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11화 (11/152)

아이템 온 더 빌런 (1)

부상 당한 몸으로도 주오령은 수 미터를 가볍게 뛰어 올랐다.

쿠웅! 쩌적.

낙하와 함께 주오령의 발차기가 이미 죽은 염소 마수의 시체를 강타했다.

이후로도 분을 못 이겼는지 주오령은 염소 마수를 두들겨 패서 곤죽을 만들었다.

광폭화 특성으로 강해진 주오령의 평균 스탯은 ‘2단계 : 철인’.

즉 모든 스탯이 2단계 올랐다는 의미였다.

탑에서는 하나의 스탯에 올인 하는 것보다, 골고루 향상 시키는 게 효율이 좋다.

힘 하나만 무식하게 강해도, 체력 스탯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몸이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밸런스가 맞을 수록 강하다.

즉 광폭화 상태의 주오령이 덤벼 든다면 버거운 전투가 될 게 틀림 없었다.

뿌드득.

주오령이 힘을 주자 염소의 뿔이 가볍게 뜯어졌다.

녀석은 챔피언 벨트를 자랑이라도 하듯 염소의 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도 잠시 주오령은 바닥에 뿔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 진영의 앞으로 걸어왔다.

저벅, 저벅.

여전히 새빨갛게 물든 두 눈은 주오령이 광폭화 상태에 있다는 증거였다.

베르세르크 클래스의 유일한 단점은 이성이 없다는 것.

이성을 잃고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게 광폭화 상태였다.

“······.”

주오령은 바로 앞까지 다가와 진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어떤 준비 동작이나 전조도 없이 주오령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부웅!

‘이럴 줄 알았다.’

콰앙!

공기를 찢는 묵직한 공격에 진영이 뒤로 밀려났다.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들고 있던 몽둥이로 공격을 막아내는 게 고작.

손이 얼얼할 정도였다.

“재밌는 녀석이군.”

주오령이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그러고선 피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긴 뒤, 제멋대로 자리에 주저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웃옷은 처음부터 없었고, 바지는 너덜너덜해져서 거의 알몸이나 다름 없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수도승 같은 모습이었다.

그제서야 진영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건가? 광폭화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달려들 줄 알았는데, 한 마디하고 주저 앉아 버렸다.

심지어 광폭화 상태에서 침착하게 회복을 우선시하다니?

‘그게 가능한 건가?’

주오령 말고 베르세르크 클래스를 가진 사람의 최후를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광폭화 특성이 발동 되고나서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팀원에게 살해 당하거나, 강력한 몬스터에게 살해당하거나.’

이성을 잃은 베르세르크는 아군과 적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아군이 전멸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아군에게 죽거나, 강력한 몬스터에게 단신으로 덤벼 들어 죽거나.

하여튼 죽는 결말이 전부였다.

‘워낙 미친놈이어서, 광폭화가 되어도 그대로 미친 놈이란 건가.’

명상을 하듯 눈을 감은 주오령은 체력을 회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주오령을 가만히 놔두어야하는가. 진영은 잠시 고민했다.

회귀 전 주오령이 보여 주었던 활약은 굉장 했었다.

단신으로 활동하며, 오로지 탑의 공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맹수.

0층에서 99명을 죽이고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

이 탑에서 깨끗한 사람은 애초에 없다.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주오령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인을 자행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탑을 오른다는 맹목적인 목표는 오히려 진영과 같았다.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탑을 빨리 공략하는 게 최선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탑을 향해 발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몇 년 후 펼쳐질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영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봐야 했다.

주오령도 탑 공략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용해야 했다.

‘회귀를 수 천번을 해서라도 꼭 해내겠어.’

진영의 다짐과 동시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 보상 계산이 끝났습니다. 보스 처치 보상이 지급 됩니다.]

우우웅.

허공에서 보랏빛 웜홀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코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오령은 코인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뭐, 관심이 없으면 나야 좋지만.’

그가 명상 하고 있는 틈에 진영은 모든 코인을 주워담았다.

[ 최다 기여도 플레이어게 100코인이 지급 됩니다. ]

그렇게 획득한 코인이 180 코인.

염소 마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민첩을 2단계 까지 강화한 것을 포함해도 이득이었다.

[ 소지 코인 개수 : 261 개 ]

아무래도 0층에서 가디언을 쓰러뜨렸을 때보다는 보상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가디언 처치는 히든 퀘스트이기도 했으므로.

툭.

코인을 다 뱉어냈다고 생각한 웜홀에서 아이템 하나가 떨어졌다.

“이건······.”

진영은 아이템을 주워, 정보를 확인했다.

[ 아이템 정보 ]

이름 : 가죽바지

등급 : 일반

설명 : 잘 찢어지지 않는다.

내심 기대했는데, 진짜 별 거 아니었다.

윗층에 있는 대형 클랜들이 굳이 1층 보스를 잡으러 내려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진영의 시선이 주오령을 향해 돌아갔다.

“주오령, 이거라도 입어라.”

진영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주오령의 앞으로 가죽 바지를 떨어뜨렸다.

보스의 어그로를 끄느라 나름 고생했는데, 이거라도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때마침 헐벗고 있었으니 딱이었다.

“······.”

슬쩍 눈을 뜬 주오령이 바지와 진영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면 진짜 보상을 한 번 챙겨볼까.’

보스를 쓰러뜨리고 뱉는 보상은 오히려 부가적인 요소였다.

진영은 싸늘하게 쓰러진 염소 마수의 근처로 다가갔다.

주오령이 집어 던졌던 뿔이 떨어져 있었다.

뚝.

진영이 힘을 주자 어렵지 않게 뿔을 부러뜨릴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눈독 들이고 있었다.

이 뿔은 마력이 굉장히 잘 흐르는 재료인 게 분명했다.

‘논 아이템(None Item).’

탑 내에서 아이템으로 인정되지 않는 물건들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탑을 한참 오르고 나서야 밝혀지는 사실 중 하나였다.

아이템으로 취급 되지 않는 것들 중에서 굉장한 성능을 가진 물건들이 많았다는 것.

‘윗부분만 떼어서 가져가면 되겠군.’

가장 마력이 많이 응축되어 있어 효과가 좋은 부분이었다.

탑의 상층으로 갈수록 이런 재료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물론 그냥 섭취하기에는 아쉬운 아이템이었다.

“아, 깜짝 놀랐네······.”

뿔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어느새 명상에서 깨어난 주오령이 코 앞까지 다가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광폭화 상태는 끝났는지 눈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쳐 있었던 곳도 어느 정도 회복 되어 있었다.

‘주오령 한정 사기특성이라는 건가.’

진영은 주오령을 무시하고 신전의 바깥으로 나갔다.

보스가 부숴놓은 벽에 구멍이 훤하게 뚫려 있어 나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1층의 숲에는 먹을 게 풍부하긴 했지만 사실 다음층으로 넘어가면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진영이 다음층으로 넘어가려고 입을 여는데, 어느새 따라 나온 주오령이 말을 걸었다.

“난 이제 다음층으로 올라가겠다. 너는 어떻게 할거지?”

“······?”

진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오령을 돌아봤다.

진짜 미친놈이었다.

주오령이 갑자기 친하게 굴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에 진영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놈이 다른 사람하고 협력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못들었다.

“올라갈건데. 왜 반말이지?”

“좋아, 내가 먼저 가 있도록 하지.”

“······.”

애초에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이야기를 끝으로 주오령은 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2층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 당황스럽네.”

그러고보니 자신이 건네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설마 그것 때문에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 머리를 긁적인 진영은 다음층으로 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다음층으로 이동하겠다.”

특정한 단어를 말해야 하는 상태창과 달리 층을 이동하는 건 간단했다.

조건이 달성 되었을 때 이동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충분했다.

정보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 2층으로 이동합니다. ]

그런데 정보창이 그게 끝이 아니었다.

[ 달성 포인트 : 10700 ]

[ 목표 수치의 107배의 포인트를 달성하셨습니다. ]

[ 압도적인 미션 클리어! ]

[ 히든 퀘스트 ‘식인 염소 마수 처치’를 클리어하셨습니다. ]

[ 업적 : ‘1층의 지배자’를 달성하셨습니다. ]

연달아 올라 오는 정보창들.

그제서야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특별 보상을 지급합니다. ]

‘······그렇군.’

보스 자체의 보상이 적은 건 당연했다.

언제든지 위층에서 내려와 사냥할 수 있는 보스였으니까.

하지만 1층에 처음 올라와 미션과 동시에 보스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게 당연했다.

‘아주 좋아. 더 없이 완벽한 초반이야.’

흡족스런 보상창과 함께 진영은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 * *

김지훈은 진영보다 한 발 먼저 2층에 올라와 있었다.

미리 2층에 대해 듣고 올라 왔기 때문에 마음은 편안했다.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문제가 있다면, 이곳의 룰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2층 : 영혼의 쉼터 - 제비 뽑기 ]

설명 : 안전 구역 밖에서 몬스터를 잡아 제비를 뽑으세요. 3층 진입 권한을 포함한 다양한 보상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퍼엉!

김지훈이 공중에 떠 있는 설명을 읽기가 무섭게 강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피 범벅이 된 사내 하나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내, 팔! 팔이!”

플레이어 하나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은 쪽지를 확인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김지훈의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안전 지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시키는대로 했으면 그런 일 없었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비웃음을 지어 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오동성.

그는 자신의 클래스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2층을 장악했다.

“저 사람은 그대로 놔두고 이제 다음 사람이 나가서 쪽지를 구해오시죠.”

그의 말에 순서가 정해져 있던 여성 플레이어 하나가 조심스럽게 안전지대 밖으로 나섰다.

2층은 동굴의 형태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가운데의 분수를 중심으로 100m.

붉은 선이 그려져 있는 곳까지가 안전지대였다.

20명 가량의 사람이 오동성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하고 있었다.

“저기, 너 방금 왔구나.”

김지훈이 상황을 살피며 두리번거리고 있자,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아, 네. 여긴 몬스터를 잡아서 제비 뽑기를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놈들이 가진 쪽지가 그 제비인데, 여기서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으면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데요?”

질문을 받은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지훈의 귓가에 손을 가져다댔다.

“쓰레기 같은 새끼지. 2층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고 자기 좋을대로 하고 있어.”

“그게 무슨······.”

김지훈이 반대로 물어 볼 새도 없이, 뒷담화를 시도하던 남자의 얼굴이 날아갔다.

찰팍.

지훈의 얼굴에 붉은 피가 튀었다.

워낙 순식간이라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놀랄 법한 상황인데도 주변의 사람들은 조용했다.

이미 그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이거 어린 친구가 왔네. 어서 와, 방금 죽은 그 놈이 했던 말대로야. 내 말만 잘 따르면 무사히 3층으로 넘어가게 해줄게.”

어느새 가까이 온 오동성은 남자의 시체를 붙잡고 안전지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살짝 던졌을 뿐인데, 시체가 속이 빈 인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정신차리고, 배고프면 분수에서 물이라도 마시고 있어.”

툭툭.

오동성이 김지훈의 뺨을 가볍게 쳤다.

먼 거리였는데 어떻게 그 이야기를 다 들은거지?

심지어 그 짧은 순간에 남자를 죽이다니.

‘강하다. 어쩌면 진영이 형보다 강할지도 모르겠어.’

김지훈은 분수대의 물을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안전 지대 밖으로 나갔던 여자가 돌아왔다.

팔에 큰 상처를 입어 상의가 피로 물든 채였다.

“여기 있어요.”

“그래, 좋아.”

여자는 오자마자 가지고 있던 쪽지를 오동성에게 넘겼다.

쪽지를 이리저리 살펴 보던 오동성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이제 들어가서 쉬고 있어.”

“제발, 이제 3층으로 보내주세요.”

“알았으니까 들어가 있으라니까?”

오동성이 짜증난 듯 말하자, 여성은 하는 수 없이 다친 팔을 붙잡고 분수대로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네 눈에는 이게 괜찮아보여?”

괜히 김지훈을 향해 화풀이를 한 여성은 분수대의 물을 꿀꺽 꿀꺽 마셨다.

그러자 몸에 났던 상처가 서서히 회복 되기 시작했다.

“아, 쉽다 쉬워.”

오동성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소파에 앉았다.

익숙하게 여자에게 건네 받은 쪽지를 펼치자 뿅하는 소리와 함께 코인 10개가 튀어 나왔다.

코인은 고스란히 오동성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쪽지 확인이 끝나자, 오동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야, 꼬맹이. 왔으면 일을 해야겠지? 저기 나가서 몬스터 하나 잡고 쪽지 가져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다름아닌 김지훈이었다.

지목 당한 김지훈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안전지대 밖을 바라보았다.

암흑 너머로 번뜩거리는 몬스터들의 눈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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