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누구냐(1)
[ 이계 시간축에서 최초로 획득한 아이템입니다. ]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
처음보는 메시지와 함께 팔찌에서 흘러 나온 황금빛 가루가 ‘청명한 불꽃’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를 주시한다고?’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주시한다는 말은 진영에게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곧바로 연상되는 것은 25층부터 등장하는 멸망의 탑의 위조(僞造) 성좌들이었다.
멸망의 탑 꼭대기에서 플레이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음하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판을 짜맞추려드는 놈들.
‘한 번 시달려 본 입장에서 다시 그런 식으로 휘둘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하지만 이미 시작 된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법이었다.
특히나 ‘이계’와 관련 메시지는 진영이 오른손에 차고 있는 팔찌와 연관되어 있는 게 틀림 없었다.
회귀한다고 해도, 이계의 근원의 시선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우선은 아이템부터 확인하자.’
후에 등장할 성좌들도 그렇고, 뭐가 되었든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만큼 강한 힘을 손에 넣으면 된다.
신화준조차 자신의 손으로 멸망의 탑이 만들어 낸 가짜 성좌들을 죽이고 다음층으로 향했으니.
곧바로 청명한 불꽃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창을 불러왔다.
[ 아이템 설명 ]
- 이름 : 청명한 불꽃
- 등급 : EX
- 효과 : 불 속성 내성 99%, 데미지 13% 증가, 마력의 형태가 ‘불꽃’으로 고정
성능을 확인한 진영의 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다.
‘와우······.’
신화준이 가지고 있었던 잿빛의 불꽃은 불 내성이 50%였는데,
이 아이템은 무려 99%.
‘아까 얻었던 업적 추가 능력치까지 합하면 불 속성 내성이 100%가 된다.’
청명한 불꽃을 꺼내기 위한 과정에서 획득한 업적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자’의 효과 불 내성 + 1%.
여기에 청명한 불꽃의 효과까지 더하면 진영은 불 속성 공격에 완벽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이게 정말 내가 알고 있던 탑이 맞나? 이런 아이템이 있단 말이야?’
내성 관련한 아이템은 탑에서도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다.
5%만 되도 엄청난 성능이라고 떠들 정도였으니까.
특히 100% 내성은 특정 클래스가 아니라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게 진짜 히든 피스가 가진 힘이라는 건가.’
신화준이 자랑하던 2층의 히든 피스는 열화판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다른 히든 피스들도 얼마든지 더 좋은 성능으로 존재할 수 있단 뜻이었다.
‘이런 식으로 신화준이 잘 모르는 히든피스가 몇 개 더 존재할 확률이 커.’
이미 이 순간 진영은 신화준보다 앞서 있음을 확신했다.
‘그럼 장착해 볼까.’
구슬류의 아이템은 신체에 귀속해서 사용한다.
진영은 청명한 불꽃을 손에 꽉 쥐었다.
구슬은 부드럽게 녹아 진영의 손으로 스며들었다.
[ 청명한 불꽃을 장착하셨습니다. ]
[ 불꽃 내성이 99% 상승합니다. ]
[ 데미지가 13% 상승합니다. ]
더불어 데미지를 올려주는 효과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아이템이었다.
이런 히든 피스가 아직 열 개도 넘개 이 탑에 잠들어 있다 생각하니 진영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멸망의 탑에 있는 모든 히든 피스를 찾았을 때, 진영을 대적할 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게 그리 순탄치는 않겠지만.’
탑을 공략하는 건 강한 힘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모든 히든피스를 획득한다는 것 또한 녹록치 않다는 걸 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에 얻은 아이템이 더욱 의미가 있었다.
0층에서 시작한 이득이 눈덩이처럼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진영은 3층으로 올라갈 준비를 마치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쪽지를 꺼냈다.
그때였다.
번쩍.
진영의 팔찌가 짧게 빛났다.
동시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 이계의 근원이 당신의 히스토리를 탐색합니다. ]
[ 단 한 번의 회귀로 당신이 이루어 낸 업적에 이계의 근원이 경악합니다. ]
찬찬히 메시지를 확인한 진영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
마치 성좌처럼 자신의 감상을 메시지로 보내 오는 이계의 근원.
청명한 불꽃을 얻은 시점부터 이 녀석은 진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직 2층.
성좌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탑은 플레이어에게 규칙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스스로에게도 엄격하다.
이런 식의 개입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룰을 가볍게 무시하고 팔찌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팔찌를 쳐다보았다.
“이계의 근원······. 넌 대체 뭐냐?”
도대체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쉽게도 대답은 없었다.
* * *
[ 3층 : 게이트 허브 - 선택과 집중 ]
끝 없이 이어진 푸른 초원이 진영을 반겼다.
시원한 바람과 기분 좋은 날씨였지만 그와 별개로 3층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지 레벨 게이트 입장하실 분 구합니다! 무기 없으셔도 되요!”
“배고픈데 먹을 거 주실 분 없으신가요······.”
“저 진짜 파티 좀 껴주시면 안되요?”
평원에는 대략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진영이 쪽지를 뿌렸기 때문에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 미션 설명 ]
설명 : 원하는 난이도의 게이트를 골라 공략하세요.
보상 : 게이트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 + 다음 층 입장 권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다시 한 번 하늘의 홀로그램 창을 확인했다.
‘3층 정도면 평화로운 층에 속하는 편이지.’
사람끼리 다툴 필요 없이 게이트를 공략해서 다음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사람과 팀을 맺어 협력할 수도 있었으니, 평화로운 셈이었다.
어려운 게 있다면 원하는 난이도의 게이트를 차지하는 것 정도.
“저희가 먼저 왔는데 양보 좀 하시죠?”
“야, 지랄하지말고 꺼져.”
“지, 지랄? 지금 말 다했어요?”
[ 게이트 난이도 : VERY EASY ]
[ 현재 인원 : 0 / 6 ]
평원 군데 군데, 검은 게이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정보창으로 난이도까지 친절히 표시해주니, 플레이어들은 원하는 게이트를 골라 들어가면 됐다.
문제는 다들 조금이라도 어려운 난이도는 꺼려 특정 게이트 편중 현상이 심했다.
“모르겠다, 난 그냥 들어간다.”
“어딜 이 사람이!”
“쳐, 쳤어?”
게이트 자리 싸움이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거나 피튀기는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여전히 무기도 없고, 상태창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보통은 무기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파티가 만들어진다.
‘다른 난이도의 게이트는 남아 돌아서 문제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다만 난이도가 높을 수록 입장 인수가 많아지기에 잘 협력하면 클리어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눈치 빠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파티를 모으고 있었다.
‘여기서 EASY 난이도 이상을 클리어하게 되면 상태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리스크가 있는만큼 충분한 보상이 있는 층이었다.
물론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진영에게는 그런 정보가 보상이 될 리 없었다.
진영의 시선은 곧바로 평원에서 가장 큰 게이트를 향했다.
[ 게이트 난이도 : HELL ]
[ 현재 인원 : 2 / 66 ]
흉흉한 마기를 내뿜는 HELL 난이도의 게이트를 보는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기 위에 써져 있는 2라는 숫자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저기를 들어 간 건 아니겠지?’
먼저 올려 보낸 김지훈과 주오령이 겁도 없이 HELL난이도 게이트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유감스럽게도 꽤 있었다.
그 때 옆에서 남자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와, 방금 그 사람 연예인인줄 알았네.”
“멸망의 탑에도 저런 사람이 들어 오는구나.”
“근데 진짜 예쁘다, 한 번 들이대 볼까? 지켜준다고 하면 바로 넘어 오는 거 아냐?”
그 말에 진영도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띄는 플레이어가 근처에 서 있었다.
미모 문제가 아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녀는 3층에 있을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되는 자신만만한 태도,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는 10층에서나 구할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
결정적으로 진영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슬슬 내려올 때가 되긴 했지.’
진영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는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금 3층으로 내려왔어.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딨다고? 뭐······? 야, 다시 말해봐.”
그녀는 현 시점 세계 1위의 클랜, 그랑블루에 소속된 민아영이었다.
후에 핵심 인물로 알려지는 유능한 플레이어지만, 지금은 아마 클랜을 대신해 플레이어를 영입하는 헬퍼 역할을 맡고 있을 거다.
민아영이 이곳에 내려 올 만한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니 고맙네.’
상위 클랜에선 하위 층을 관측하며 재능 있는 플레이어들을 사전 영입한다.
진영의 행적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터.
현재 진영의 행적은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파격적이었다.
회귀자가 멸망의 탑에서 가지는 위치를 생각하면, 클랜에서 영입을 위해 헬퍼를 내려보낸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는 뜻밖의 단어가 나왔다.
“헬 난이도 들어갔다고? 뒤질래? 장난하지말고 똑바로 말해. 어떤 미친 놈이 3층 도착하자마자 고민도 안하고 헬 난이도 게이트로 들어가.”
“······?”
압도적인 미모와 반대로 거친 말을 내뱉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그래서 어떻게 생겼다고? 맨발에다가 웃통을 까고 다닌다고······. 진짜 농담아니지?”
툭.
통신 마친 그녀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외투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내가 지들 시다바리인 줄 알아! 다짜고짜 3층으로 내려가라더니 헬 게이트? 지랄하지 말라 그래!”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진영은 상황을 금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랑블루에서 플레이어 영입을 하려고 내려온 것은 맞다.
다만 그 대상이 주오령이었다.
‘내가 아니라 주오령이라······.’
그랑블루는 클랜에 도움이 될만한 플레이어는 탐욕적으로 긁어 모으는 곳이다.
주오령이 눈에 띄는 플레이어인 건 맞다.
하지만 그들의 1순위는 언제나 회귀자였다.
회귀자들을 영입하고, 확실시 된 미래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확고히 하는 클랜이 바로 그랑블루다.
객관적으로 봐도, 주오령보다는 진영이 우선시 되어야 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군.’
자존심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회귀 전 그랑블루는 줄곧 1위의 자리를 지켜 온 클랜이었다.
탑에 상주하는 플레이어라면 그들의 동향을 속속히 파악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올 수 있는 결론 이었다.
‘잘 이용하면 그랑블루에서 크게 뜯어 낼 수 있겠어.’
진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뒤에서 집어 던졌던 자켓을 주섬주섬 챙기는 민아영을 확인한 뒤,
진영은 헬 난이도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곧장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당신 지금 미쳤어요? 거기 헬 난이도 게이트거든요?”
민아영은 거친 성격과 다르게 상당히 정의로운 편이었다.
적어도 눈 앞에서 누가 자살을 하겠다는데, 가만히 두고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네, 그런데요?”
“거기 들어가면 아저씨 죽는다고요.”
“아저씨······.”
진영은 대답하는 대신 곧장 게이트 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