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빨로 최강 플레이어(3)
법도, 도덕도 무너진 세상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힘이다.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무력만이 권력이 된다.
멸망의 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마다 탑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여러가지였지만, 유수형과 그의 무리들은 이러한 방식이 가장 익숙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을 기대했던 걸지도 모른다. 법이나 도덕 같은 가식을 던져버리고 힘과 폭력으로 결정되는 단순한 세상.
‘힘 쎄고 똑똑하게 무리 짓는 놈이 이기는 거 아니겠어?’
유수형은 탑의 4층까지 올라갔지만, 그곳에서 곧장 벽을 느끼고 말았다.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엔 능력이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금방 방법을 깨달았다.
그의 클래스는 ‘C급 살인자’.
처음에는 더러운 기분이었지만 살인자 클래스가 가지는 특성을 확인하고 나서는 오히려 잘되었다 생각했다.
[ ( C급 ) 살인자 고유 특성 ]
- 희열 : 플레이어 처치시 한 명당 20코인을 지급합니다.
그는 뜻이 맞는 무리를 모아 작전을 계획했다. 바로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계획은 깜짝 놀랄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1층으로 내려 오자, 곧바로 그들의 세상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아무것도 모른 채 0층에서 올라 온 플레이어들은 유수형 일행에게 단순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눈에는 플레이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초보 플레이어들은 그저 코인을 뱉어내는 자판기였다.
“아, 그 전에 하나만 묻자. 코인을 어디서 400개나 모은거야?”
이미 유수형의 무리가 진영과 지훈을 둘러 싼 상황.
그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코인의 출처를 물었다.
0층에서 갓 올라 왔을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다기에는 너무 많은 코인이었다.
“어차피 죽일 거라고 하지 않았나?”
“풋, 하는 거 봐서 살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눈 앞의 남자가 애써 태연한 척 하려는 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플레이어 사냥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이번으로 8번째.
지금까지 총 9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렇게 얻은 코인이 180개.
같이 1층으로 내려온 동료들에게 나눠준 걸 제외해도 유수형은 이미 100개의 코인을 사용했다.
너무나도 코인을 얻기가 쉬웠다. 이대로라면 탑에서 손에 꼽는 플레이어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코인을 쓸 줄도 모르는 어중이 떠중이들 상대야 쉽지.’
탑에 입장해서 그 난리를 겪고 1층으로 갓 올라온 플레이어들을 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코인이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강화할 줄 모르는 멍청이들이므로.
“뭐, 좋아. 맞다보면 말하고 싶은 기분이 좀 들 수도 있겠지. 얘들아, 처리하자.”
“오케이.”
“빨리 끝낼 테니까, 저항하지 말라고.”
무리가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갔다.
진영과 지훈은 독 안에 든 쥐처럼 보였다.
유수형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참으려고 해도 솟아나는 웃음 때문에 입가의 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
저 초보 플레이어들은 보물을 잔뜩 짊어진 상자나 다름 없었다!
412개나 되는 코인을 쌓아놓고만 있다니.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유수형은 기쁜 마음으로 진영을 향해 달려 들었다.
강화 된 각력으로 땅을 박차고 나간 유수형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미 412코인은 자신의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휘잉.
화려한 헛손질이 허공을 갈랐다.
‘어라?’
힘껏 내리쳤건만 손 언저리가 허전했다.
그의 손에서 몽둥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실수로 놓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빠각!
그 이유를 알아내기도 전에 유수형의 머리가 쪼개졌다.
유수형이 들고 있던 몽둥이는 어느새 진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 * *
진영은 이런 싸움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말 이 녀석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건가?’
탑 4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유수형에겐 1층에 갓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반대로 99층까지 올라갔다 온 진영에게 있어 유수형은 물에 떠다니는 아메바 수준이었다.
‘아직 초반인만큼 다른 플레이어들의 수준도 비슷하다고 봐야겠지.’
상대의 클래스와 스킬도 생각하지 않고, 쪽수와 피지컬만 믿고 달려 들다니.
코인을 많이 들고 있으면 오히려 경계 해야할 대상이란 건 상식 중의 상식.
자신이 코인을 쓸 줄 몰라 많이 들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긴 하다만.
‘스틸’
코인을 사용해 육체를 강화 해 놓은 건지 유수형은 확실히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움직임이 빨랐다.
그러나 탑에서의 싸움은 피지컬만으로 결정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경험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진영은 어처구니 없이 달려드는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살짝 몸을 틀었다.
한 발 빠르게 진영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은 순간 스킬이 발동했다.
“어?”
헛손질을 한 유수형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스틸 스킬은 상대가 소지한 아이템 하나를 가져오는 것.
진영은 빈 손으로 미리 몽둥이를 휘두르기 직전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스틸에 성공하면 아이템은 오른손으로 들어온다.’
파앗!
스틸에 성공하자마자 진영은 오른손을 강하게 아래로 휘둘렀다.
방금 전까지 빈손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단단한 나무 몽둥이가 유수형의 머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뻐억!
진영이 힘 스탯을 강화하는데 사용한 코인은 약 200개.
도달한 등급은 자그마치 [ 3단계 : 인외 ].
탑에 입장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자신의 신체 능력 그대로를 가지고 시작한다.
특성에 달라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는 있으나 대부분이 시작하는 능력치의 단계는 [ 0단계 : 인간 ].
거기서부터 코인을 사용해 특성 스탯을 향상 시킬 수 있다.
[ 1단계 : 달인(達人) ]
운동선수 중에서도 가장 단련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달인의 영역.
이 수준만 되도 능력치를 투자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을 농락할 수 있다.
총이나 활 같은 원거리 무기가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 2단계 : 철인(鐵人) ]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어, 비약적으로 몸을 강화한 자들이 속하는 철인의 영역.
여기서부터는 일반적인 사람이 상대할 수 없다.
철인의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에게 어설프게 화살은 쏜다면 상대는 가볍게 피하고 급소를 노려 올 것이다.
그리고.
[ 3단계 : 인외(人外) ]
스탯 강화의 3번째 단계.
여기서부터 스탯으로 강화되는 능력은 본격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본래대로라면 인간은 절대로 이러한 힘을 낼 수 없다.
하지만 멸망의 탑에서는 가능했다.
오크나, 트롤처럼 태생 자체가 타고나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스탯 강화를 통해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곳이 진영의 힘 스탯이 위치한 영역이었다.
콰앙!
몽둥이에 맞은 유수형이 바닥을 향해 머리를 쳐박았다.
그와 동시에 진영과 지훈을 향해 달려 들던 유수형의 일행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말 그대로 수박이 터지듯, 유수형의 머리가 깔끔하게 터져버린 탓이었다.
“허, 허억.”
“······?”
“뭐야?”
직접 플레이어들을 죽여 온 잔혹한 범죄자들이 한순간에 얼어붙을 정도로 충격적인 광경.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들 중 가장 강한 유수형이 아무 힘도 못쓰고 그냥 즉사해버렸다. 그것도 처참하게.
그 꼴을 보고도 달려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석궁을 쥐고 있던 플레이어는 바닥에 석궁을 던져 버렸다.
“사, 살려만 줘. 우린 저기 저 유수형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라고.”
“나도야! 제발!”
‘유수형······?’
방금 죽인 남자의 이름을 들은 진영의 눈썹이 올라갔다.
“진짜 우리가 잘못 했어!”
압도적인 무력만큼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것도 없었다.
심지어 진영이 들고있는 412개의 어마어마한 양의 코인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약하게 했다.
진영의 스탯은 이미 강화 되어 있었다. 코인을 쓸 줄 몰라 들고 있는 게 아니란 의미였다.
‘지, 지금도 저렇게 쎈데 들고 있는 코인을 사용하기라도 한다면······.’
4명의 플레이어들은 도망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머지 둘도 하나 둘 씩 무기를 바닥에 던지더니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여럿이 모이면 항상 튀는 놈이 있기 마련.
“야, 이 겁쟁이 새끼들아. 이건 아니지! 살고 싶으면 튀어!”
그 중 하나가 용기를 내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진영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곧바로 진영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도망가는 플레이어를 향해 던졌다.
퍼억.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세 명의 플레이어가 마른침을 삼켰다.
“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쇼.”
“저도요, 진짜 잘못했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남은 세 명의 플레이어를 살펴보던 진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진 거 다 내놔.”
* * *
살아남은 세 명과 죽어버린 두 명의 시체에서 얻은 전리품은 아래와 같다.
42코인과 석궁, 화살 열 개 그리고 몽둥이 세 개.
특히 석궁이 꽤 성능이 좋았다.
[ 아이템 설명 ]
- 이름 : 손질된 석궁
- 등급 : 일반
- 효과 : 민첩 스탯 0.5% 증가, 공격 적중시 다음 공격 적중 확률 10% 증가
1층에서는 직접 만드는 게 아닌 이상 제대로 된 무기 자체를 얻을 수가 없다.
대부분 단단한 나무가지를 주워서 쓰거나, 돌멩이를 던진다.
보기에는 웃겨도 스킬과 합치면 강한 힘을 발휘 한다.
“지훈아······.”
김지훈에게 말을 걸려던 진영이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의 참상에 지훈이 나무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오면 이런 상황이 계속 될거야.”
어차피 그도 겪게 될 일이긴하지만,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기도 했다.
진영이 아는 지훈은 어엿한 플레이어였지만 지금의 지훈은 그저 몇 시간 전에 탑에 들어 온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잠깐···. 속이 안좋았을 뿐이에요. 계속 갈 수 있어요.”
살려달라고 빌던 플레이어 세 명은 살려주지 않았다.
아이템을 빼앗은 뒤 다른 플레이어들과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살려주고 싶어도 녀석들이 했던 일을 생각하면 살려둘 수가 없어.”
지금은 조그마한 살인강도 집단이었지만, 이 놈들은 리더의 스킬을 등에 업고 플레이어들을 사냥하며 급격히 힘을 불린다.
대형 클랜에서 손을 쓰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녀석들은 ‘악동’이라는 클랜을 만들어 온갖 범죄를 조직적으로 벌이며 자신들의 쾌락만을 추구했다.
‘이 놈들 손에 무의미하고 고통스럽게 죽은 사람들만해도 몇 명일까.’
악독한 범죄자 집단이었던 놈들이 고작 살인 강도에서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어이가 없기도 했다.
탑에서는 이런 범죄 스킬을 악용한 플레이어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 탓에 진영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의 클래스를 가진 사람들이 받는 차별 또한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제 가죠. 제 걱정은 하지마세요. 그리고 그 놈들은 죽을 만했어요. 이미 사람들을 열 명 넘게 죽였댔잖아요. 딱히 장면이 충격적이었다기보다는···. 우욱.”
“천천히 해. 천천히.”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지훈이 열심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진영도 자신이 갓 탑에 들어 왔을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게 두려웠었다.
그저 살아남는 것 하나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보다는 낫네.’
이제 고작해야 1층에 올랐을 뿐이었다. 가야할 길이 멀었다.
새로 얻은 아이템들을 지훈의 인벤토리에 보관하고나서 진영과 지훈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는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가는 동안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갈꺼야. 인벤토리에서 석궁을 꺼내서 써.”
“저 석궁 같은 거 써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차라리 형이 쓰시는 게······.”
“짐꾼 클래스 특성 중에 다재다능이라는 특성이 있으니 나보는 네가 더 잘 다룰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진영은 주먹이나 몽둥이를 사용하는 게 훨씬 강했다.
스탯을 강화한 상태였기에 몬스터 사냥은 어렵지 않았다.
1층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고작해야 고블린이나 들개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어, 저기 뭔가 보여요!”
그렇게 슬슬 2층 입장 권한인 100포인트를 다 채웠을 무렵에 숲 너머로 거대한 구조물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성했던 숲의 나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잔디로 이루어진 넓은 공터가 나왔다.
“제대로 찾아왔네.”
그리스의 판테온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신전이 그 위용을 자랑했다.
원형은 유지하고 있지만 금이 간 채로 곳곳에 이끼가 낀 것이 신전이 지어진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가 태고의 숲에 위치한 태고의 신전이야.”
여기서부터는 조심히 움직여야했다.
숲 최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1층의 보스가 거주하는 지역으므로.
코인으로 능력치를 강화 했다고는 하지만, 보스와 1대1로 정면대결을 펼칠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보스 자체가 여럿이서 잡으라고 존재하는 거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공격을 받는다 싶으면 바로 2층으로 이동해.”
“네, 형.”
고개를 끄덕인 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당당하게 걸어나가던 지훈이 급작스럽게 몸을 돌려 돌아왔다.
“어우, 잠시만요.”
신전 주위로 뼈와 시체가 이리저리 널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시체의 일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1층 시작 지점이 무작위니까. 운이 없으면 보스한테 먹혀 죽을 수 밖에 없지.’
탑은 공평하지 않을 뿐더러 플레이어의 사정을 신경써 주지도 않는다.
철저한 불합리성의 집합. 그 앞에서는 누구든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선택 받은 재능을 가진 몇몇을 제외하곤 말이다.
파아앗!
그 때 새하얀 빛무리가 진영에 눈에 띄었다.
진영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0층에서 새로 올라 온 플레이어인가.’
운도 지지리 없는 사람이었다.
0층에서 그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간신히 올라왔을텐데, 하필이면 보스 지역 근처에 떨어지다니.
그러나 1층으로 올라 온 새로운 플레이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진영의 생각은 바뀌었다.
“······.”
남자의 몸은 온통 새빨간 피로 뒤덮혀 있었다.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전부.
페인트를 뒤집어 쓴 듯 붉은 몸에서, 유일하게 하얀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혀, 형?”
빠르게 상대를 확인한 진영이 지훈을 데리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지금 저 녀석하고 만나서는 안돼.’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상대.
주오령.
그는 단신으로 0층에 있던 99명의 사람을 모두 죽이고 올라온 극악의 플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