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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7화 (17/152)

도둑이 잠입을 잘함(3)

진영은 문 밖으로 발을 한 걸음 내딛었다.

숨 쉬기 힘들 정도의 후끈한 열기가 진영의 얼굴을 감쌌다.

검게 변한 평야의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그을린 흔적이 가득한 잿빛 성벽이 진영을 맞아주고 있었다.

‘여기로 이어져 있었단 말이지······.’

[ 히든 플레이스 : 멸망의 탑 22층 ]

[ 22층 : 불타버린 성채 - 성지 탈환 ]

2층의 히든 플레이스는 멸망의 탑 22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기형적으로 연결 된 층은 꽤 있었다.

하지만 22층에 있다는 히든 피스를 생각하자 진영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2층 올라온 타이밍에 22층은 조금 버거울 수 있겠는데.’

이곳은 아직 인류조차 발을 들여보지 못한 미지의 구역이었다.

아무리 지금 진영의 성장 속도가 경이롭다고 한들, 이곳의 마수들 전부와 동등하게 겨루기는 부족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곳의 미션을 클리어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진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히든 피스를 획득하는 것.

22층의 미션 ‘성지 탈환’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 ‘청명한 불꽃’을 손에 넣으면 해당 플로어를 탈출 가능합니다. ]

그것을 증명하는 게 뒤이어 떠오른 정보창이었다.

아이템의 이름을 확인한 진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명한 불꽃?’

처음듣는 이름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짐작이 가는 아이템이었다.

신화준이 가지고 있었던 2층의 히든피스는 ‘잿빛의 불꽃’ 이었다.

소지하는 것만으로 화염 내성을 50% 상승 시켜주는 히든 피스.

‘그 상위 버전이라는 건가.’

신화준이 들고 있던 잿빛의 불꽃도 훌륭한 아이템이기는 했다.

히든 피스라는 것에 비해 아쉬웠다는 거지.

청명한 불꽃의 효과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임시 권한을 인정 받아 제한된 시간만큼 해당 플로어에 머물 수 있습니다. ]

[ 시간 종료 후에 강제 추방됩니다. ]

[ 남은 시간 : 23h 59m 54s ]

진영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그 안에 히든 피스를 찾아내야했다.

진영은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성채를 올려다보았다.

‘이 성채를 탈환한다고 모든 플레이어가 깨나 고생했었지.’

한 때는 플레이어들의 손에 완전히 무너졌던 성채가 멀쩡히 있는 걸보니 기분이 묘했다.

22층의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은 ‘성채 탈환’.

성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좀비와 광기에 사로잡힌 언데드 군단을 물리치고 불사자의 왕의 목을 베어야했다.

플레이어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결국 마지막에 불사자의 왕을 죽인 건 신화준이었다.

‘신화준 이 놈은 안끼는 곳이 없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진영이 기억하는 멸망의 탑의 역사 자체가 회귀자 신화준의 영웅담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도 이 탑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

그를 만나기 전까지, 어찌되었든 최대한의 힘을 길러 두어야했다.

진영은 땅을 박차고 성채의 반대편을 향해 달렸다.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는 곳은 대략 짐작이 가.’

22층 미션에는 진영도 참가했다. 드러나는 큰 활약은 없었지만 배후에서 최선을 다했다.

잠입을 통해 성채에 숨어 들어,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라던가.

‘그 때의 경험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때문에 진영은 성채에 관해서라면 이 곳에 있는 언데드 병사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썩 만족스러운 임무 배치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날 보낸 놈이 너무하긴 했어.’

클래스가 도둑이라고 잠입 임무에 보내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었다.

잠입에 도움이 되는 특성이라고 해봐야 12% 확률로 적의 발견을 피하게 해주는 스킬이었으니.

진영의 생사는 염두에 두지 않은 작전이었다고 봐야 했다.

보초를 서고 있는 언데드 병사의 시야가 닿지 않게, 성벽의 뒤편으로 돌아왔다.

툭. 툭.

진영은 주먹으로 가볍게 성벽의 벽돌을 두드렸다.

‘이 쯤이었나.’

툭. 툭. 퉁.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몇 번 더 돌벽을 두드리자 확연히 다른 소리를 내는 위치가 있었다.

진영이 나이프로 틈새를 밀어내자, 헐겁게 끼워져 있던 돌 벽돌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대로군.’

몸집만한 벽돌이 꺼내진 곳에는 텅 빈 통로가 존재했다.

진영은 곧바로 통로 안으로 몸을 옮겼다.

통로 안 쪽은 서늘하면서도 반대쪽을 향해 약한 바람이 통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어지는 곳은 성채의 1층 식량창고.’

이곳의 병사들은 언데드이므로 살아 있는 생물을 먹는다.

때문에 평범한 식재료가 보관되는 식량창고는 거의 방치되듯 버려진거나 다름 없는 공간이었다.

십 여분을 통로를 따라 기어가니 앞을 막고 있는 나무 판자가 보였다.

터억.

발로 가볍게 밀자 판자가 힘 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영의 예상대로 식량 창고에는 아무런 마수도 없었다.

과거에 불타 잿더미가 된 식량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허름한 문 틈새로 성채 내부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에는 순찰을 도는 언데드 병사가 있을 터.

‘만나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

진영은 손에 든 유니크급 컴뱃 나이프를 바라보았다.

무기도 충분하고 스탯도 잔몹을 처리하기에는 충분했다.

문제는 적이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 순간 끝라는 것.

‘최대한 잘 숨어서 가는 수 밖에 없지.’

아예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목적지까지 가는 건 불가능했다.

목적지는 성채의 중앙에 위치한 비밀창고다.

22층 탈환작전이 성공하고 플레이어들은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성채 이곳 저곳을 휩쓸었다.

그와중에 발견 된게 바로 비밀창고였다.

숨겨진만큼 그만한 보상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비밀 창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비밀 창고 선점권 얻으려고 그랑블루 클랜에서 몇 백억을 썼다던데?

- 근데 진짜 거기에 달랑 푸른색 모닥불 하나 밖에 없었다고?

- 그러니까, 지금 그랑블루 놈들이 책임자 모가지 치려고 바득바득 악을 쓰잖냐.

그 당시에 함께하던 동료 플레이어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했다.

비밀 창고에는 푸른 모닥불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왜 숨겨진 창고에 모닥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플레이어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냥 약 올리려고 만들어 놓았다는 게 대다수의 생각이었지만.’

2층의 히든 피스를 손에 넣기 위해 22층에 올라 온 지금은 그 모닥불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른색의 모닥불은 히든 피스의 이름인 청명한 불꽃이라는 이름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게 히든 피스라면 비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끼익.

문을 조심스레 열고 복도를 살피는 진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언데드 병사가 문 앞을 지나가는 순간.

콰악!

진영의 나이프가 언데드 병사의 목을 잘라냈다.

촤악, 촤악, 콰악!

언데드는 목이 베인 것정도로는 숨통이 끊어지지 않는다.

진영은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능숙한 솜씨로 이어지는 연격에 방금까지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언데드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수 십 조각의 파편으로 나뉘었다.

‘비밀 창고로 가려면 열쇠부터 챙겨야지.’

언데드 조각을 식량창고에 발로 밀어 넣은 뒤, 진영은 복도를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 특수한 상황입니다. ]

[ 클래스 도둑의 고유 특성이 발동됩니다. ]

[ 은밀함 : 잠입 시 12.5% 확률로 적이 당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

‘이 애매한 성능······.’

도둑 클래스의 특성.

진영은 이 특성을 가지고 99층까지 올랐다.

다른 클래스에 비하면 없는 특성이나 마찬가지였다.

‘빨리 갈아치우든가 해야지.’

이전 생과 달리 클래스 업그레이드 아이템이 나와도 이번에는 양보할 생각 따윈 없었다.

복도 한 켠에 있는 좁은 계단을 통해 진영은 지하로 향했다.

스슥.

잠입은 회귀 전에도 진영의 특기였다.

소리가 나지 않게 몸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진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약한 클래스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진영은 특성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길러내야만 했다.

언데드 병사 하나가 지하 복도를 지나간 순간.

샤샥.

진영이 빠르게 발을 움직여 반대편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 근처에 분명 비밀 창고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간부가 있을텐데.’

비밀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간부에게서 열쇠를 훔쳐 내는 게 핵심이었다.

절대로 걸려서는 안된다.

22층의 중간 보스 급에 해당하는 간부들은 지금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때마침, 복도에서 붉은 자켓을 걸친 상급 언데드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 녀석이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군. 블머시기였던 걸로 알고있는데.’

상급 언데드의 외관은 창백한 피부를 제외하면 인간과 거의 흡사했다.

간부 블매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왔다.

딱히 주변을 경계하거나 긴장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느긋한 걸음이었다.

지금은 플레이어가 있지도 않은 평화로운 상태이니, 성채 내부의 마수들도 풀어져 있는게 당연했다.

“오늘 점심은 젊은 여자가 좋겠어. 내 몫을 미리 떼어두라 해 놔야겠군.”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블매쉬는 진영이 숨어 있는 곳까지 바짝 다가왔다.

진영이 병사의 쉼터로 활용되는 방에 숨어 타이밍을 기다렸다.

저벅. 저벅.

이대로 지나가기만 하면, 허리춤에 매어 둔 열쇠를 훔쳐내기만 하면 된다.

진영이 긴장감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때.

“이 방은 왜 문이 열려있는······.”

블매쉬가 진영이 숨어 있는 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

녀석의 시선이 진영을 향했고,

진영 또한 블매쉬와 자신의 눈이 마주친 것을 느꼈다.

‘젠장, 어쩔 수 없나.’

이렇게 되면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 밖에 없었다.

각오를 한 진영이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품에 숨겨 두었던 나이프를 꺼내 마기를 두르는 찰나.

[ 클래스 특성 ‘은밀함’ 발동! ]

[ 적이 당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

블매쉬가 복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후······.’

진영의 이마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12.5% 확률로 진영의 특성이 발동한 것이다.

‘스킬 갈아 버리겠다고 한 거 취소다.’

특성 덕에 블매쉬는 바로 코 앞에 있었던 진영을 보지 못한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러고 멍 때릴 때가 아니지.’

들키지 않았다고 끝이 아니었다.

블매쉬가 멀어지기 전에 녀석이 가지고 있는 비밀 창고의 열쇠를 훔쳐야했다.

진영이 손이 조심스레 뻗어져 블매쉬의 허리춤에 있는 열쇠를 건드렸다.

틱.

[ 스틸 발동! ]

[ 적과의 격차가 상당합니다. 실패 확률이 상당히 증가합니다. ]

[ 목표 아이템에 직접 접촉해 성공 확률이 증가합니다. ]

샤아아!

진영의 오른손으로 하얀 빛이 피어 올랐다.

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아무런 기척을 눈치 채지 못한 블매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진영이 다시 병사 쉼터 안으로 몸을 숨겼다.

‘제발 한 번에 가자.’

진영은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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