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히든피스 다 훔침(2)
결과적으로 진영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제단을 향해 사용하는 진영의 스킬은 틀림 없이 먹혀 들고 있었다.
‘스틸’
스틸처럼 제약이 크고 효과가 미미한 스킬은 MP 소모가 거의 없었다.
0층에서 수 십명의 코인을 전부 훔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진영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외쳤다.
무작위의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뽑아내는 뽑기.
무한하게 도전할 수 있다면 당첨 확률은 100%였다.
‘나와라.’
33번 중에 약 1번. 도전 횟수에 제한이 없다고는 하나 시간이 문제였다.
정말 운이 없다면 한참이 걸릴 수도 있었다.
쿠우웅!
신전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과 함께 돌부스러기가 떨어져내렸다.
반대편의 벽을 향한 보스의 돌진에 신전의 벽에 쩌저적 금이가 있었다.
돌진과 동시에 염소의 뒤로 이동한 주오령은 뿔에 매달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얌전히 죽어라!”
퍽, 퍽.
주오령은 계속해서 염소 마수의 머리를 가격해대고 있었다.
인간의 스탯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대도 골이 울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이, 거머리 같은 놈이!”
부웅!
염소 마수가 머리를 털어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주오령은 뿔에 매달린 자신의 자세를 바꿨다.
다리만으로 몸을 지탱한 상태로 주먹을 휘둘러 염소 마수의 눈을 정확히 가격했다.
“크아아악!”
한 쪽을 부여 잡은 염소 마수가 괴성과 함께 주저 앉았다.
주오령이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더럽게 오래 버티는군.”
“내가 할 말이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고작 갓 0층에서 올라 온 플레이어 하나에 고전하고 있다는 상황이 보스에게는 이해가가지 않았다.
떼어내려고 해도 원숭이 마냥 이리저리 자신의 몸을 타고 도망다니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결국 염소 마수는 다시 한 번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쿵, 쿵.
약이 머리 끝까지 오른 보스가 신전의 바닥을 부수며 발을 굴렀다.
불똥은 애꿎은 진영에게로 넘어갔다.
제단에 스틸 스킬을 사용하면서도 끊임 없이 보스를 주시하던 진영의 마음은 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젠장, 하필이면.’
염소 마수가 돌진하려는 방향은 진영이 있는 제단 쪽이었다.
제단이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아이템을 훔쳐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틸!’
다급해진 진영이 계속해서 스틸 스킬을 시도했다.
염소 마수가 들이 박기 전에 히든 피스를 손에 가져와야 했다.
부웅! 부웅!
염소 마수는 마력이 담긴 뿔을 사납게 휘두르며 돌진을 시작했다.
녀석이 밟고 지나가는 바닥에서는 돌 파편이 튀어올랐다.
수 십미터는 되었을 제단과의 거리가 일순간에 좁혀졌다.
‘제발!’
진영은 간절함을 담아, 외쳤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콰아아아앙!
마력이 담긴 보스의 돌진과 이름 없는 신의 제단이 부딪히며 엄청난 수의 파편이 솟구쳤다.
제단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나며 사라졌다. 뿜어져 나오는 먼지 속에서 보스가 머리를 털어냈다.
가까스로 기둥 뒤로 몸을 숨긴 진영이 식은땀을 닦아냈다.
‘진짜 아슬아슬 했네.’
염소의 뿔이 제단을 덮치기 바로 직전, 마지막 시도에서 진영은 제단의 아이템을 훔치는데 성공했다.
그 증거로 진영의 손에는 붉은 색의 구슬 하나가 쥐여져 있었다.
[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훔쳤습니다. ]
원래대로라면 세 가지의 시험을 통과한 보상으로 지급 되는 히든 피스였다.
거의 공짜로 얻은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신화준도 극초반인 1층부터 히든 피스를 손에 넣지는 못했다.
녀석조차 15층까지 올라 간 뒤, 역으로 내려오며 히든 피스를 획득했다고 들었다.
진영은 끓어 오르는 성취감에 주먹을 쥐었다.
‘이름 없는 신의 에고’
미끄러운 구슬의 표현이 매끄럽게 빛났다.
이건 히든 피스 중에서도 특별한 아이템이었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효과가 맞을거야.’
신화준이 하도 자랑을 해대는 통에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녀석은 온갖 히든 피스와 듣도 보도 못한 아이템을 온 몸에 둘둘 두르고 다녔다.
신화준 본인이 먹었다고 하는 약초나, 영약만 해도 스스로 세기 힘들어 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내가 그 모든 아이템을 손에 넣어주겠어.’
진영은 허리춤에 매어 두었던 몽둥이를 꺼냈다.
자신을 습격했던 강도 무리한테서 빼앗은 물건이었다.
별 거 아닌 몽둥이처럼 보였지만, 엄연한 무기로 구분되는 아이템이었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몽둥이
등급 : 일반
효과 : 공격력 1
‘이거면 충분하고도 남지.’
빠각!
힘을 주어 옆의 기둥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진영의 힘은 ‘3단계 인외(人外)’.
몽둥이는 간단하게 반으로 쪼개졌다.
오히려 사정거리가 짧아졌지만 그게 진영이 바라던 바였다.
“끄윽, 한 놈을 죽이니 또 다른 쥐새끼가 튀어나왔군.”
기둥 뒤에서 몽둥이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듣고, 보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녀석은 주오령에게 한 쪽 눈을 어이 없게 잃고 만 것이다.
그 분노는 고스란히 진영을 향했다.
살이 떨릴 듯한 살기에도 진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녀석의 주위를 끌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낸거였으므로.
진영은 부러진 몽둥이에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박아 넣었다.
우우웅!
은은한 붉은 빛과 함께 부러진 몽둥이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 이름 없는 신의 에고를 장착해 아이템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
[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무기의 분류가 ‘단검’으로 분류됩니다. ]
1층에 자리한 첫번째 히든피스 ‘이름 없는 신의 에고’.
첫번째 효과는 등급을 한 단계 상승 시켜주는 것이었고.
두번째 효과는 사용자의 의도를 반영해 장비의 분류가 새롭게 결정된다.
[ 아이템 설명 ]
이름 : 특별히 강화된 부러진 뾰족한 몽둥이
등급 : 레어
장비 분류 : 단검
효과 : 공격력 10, 1% 확률로 출혈
이름만 보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99층까지 올라 본 진영은 이 무기의 가치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단언컨데 이 뾰족한 몽둥이는 멸망의 탑 5층까지 있는 모든 무기 중에 가장 뛰어난 무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클래스에 적절한 무기를 사용해 데미지가 25% 증가합니다. ]
[ 무기 숙련도가 1단계 상승합니다. ]
클래스에 따른 추가효과까지.
모든 준비가 끝난 진영이 몽둥이를 역수로 쥐어들었다.
본격적인 염소 사냥 시작이었다.
* * *
“어딜 보는 거지? 나를 봐라 염소! 죽여주겠다!”
곧바로 보스와의 결전이 시작될 줄 알았으나, 이외의 목소리에 염소 마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방금 전 돌진에 목숨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주오령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
심지어 새하얀 눈을 번뜩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으니 보스는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이 자식!”
쿠웅!
염소 마수가 발을 한 번 구르자 신전의 돌바닥이 일제히 금이 가며 파편을 튀겼다.
1층에 군림하는 마수로서 처음 겪어보는 치욕.
염소 마수의 몸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이, 이 버러지가 나를 농락해?”
주오령은 확실히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 낼 수 없는 괴력을 일순에 뿜어내는 신체와 광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행동거지.
그저 인간의 몸으로 1층의 보스를 농락하는 정신나간 피지컬.
‘미안하지만 보상은 내가 챙겨가겠다.’
보스의 모든 어그로가 주오령에게 끌린 지금, 진영은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때를 노리기만 하면 됐다.
주오령은 동의하지 않은 합동 사냥이었다.
1층의 보스는 더 이상 주오령을 먹잇감으로 보지 않았다.
푸른 마력이 염소의 눈에 맺히고, 뿔도 빛나기 시작했다.
콰앙!
염소 마수는 네 다리를 단단히 땅에 고정했다.
마수의 코에서 푸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당장이라도 튕겨져 나갈 것 같은 압박감이 신전을 가득 메웠다.
‘주오령이 어떻게 이겼는지 알 수 있겠군.’
그 압박감을 고스란히 받아낸 주오령은 긴장하기는 커녕 웃고 있었다.
주오령은 클래스의 특성 덕분에 목숨을 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보스를 처치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스를 처치하는 건 나다.’
보스가 주오령을 표적으로 노리고, 돌진을 위한 힘을 모으는 동안 반대편 벽을 향해 달렸다.
진영이 뜀박질을 시작함과 동시에 강한 파공음이 들렸다.
콰아아!
마력을 온 몸에 두른 염소 마수가 주오령을 향해 탄환처럼 쏘아졌다.
인간이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일반 사람은 닿는 것만으로 산산히 찢어지는 파괴력이었지만, 주오령은 피하지 않았다.
쿠구구궁!
보스의 공격 한 번에 막혀 있었던 신전의 벽이 훤히 들어났다.
그 충격에 오래 된 신전의 천장 또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잔해를 피하며 진영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염소 마수를 향해 달려 들었다.
“!”
염소 마수의 남은 한 쪽 눈이 진영을 발견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한만큼 돌진의 반동에 염소 마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기 때문이다.
‘강한 돌진 스킬은 필연적으로 반동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남은 건 최대한 급소를 노려 치명상을 만들어내는 것 뿐이었다.
‘민첩 강화.’
진영이 신체가 하얗게 빛나며, 민첩 스탯이 한 단계 상승했다.
그대로 기세를 타고 땅에서 뛰어 오른 진영이 마수의 등을 발판으로 삼아 다시 한 번 목 부근으로 뛰어 올랐다.
푸욱.
역수로 잡은 날카로운 몽둥이가 보스의 목 근처에 꽂혔다.
촤아아악!
진영은 그대로 무게를 실어 떨어져 내렸다.
능력치가 초기화가 되었을지언정 전투 경험은 그대로였다.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는 부위가 단숨에 갈라졌다.
“크허어어어억!”
무기의 날카로운 부분이 염소 마수의 가죽을 종잇장처럼 가르며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혔다.
무기 본연의 공격력 자체가 워낙에 뛰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히든 피스의 압도적인 성능.
보스를 상대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촤아악!
쿵.
보스는 제대로 된 발악도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거대한 몸뚱이를 땅바닥에 뉘였다.
[ 1층의 보스를 토벌하셨습니다! ]
[ 가장 많은 피해를 가한 플레이어 : 이진영 ]
[ 결정타를 가한 플레이어 : 이진영 ]
[ 기여도에 따라 적절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
“휴······.”
사실 주오령이 없었다면 보스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처음 계획은 지훈이 밖에서 어그로를 끄는 동안 진영이 제단에서 히든 피스를 챙기는 게 끝이었다.
마지막 돌진은 민첩 스탯을 3단계 인외까지 올리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으므로.
“이제 보상만 챙겨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면 되겠네.”
“으······.
보상의 지급을 기다는데,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까지 회복이 빠를 줄은 몰랐는데.’
무너진 잔해와 보스의 시체 사이에서 만신창이가 된 주오령이 기어나왔다.
“······.”
군데 군데 부러진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지만, 멀쩡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타오르는 듯 붉게 변한 눈. 붉은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주오령의 주변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S급 베르세르크.
숱한 전투 속에서 끝 없는 피를 갈구하고, 이성을 잃은 채 자신의 목표만을 맹목적으로 쫒는 광전사.
버서커라고도 불리는 이 클래스는 탑에서 여러 기적을 낳았다.
그리고 주오령의 클래스가 바로 그 베르세르크였다.
‘광폭화······. 였던가.’
꿀꺽.
주오령을 마주한 진영이 침을 삼켰다.
광폭화.
체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이성을 잃는 대신 모든 능력치가 2단계 상승하는 치트급 특성이었다.
광폭화 되어 붉게 변한 주오령의 눈이 진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끝이 아닐지도 몰랐다.
‘여기서 주오령과 싸워야 하는건가.’
무의미한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오령은 워낙에 종잡을 수 없는 플레이어였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처리해야했다.
진영이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앙-!
주오령이 부숴진 신전의 잔해를 박차고 뛰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