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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3화 (13/152)

아이템 온 더 빌런 (3)

힘을 준 오동성이 무색할 정도로 진영은 아무렇지 않게 악수를 끝내고 손을 놓았다.

“저는 뭘하면 되는거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진영이 먼저 묻자, 오동성은 기가 찼다.

분명 죽어라 힘을 줬는데 왜 멀쩡한거지?

“그, 몬스터 잡고 쪽지를 나한테 가져다 주면 돼.”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가면 되나요?”

“어?”

너무 당황스러워서 화를 낼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분명 부러졌어야했는데, 자신이 실수한 건가 싶었다.

‘뭐지?’

사람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게 되면 화를 내거나 머리가 멍해지는 법이었다.

오동성은 후자였다.

진영의 질문에 맞춰 자신도 모르게 대답해버렸다.

“그, 그래. 내 기분에 거슬리지 않고 쪽지만 제대로 가져오면 다음 층으로 보내줄테니까.”

“혹시 이 친구랑 갔다와도 됩니까? 1층에서 만났던 친구라.”

“......애새끼도 아니고 그런 건 좀 알아서 하지?”

진영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김지훈과 함께 안전구역을 빠져나갔다.

말은 고분고분 잘 듣는 것 같은데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오동성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괜히 짜증을 냈다.

“야, 뭘 꼬라봐. 나가서 쪽지나 모아 와.”

그는 분수대 근처에 놓여진 소파에 떨썩 주저 앉아, 주머니에 남아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가 없어서 불을 붙일 수는 없었다. 기분이라도 내자는 거였다.

‘아, 뭐였지? 원래 나 같았으면 바로 주먹이 날아가는 건데.’

그 남자는 뭔가 좀 이상했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2층에 온 지 3주.

오동성의 클래스는 ‘감정사’는 2층에서 지극히 유리했다.

감정 스킬로 쪽지의 내용을 모두 살펴 볼 수 있었으므로 계속해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안 되겠다. 그 놈들 돌아오면 기강 좀 잡아야겠어.’

쪽지에는 부정적인 효과도 많았지만 코인, 먹을거리, 아이템 같은 도움이 되는 것도 들어 있었다.

코인으로 능력치를 강화한 오동성은 사람들을 모아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수록 기분 더럽네.’

그는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가차 없이 버리거나 죽여버렸다.

그걸 본 사람들은 더더욱 오동성에게서 떠나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힘이야말로 권력이었으므로.

‘오기만 해봐, 아주.’

고작 2층이지만 권력이 주는 쾌락은 대단했다.

이 탑에는 더 높은 층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더 강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마비 시켜버렸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코인이 몽땅 사라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103개.

오동성이 자켓 안 쪽에 숨겨두고 있던 코인의 수였다.

이게 악수 한 번하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이라니.

진영은 자신의 코인 계좌를 확인하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스틸을 작정하고 나쁘게 사용하니까 당해낼 길이 없네.’

특히 상태창이 밝혀지지 않은 극초반부에는 더욱 그랬다.

이후에도 상대방의 클래스를 확인하는 ‘직업 감정’ 같은 스킬이 아니라면,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상대의 클래스를 알긴 어려웠다.

“형, 그 오동성이라는 사람말인데요.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이 탑에서는 정상인을 찾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진영은 굳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고 싶지 않아도 모두가 알게 된다.

멸망의 탑에서 사람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얼마나 처참히 무너질 수 있는 가를.

“그리고 어쩌면 형보다 강한 사람일지도 몰라요.”

푸슉!

눈 앞에 나타난 고블린을 향해 지훈이 장전 되어 있던 석궁을 쏘았다.

석궁 화살이 정확히 고블린의 머리에 꽂혔다.

화살을 회수하며 지훈이 설명을 덧붙였다.

“자기를 욕하는 사람의 머리를 한 번에 터트려버리더라구요. 그것도 맨손으로요. 겨우 욕 한 번 했다고······.”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린 김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는 게 지훈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두가 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착취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회귀자라고 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아, 네. 근데 회귀자면 미래에서 돌아 왔다는 거죠?”

“맞아. 내가 2층에 처음 올라 왔을 때도, 저 오동성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어느 정도 강한지는 알고 있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

진영은 쓰러진 고블린이 가지고 있던 쪽지를 주워 지훈에게 건네었다.

“그쵸? 조금 불안하긴하지만, 형을 믿을게요.”

지훈은 걱정을 조금 덜어 놓고자 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진영은 회귀자라고 했다.

그의 행동에 이유가 있을 터. 더 이상의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 진영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형,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아는 거라면 대답해 줄게.”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지훈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혹시 저의 형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이름은 김영훈이라고······. 저보다 먼저 탑에 들어왔거든요. 헌터가 되겠다고 큰 소리치고 탑으로 들어갔는데, 소식이 끊겼거든요.”

그 물음에 진영이 고개를 돌려 김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김영훈이라······. 기억에 없어.’

회귀 전의 김지훈은 탑 밖으로 나가 헌터가 되는 대신 계속해서 최전선에서 탑을 공략했다. 김지훈과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형을 찾았는지 못찾았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진영이 처음에 탑 들어 올 때만 해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헌터를 꿈꾸고 들어왔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탑이 인류의 멸망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으므로.

당연히 지금 시점에서 탑을 공략해야 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도 없었다.

‘김지훈은 왜 30층까지 오르기로 결심한걸까.’

혹시 그의 형을 찾지 못해서, 혹은 찾기 위해서 탑을 계속 올랐던건가?

그에 대한 답은 진영도 알 수 없었다.

결국 진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다. 모든 사람을 다 아는 건 아니었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너는 탑에서 꽤 유명한 네임드 플레이어였어. 무지막지하게 의리 있는 놈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

그 말을 들은 지훈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제가요? 그 이야기는 되게 기분 좋네요. 저희 가훈이 ‘의리를 지켜라’거든요. 왠지 제 스스로가 자랑스럽네요.”

모른다는 대답에 김지훈은 오히려 안심했다.

이미 죽었다는 말이나, 찾지 못했다는 말 보다는 훨씬 희망찬 말이었으니까.

‘형이라······.’

자연스레 진영도 가족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탑 밖에서 살아 있을 걸 생각하니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99층에서 내다 본 바깥의 풍경.

진영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도시와, 마수가 들끓는 땅.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멸망한 세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 속에서만 했었지.’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설사 탑을 공략한다 해도 모든 게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진영은 돌아왔다.

이곳은 틀림 없는 현실이었다.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탑을 공략해 내야 해.’

옆에 있는 김지훈도, 탑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밖으로 내보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지는 이 정도면 될까요?”

눈 앞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차근차근 처리하니 쪽지는 금방 모였다.

스틸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몬스터를 잡은 이유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래,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자. 오동성이 이를 갈면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이를 간다고요? 왜요?”

“내가 그 놈이 가진 코인을 몽땅 털어왔거든.”

탑에서 가장 중요한 재화가 바로 코인이다.

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알 수 밖에 없다.

“도, 돌아가도 괜찮은거 맞죠? 맨 손으로 팍!하고 사람을 죽이던데······.”

김지훈은 진영이 회귀자인 걸 알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진영이 강도 무리를 제압할 때는 몽둥이를 사용했다.

반면 오동성은 맨손으로도 단숨에 남자를 죽였다.

“그래? 마력 스탯을 조금 올렸나본데.”

플레이어가 가진 스탯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마력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코인이 있어도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어려운 마력에 투자하는 사람은 보통 없다.

‘마력은 다룰 줄만 알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스탯이기는 하지.’

처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한 번 습득하면 마법 관련 클래스가 아니더라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마법 저항력이나 정신력이 오르는 건 기본이고, 신체에 두를 수도 있다.

지훈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쪽지를 전부 꺼냈다.

“혀, 형? 이게 다 뭐에요? 쪽지를 언제 이렇게 모아오신거에요?”

“이거 인벤토리에 보관 하고 있어.”

빵빵했던 주머니가 홀쭉해 질 정도였다.

다 합해서 103개.

처음 시작했던 분수대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며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에게서 훔쳐낸 쪽지였다.

“일단 넣었어요. 근데 정말 싸우시려고요?”

“그래. 뭐가 나올지 모르는 쪽지를 우리가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

다음층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쪽지를 열어봐야했다.

피해 없이 원하는 쪽지를 얻기 위해서는 감정사인 오동성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순순히 그가 도와주지 않을 거란 건 잘 알고 있다.

“가기 전에 잠깐만.”

진영은 품에서 염소 마수의 뿔을 꺼냈다.

1층의 보스에게서 잘라낸 바로 그 뿔이었다.

동굴의 갈라진 틈새로 마수의 뿔을 밀어 넣었다.

오동성과 바로 싸우지 않고, 잠시 물러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형, 그게 뭐에요?”

“2층의 보스에게 주는 먹이.”

손을 털어낸 진영은 오동성이 있는 분수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긴장한 지훈이 그 뒤를 따랐다.

* * *

“이 씨발!”

쾅!

오동성이 동굴 벽을 세게 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츠렸다.

진영의 예상대로 오동성은 사라진 코인을 찾고 있었다.

‘그 새끼들이 가져 간 게 분명해.’

그래도 나름 사람들을 부리는지라 머리는 어느 정도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동성은 고작해야 2층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플레이어.

방법까지는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가져 간거지? 이해가 안 되네.’

아까 그 놈이랑은 악수 한 번 한게 끝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 밖에 없었다.

100개나 되는 코인을 그대로 도둑 맞다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야, 너희 지금부터 다 일어나. 도둑 새끼들 두 마리 잡으러 간다.”

오동성의 으름장에 사람들이 마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몇 주 째 그의 손에 놀아나며 2층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노예나 다름 없었다.

‘괜찮아. 고작 100코인 가지고 뭘 하겠어?’

오동성은 그 전에 얻은 코인을 가지고 이미 능력치를 강화 해 두었다.

평범한 사람이 100코인으로 할 수 있는 건······.

‘시발, 고작이 아니잖아. 100코인이 얼마나 많은건데.’

마력을 3단계로 강화하려고 남겨두었던 코인이었다.

그걸 단 번에 도둑 맞아버리니 꼭지가 돌아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제발 쓰지 않았기를.

“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그의 짜증섞인 외침에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동성이 소파 밑에 숨겨 두었던 아이템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때.

“아이템을 어디에 숨겨 놨나 했더니 거기 있었군. 그런데 굳이 움직일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진영이 나타나자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사람들도 눈치껏 깨달았다.

“왔구나, 왔어. 도둑놈이.”

얼굴이 벌게진 오동성이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2층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 중에서는 압도적인 성능이었다.

“니가 훔쳐 간거 맞지? 뒤질려고 환장을 했구나.”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 아닌가?”

오동성이 꺼낸 칼을 확인한 진영은 부러진 몽둥이를 손에 쥐었다.

몽둥이를 본 오동성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 그런 쓰레기를 들고 나한테 덤비겠다는거냐?”

진영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를 살짝 확인했다.

임시로 쓰기에는 좋지만, 계속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 바꾸지 뭐.”

진영의 시선이 오동성이 들고 있는 나이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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