

“17층입니다.”

실제 진영은 99층에서 회귀해 돌아왔다.

하지만 구태여 그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99층은 말한다고 믿어주는 수치도 아니다.

“생각보다 높지는 않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민아영은 다시 몸을 숙이고 돌려 길드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아직까지는 그녀도 말단에 불과했다.

그녀가 길드의 핵심 간부가 되는 건 꽤 시간이 지난 뒤다.

실력은 좋지만, 아직 경험과 처세가 부족했다.

“여러분! 저희가 대충 살펴보고 왔는데 이 근처는 안전한 것 같습니다.”

5층에서 합류한 이성철과 윤기윤이 손을 흔들며 돌아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는 명목으로 둘이서 작당모의라도 한 것 같았다.

“저 두 분······.”

돌아오는 남자 둘을 보고 김지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직접 나서서 정찰까지 해주시고, 정말 좋으신 분들인 것 같아요.”

“그래, 드물지만 간혹 있는 법이기는 하지.”

진영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괜히 김지훈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자연스럽게 모르고 있는 게 나았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다고는 해도 암살자다.’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걸어오는 두 명은 레드 리버에서 보내 온 암살자가 틀림 없었다.

그들이 서로 나누고 있는 비밀 수신호가 진영의 눈에는 훤히 들어왔다.

- 준비 끝났으니까. 슬슬 시작하자.

- 오케이. 여기도 노이즈 캔슬러 온. 이제 5시간 동안은 상층에서 관측 안되니까 우리 세상이다.

- 일단 주오령부터 떼어낸 다음, 회유 실패하면 움직여도 안늦어.

- 차라리 회귀자가 우리 제안을 거절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 그거야 그런데···.

둘의 시선은 민아영을 향해 꽂혔다.

‘이런 놈들이 멸망의 탑에 한 바가지로 있다는 게 제일 엿 같군.’

진영이 엿듣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수신호를 주고 받는 둘을 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행동을 지켜볼 필요까지도 없었다. 진영은 마음을 정했다.

‘살려둘 필요가 없겠어.’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가로막는 것은 탑 그 자체 뿐이 아니다.

사람들은 탑을 오르면서도 끊임 없이 경쟁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했다.

다같이 힘을 모아 공략해도 모자른 시간을, 무의미하게 날려보내고 만다.

계속해서 마찰을 빚던 레드 리버와 그랑블루는 결국 클랜 간 전쟁을 벌인다.

성좌들의 부추김과, 별 것 아닌 사건이 촉발한 전쟁은 플레이어들은 두 쪽으로 나누어 싸우게 만든다.

그 당시 진영은 레드 리버의 진영에 속해 있었다.

레드 리버 클랜에서 사용하는 수신호를 전부 알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 6층 : 평범한 마녀의 숲 - 마력 응집 ]

설명 : 숲 곳곳에 흩어진 마력을 모아 숲 곳곳에 놓인 마력구 중 하나에 채워 넣으세요. 100%까지 마력을 모으면 30분 뒤, 근처에 있는 6인에게 다음층 입장권한이 주어집니다.

6층의 미션은 5층에 비해서는 덜 경쟁적이었다.

적어도 무조건 누군가를 죽일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이번 층은 협력이 가능해 보이니, 일단 저희가 봐둔 안전한 길로 가면서 사냥감을 찾아보시죠.”

이성철은 사람 좋은 척 미소를 지으며 앞장 섰고, 그 뒤를 진영 일행이 따랐다.

* * *

플레이어간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였다.

상대의 클래스는 무엇인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가. 상대의 스탯은 어느 정도인가. 이러한 패를 숨기고 있을 수록 싸움에서 유리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두 명의 암살자 이성철과 윤기윤은 완전한 우위에 있었다.

진영 일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뻔했다.

심지어 그랑블루의 헬퍼인 민아영도 자신들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으니, 회귀자를 회유하지 못하더라도 이 작전은 성공이나 다름 없었다.

모두 죽여버리는 게 오히려 간편했다.

그들은 마음 편하게 수신호를 주고 받았다.

애초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밖에는 안보였다.

- 조금만 더 가면 시작한다.

슬슬 준비한 놈들을 불러 올 때가 됐다 싶어서 수신호를 보내는데.

- 지랄.

“엥?”

레드 리버에서 수신호를 익힌 이성철과 윤기윤의 눈에 자연스럽게 진영의 수신호가 들어왔다.

“두 분 다, 왜 그러시죠?”

갑자기 이성철과 윤기윤이 돌아보자, 진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 깜짝 놀랐네.

- 우연이겠지. 흔히 있잖아.

그들의 눈에 진영은 회귀자를 따라온 떨거지 플레이어였다.

그런 놈이 레드 리버의 수신호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안심하고 슬슬 마수를 불러 올까 하는데.

- 위쪽, 무조건 피해라.

진영한테서 기막힌 수신호가 터졌다.

간부들만 사용할 수 있는 중요 수신호에 이성철과 윤기윤은 몸이 먼저 반응했다.

“흐억!”

“흡!”

읽자마자 바로 몸이 반응하도록 훈련 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러세요?”

“뭐가 있어요?”

앞에서 잘 가고 있던 이성철과 윤기윤이 주저 앉자, 진영 일행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 아뇨. 아닙니다. 스읍, 아. 뭐지.”

이제 갓 탑을 오르고 있는 플레이어가 레드 리버의 수신호를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의심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

- 괜히 시간만 끌리지말고 빨리 시작하자.

- 그래. 깜짝 놀랐네.

쿠웅. 쿠웅.

잠깐의 해프닝을 뒤로하고, 이성철은 자신이 부리는 마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기점으로 근처의 숲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근처에 마수가 있나봅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

모두가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하는 순간.

콰앙!

굵은 나무가 단숨에 넘어가며 오크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서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오크의 손에는 거대한 도끼가 들려있었다.

“마수입니다! 모두 전투 준비해주세요!”

마녀의 숲에 있을 법한 오크였기에 그 출현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오크의 도끼가 바닥을 내리 찍는 순간, 민아영은 이 녀석들이 평범한 오크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콰과과!

오크의 도끼에서 마력이 흘러나와 일행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도끼에 마력을 두를 수 있는 오크라니.

6층에 나올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누나, 조심하세요!”

김지훈의 외침에 민아영이 오크가 휘두르는 도끼를 가까스로 피해냈다.

민아영과 김지훈을 막아선 오크들이 콧김을 내뱉었다.

“마스터 브레이크!”

촤아악!

강한 마력을 머금은 그녀의 채찍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

타앙!

짧은 순간에 오크가 자신의 도끼를 던져 채찍을 도중에 막아냈다.

도끼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오크는 등 뒤에 있던 예비분의 도끼를 꺼내들며 민아영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이 녀석들 뭔가 달라!’

전투 센스부터가 그냥 오크가 아니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동시에 사냥하는 건 버거울 것 같다는 판단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진영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 중요한 때에 어디갔어?”

“누나! 대신 제가 도울게요!”

이진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크 두 마리를 김지훈과 상대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김지훈의 전투 능력은 미지수.

이진영처럼 회귀자가 아닌 이상, 오크를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크오오!

바로 앞까지 달려 온 오크 두 마리가 양 옆에서 횡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급히 채찍을 회수한 민아영이 고개를 숙여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했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 * *

일행은 이성철이 의도한 대로 반으로 갈렸다.

“오크가 저 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일단 이쪽으로 도망치죠!”

이성철과 윤기윤의 말에 주오령은 냉담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땅을 부수는 오크의 일격을 보고, 그 쪽으로 뛰어드는 판단은 하지 않았겠지만.

주오령은 달랐다.

파악!

땅을 박차고 뛰어 올라, 오크가 있는 쪽으로 발을 들어 올렸다.

- 플랜 b로 간다.

이 둘은 어쨌든 숙련된 암살자였다.

이런 돌발 상황까지도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다.

주오령이 오크를 향해 다가가기 직전.

쿵! 쿵!

수풀에 숨어 있던 오크 한 마리가 순식간에 튀어나오며 주오령을 몸으로 밀쳤다.

투웅!

마력으로 덮힌 오크의 몸통 박치기에 주오령이 튕겨져나오며 바닥을 굴렀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주오령을 이성철이 만류했다.

아니 오히려 주오령을 들쳐 맸다.

“?”

“일단 도망가야합니다! 저 마수는 지금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놔라.”

주오령의 손아귀가 이성철의 머리를 붙잡았다.

스탯차가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머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이성철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무, 무슨 힘이!”

“진정하세요!”

“놔.”

주오령의 악력에 이성철의 고함을 질렀다.

“이, 이 새끼가! 야, 찔러!”

상황이 심각해지는 걸 본 윤기윤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오령을 꿰뚫었다.

급소는 피했다.

일단은 살려놔야 협박을 하든 회유를 하든 하니.

“윽···.”

불의의 일격에 주오령의 입에서 피가 솟아났다.

그의 손에서 힘이 풀린 순간, 이성철과 윤기윤은 주오령을 엎은 채로 냅다 반대편 숲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일단 옮기고 협박을 하든, 회유를 하던 해!”

민아영이 오크들을 처리하고 가세하면 회유고 나발이고 없었다.

등에 엎힌 채 끌려가는 주오령의 눈 위로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진영이 조용히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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