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히든피스 다 훔침(1)
뚝. 뚝.
마르지 않은 피가 주오령에게서 흘러내렸다.
그의 몸을 적신 붉은 액체 중에 자신의 것은 없었다.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흠뻑 뒤집은 셈이다.
0층에서의 싸움이 치열했던 걸까.
근육으로 다부져진 그의 상체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진영은 한 눈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맹수······. 내가 아는 주오령이 맞는 것 같다.’
주오령은 맨발로 신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는 신전 주변의 돌바닥에 피로 된 발자국을 남기며 이동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신전.
보스가 기거하는 바로 그 장소였다.
‘저 녀석은 겁도 없나보네.’
주변을 굴러다니는 조각난 시체들과 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0층에서 갓 올라온 플레이어가 처리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오령은 주변을 경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신전으로 향했다.
독특한 구조물이 그의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리라.
‘아냐······. 어쩌면 주오령이 1층의 보스를 잡았을 수도 있겠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생각해보면 저 녀석 말고 보스를 잡을 만한 사람이 없어.’
후에 신화준이 히든 피스를 얻기 위해 1층에 왔을 때는 보스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와서 보스를 잡을 이유도 없었다.
일단 1층의 보스의 포지션이 상당히 애매했다.
굳이 보스를 잡지 않아도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데 상관이 없었기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보스와 마주하지 않은 채 윗층으로 올라갔다.
‘운 없이 보스 근처에서 소환 된 플레이어들은 그대로 먹이가 되었을테고.’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플레이어들이 1층 보스를 사냥하기에는 노력에 비해 얻는 값어치가 적었다.
층을 거슬러 내려오려면 코인이나 아이템이 필요한데, 1층인 만큼 보스가 그다지 많은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니므로.
‘0층 가디언은 품 속에 코인이라도 품고 있었지. 1층 보스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한마디로 계륵이었다.
보스를 쓰러뜨릴 정도의 힘을 손에 넣으면 굳이 보스를 쓰러뜨릴 이유가 사라진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느샌가보니 1층 보스가 사라져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주오령이 보스를 잡는 게 확실한 것 같아.’
어쩌면 히든 피스에 더불어 보스의 보상까지 챙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오령이 신전을 향해 들어 간 것을 확인한 진영이 숨을 죽이고 있던 지훈에게 말했다.
“우선 너는 다음층으로 올라가는 게 낫겠어.”
“저 혼자요?”
끝까지 진영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지훈이었다.
하지만 진영은 단호했다.
“방금 봤던 녀석 때문에 안 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보이기는 했는데······.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데요?”
“이 탑에서 가장 정신 나간 플레이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진영은 나무 뒤에서 빠져나왔다.
아쉬워하는 지훈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선 2층에가서 기다리고 있어줘.”
“······. 알겠어요.”
0층에서 진영의 활약을 보고 난 뒤로부터, 지훈은 진영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따라가고 싶었지만, 진영은 단호해 보였다.
애초에 진영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단순한 능력치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그러했다.
강도들에게 포위 당했을 때도 그렇고, 지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작정 따라가는 게 답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지훈은 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그래. 몇 가지 알려줄게.”
진영은 2층에서 알아야 할 중요한 몇 가지 내용을 지훈에게 알려 주었다.
2층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한 숨 쉬어가는 곳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그것도 운이따라야하기는 하지만.
진영의 말을 깊숙히 새겨들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올라 갈게요.”
몬스터를 사냥해 100포인트라는 조건은 이곳까지 오며 달성해 놨다.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대로 상태창을 누르려던 지훈이 머뭇거렸다.
“저, 형. 제가 이상한 소리 하나만 할게요.”
줄곧 진영을 지켜본 지훈은 역시 찜찜한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진영은 탑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탑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진영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아직 가보지도 않은 2층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
지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미래에서 오셨어요?”
그의 물음에 진영은 가볍게 대답했다.
“어, 맞아. 이제 올라가봐. 2층에서 설명해 줄테니까.”
“아하, 그렇구나. 네, 형 먼저 가 있을게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지훈이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정보창을 눌렀다.
새하얀 빛무리가 몸을 휩싸고 나서야, 지훈은 엄청난 사실에 경악했다.
‘어, 어라? 진짜로 미래에서 왔다고?’
* * *
지훈이 빛과 함께 2층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서, 진영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김지훈은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는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살아남았던 게 김지훈이였다.
‘문제가 되는 건 주오령.’
회귀 전, 그의 얼굴을 직접 본 건 단 한 번 뿐이었지만, 그 때의 충격이 너무나 강렬해 잊지 않고 있었다.
맨 몸으로 44층 보스의 몸 속에 들어가 뱃가죽을 찢고 나온 뒤, 그는 자조하듯이 말했다.
- 보스는 어디에 있지?
그 자리에 있던 수 십 명의 플레이어가 그의 발언에 경악했다.
몇 주에 걸쳐 44층의 보스에게 많은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죽을 힘을 다해서 도전하고 있던 보스를 쓰러뜨리고 하는 말이 보스가 어딨냐니.
그 레이드에서 소중한 동료를 잃은 플레이어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주오령을 죽이려고 했다.
- ······?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표정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탑의 최전선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과 대사가 아니었다.
주오령의 기행과 특출난 능력은 탑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했다.
전세계의 플레이어가 그의 이름을 알았다.
탑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행동만으로 움직이며, 타인과 절대 협력하는 일이 없었다.
압도적인 전투센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며, 목표를 향한 맹목적인 본능은 야생동물을 아득히 뛰어 넘는 놈이었다.
‘이미 0층에서부터 99명을 죽이고 올라 온 놈이야.’
한 때 녀석의 행적을 궁금해하던 플레이어들이,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해 주오령의 기억을 엿본적이 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사용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혼절.
있었던 일을 중얼중얼 읊는 게 한계였다고 한다.
0층에서의 일도 그 때 밝혀진 일이었다.
‘나중에 신화준한테 죽기는 하지만······. 탑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하면 늘 거론되던 사람 중 하나였지.’
불사신일 것만 같던 그도 결국 신화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긴 한다.
신화준은 수 십 번 회귀를 했을테니, 자신한테 방해 된다 싶은 건 모두 제거하는 게 당연했으리라.
지금 어딘가에도 분명히 신화준이 있을 것이었다.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치더라도.
‘······. 신화준에 대한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어쨌든 신화준과 마주칠 일은 없었다.
회귀 전에도 신화준은 15층까지 올라갔다 탑을 내려오며 히든 피스를 챙겼다고 했으니까.
지금 1층에 있지는 않을 거다.
진영은 마음을 굳혔다.
‘이 상황을 잘 사용해야겠어.’
잘 만하면 일이 더 쉽게 풀릴 가능성이 컸다.
주오령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진영은 붉은 발자국이 찍힌 지나간 길을 따라 신전 앞에 다다랐다.
고오오오······.
기이한 마력이 담긴 바람의 흐름이 느껴졌다.
신전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이미 주오령이 보스랑 만나서 치고 박고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진영은 천천히 신전 안 쪽으로 발을 들였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보스였다.
새하얀 털과 검은 뿔을 가진 반인반수의 염소가 거대한 옥좌에 앉아 있었다.
5m가 넘는 크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이 들기에 충분했다.
“······.”
보스는 지금 잠을 자고 있었다.
구역 근처까지 와도, 보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건 이래서였나보다.
주오령은 자고 있는 보스인 염소 마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을 잡으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는건가.”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탑의 룰을 토대로 중얼거리더니 몸을 풀기 시작했다.
0층에서 그가 모든 플레이어를 죽이고 코인을 모았다는 것도, 어쩌면 멋대로 룰을 오해한 탓일지도 몰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주오령은 정상이 아니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압도적인 크기의 염소 마수를 보고서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겠지만, 주오령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뜨리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깨우기 전에 움직여서 미리 자리를 잡자.’
어차피 주오령이 보스를 깨울 것이 확실했다.
진영은 신속하게 보스가 앉아 있는 옥좌를 향해 움직였다.
팅!
[ 특수한 상황입니다. ]
[ 클래스 도둑의 고유 특성이 발동됩니다. ]
[ 은밀함 : 잠입 시 12.5% 확률로 적이 당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
신전에 들어와 몰래 행동하는 것으로 도둑의 고유 특성이 발동했다.
D급 도둑의 특성인만큼 효과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만,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실제로 몇 번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으니까.
‘주오령이 보스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히든 피스를 획득한다.’
녀석이 보스를 잡는데는 시간이 꽤 소모 될 터였다.
주오령의 주머니에서는 0층에서 얻은 100개의 코인이 그대로 있었다.
본능적으로 챙겨오기는 했지만 사용할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치 자체는 일반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보스를 쓰러뜨릴 것 같다는 게 주오령의 무서운 점이었지만.
‘내 목표는 보스가 앉아 있는 옥좌.’
쿠울 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 있는 보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옥좌.
사실 보스가 멋대로 의자로 사용하고 있을 뿐 본래의 목적은 제단이다.
이곳 태고의 신전은 어떤 이름 없는 신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이름 없는 신의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난 준비 됐어. 이제 주오령이 보스를 깨우기만 하면 된다.’
제단 바로 뒤의 기둥까지 이동한 진영이 계좌에서 코인을 꺼내 들었다.
이름 없는 신의 시험을 치르기 위한 제물은 바로 코인.
거기에 필요한 양이 자그마치 300개였다.
염소 마수가 주오령에게 정신을 쏟는 동안 빠르게 제단으로 다가가 제물을 바치고, 시험을 발동시키는 것이 계획이었다.
퍼억.
‘시작한다.’
진영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주오령이 염소의 다리를 걷어 찼다.
가벼운 충격에 반인반수 염소의 번쩍 눈이 뜨였다.
“······?”
바닥을 확인한 염소 마수는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왠 조그만 인간 하나가 서 있었다.
설마, 이 놈이 날 걷어찬 건가?
염소 마수를 쓰러뜨리기로 결정한 주오령은 무모하게 덤벼 들었다.
염소의 다리를 붙잡은 채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두 배가 훌쩍 넘는 체급 차이였다. 어림도 없어 보이는 시도였지만.
뿌득, 뿌득.
주오령이 팔뚝과 허리, 다리에 있는 힘을 쥐어짜자 근육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지 알 수 없는 힘.
그야말로 괴력이었다.
“······!”
염소 마수의 눈이 커지며 움직임을 취하려던 순간, 이미 보스는 허공을 날고 있었다.
쿠웅!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던 5m짜리 염소 마수가 땅에 그대로 쳐박혔다.
꿈뻑, 꿈뻑.
생전 처음 겪는 일에 염소 마수가 눈만 껌뻑였다.
진영은 곧장 제단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주오령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네.’
맨 몸으로 보스에게 달려드는 건 무모하다 못해 멍청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 맨 몸으로 보스에게 한 방 먹인 것도 사실이었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보스도 얼탱이가 없었는지 바닥에 누워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쨌든 나한테는 지금이 기회다.’
신화준이 했던 말을 진영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도 녀석이 자신의 무용담을 반복해서 늘어놓는 바람에 기억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었다.
- 1층에서 히든피스 얻는 건 진짜 쉬웠지. 제단에다가 코인을 300개 던지면 그 때부터 무슨 시험이 시작되거든. 그냥 그거만 다 클리어하면 되 더라고.
그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녀석은 자신이 아이템을 훔쳐 회귀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테니 중요한 정보를 흘리고 다닌 셈이다.
제단 가까이 이동한 진영은 300개의 코인을 제단을 향해 던졌다.
새하얀 은빛이 반짝이며 제단 위로 코인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신전이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 옥좌의 숨겨진 비밀을 풀었습니다. ]
[ 이름 없는 신의 제단에 300코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
[ 이름 없는 신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
[ 신전이 폐쇄 됩니다. ]
알림과 동시에 신전의 입구가 하나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
진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신화준이 허풍치든 떠든 정보에는 당연히 진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신전의 이변에 눈치 챈 보스가 땅을 짚고 일어났다.
녀석도 신전이 변화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무슨 수작을 부린거지?”
그러나 질문을 할 대상이 잘못되어 있었다.
보스가 바라보고 있는 주오령과 신전의 변화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었으므로.
주오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널 죽이고 2층으로 올라가겠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군.”
킁.
염소 마수는 기가 찬 듯 콧김을 뿜었다.
한 입거리도 안되는 음식거리가 제법 당차게 나오니 조금 흥미로운 면도 있었다.
조금 가지고 놀다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소 마수는 자신의 뒷다리를 주오령을 향해 내질렀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보통의 플레이어였으면 그대로 즉사 했겠으나.
스윽-.
주오령은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커다란 뒷다리를 피해냈다.
뿐만 아니라 타이밍에 맞춰 염소 마수의 다리 털을 붙잡고 올라섰다.
“!”
마수가 곧바로 주오령을 떼어내기 위해 왼발굽을 휘둘렀다.
염소의 털을 꽉 움켜진 주오령은 보스가 휘두르는 반동에 맞춰 몸을 틀어 올렸다.
자신보다 큰 몸집의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사자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이, 이 놈이!”
가죽을 뜯어 낼 듯한 기세로 보스의 몸을 타고 오른 주오령이 염소 마수의 뿔을 붙잡았다.
팅!
그와 동시에 신전의 허공에 정보창 하나가 떠올랐다.
[ 첫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
[ 시험 1 : 피로 신앙심을 증명할 것 ]
덜컹!
신전의 한 가운데로 잿빛 그릇 하나가 솟아 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했던 자신의 서식처가 변하는 게 보이자 염소 마수도 무언가가 잘못되가고 있음을 느꼈다.
“네 놈! 같잖은 짓거리는 그만하고 목적을 말해라!”
거세게 뿔을 흔들어 댔지만, 주오령은 조금도 떨어질 기색이 안 보였다.
분노한 염소가 머리를 치켜 올리고 땅에 발을 굴렀다.
당장이라도 신전의 벽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말했지 않나. 널 죽이겠다고.”
둘이서 엄한 결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진영은 차분히 상황을 살폈다.
첫번째 시험은 신전 중앙에 생긴 그릇에 피를 가득 채우는 것.
눈 대중으로 보아도 피가 10L는 필요해 보였다.
신화준 그 자식은 이렇게 말했다.
- 그릇에다가 피를 모으면 되는데, 그게 사람 두 세명은 죽여야 나오는 분량이어서 말이야.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옆에 있는 팀원 몇 명 던져 넣었지. ······. 아, 농담이야. 표정들이 왜 그래? 당연히 바깥에 있는 몬스터 잡아다가 채웠지.
그의 발언을 보아, 같이 간 팀원들을 던져 넣었던 게 확실해 보였다.
신전의 출구가 닫혀 있기도 했고.
‘나 혼자 들어왔으면 갇힌 채로 못나갈 수도 있었다는 거잖아.’
코인으로 체력을 강화해서 피를 쏟아 넣는 법도 있기는 했다.
물론 보스가 눈 떡하니 뜨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주오령이 보스의 어그로를 훌륭하게 끌어주고 있으니 그럴 필요는 더더욱 없었고.
‘나가는 건 나중에 생각하고, 제단부터 확인하자.’
처음부터 진영이 생각한 답은 하나였다.
‘제단이 가진 아이템을 훔친다.’
진영은 확신이 있었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 제단이 보상으로 내놓을 히든 피스를 훔친다.
얼핏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탐욕의 왼손S’
스킬 강화석을 사용해서 얻은 특수 옵션인 탐욕의 왼손.
왼손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대상을 불문하고 3%로 원하는 아이템을 가져온다.
확률은 고작 3%이지만 상관 없었다. 확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복권에 당첨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모든 복권을 전부 다 사면 된다.
그럼 100% 확률로 복권에 당첨될 수 있다.
‘될때까지 시도한다.’
진영은 제단 위에 왼손을 올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동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신전 안에서 진영이 외쳤다.
‘스틸.’
푸른 빛이 진영의 손등을 타고 흘러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