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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26화 (26/152)

레드리버(2)

주오령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타앗-.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오른 주오령이 두 명의 남자 중 하나의 목을 붙잡고 판 끝까지 밀어 붙였다.

“허억? 자, 잠시만요!”

당황한 남자가 주오령의 팔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의 발 아래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향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이진영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지켜봤다.

“이, 이럴 필요 없습니다! 저희 그냥 살아나갈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

“몬스터 소환해서 제물로 대신 바칠 수 있습니다! 저희끼리 이러지 않아도 되요!”

그제서야 주오령이 남자를 바닥 위로 놓아줬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남자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과격하시네요. 관리자가 오는 걸 기다렸다가 시작해야 되서요. 급할 필요 없거든요.”

남자는 옷을 툭툭 털어내고,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운이 너무 좋은데.’

생명체 하나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5층에서 공교롭게도 소환사가 있다.

그 부분은 운이 좋았다고 쳐도, 주오령을 대하는 남자의 태도가 걸렸다.

‘탑을 처음 오르는 것치고, 너무 침착해.’

주오령이 남자의 목을 잡아챘을 때도, 그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거 어쩐지 또 제가 필요 없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옆에 서 있던 민아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켓 안쪽에서 꺼냈던 검은 돌을 조용히 집어 넣었다.

마수 소환석.

회귀자를 데리러 온 클랜의 헬퍼가 그 정도 준비도 해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본래 5층에서 마수 소환석을 사용해서 제물로 바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생겼으니 굳이 자원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다.

“민아영씨 저 두 분을 보고 무슨 생각 안드십니까?”

“네? 저 두 사람이요?”

진영의 말에 민아영이 두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기를 5초.

“상당히 노련한 사람들인 것 같긴하네요. 보통 저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필요 이상으로 노련했다.

“아이고, 목이야. 일단 관리자가 와야 미션을 하던가 하니, 저희끼리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을까요? 제 이름은 이성철입니다. 옆에 이 친구는 윤기윤이고요.”

이성철은 살집이 있어 푸근한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글쎄요, 서로 적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성철의 말에 민아영이 차갑게 말했다.

그녀의 목적은 진영 일행을 데리고 10층까지 올라가는 것.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필요는 없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적이 될 수도 있지만 팀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다음 층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요. 협력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는 사람이 많은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이성철은 그렇게 말하고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우우웅.

바닥에 새하얀 선이 그려지더니 약한 빛과 함께 고블린 한 마리가 솟아올랐다.

이성철의 지배를 받는 듯 고블린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자,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진영 일행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이성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도움을 드리는 거 잖아요.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는 걸 보니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맞는 말이었다.

민아영이 헬퍼가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은 전적으로 이성철 일행에게 주도권이 있는 상황이었다.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저 이야기나 나누자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제가 너무 예민했나보네요. 민아영입니다.”

“미인이라 그런지 귀걸이가 잘 어울리시네요.”

악수를 하는 이성철의 말에 민아영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거기 남성분은······.”

“이진영이라고 합니다.”

진영 또한 가볍게 이성철의 손을 쥐었다.

단련된 것 같은 투박한 손이었다.

지금 상황만 보면 그들이 자신의 스킬을 사용해서, 순수한 호의로 다음층으로 넘어갈 수 있는 권한을 만들어주는 중이었다.

주오령한테 죽을 뻔 했음에도 너무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웠다.

때문에 진영은 스틸 스킬을 발동시켰다.

샤아아.

진영의 눈에만 보이는 푸른 빛이 감돌았다.

‘역시······.’

악수를 마친 진영은 정보창을 확인했다.

[ 적과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실패 확률이 소량 증가합니다. ]

[ 훔치려는 대상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합니다. 실패 확률이 대폭 증가합니다. ]

[ 스틸에 실패했습니다. ]

탑에서 막 올라 온 플레이어가 진영보다 능력치가 높을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이 플레이어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영의 미간이 미묘하게 좁혀졌다.

* * *

레드리버.

그랑블루에 이어 멸망의 탑 제 2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클랜이다.

주목할만한 회귀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아낸 것도, 그들의 2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레드리버에서도 헬퍼 두 명을 파견했다.

‘이 사람이 회귀자라는 거지?’

진영 일행이 도착하고 난 뒤, 레드 리버의 헬퍼 이성철과 윤기윤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맞아, 맞아. 전해 들은 거랑 똑같네.’

그들의 시선은 주오령을 향해 있었다.

그랑블루에 이어 레드리버도 이러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탑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클래스를 가진 플레이어가 있다.

그 중에서도 관측자 클래스를 가진 플레이어는 한정적이었다.

그 두 명이 모두 그랑블루에 속해 있으니, 레드리버는 스파이를 심어 놓는 것으로 모자란 정보를 보충했다.

그 결과 두 클랜 모두가 회귀자를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 쪽이 민아영 헬퍼고, 저 웃통 깐 사람이 회귀자고 나머지 둘은 뭐야?’

분명 회귀자는 주오령 한 명일텐데, 떨거지 두 명이 붙어 있었다.

다같이 올라 온 걸로 봐서 일행인 것 같은데, 스파이가 보내준 내용에 이런 말은 없었다.

하지만 둘은 능숙한 레드리버의 헬퍼.

‘적당히 간을 보다가, 안되면 전부 죽이면 되겠지.’

‘그래, 그래. 주오령도 이쪽으로 안 넘어 오겠다고 하면 바로 처리하고 올라가는 걸로하자.’

‘민아영 헬퍼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재미 좀 보다가 죽이는 거지. 노이즈 생성기 잘 챙겨왔지?’

동시에 암살자이기도 한 이들이었다.

회귀자는 클랜의 앞 길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심지어 이번 회귀자는 다른 회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등장을 했으니,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

만약 자신들의 회유가 통하지 않고, 회귀자가 그대로 그랑블루로 넘어가 버린다면 레드리버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회유하지 못할 경우에는 아예 죽여서 없던 일로 만든다.’

가지지 못하면 부숴버린다는 실로 범죄자스러운 마인드였으나, 그것이 현재 레드리버 클랜의 고위층 간부들의 공통 의견이었다.

멸망의 탑 내부의 클랜은 바깥 세상의 기업 및 길드들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바깥에서 생성되는 게이트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진귀한 아이템과 재료는 멸망의 탑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때문에 최고 순위의 클랜이 만들어내는 수익은 가히 천문학적.

그런 이익에 비하면 사람 하나 둘의 목숨은 무의미했다.

‘이번 층까지는 올라가면서 신뢰를 얻고, 다음층에서 적당히 간을 보자고.’

민아영 헬퍼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두 명이서 힘을 합치면 제압하는 건 지극히 간단했다.

또 회귀자의 활약이 도드라지기는 하나, 이미 10층에 도달해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키운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레드리버의 헬퍼 둘은 이번 임무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성철과 윤기윤을 자신들이 손짓과 눈빛으로 나누는 대화를 진영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이 비밀스럽게 나누는 수신호를 진영은 모두 살피고 있었다.

‘그래, 이 시점에서 올 사람이라곤 레드 리버에서 보낸 놈들 밖에 없지.’

레드 리버의 악명은 회귀 전부터 유명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

당연히 대외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으나, 파고 들자면 괴담이 수도 없이 나오는 곳이었다.

“아, 마침 저기 관리자가 오네요.”

이성철이 허공을 가리키자 다른 판 쪽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붉은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악마의 형상을 한 관리자 ‘아몬’이었다.

[ 여기도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네. 나는 5층의 관리자 아몬이야. 오,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네. ]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관리자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 룰은 이미 확인했지? 지금부터 너희끼리 잘 상의해서 제물이 될 플레이어를 골라. ]

“제물이 플레이어일 필요가 없다는 건 알고 있어! 우린 여기 있는 고블린을 바칠거야.”

이성철이 미리 소환해 두었던 고블린을 가리켰다.

그걸 확인한 아몬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진짜 재미 없네. 그러면 이건 어때? 플레이어를 죽이면 보상으로 코인을 줄게. ]

“우리 팀원들은 그런 수에 넘어가지 않으니까, 고블린을 제물로 바치는 거나 잘 봐.”

어느새 같은 팀원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철은 앞으로 나서서 고블린을 판 밖으로 밀어냈다.

전적으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고블린이 별 저항 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키에에엑······.”

맥 빠지는 고블린의 절규가 절벽 아래로 울려퍼졌다.

휘이이잉······.

스산한 바람이 일행을 한 바퀴 감쌌다.

동시에 클리어를 알리는 정보창이 떠올랐다.

[ 6층 입장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몬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 이게 재밌어? 너희는 이게 재밌다고 생각하는 거야? ]

분노한 녀석의 주위로 강한 마력이 솟아 올랐다.

녀석이 들고 있는 작은 삼지창 위로 붉은 불덩이가 생겨났다.

[ 이런 식으로 하는 놈들이 간간히 있기는 하지. 그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를거야. ]

“서, 설마. 저희를 공격하는 건 아니겠죠?”

뜨악한 표정의 김지훈이 진영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관리자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화가 난 아몬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척.

삼지창이 일행들을 가리키자, 불덩이가 일행을 향해 쏘아졌다.

“허어억!”

다행히 불덩이가 일행을 덮치는 일은 없었다.

김지훈이 짧은 숨을 내뱉는 사이 불덩이들은 판을 스치며 낭떠러지를 향해 사라졌다.

[ 참나, 담력도 좋네. ]

아몬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하면 진짜 죽여 버리겠어. 이대로는 내가 열받아서 죽겠어. 규칙 조금 어기고 패널티 받는 게 내 정신 건강에는 낫겠어. 알겠지? 8층에서 보자고. ]

일행을 향해 한바탕 으름장을 놓은 뒤 아몬은 곧장 다른 판을 향해서 날아가버렸다.

관리자 아몬과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휴, 혹시 저희한테 무슨 짓을 할까봐 솔직히 쫄았어요.”

아몬은 2층에 있던 블랙슬라임과 달리 말도 하고, 주도적으로 탑의 미션을 관리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인류가 사냥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5층의 히든피스는 3층과 마찬가지로 이미 다른 플레이어가 가져갔다. 어찌보면 찾으러 갈 수고를 던 셈이다.

남은 일은 위로 올라가는 것 뿐.

“슬슬 다음층으로 넘어가죠. 같이 가시는거죠?”

“좋습니다. 오래 지체해서 뭐가 좋을 게 있겠어요?”

진영의 말에 이성철이 맞장구를 쳤다.

동행을 허가해주지 않더라도 6층에서 우연을 빙자해서 달라 붙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직접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다니.

그들 입장에서는 이런 횡재가 없었다.

“저기요, 무슨 생각이신거에요?”

모르는 남자 둘을 또 파티에 끼워넣다니.

민아영이 정색하며 진영에게 속삭였다.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놀라지만 않으면 됩니다.”

알쏭달쏭한 진영의 말에 민아영이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진영이 하자는대로 해서 결과가 나빴던 적도 없으니.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다함께 이동하기 위해 진영 일행과 이성철 일행이 원으로 뭉쳤다.

그 순간이었다.

이성철과 가까워지자, 진영은 실수인척 넘어지며 그의 상의를 잡아당겼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넉살 좋게 웃는 이성철을 보며 진영의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잠깐 되는 순간에 진영은 그가 상의 아래로 숨기고 있는 목걸이를 확인했다.

‘숨기고 있을 줄 알았지.’

녹색 보석이 박힌 유니크급 목걸이 ‘신록의 향기’.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취한다면, 그들의 아이템은 진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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