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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21화 (21/152)

회귀자는 누구냐(3)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을 면밀히 주시합니다. ]

헬 난이도 게이트에 들어 온 뒤, 곧장 떠오른 메시지.

이계의 근원은 여전히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영이 함정에서 민아영을 구출해 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 이계의 근원이 흥미롭게 당신을 살핍니다. ]

그저 바라보고 있다는 메시지에서 진척되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신경쓰였다.

‘성좌처럼 후원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미션을 거는 것도 아닌데···.’

말 그대로 구경하고 있었다.

‘나쁜 의도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데. 우선은 내 쪽에서도 지켜볼 수 밖에.’

진영은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창을 닫았다.

가능하면 빨리 헬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좋았다.

본래대로라면 주오령이 헬 게이트에 들어 오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무리 주오령이라고 한 들 이곳에 단신으로 들어와 살아남을 수는 없다.

‘바뀔 수 밖에 없지.’

회귀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접촉에 의해 미래는 바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됐다.

회귀 전의 세상과 같은 세상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문명이 무너지고, 사회가 붕괴되는 아포칼립스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진영의 다짐이었다.

미래를 바꾸기로 각오한 이상, 사소한 변화는 중요치 않았다.

“저기요···. 잠깐만요. 클랜하고 연락을 좀 해야할 것 같은데요.”

옷매무새를 정리한 민아영이 주머니에서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탑 내에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그건 좋은데, 여기서 하는 건 별로 안좋을 것 같습니다.”

진영의 말을 민아영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마수의 기척이 지척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어느덧 숲의 중심부에 가까웠다.

쉬어가기에는 적절치 않은 장소였다.

쿠에엑.

아니나다를까 금방 숲 안 쪽에서 눈이 뒤집힌 고블린이 튀어나왔다.

녀석의 머리에 기이한 붉은 꽃이 튀어나와 있었다.

기생 꽃에게 뇌를 빼앗긴 아종 고블린이었다.

“제가 할게요.”

민아영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채찍을 다시 주워들었다.

방금 전 보여주었던 민망한 모습을 지우고 싶기도 했고.

“네, 저는 뒤쪽에서 서포트하겠습니다.”

민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죽을 위기를 넘겼기에, 이곳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략할 곳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랑블루의 클랜원’

이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탑의 정점에 군림하는 최상위 플레이어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함이 아니던가.

민아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짜아악!

그녀의 클래스는 웨펀 마스터(A).

후에 그랑블루 클랜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도 그녀의 클래스 덕이었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숙련된 솜씨로 사용할 수 있는 A급 클래스다.

‘아직 클래스를 활용할 줄 모르나본데······.’

진영이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어떤 무기를 들어도 숙련된 솜씨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사람은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아무리 모든 무기를 잘 다룰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결국 손에 감기는 하나 정도가 된다.

익숙한 게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민아영은 자신의 클래스를 낭비하고 있었다.

짜아악!

아쉬운 것은 맞지만 그와 별개로 민아영의 공격은 강력했다.

채찍질 한 번에 아종 고블린의 어깨죽지가 떨어져 나갔다.

끼루엑!

눈이 뒤집힌 채 입에 거품을 문 고블린이 재차 달려들었다.

‘확실히 얕봤으면 위험할 뻔 했어.’

아종 고블린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대비하고 있었다면 간단했다.

휘익!

그녀의 채찍이 날렵하게 고블린의 다리를 노렸다.

고블린의 다리를 잡아 바닥에 눕힌 뒤 사정 없는 연타가 쏟아졌다.

짜악! 짜악! 짜악!

순식간에 고블린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곤죽이 되었다.

던전의 지형을 파악하지 못해, 목숨을 잃을 뻔한 것과 별개로 민아영의 전투 능력 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보셨죠?”

아까 보여주었던 창피를 만회하려는 듯 민아영이 뒤를 돌아보았다.

진영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계속해서 가시죠.”

시큰둥한 반응에 민아영은 이게 아닌데라며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 * *

민아영은 탱커와 딜러의 역할을 동시에 하며 게이트 내부를 뚫고 나아갔다.

계속해서 마수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처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까 길을 갈 때처럼 편해졌어. 저 사람이 뭔가 하고 있는 건가?’

민아영은 다른 요소에 신경쓸 필요 없이 오롯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랑블루 클랜에서 게이트를 공략할 때도 이런 느낌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눈 앞에 있는 적을 전력을 다해서 죽이기만 하면 되는 느낌.’

게이트 공략은 전투가 전부가 아니었다.

낮은 난이도의 던전이라면 게임처럼 마수가 하나씩 튀어나오겠지만,

난이도가 높아 질수록 신경써야할 요소가 많았다.

시시각각 플레이어의 목숨을 노려오는 숨겨진 함정과, 언제 어디서 기습해 올지 모르는 마수를 대비해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순해졌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민아영은 전투 말고 다른 요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레드 네펜데스나, 숲에 숨겨진 다양한 위험 요소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가능해?’

민아영이 마수와 싸우다 고개를 돌려 진영의 모습을 확인했다.

“전투에 집중하시죠.”

진영은 숲 옆 쪽에서 튀어나온 잔몹에게 박힌 나이프를 빼내고 있었다.

일련의 동작이 너무 깔끔하고 자연스러워서,

뒤쪽에서 진영이 전투를 했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굉장한 사람······.’

그를 얕잡아 본 것을 당장이라도 취소하고 싶었다.

최정상 클랜에서 클랜원들과 함께 전투를 치뤄 본 그녀였기에 지금 진영의 서포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진영의 전투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었다.

‘스탯이 더 높고, 전투 계열 스킬이 있는 민아영이 길을 뚫는 게 더 빠르다.’

최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라면 진영은 자신의 전투조차 양보할 정도.

업적이나 평판은 진영에게 있어 부차적인 문제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포트가 가장 중요하다면, 망설임 없이 행한다.

때문에 회귀 전 진영이 신화준의 팀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탑의 플레이어들은 처음 듣는 이름에 경악을 표했다.

‘뭐야, 그 사람이 누군데 신화준 팀에 들어가?’

‘이진영이 누군데?’

‘뭐하는 사람이래?’

반응이고 뭐고 플레이어들은 이진영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

멸망의 탑을 오를 수록 수가 적어졌을 때까지도 진영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사람, 신화준 버스 오지게 타겠네?’

‘하는 일이 있기는 해?’

‘진짜 부럽다. 누구는 편하게 꿀빨고, 누구는 개고생하고······.’

진영은 그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최선의 효율을 내는 것만을 생각해 왔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탑을 공략할지.

수 십 번의 회귀를 반복한 신화준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이진영, 우리 팀으로 들어와라. 이 탑에서 네 실력을 알아 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

까득.

진영이 이를 악물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니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동료라고 믿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다.

그러나 신화준에게 진영은 쓰다 버릴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를 머금은 진영의 눈빛이 더욱 냉정해졌다.

민아영이 나아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나가는 그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이번에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게 아닌 내 손으로 해내겠어.’

상황에 있어 최선을 추구하되, 활약해야 할 때가 있다면 주저 없이 모든 것을 쓸어담으리라.

푸슉!

진영의 나이프가 숲의 안 쪽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고블린의 급소를 찔렀다.

숲의 나무들의 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보스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쿵. 쿵. 쿵.

안쪽으로 들어설 수록 미세했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헬 게이트. 2명이 미리 들어와있었죠.”

몬스터를 전부 정리한 민아영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쪽이 회귀자라면···. 이 안에 들어 간 두 명은 대체 누구죠?”

“가보면 알겁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헬 게이트에 자진해서 들어 온 걸까.

회귀자여도 이해하기 힘든데, 일반 플레이어라니.

촤아악!

민아영의 채찍이 식물 덩쿨을 찢어내자, 빽빽한 나무가 사라진 넓은 공간이 나왔다.

쿠웅!

그 너머로 땅 울리는 보스의 모습이 보였다.

* * *

“혀, 형! 오실 줄 알았어요! 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얼굴이 사색이 된 김지훈이 보스 지대에 들어 온 진영을 향해 달려왔다.

“고생했어. 다행히 딱 맞게 왔나보네.”

“어······. 옆에 이 분은 누구세요? 연예인?”

민아영을 확인한 지훈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다가 만났는데, 설명은 조금 있다가 해줄 게. 주오령은?”

“그게······.”

지훈은 설명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보스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헬 난이도 게이트의 보스.

얼핏 보면 거대한 뱀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줄기로 이루어진 마수였다.

그 머리 부근에 주오령이 매달려 있었고, 보스는 주오령을 떼어내기 위해 벽에 몸을 부딪히고 있는 중이었다.

“저 사람은!”

주오령을 발견한 민아영이 숨을 삼켰다.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상체를 드러낸 채 보스와 씨름을 벌이는 저 남자가 클랜의 영입 대상이었다.

“저기요! 저 사람 죽겠어요!”

민아영의 호들갑에 불구하고, 김지훈과 진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나무였는데, 공격할수록 점점 커지더니 저렇게 변했어요. 괜찮은거죠···?”

김지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자, 진영은 안심시키듯 말했다.

“아, 그건 잘한거야. 거의 다 잡았네.”

“휴, 다행이다.”

저 녀석은 식물형 환상종에 속하는 보스였다.

식물이지만 다른 생물의 형태를 모방하는 녀석.

주오령과 김지훈이 hp를 깎아둔 덕에 보스는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요, 지금 저 사람 죽을까 말까하는데 여기서 이럴 게 아니잖아요. 구해야죠. 보아하니까 동료인 것 같은데!”

답답해진 민아영이 소리치자, 그제서야 진영이 그녀를 돌아봤다.

“저 녀석은 어차피 안 죽습니다. 그보다, 마지막 페이즈인데 여기서부터는 민아영씨 도움도 조금 필요합니다. 도와주실거죠?”

다른 보스도 아니고 헬 게이트 보스 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데, 저게 안 죽을 거라니.

민아영은 경악했지만 진영은 단호했다.

“······.”

하는 수 없었다. 눈 앞의 남자가 회귀자이던, 저기 뱀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든, 클랜의 지령을 완수하려면 어쨌거나 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했다.

“네, 도와드릴게요.”

“좋습니다. 그러면 지훈아······.”

“자, 잠깐만요, 형. 보스가 이쪽으로 오는데요?”

아쉽게도 작전을 설명할 틈이 없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식물 뱀이 주변의 땅을 헤짚으며 진영 일행을 향해 돌진 해왔다.

“일단 피하죠.”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선택을 주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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