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온 더 빌런 (4)
쉭, 쉭, 쉬익-!
오동성의 나이프가 계속해서 공기를 갈랐다.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몰아치는 공격이었지만 진영은 가볍게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쟀다.
‘민첩 스탯은 나랑 같은 정도네.’
힘 스탯은 자신이 더 높다는 건 악수했을 때 파악해 놓았다.
진영은 함부로 달려 들지 않고 공격을 회피하며 오동성을 관찰했다.
‘자기 공격 말고는 신경도 안쓰는 군.’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단순히 치고 박는 게 아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심리 싸움이었어야 할 터인데······.
고작 2층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는 오동성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걸 모르는 오동성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피하느라 급급한가 보네! 그 딴 실력으로 나를 도발해?”
진영이 계속해서 움직임을 피하기만 하자, 오동성은 자신감이 생겼다.
“훔쳐간 코인을 써놓고도 겨우 그 정도냐?!”
진영이 이미 코인을 사용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0층과 1층에서 얻을 수 있는 코인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에휴······.”
싸움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도 진영이 이길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저 사람은 왜 갑자기 나타나선······.”
“오늘 하루 종일 오동성 기분만 안좋겠네.”
회의적인 눈빛이 대다수였다.
그 동안 오동성이 보여온 힘은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의 바람은 그저 그의 비위를 맞춰서 다음층으로 올라가는 것 뿐이었다.
“멍청하게 피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보지?”
오동성은 치치는 기색 없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공격이 진영의 근처를 스쳐 지나가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동성은 자신의 승리를 예상했다.
“보니까 운좋게 코인을 모아서 2층까지 올라온 탓에 주제를 모르고 까분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싹싹 빌면 용서해주지. 어때?”
“말이 많군.”
값싼 도발이 끊임 없이 이어졌지만.
진영은 무심하게 대답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약이 오르는 건 오히려 오동성이었다.
“이 새끼가!”
스륵!
드디어 나이프가 진영의 옷자락을 베어냈다.
기세가 오른 오동성이 소리쳤다.
“보니까 민첩 스탯은 너랑 나랑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점점 내 공격이 먹혀 가는지 알겠어? 바로 신발 때문이다.”
“!”
물론 오동성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쪽지에서는 코인만 나오는 게 아니라 좋은 아이템도 나왔다.
줄곧 무표정하던 진영도 신발의 차이라는 말에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래, 차이가 난다는 걸 아니 이제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냐?”
신고 있는 신발의 차이.
오동성이 장착한 신발은 민첩을 5%나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스텟은 같다. 그렇다면 이 5%의 차이가 승부의 결과를 낼 터!
턱.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던 진영이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렸다.
‘지금이군!’
오동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부우웅.
뒤로 뻗은 오동성의 나이프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2단계나 되는 마력이 나이프를 진동시켰다.
마력이 담긴 공격은 마력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막아내기 힘들다.
막아 낸다고 해도, 나이프에 닿는 순간 녀석이 들고 있는 허접한 막대기는 산산조각이 날거다.
그런 생각과 함께 오동성의 나이프가 휘둘러졌다.
쉬이익-!
큰 기술이 날아옴과 동시에 넘어지는 듯 했던 진영이 자신의 부러진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나이프와 몽둥이가 강하게 부딪혔다.
끼기긱!
“?!”
몽둥이와 나이프의 조합에서 나올 수 없는 불꽃이 튀어 올랐다.
마력이 담긴 공격이었는데도, 진영은 마력도 쓰지 않고서 공격을 막아냈다.
“뭐, 뭐야? 그딴 허접한 막대기가 어떻게······?”
분명 마력이 실린 나이프가 막대기와 상대를 동시에 절단 냈어야했는데.
오동성이 당황하는 동안 진영은 자신의 왼손을 뻗어 가볍게 그의 팔을 터치했다.
“그런 신발을 신고 있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화아악.
진영의 손이 닿는 순간.
오동성의 두 발에서 동굴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어?”
자신의 발에 신겨져 있어야 할 신발이 진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신발은 곧장 오동성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휙!
“이 자식이!”
대충 아이템을 빼앗겼다는 건 파악할 수 있었다.
오동성은 나이프로 날아드는 신발을 잘라내려다 멈칫했다.
아이템이 아까웠다.
자신이 싸움을 이기고 있다는 생각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 멈칫하는 순간을 진영이 놓칠 리가 없었다.
카앙!
진영의 몽둥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오동성의 나이프와 부딪혔다.
“?!”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오동성이 크게 휘청였다.
다시 한 번 진영의 손이 오동성을 터치했다.
화아악!
이번에는 오동성의 상의가 사라졌다.
그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반격하려고 했지만.
“미친 새끼가!”
탁. 화아악!
나이프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입고 있던 옷이 하나씩 사라졌다.
쉬익-!
탁.
벨트가 사라지고.
“으으아!”
쉬익-!
탁.
바지가 사라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
스탯은 분명이 비슷할텐데도 불구하고 오동성의 공격은 진영에게 닿지 못했다.
“뭐, 뭐야? 저 사람이 이기고 있는데?”
“오동성은 왜 자꾸 옷을 벗는거지?”
“그냥 지고 있는 거 아닌가요?”
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방금까지 자신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있던 놈들이, 말하는 꼴을 보니 더욱 열이 났다.
‘저 새끼들이······.”
이를 악물고 달려 들었지만 결국 남은 팬티까지 벗겨졌다.
그는 손에 쥔 나이프를 제외하고는 알몸이 되었다.
계속해서 나이프를 휘두르고는 있지만 진영은 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 민첩 스탯은 똑같을텐데.
아니 오히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이 더 빨랐을텐데.
“히, 힘내라!”
“오동성 저 새끼 죽여버려요!”
“이겨주세요, 제발!”
진영이 완전히 오동성을 무력화 시키는 모습에 사람들도 덩달아 응원을 시작했다.
여태껏 그에게 강제로 쪽지를 모아올 것을 강요 받은 사람들이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터져나온 것이다.
휘적, 휘적.
사람들은 소리치고, 자신은 알몸으로 팔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나이프를 휘두르는 오동성이 팔에 힘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자신이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사람들 앞에서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기가 막힌 수치심이 그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땡그랑···.
오동성이 들고 있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눈 앞의 상대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히 담기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차이.
그 앞에서 오동성은 무릎을 꿇었다.
“내가 졌다. 씹새끼야.”
* * *
오동성 같은 부류는 단순한 폭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밟고 올라 섰다는 고유의 프라이드.
그 자존심을 부수지 못하면, 진영의 부탁은 죽어도 들어주지 않을 거다.
‘하는 짓은 소인배인데, 자존심은 더럽게 쎈 놈.’
후에 오동성을 눈여겨 본 클랜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내려온다.
2층에서 군림하며 코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오동성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찾아온 클랜원을 죽여버린다.
‘그냥 생각이 없는 놈이지.’
그러자 해당 클랜은 폭력을 사용해서 오동성을 회유하고자 했다.
그냥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고 생각했으므로.
오동성은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진영은 정신적으로 오동성을 쓰러뜨리는 선택을 했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엎드려서 사죄라도 할까?”
여전히 말투는 거칠었지만 그의 마음은 확실히 꺾여 있었다.
진영은 지훈에게서 쪽지 뭉치를 건네 받아 그의 앞에 뿌렸다.
“이걸 모두 감정해.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던 3층 입장 권한이 담긴 쪽지도 다 가져와.”
“어디서 이렇게 많이······. 아니다. 그래 시키는대로 하지.”
백 개가 넘는 쪽지를 확인한 오동성이 잠시 굳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오동성은 진영이 건넨 쪽지를 이리저리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의 클래스 감정사의 스킬을 사용하면 안에 담긴 내용을 전부 알아 낼 수 있었다.
“이쪽에 있는 게 탈출권. 여기 있는 건 코인, 이건 아이템, 나머지는 꽝이나 폭발이다.”
그는 알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분류한 쪽지를 하나 하나 가리켰다.
“그러면 이쪽에 있는 쪽지를 네 손으로 열어.”
“내가 구라라도 쳤을 것 같냐? 뭐, 알겠다고.”
오동성은 자신의 노란 머리를 쓱 쓸어 넘기더니 쪽지를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통쾌해 하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저 사람이 오동성을 그냥 두고 가기라도 하면 우리는 죽는 건데.’
‘설마 우리를 버리겠어?’
소곤대는 소리는 당연히 진영의 귀에도 들렸다.
오동성이 열심히 연 쪽지와, 숨기고 있던 걸 합친 다음층 입장권은 총 127개였다.
“와, 이 사람 대체 쪽지 몇 개를 혼자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지훈이 그 수에 놀라며 다음층 입장 권한이 담긴 쪽지를 받아 들었다.
“그거 전부 저기 있는 사람들한테 하나 씩 나눠줘.”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쓸데도 없는 입장권이었다.
사람들 한 명이라도 살아나가는 게 나았다.
그들이 헌터가 되던 탑 공략을 하던 말이다.
“정말로 그냥 주시는 건가요? 아무 대가도 없이?”
오동성에게 시달린게 심하긴 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경계의 눈빛을 하고선 쪽지를 받아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다.
“네, 저희 형이 드리는 거니까 하나씩 가져가 주세요.”
지훈이 한 명씩 돌아가며 쪽지를 나누어주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진짜 어떻게······.”
“너무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나요?”
“이름 좀 알려주세요!”
사람들이 진영의 뒤에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진영 고개를 돌려 준비된 말을 내뱉었다.
0층에서 했던 말이랑 정확히 똑같았다.
“이름까지 알려드릴 게 있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다들 10층까지 살아남으셔서 헌터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99층까지 오른 진영은 이런 말이 가식이자 위선이라는 걸 잘알고 있었다.
‘다음층으로 가는 게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형식적일지라도 친절한 한마디에 사람들 중 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별 거 아닌 말이었고, 형식적인 말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만했다.
2주도 넘게 오동성한테 협박 받으며 강제 노역을 하고 있던 셈이니.
“흐흑, 진짜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슈슉, 슈슉, 슈슉.
쪽지를 사용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다음층으로 넘어갔다.
2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 번에 빠지고 나자 안전지대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형 이제 저희만 남았어요.”
진영은 초점을 잃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오동성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쌓은 모든 게 한 순간에 무너졌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면 이제 널 어떻게 할까.”
김지훈과 함께 근처에 쌓인 코인과 몇 개의 아이템. 그리고 꽝 쪽지들을 정리했다.
이제 남은 건 오동성의 처리.
“허, 죽이던가.”
오동성은 죽음을 구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진영은 잠시 고민했다.
쓰레기인 건 맞는데, 이 놈 때문에 진영도 3층으로 올라가기는 했다.
바깥의 기준에 따르면 그저 쓰레기가 맞았지만, 이곳은 탑이었다.
“그러면······.”
그 때였다.
뿌득!
무언가 붉은 형체가 휙하고 지나가더니.
오동성의 목이 꺽였다. 반응할 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헉! 저, 저사람은!”
오동성을 단숨에 죽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한 지훈이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쳤다.
바지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는 기인.
그의 정체는 주오령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주오령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알몸 변태가 있었군.”
“주오령······.”
같이 올라 오긴 했지만, 딱히 만나러갈 생각은 없었다.
회귀 전에도 주오령은 비슷한 시기에 탑을 오른 모양이지만, 2층에서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1층에서 보스를 잡고 빠르게 탑을 등반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주오령은 진영을 만나려고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파트너. 이름을 묻지 않았군. 나는 주오령이다.”
“······. 대체 내가 언제부터 너하고 파트너가 된 거지?”
주오령 이 녀석은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아쉽지만 주오령의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동굴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무언가가 몰려오는 듯한 굉음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2층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키르르륵!”
“꾸에엑!”
백 마리는 넘을 법한 고블린과 오크 무리가 단체로 몰려오고 있었다.
무언가에 쫒기듯 죽어라 달려오는 녀석들.
동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검은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혀, 형 저거!”
“굉장한 파도군.”
압도적인 파도의 기세에 주오령과 김지훈이 숨을 삼켰다.
하지만 진영은 무덤덤하게 파도를 바라불 뿐이었다.
진영은 저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저 검은 파도를 불러 낸 게 진영이었으므로.
“일단 뛰자.”
진영이 가볍게 김지훈의 등을 쳤다.
그걸 신호로 둘은 다음 분수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뛰었다.
먹히기 싫으면 죽어라 뛰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