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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6화 (16/152)

도둑이 잠입을 잘함(2)

회귀자.

죽음을 경험하고도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은 자.

멸망의 탑에서 회귀자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중요했다.

실제로 일어난 미래를 알고 있는 존재.

아무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자.

여러 요소에 의해 예측이 빗나갈 수 있는 예언과 달리, 회귀자들은 확정된 미래를 알고 있다.

심지어 예언으로 알아 내기 힘든 ‘정보’까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현재 탑의 최선단에 서서 탑을 공략하고 있는 클랜에서는 이러한 회귀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멸망의 탑 제 1위 클랜 ‘그랑블루’ 한국지부에서도 몇 시간에 걸쳐 이어진 회의가 한창이었다.

“결국 0층에서 70명이 살아 나왔다는 게 의미하는 건······. 지금까지 말한대로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네요.”

튜토리얼 시작 시에 주어지는 코인은 모두 합해 100개.

33명 밖에 살아 나올 수 없는 지옥에서 그 이상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가디언을 처치했다는 것 말고는 답이 없지요.”

“사람들이 다같이 협력했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상태창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회귀자가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가 회귀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선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 플레이어를 저희 클랜으로 데려와야죠.”

회귀자에 대한 검증은 그 이후에 이뤄져도 늦지 않는다.

클랜 영입.

이것이 의미하는 건 단순히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겠다는 게 아니었다.

“해당 플레이어를 관측하는 즉시, 헬퍼를 보내 10층까지 플로어 시프트 하겠습니다.”

“허락하지. 다만 문제는······.”

실력있는 클랜원을 보내 진영이 10층까지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이었다.

“그 플레이어가 누군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거야.”

뛰어난 플레이어가 있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냐는 문제가 남았다.

부마스터의 말에 그랑블루의 선임 관측자 김영훈이 손가락을 하나 둘 접었다.

그랑블루 클랜 내 관측자 클래스의 수는 고작 두 명.

그들이 모든 층을 동시에 관측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어떤 플레이어가 주축이 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14시간입니다. 지금은 제 후임이 1층을 관측하고 있고, 회의 후에 2인 체제로 전환하면 금새 찾을 겁니다. 그만큼 뛰어난 플레이어는 두각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 헬퍼는 당장 1층으로 보내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확보해.”

관측자 김영훈의 알았다는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회의장이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엄청난 일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 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김영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 길드 관측소에서 1층을 샅샅히 뒤지고 있었어야 할 후임 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회의실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니 하던 일은 어쩌고······!”

회의 중인 것도 잊고 김영훈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 나왔다.

지금 같은 때에 자리를 비우는 멍청한 짓을 하다니.

다시금 욕설이 그의 목구멍까지 올라오려고 했다.

“선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회귀자인지 미친 플레이어인지 찾았습니다! 1층 보스 끝장내고, 벌써 2층 오동성까지 털어버렸습니다!”

후임의 말에 회의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술렁거렸다.

보스를 잡았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심지어 오동성까지 털었다니?

“제대로 확인 한 거 맞습니까?”

오동성은 2층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강한 플레이어일텐데, 어떻게 0층에서 올라 온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사이에 그 모든 일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상상을 뒤집는 소식에 회의장에 있던 중역들의 시선이 후임 관측자에게로 모였다.

그는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당당히 말했다.

“아주 특이한 플레이어에요. 상체 탈의, 맨 발 투혼! 맨 몸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적에게 뛰어드는 맹수 같은 플레이어. 이름도 알아냈는데, 주오령이던가? 하여튼 확실합니다! 그는 이미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 * *

“커헉.”

그 시각.

검은 슬라임의 파도에 뛰어 들었던 진영이 검은 액체를 내뱉었다.

치이익.

바닥에 닿자마자 진영이 토한 액체가 바닥을 녹였다.

‘다신 하고 싶지 않네. 승차감은 둘째치고 맛이 더럽게 없어.’

맛보고 싶어서 맛본 건 아니지만, 슬라임에 먹힌 채로 이동하는 도중 흘러들어 오는 슬라임 체액은 어쩔 수 없었다.

블랙 슬라임의 몸은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극독.

네 개의 분수에 있던 물을 모두 마심으로써 생긴 푸른 보호막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오장육부가 녹아내렸을 것이다.

고오오오······.

스산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그대로 진영이 고개를 들자 방 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블랙 슬라임이 2층의 동굴을 한 바퀴 돌고 자신의 안식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 히든 플레이스에 도착하셨습니다. ]

[ 2층 : 블랙 슬라임 데스의 아지트 ]

구우우.

자신의 아지트에 도착한 검은 슬라임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조그맣게 줄어든 채 동그랗게 몸을 유지한 채로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어쩔 거냐는 건가.’

2층의 보스 블랙 슬라임 데스.

이 녀석은 2층의 관리자였다.

멸망의 탑은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고 유지된다.

미션을 클리어하고 탑을 공략한다는 본질에서 심하게 벗어나는 플레이어는 이러한 관리자들에 의해 제재 당한다.

‘전투력만 따지면 이 귀여워 보이는 슬라임도 30층의 보스와 맞먹겠지.’

자신의 형태를 변형 해 해일처럼 2층을 휩쓰는 모습만 봐도, 플레이어가 상대하라고 만들어 놓은 생물은 아니다.

현재 인류의 전력을 전부 모아놓아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지금은

구우웅.

블랙 슬라임은 아지트에 도착한 순간부터 얌전하게 변해버렸다.

2층에서 해야 할 자신의 역할을 마쳤기 때문이다.

쪽지를 잃어버린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문제가 되는 플레이어가 존재할 2층을 초기화한다는 역할.

아이러니하게도 그 원흉인 진영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럼에도 슬라임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적어도 자기 일은 다했다는 거겠지.’

잠시 진영을 우두커니 쳐다보던 슬라임이 방향을 틀었다.

자신의 방 안을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이것저것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방이 꽤 더러운데.’

30평 정도 되는 방에는 여러 잡동사니가 많이 쌓여 있었다.

블랙 슬라임은 그 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신을 보라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진영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2층의 히든 피스가 위치 한 곳을 찾아야했다.

방 한 면에 수상쩍게 자리 잡은 대형 철문.

무언가를 봉인하듯이 칭칭 감긴 쇠사슬 위로 거대한 자물쇠 세 개가 보였다.

검은 슬라임이 잡동사니 위에서 방방 뛰어 올랐다.

‘들어가려면 열쇠를 찾으라는 의미군.’

관리자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탑에 심각하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은 자신의 역할만을 충실히 이행한다.

지금 블랙 슬라임의 행동도 어쩌면 그런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신화준의 말에 따르면 열쇠를 찾을 필요는 없다.’

- 슬라임 파도 타고 2층으로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별 거 없어. 검은 슬라임이 열쇠를 찾아야할 것처럼 굴지만 녀석의 농단에 맞춰주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지. 자물쇠는 그냥 부숴버리면 되는데 뭐하러 그 짓을 해?

신화준은 그리 말했었다만···.

쇠사슬은 어떤 특수한 마법처리가 되어 있는지 보랏빛을 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막 2층에 들어선 플레이어는 절대로 자를 수 없는 쇠사슬이었다.

‘확실히 평범한 방법이었다면 아무리 코인을 많이 모아도, 쇠사슬을 자르는 건 불가능 했겠지.’

그러나 지금 진영은 충분히 쇠사슬을 잘라낼 수 있었다.

가디언을 쓰러뜨리고, 1층의 히든 피스를 획득, 오동성이 가진 나이프를 획득했기에 가능했다.

그 신화준조차 히든피스를 얻기 위해15층에서부터 내려왔다.

지금 진영은 이 탑의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고오오···.

진영의 오른손에 쥔 나이프에 마력이 깃들기 시작했다.

쇠사슬 앞에 서서 손을 들어 올린 진영이 숨을 머금었다.

유니크급의 컴뱃 나이프, 인외 등급의 힘 스탯, 철인급의 마력 스탯.

이 세 가지가 모여있으니 쇠사슬을 자르는 건 두부를 자르는 것보다 간단할 터.

하지만 진영은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야, 뭔가 아니야.’

진영은 나이프에 있던 마력을 흩어냈다.

‘2층의 히든 피스를 얻는 방법은 이게 아닐지도 몰라.’

신화준의 말에 매몰되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단순한 감이지만.

쇠사슬을 자르고 히든 피스를 획득한다?

멸망의 탑에서는 너무 편리한 이야기였다.

‘슬라임의 행동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1층에선 진영이 300 코인을 제단에 던지는 것을 계기로 이름 없는 신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분수대의 물을 모두 마시고 슬라임에게 뛰어드는 것으로 히든 피스에 대한 조건은 충족했을 터.

‘1층의 히든피스와 마찬가지라면, 여기서는 슬라임의 행동을 따라가는 게 맞다.’

1층에선 히든 피스를 얻기 위해서는 이름 없는 신의 시험을 치뤘어야 했다.

물론 편법으로 아이템을 훔쳐낸 것도 사실이다.

다만 눈 앞의 쇠사슬을 그냥 부순다는 건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이었다.

‘탑이 히든 피스를 이렇게 허술하게 숨겨 놓을까?’

신화준은 쇠사슬만 부수면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러면 무슨 잿빛으로 가득 찬 방 하나가 나오는데, 거기에 히든 피스가 올려져 있거든. 그걸 가지고 나오면 끝. 쉽지?

1층의 시험과 비교해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다.

신화준이 가지고 있던 2층의 히든피스도······.

지금 생각하면 다른 히든 피스에 비해 부족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블랙 슬라임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거야.’

진영은 블랙 슬라임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잡동사니를 향해 다가갔다.

부숴진 의자의 다리, 솜이 빠진 베게, 고장난 장난감들이 난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진영은 잡동사니들을 하나씩 걷어 냈다.

구웅, 구웅!

블랙 슬라임이 기뻐하는 듯한 몸짓으로 진영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진영은 묵묵히 쌓여 있는 잡동사니를 치워 냈다.

잡동사니의 산이 바닥을 보일 때 즈음이 되자, 검은 열쇠가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시간은 걸렸지만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머지 한 개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하지만 세 번째 열쇠는 아무리 자세히 뒤져도 나올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나가 없는데······.’

역시 부수는 방법 밖에 없나, 진영이 한 숨을 내쉬는 때에.

블랙 슬라임이 쇠사슬에 달린 자물쇠를 향해 기어올랐다.

구우.구우.

블랙 슬라임은 나머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넣으라는 듯 몸을 떨었다.

의도를 알아 챈 진영은 곧장 쇠사슬이 달린 문 앞으로 다가갔다.

가지고 있던 열쇠 두 개를 나머지 자물쇠에 꽂아 넣었다.

철컥. 철컥.

두 개의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나고, 마지막으로 블랙 슬라임이 자신의 형태를 변환시켜 열쇠 역할을 했다.

녀석이 올라간 자물쇠 또한 철컥 소리를 내며 잠금 해제가 되었다.

철커덩.

문을 굳게 걸어 잠구었던 세 개의 자물쇠와 쇠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끼이익하는 소음과 함께 오랜 시간 닫혀 있었던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 밖의 광경을 확인하는 진영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신화준, 너는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

모든 걸 안다고 자랑하고, 자만하고 있었지만 녀석 또한 결국 이 탑에 속한 한 명의 플레이어였다.

녀석은 잘못 알고 있었다.

열린 철문의 빈틈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나왔다.

쇠사슬을 부수는 건 잘못된 답이었다.

문 밖의 풍경은 신화준이 이야기했던 잿빛의 방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영이 잘 알고 있는 장소였다.

[ 히든 플레이스 : 멸망의 탑 22층 ]

[ 22층 : 불타버린 성채 - 성지 탈환 ]

현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22층.

99층까지 닿았던 진영은 진작에 지나쳤던 플로어.

이곳에 진짜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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