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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5화 (15/152)
  • 도둑이 잠입을 잘함(1)

    콰과과-!

    검은 파도가 벽에 부딪히며 끊임 없이 밀려왔다.

    힘이 빠진 고블린과, 오크들이 하나둘씩 검은 물살에 떠밀려 사라졌다.

    “저, 저게 대체 뭐에요?!”

    지훈은 사색이 되어 달리면서 외쳤다.

    1층에서 민첩 스탯을 올리고 왔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주오령은 걱정할 것도 없었고.

    “굉장해, 굉장하군.”

    연신 중얼거리면서도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 주오령도 파도와 반대 방향을 향해 뛰었다.

    ‘하긴 저게 위험한 건 줄 모르면 사람이 아니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검은 파도.

    본래라면 2층에서 볼 일은 없었겠지만, 진영이 억지로 불러낸 것이었다.

    “2층의 보스야. 일단 말하지 말고 달려. 점점 빨라질테니까.”

    파도의 정체는 2층의 보스였다.

    마음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파도처럼 보이지만, 녀석의 진짜 모습은 슬라임이었다.

    진영은 지훈의 등 뒤를 밀어주며 소리쳤다.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까 계속해서 달려!”

    방금까지 있었던 분수대가 한 순간에 검은 물살에 휩쓸렸다.

    오동성의 시체도 그와 함께 검은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파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키르륵!”

    “꾸에엑!”

    살려달라는 듯 소리치는 마수들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검은 파도 앞을 달리는 진영의 일행 뿐이었다.

    “저기 넘어까지만 가면 돼!”

    다섯 걸음 뒤까지 바짝 쫒아온 검은 파도 앞에서 김지훈은 죽어라 달렸다.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제발, 제발!’

    1층에서 코인으로 체력이나 민첩을 1단계씩 올려놓았는데도, 파도가 따라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지만 진영이 형 앞에서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죽어라 뛰는 수 밖에 없었다.

    지훈의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눈 앞이 하얘질 무렵.

    터억.

    “어어어?!”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달리던 주오령이 김지훈을 들어 올렸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란 진영이 급히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주오령!”

    주오령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가 이를 악물고 김지훈을 앞으로 던져 보냈다.

    “으악!”

    동시에 주오령도 눈 앞의 보이지 않는 선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순간.

    파아앙!

    파도처럼 밀려 오던 거대한 슬라임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히기라도 한 듯 멈추었다.

    진영이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냈다.

    주오령이 지훈을 파도 속에 던져 넣는 줄만 알았다.

    “후······.”

    진영이 바닥에 넘어진 지훈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슬라임이 갑자기 멈춘 이유는 오동성과 싸우기 전, 동굴의 틈새에 넣어두었던 ‘염소 마수의 뿔’ 덕분이었다.

    블랙 슬라임은 마력을 토대로 상대를 구별한다.

    마력이 응축된 염소 마수의 뿔에 어그로가 끌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것보다 그 지점을 정확히 눈치 챈 주오령이 신기하긴 했다.

    “저 녀석이 다시 움직이기 전에 빨리 다음 분수로 이동하자.”

    “허억······. 네, 형. 그 전에 고맙다고 인사를······.”

    정신을 차린 지훈이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주오령을 바라봤을 때.

    주오령은 이미 저 앞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 * *

    꿀꺽.

    이걸로 3번째 분수대.

    분수대의 물을 마시자, 갈증과 피로가 단숨에 사라졌다.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저기 왜 그렇게 뛰어 오신거에요?”

    “저쪽에 무슨 일 있어요?”

    3번째 분수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진영 일행을 보고 물었다.

    지훈은 진영이 미리 말했던 대로 가지고 있던 보상 쪽지를 꺼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고맙긴 한데 왜 주시는거에요?”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쪽지를 받고서 다음층으로 넘어갔다.

    한숨 돌린 진영이 손가락으로 동굴 너머를 가리켰다.

    “이제 다음 분수대로 가기만 하면 돼.”

    히든 피스를 얻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하는 과정이었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물 한 번 마시니까 바로 괜찮아졌네요······.”

    진영 일행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슬라임의 파도를 피해 다시 다음 분수대가 있는 장소까지 달렸다.

    중간마다 나오는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마수는 일행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파도가 쫒아오지 않고, 근처의 몬스터들도 대강 처리가 되자,

    계속해서 따라오던 지훈이 궁금했던 점을 질문했다.

    “근데, 형 그게 2층의 보스라구요? 전혀 마수처럼 보이지 않던데······.”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그래.”

    “그런 보스가 상대라면 죽어도 못 이길 것 같아요. 탑 진짜 밸런스가 엉망이네요.”

    홍수처럼 밀어 닥치는 자연재해급의 보스.

    이제 겨우 2층에 올라온 플레이어가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2층의 보스는 잡으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

    보스라고 다 같은 보스가 아니었다.

    2층 보스는 탑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관리자였다.

    1층에 있는 염소 마수처럼 처치 되기 위해 있는 보스가 아니다.

    ‘탑의 설계에서 심하게 벗어나면 철저하게 응징한다는 거지.’

    2층의 보스가 나타난 이유는 간단했다.

    진영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쪽지만을 빼앗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단시간에 너무 많이.

    ‘탑의 설계에서 벗어나는 건 위험부담이 커.’

    2층 보스는 탑의 미션에 있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몬스터를 처리하고,

    그 원흉인 진영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보스가 너무 빨리 움직이기는 했어.’

    1층에서 신전 입구가 전부 막힌 것도 그렇고, 신화준의 말에 의존해서 움직이다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 2층에도 히든피스가 있고 말고. 일단 거기 있는 몬스터들을 죽이지는 말고, 쪽지를 다 뺏어. 그러면 거기 보스가 나타날텐데, 동굴에 있는 모든 분수대의 물을 순서대로 마셨다면 오히려 히든피스가 있는 장소로 데려다주니까. 완전 편리하지.

    문제는 신화준의 말 어디에도 파도처럼 근처에 있는 모든 걸 쓸어버린다는 말은 없었다는 거다.

    보스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어그로를 끌기 위해 설치 해 둔 염소 마수의 뿔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의도와는 조금 달랐지만.

    “도착했네. 저기까지만 가면 안전해.”

    동굴 뒤쪽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블랙 슬라임이 이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한 번 멈췄다 움직이기 시작했을테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아까랑 똑같이 쪽지를 나눠드리면 되는 거죠?”

    “그래.”

    방금 전 분수와 마찬가지로 분수대의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김지훈은 사람들에게 나머지 쪽지를 나눠주었다.

    사람들은 각자 감사 인사를 한 뒤, 다음층으로 넘어 갔다. 이걸로 이제 2층에 남은 사람은 진영 일행 뿐이었다.

    “아, 주오령. 너도 다음층으로 넘어가는 게 목표면 이걸 받아라.”

    진영이 주오령을 향해 쪽지를 던졌다.

    쪽지를 받아든 주오령이 이리저리 쪽지를 살폈다.

    “흠, 좋다. 먼저 가 있으라는 건가. 다음층에서 기다리지.”

    “잠깐, 그 전에 확인 할 게 있어.”

    진영이 주오령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주오령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까 분수대에서도 그렇고, 진영을 같은 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부터 네 파트너가 된 거지?”

    “염소를 잡고나서부터.”

    진영이 아는 주오령은 절대로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원래는 죽을 때까지 탑에서 혼자다니던 녀석인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 아닌가요?”

    옆에 있던 지훈이 진영에게 속삭였다.

    무섭기는 한데, 방금 전 슬라임 파도를 피할 수 있게 해준 덕에 약간 이미지가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걸 들은 진영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그러면 일단 너도 주오령이랑 같이 다음층으로 이동해 있어.”

    “헉. 형은요?”

    “나는 2층에서 아직 볼 일이 남아 있어.”

    “그 저 아직 형이 주신 쪽지도 다 들고 있고, 아이템도 들고 있는데······.”

    히든피스가 있는 장소에 가려면 1번부터 4번 분수의 물을 모두 마셔야했다.

    김지훈은 1번 분수의 물을 마시지 못했다.

    곧 있으면 슬라임이 4번 분수대 마저 쓸어 버리기 때문에, 김지훈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주오령.”

    “뭐지?”

    진영은 옆에 있는 주오령의 어깨를 붙잡았다.

    주오령의 생기 없는 눈이 진영을 향했다.

    “나랑 파트너가 하고 싶으면 3층에서부터는 김지훈하고 같이 다녀.”

    “······.”

    잠시 진영과 김지훈을 번갈아보던 주오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억······.”

    보면 볼수록 진영이 생각하고 있던 주오령과 실제 주오령이 달랐다.

    소문대로 아예 말이 안통하는 놈도 아닌 것 같고.

    “저, 괜찮을까요?”

    불안해 하는 김지훈에게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오령이 별난 플레이어인 건 맞지만, 현재 스탯만 보면 김지훈이 더 세다.

    녀석은 아직 코인을 사용할 줄도 모르니까.

    그 사실을 지훈에게 알려주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는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주오령을 따라다니면 3층을 클리어하는 건 어렵지 않을거야. 혹시 모르니 가지고 있다가 위급해지면 써.”

    진영은 지훈에게 코인 100개를 쥐어 주었다. 오동성에게서 얻은 코인이었다.

    지훈은 원래부터 잘하는 플레이어였고, 주오령은 원래부터 미친 놈이었다.

    3층을 클리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럼 가겠다.”

    턱.

    주오령이 김지훈의 어깨를 잡았다.

    “히, 힘낼게요. 형.”

    울상이 된 얼굴이었지만, 각오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얀 빛과 함께 둘은 순식간에 3층으로 올라갔다.

    진영은 둘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파트너라······.’

    탑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건 압도적인 힘인가?

    누군가가 그렇게 묻는다면 진영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힘만이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 밖에 없다.

    ‘혼자서는 모든 걸 해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 천하의 신하준조차 최후의 6인을 데리고 탑을 오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 믿었던 동료들 중 아무도 진영을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그 일을 생각하면 인간불신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함께 탑을 오르겠어.’

    진영은 생각을 달리 했다.

    그들을 동료라고 맹신했던 자신이 물렀던 것이다.

    최후의 6인은 자신의 동료가 아니었다.

    그저 신화준이 만들어 낸 파티, 신화준의 사람들이었다.

    ‘내 팀원들은 내 손으로 선택하겠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주오령에게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지만.

    4층을 성공적으로 공략한다면 주오령은 미래에 탑을 함께 공략할 동료로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득을 계산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믿을만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가고 있다.’

    * * *

    첫번째부터 네번째까지의 분수대의 물을 모두 마셨으니, 이제 남은 건 블랙 슬라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 뿐.

    진영은 김지훈이 두고 간 아이템을 하나씩 장비했다.

    - 가벼운 가죽 신발(레어+) : 민첩 5% 증가, 기본 이동속도 10 증가

    - 단단한 검은색 자켓(일반) : 방어력 1

    - 용감한 검정 귀걸이(일반) : 힘 1% 증가

    지금 보기에는 소소한 능력치였지만 이 아이템들의 가치는 스탯이 올라갈수록 증가한다.

    스탯이 한 등급씩 올라갈수록 무시하지 못할 격차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 가죽 신발은 진짜 좋네.’

    오동성이 자랑할만한 성능이었다.

    하지만 진짜 쓸만한 아이템은 따로 있었다.

    진영은 새롭게 얻은 무기를 손에 들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예리한 컴뱃 나이프

    등급 : 레어

    분류 : 단검

    효과 : 공격력 4

    기본 능력치가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었다.

    5층 이내에서 이만한 아이템을 가진 사람은 본 적 없을 정도.

    “이름 없는 신의 에고 장착 해제.”

    진영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부러진 몽둥이에서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추출했다.

    이 히든 피스의 장점은 어디에든 원하는 장비에 탈착이 가능하다는 것.

    [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예리한 컴뱃 나이프에 장착하시겠습니까? ]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붉은 빛과 함께 컴뱃 나이프가 강화 되었다.

    아이템의 등급을 한 단계 올려주는 이름 없는 신의 힘이 나이프에 깃들었다.

    ‘이 아이템에는 반응 안하나 보네.’

    스킬 강화석을 사용할 때처럼, 진영이 팔목에 끼고 있는 ‘이계규율 - 절대 회귀’가 반응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쨌든 진영은 강화 된 아이템의 설명을 확인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예리한 컴뱃 나이프S

    등급 : 유니크

    분류 : 단검

    효과 : 공격력 20

    전용스킬 : 컴뱃 슬래시

    ‘레어 등급의 아이템이 유니크 등급으로······.’

    히든피스의 효과는 강력하다 못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전용스킬까지 붙을 줄이야.’

    진영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제대로 된 무기를 하나 장만한 기분이었다.

    유니크급 무기는 5층 아래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오동성 덕분에 파밍 수고를 덜었군.’

    2층에서 미리 쪽지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며 아이템을 모아준 덕분에 이런 좋은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준비는 끝났다.’

    쿠구구구······.

    어느새 거대해진 진동이 동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진영이 몸을 일으키자 아까 전과 마찬가지로 물밀 듯 밀려오는 검은 파도가 보였다.

    ‘여기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검은 슬라임이 가까워질 수록 진영의 몸에서 푸른 빛이 은은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총 네 개의 분수대의 물을 전부 마셨기에, 진영은 히든피스가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서 생긴 현상이었다.

    탁, 탁, 탁.

    세 번의 발돋움으로 진영은 뛰어 올라.

    검은 파도의 안쪽으로 몸을 맡겼다.

    거대한 파도가 진영을 집어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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