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누구냐(2)
워낙 순식간에 헬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간 거라 말릴 틈도 없었다.
“저기요!”
진영이 게이트 속으로 사라진 민아영도 바로 게이트 안쪽으로 뛰어 들었다.
“왜요?”
진영은 무심한 눈빛으로 뒤따라 들어 온 민아영을 바라봤다.
그녀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신건지 아세요?”
“네, 잘 알고 있습니다만.”
“아는 사람이 그래요? 헬 난이도 게이트라고 앞에 써있었잖아요. 지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민아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 그녀는 비번이었다. 편히 쉬던 와중에 갑작스러운 지령을 받고 회귀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것도 짜증났는데,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라니.
“당장 나가요. 이제 3층에 막 올라 온 아저씨가 올 만한 곳 아니에요.”
“아저씨 아닙니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진영의 태도에 민아영은 혀를 찼다.
도와주려고 해도, 알려주려고 해도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는 사람이 있다.
눈 앞의 남자가 딱 그랬다.
‘보아하니 아이템 덕지 덕지 둘러서 자신감이 넘치나 본데······.’
헬 난이도 게이트는 잡템 몇 개 가지고 있다고 클리어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그렇게 가고 싶다는데.
“알겠습니다. 제가 오지랖이 넓었네요. 저는 충분히 경고 드렸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민아영은 진영을 살짝 째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헬게이트 내부로 향했다.
그 회귀자라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아무리 회귀자라고 한들 막 3층에 올라 온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있었다.
특히 회귀자 클래스를 가진 사람은 회귀 특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탓에 더욱 죽기 쉬웠다.
목숨을 하나 더 얻는 대신, 클래스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문제는 회귀자들은 그 점을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서 알아낸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세상을 전부 꿰뚫고 있기라도 한듯 군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헬 난이도 게이트에 좋은 아이템이라도 숨겨져 있나 보네.’
그 주오령인지 뭔지 하는 회귀자도 그걸 노리고 이 게이트에 들어 온 게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헬 난이도에 들어 오겠는가.
“근데······. 왜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시는거죠?”
민아영이 뒤를 돌아보자 따라오던 진영이 코웃음을 쳤다.
“자의식 과잉입니다. 그거.”
“아닌 것 같은데요. 아까부터 길이 분명 나뉘었는데 그 쪽이 계속 따라오셨잖아요.”
진영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속으로 말을 삼켰다.
‘댁이 죽을까봐 그런 거 아냐.’
현재 민아영은 그랑블루의 말단이다.
실력은 인정 받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이런 식으로 영입 대상이 된 플레이어들을 하위층에서 상위층으로 끌어 올리는 헬퍼 역할을 하고 있다.
‘민아영은 나중에 그랑블루에 없어서는 안되는 핵심 인물이 된다. 여기서 죽어서는 안 돼.’
잠재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문제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이 경험의 부족은 민아영한 사람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 자체가 멸망의 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 밖에 안들어.’
헬 난이도의 게이트는 현 시점에서 그 누구도 사전 준비 없이 발을 들일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이트의 변화무쌍함은 예측이 불허했다. 제대로 된 파티 없이 공략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런데도 그랑블루는 하위층에 있는 게이트란 이유만으로 민아영을 들여보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기겁할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현 인류의 한계였다.
사람들은 15층에 막혀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진영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 뿐만은 아니었다.
그랑블루와 연줄을 빨리 만들기 위해서라도 민아영을 멀쩡히 살려 놓는 게 중요했다.
진영은 잠시 고민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이왕 같이 들어 온 거. 잠시 팀으로 활동하시죠.”
“제가요? 그 쪽하고요?”
민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은 그랑블루의 클랜원이고, 눈 앞의 남자는 3층 따리 플레이어.
실력차이가 나도 한참이 날 텐데, 굳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진영의 손 끝에서 빛나는 귀걸이를 보기 전까지는.
“유니크급이네요. 바깥에서는 30억 정도 하려나.”
“어, 어느 틈에?!”
허둥지둥 귀를 확인 해보니 장착하고 있던 유니크 급의 귀걸이가 사라져 있었다.
스킬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치를 못 챌 정도라니?
민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 도둑 클래스군요.”
“글쎄요. 그래서 팀할 겁니까, 안할겁니까.”
“······.”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랑블루의 클랜원이라는 것은 멸망의 탑에서 최상위 권에 속한 플레이어란 의미기도 했다.
바깥으로 나가면 곧장 A급 이상의 대우를 받을 정도이니.
그런 민아영의 귀걸이를 진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훔쳐냈다.
귀걸이를 돌려 받기 위해서라도 승낙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탁.
민아영이 진영의 손에서 귀걸이를 낚아챘다.
“그래요, 같이 가던가 말던가.”
* * *
“미리 말할게요. 괜한 짓하다가 위험해져도 전 안 도울거에요.”
“그 부분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네요.”
말을 하면 할 수록 말려드는 것 같았다.
민아영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는 동안 진영은 게이트의 내부를 살폈다.
검게 오염 된 숲이 쭉 펼쳐져 있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어 갈 수 있는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3층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그 안에 있는 플레이어는 전부 다음 층으로 이동 된다.’
복잡하게 주오령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더불어 3층과 5층에 있을 히든 피스는 이 시점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다.
무난하게 민아영과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된다.
“잠시만요, 뒤로 물러나세요.”
민아영이 경계하는 기색으로 손을 뻗었다.
크르르···.
어둠 속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검은 늑대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냈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 발 먼저 진영이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컴뱃 슬래쉬
붉은 섬광이 늑대의 머리부터 꼬리까지를 관통했다.
그 한 방에 검은 늑대가 반으로 찢어지며 피를 쏟아냈다.
진영은 나이프에 묻은 피를 옆에 있는 나무에 닦아냈다.
“어······.”
채찍을 꺼내려던 민아영이 어색하게 다시 손을 원상복귀했다.
“좀 하시네요.”
“좀이요?”
“아뇨, 꽤······.”
확실히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3층에 갓 올라온 플레이어가 이런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놀라는 건 잠시 뿐이었다.
민아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잡몹 정도 잡은 걸가지고 뭘.’
민아영을 조용히 바라보던 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 쪽이 꽤 강하단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방해가 될 실력은 아니니, 계속 가시죠.”
“알면 됐어요.”
그 후 둘은 말 없이 숲 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아영은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뭐랄까······.’
게이트 내부에 몬스터가 그다지 없었다.
이런 숲 테마의 게이트에서는 나무나 풀숲 사이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발목을 잡아끄는 일이 허다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산책을 하는 기분이 날 정도로 쾌적했다.
‘헬 게이트가 이렇게 쉬웠었나?’
민아영은 슬쩍 고개를 움직여 진영이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해봤다.
‘저 사람이 헬 난이도 게이트가 원래 이렇게 쉬운 거라고 착각하면 안될텐데.’
멸망의 탑에서 방심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한 번의 우연한 성공이 자만심을 불러오는 것을 가장 경계 해야했다.
‘그냥 가긴 뭔가 억울해.’
이대로 가면 아까 헬 게이트는 위험하다고 했던게 그저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할테니까.
민아영은 어떻게 하면 이 남자에게 제대로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고심하기 시작했다.
귀걸이를 빼앗겼던 복수가 하고 싶기도 했고.
마침 두 갈래길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두 갈래로 나뉘네요. 따로 흩어져서 어느 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네요.”
“후회하실텐데요.”
“제가요? 그 쪽이 후회를 하면 했지 제가 무슨 후회를 해요. 당장 따로 가요.”
자존심을 긁는 듯한 말에 민아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뭐가 이렇게 자신만만한거야?
탑에 올라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태도.
짜증이 난 민아영은 곧장 오른쪽 길을 향해 움직였다.
‘빨리 주오령이란 사람이나 찾아서 나가자.’
원래대로였다면 남자를 따라가다 적당한 때에 구해줄 생각이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괜히 말려서 시간낭비만 했네.”
불평하며 나아가는 민아영의 앞으로 검붉은 식물들이 촉수를 내밀었다.
촤아악!
채찍으로 식물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갑자기 왠 식물이 이렇게 많아?”
아까만 해도 쾌적한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채찍질을 할 때마다 식물들이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촤악, 촥.
그렇게 걸치적 걸리는 식물들을 모두 치우고 앞으로 나아갔건만.
“막다른 길······.”
민아영이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자, 거대한 식인 식물이 입을 벌린 채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쩌어억.
“꺄악!”
민아영은 식물에게서 떨어지는 산성 액체에 기겁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식물이 민아영의 팔목을 단단하게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쯤은, 힘으로······.”
그녀의 힘 스탯은 3단계 : 인외.
덩쿨 따위 힘으로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질겨?”
식인 식물은 입을 쩌억 벌린 채 그녀를 삼키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산성 액체에 닿은 신발이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주, 죽기 싫어. 대체 왜 안 끊기는거야?”
식물의 줄기가 목을 졸라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탑에서 살아남아 10층에 도달하고, 그 강하다는 그랑블루의 클랜원이 됐는데.
고작 3층의 게이트에서 죽음을 맞이해야한다니.
“누가 좀 살려줘요!”
“살려드릴까요.”
“?!”
그제서야 근처에 있던 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영은 애초에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미래의 물주 되실 분한테 너무 심하게 굴면 안되지.’
진영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녀석은 레드 네펜데스라고 합니다. 지면에 있는 뿌리를 잘라주면 다른 부분이 힘 없이 늘어지죠. 대신 미리 제거하지 못하면 그대로 붙잡혀서 죽게 되는 거죠. 지금 그 쪽처럼요.”
헬 게이트가 쾌적한 산책로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진영이 일일이 뒤쪽에서 네펜데스의 뿌리를 제거하며 왔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민아영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했다.
“아, 알았으니까 빨리 살려줘요!”
“아까는 위험에 처해도 구해주기 없다면서요.”
“아, 쫌! 도와줘요!”
소리치는 민아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도와드려서 제가 좋을 게 뭐가 있나요.”
진영의 눈에는 일말의 온정이나, 동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민아영은 더욱 절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뭐든지, 뭐든지 할테니까요!”
투욱.
나이프에 마력을 담아 뿌리를 잘라내자, 민아영을 옥죄고 있던 줄기가 순식간에 힘을 잃고 늘어졌다.
“콜록, 콜록.”
속박에서 벗어난 민아영이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했다.
마수에게 당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식물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뭐든지 한다고 하셨으니까, 이 귀걸이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
어느새 진영의 한 쪽 귀에 붉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미 맥이 빠질 대로 빠진 터라, 민아영은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
“멸망의 탑에서도, 헬 난이도 게이트만큼은 조심해서 움직여야 해요. 층수가 낮다고 얕볼게 아닙니다. 민아영씨.”
진영이 민아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나면서도 민아영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이 사람 게이트도 처음이고 전부 처음일텐데, 왜 이렇게 잘 아는거야? 그리고 내 이름은 대체 어떻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
그것말고는 딱히 생각할 수 있는 답이 없었다.
민아영이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물었다.
“혹시 회귀자신가요?”
진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맞는데요.”
아무래도 뭔가 잘못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