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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5화 (5/152)
  • 도둑이 양심이 없음(4)

    “그래요?”

    “다 죽게 된다니까요······?”

    점성술사 클래스를 가진 그녀의 이름은 이나연.

    그녀의 특성은 ‘미래감지.’

    위기를 감지하고 미래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스킬과 달리 특성은 특정 조건만 달성되면 발동 된다.

    그 덕에 깨어난 석상이 사람들을 죽일거라는 것도 미리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경고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결국 예정된 대로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게 된다는 예지가 나왔다.

    “여기서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아요. 저 석상이 우리를······.”

    “위를 보세요.”

    진영은 하늘 위를 가리켰다. 그의 손 끝을 따라 올라 간 곳에는 어두컴컴한 하늘이 있었다.

    별 하나 없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지금은 별이 없잖아요.”

    “!······. 하, 하지만.”

    점성술사란 하늘의 별을 보고서 미래를 점치는 자들이다.

    그런 클래스를 가졌으니 그 예언의 정확도는 당연히 밤하늘의 별자리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진영은 단호하게 나연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석상에게 집중했다. 그녀도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예언가 클래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건 좋지 않지만······.’

    탑에는 정말 기상천외한 종류의 클래스들이 존재한다. 마법사, 청소부, 슬라임, 회귀자···.

    그 중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들은 탑 초중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점쟁이들도 자기 미래는 못 본다고 하던가,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 같았던 예언자들은 층을 거듭할 수록 빠르게 사라져갔다.

    ‘예언 스킬이 유용한 건 맞지만 휘둘려서는 안돼.’

    능력을 이용해 교주처럼 군림하거나, 주변의 판단을 오히려 흐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던터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나쁜 의도가 있어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쿠웅! 쩌적!

    “꺄악!”

    옆에 서 있던 나연이 비명을 질렀다. 강한 진동이 배리어를 덮쳤다.

    배리어에 거미줄 같은 금이 생겨났다. 이제 잘 해봐야 한 두 번이 한계였다.

    “제발 부숴져라!”

    “여러분 힘내요!”

    마력 덩어리 하나가 갑주의 부서진 부분을 타격하는 순간.

    쩌저저적···. 쿠웅!

    부숴지지 않을 것 같던 갑주가 넝마처럼 떨어져내렸다.

    10분도 넘게 도발과 공격을 반복한 성과였다. 말 그대로 정공법이었지만, 탑에 막 들어 온 플레이어들에겐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흩어지는 돌먼지 사이에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

    “해냈어! 우리가 이겼다고!”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정말로 해냈다.

    튜토리얼에서 이 무자비한 학살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나 했을까?

    진영도 속에서 솟아오르는 가벼운 고양감이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다.

    치지직······.

    [ 1페이즈 종료 ]

    [ 100 코인을 지급합니다. ]

    [ 1분 후 2페이즈가 시작됩니다. ]

    아직 완전히 가디언을 쓰러뜨리지 않았다. 보통 가디언 공략은 두 차례에 나눠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이제 겨우 겉을 감싸고 있는 갑주를 벗겨냈을 뿐이었다.

    1분의 준비 시간을 걸쳐 난폭해진 본체까지 쓰러뜨려야 진정한 공략이었다.

    “아직 움직이면 안됩니다!”

    갑주가 사라지자 석상이 쿵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품에 가지고 있던 코인을 일부 쏟아냈다.

    1페이즈 클리어 보상으로 주어지는 100개의 코인이었다.

    촤르르! 팅, 팅!

    떨어진 코인들은 바닥에 튕겨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진영은 분명히 미리 설명했었다. 갑주가 떨어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본체까지 쓰러뜨러야하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고.

    “내, 내꺼야!”

    “저리 비켜!”

    “웃기고 있네!”

    그러나 영롱한 빛을 내는 코인 세례는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코인을 줍기 위해 너도 나도 앞으로 달려나갔다. 1페이즈 보상으로 쏟아진 코인은 100개. 70명 모두가 살아나갈 수는 없었지만, 그게 대수겠는가. 나만 살면 되는데.

    ‘당연한 일인가······.’

    진영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애초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 정도까지 협력을 해냈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쓸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 움직이지 마세요!!!”

    “뭐, 뭐야?!”

    “언제 저기 간거야?”

    석상 밑에서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한 사람이 소리쳤다.

    사람들이 떨어지는 코인을 발견하고 달려나가기 한참 전, 처음부터 석상이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진영이 양아치로부터 구해주었던 남학생 김지훈.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나가 거대한 석상 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의 클래스는 짐꾼이었다.

    * * *

    김지훈, 그는 후에 멸망의 탑 안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는 플레이어였다.

    단, 그가 유명한 이유는 무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의리 때문이었다.

    - 진 빚은 죽어서라도 갚아라. 그게 저희 아버지 유언이었습니다.

    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모두가 김지훈을 고를 정도로 그는 유명했다.

    심지어 그는 아이템을 담는 인벤토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짐꾼’ 클래스.

    신뢰도 백 퍼센트의 짐꾼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템 저장.”

    촤르르르륵! !

    김지훈이 낮게 읊조리자 주변에 흩어져 바닥을 굴러가던 코인들이 일제히 진영을 향해 날아왔다.

    자석처럼 아이템을 빨아들인 지훈의 모습에 코인을 주우러 가던 사람들이 눈을 끔뻑였다.

    ‘내가 아는 얼굴에 비해 너무 어려서 몰라 볼 뻔했지만, 눈빛은 변함 없이 그대로였어.’

    진영이 지훈을 구해 준 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멸망의 탑에서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몇 없는 사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 남은 시간 : 10m 24s ]

    [ 2페이즈 시작까지 : 43초 ]

    사람들이 당황해 하는 틈에 진영은 진작에 지훈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형, 이렇게 하면 되는 거 맞죠?”

    “그래, 고맙다.”

    지훈은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코인을 모두 꺼내 진영 앞으로 내밀었다.

    진영은 가볍게 지훈의 등을 두드려주고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안끝났습니다! 아까랑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주세요! 안 그러면 여러분 전부 놔두고 다음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10분 밖에 안남았는데 살 사람은 살아야 될 거 아니야!”

    “저런 또라이 새끼! 언제까지 부려먹을 셈이냐!”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난 생에서 자신에게 부족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진영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강해져야한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그들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강해져야했다.

    회귀 전 자신은 계속해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양보하며 양심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땠는가? 누명과 허무한 죽음 뿐이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져야만 해.’

    그것이 치욕스런 배신를 겪고 회귀한 진영의 다짐이었다.

    파아앗!

    진영이 쥐고 있던 코인들이 새하얀 빛무리를 쏟아냈다.

    빛무리는 갑옷처럼 진영의 몸을 감쌌다.

    진영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차이는 하나였다.

    그것은 정보의 차이.

    클래스에 대한 정보도, 갑주를 두른 가디언의 강함도 모두 진영만이 알고 있었다.

    탑 초반에는 이러한 단순한 정보의 유무가 모든 것을 갈라 놓는다.

    ‘191코인 전부 힘에 투자한다.’

    코인은 단순히 0층에서 1층으로 넘어가기 위해 사용되는 아이템이 아니라 탑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 화폐였다.

    그리고 코인이 가지는 수 많은 기능 중 하나는 바로 능력치 강화.

    [ 191코인을 사용해 ‘힘’ 스탯을 강화하시겠습니까? ]

    [ 예상 강화 결과 : 3단계(인외) 입니다. ]

    [ 성공 확률 97% ]

    “확인.”

    파아!

    진영을 뒤덮고 있던 빛무리가 일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강화의 성공을 알렸다.

    상태창을 확인한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강화 성공! 힘 스탯이 3단계(인외)에 도달했습니다. ]

    수군대는 사람들 사이로 진영이 손을 한 번 쥐었다폈다. 손 끝으로 강화 된 힘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 어떻게 된거야?”

    “방금 뭐였어?”

    “코인이 사라진 거 아냐?”

    2페이즈까지 남은 시간은 25초. 페이즈가 넘어가는 시간만큼은 석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2페이즈가 되는 순간 가디언은 방금 전의 세 배가 넘는 파괴력을 가지고 광폭화되니까.

    ‘지금 부숴야한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2페이즈가 되면 사실상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전멸이었다. 물론 진영을 포함해서 말이다.

    진영은 자세를 잡고 팔을 뒤로 뻗었다.

    우드득.

    힘을 주자 팔 위로 근육과 함께 핏줄이 도드라졌다.

    코인으로 강화된 근력은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 넘어 있는 상태.

    진영은 주먹으로 모든 힘을 집중했다. 시간 내에 파괴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게 물거품이었다.

    콰앙!

    강한 파열음과 함께 석상 아래에 선 진영이 공격을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힘을 비축하고 있던 석상의 하단이 부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마, 말도 안돼······.”

    “뭐야,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온거야?”

    “······?”

    콰앙!

    진영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수많은 파편이 터져나왔다.

    플레이어 여러 명의 마법으로도 십 분에 걸쳐 간신히 부쉈던 단단한 석상이 얼음처럼 깨부숴지고 있었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기우뚱.

    2페이즈로 넘어가기 위해 준비 자세를 취한 석상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기울어졌다.

    굉음과 함께 하체를 잃은 석상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진영의 주먹질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콰앙! 촤악!

    “형, 피가······!”

    근처에 있던 지훈이 진영의 주먹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코인으로 강화되었음에도 진영의 주먹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진영이 강화한 스탯은 오로지 힘.

    신체의 내구도는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당연했다.

    주먹이 부숴질 것처럼 아팠지만 계속해서 석상을 공격해야했다.

    바닥에 쓰러진 석상의 복부는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다져졌다.

    촤르르르!

    석상이 품에 있던 코인 무더기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1페이즈가 끝나고 떨어진 코인 100개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그러나 반짝 거리는 코인을 발견하고도 사람들은 섣불리 다가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콰앙! 콰앙!

    게속해서 석상을 부수어 가는 진영의 기세에 눌려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여기까지 왔으면 알 수 밖에 없었다.

    진영은 진작에 모든 코인을 챙겨서 0층을 떠날 수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이야 어찌되든 간에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1페이즈가 끝난 뒤에도 모두를 살리기 위해 홀로 석상을 부수고 있었다.

    “뭘 보고 있어! 우리도 도와야지!”

    “그래요! 공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공격해요!”

    이미 1페이즈를 공략하느라 많은 힘을 소모했지만, 혼자서 석상을 공격하는 진영을 보니 마음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석상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기색이 보이자, 진영의 옆에 서 있던 지훈이 소리쳤다.

    미리 진영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대신 이야기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공격하면 안돼요! 준비 단계에 있는 석상은 약한 공격은 오히려 흡수한대요!”

    “크윽, 도와줄 수도 없어?”

    “응원이나 합시다!”

    “힘내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응원이라는 걸 깨달은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최선을 다해 응원을 시작했다.

    절반 쯔음 석상을 부쉈을 때 진영은 감각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이 녀석을 부술 수 있다!’

    진영의 예상은 정확했다. 몸통까지 완파 된 석상은 이제 머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피가 돌무더기와 엉겨붙어 끔찍하게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어서는 안됐다.

    [ 2페이즈 시작까지 : 5초 ]

    “부숴져라!”

    콰앙! 콰앙!

    오른손에는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 하지만 녀석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었다.

    녀석의 눈이 부숴지고, 입, 코 모든 것을 박살내고도 진영은 멈추지 않았다.

    [ 2페이즈 시작까지 : 1초 ]

    쩌저적···!

    단단했던 머리통이 수박처럼 갈라졌다.

    그제서야 진영은 망가진 오른팔을 내렸다.

    빰빠바밤!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모여있던 공터가 환하게 밝아졌다.

    축하를 알리는 거대한 홀로그램 창이 솟아올랐다.

    팡파레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든 플레이어 앞에도 자그마한 정보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 축하드립니다. 0층 : 튜토리얼(히든) 클리어! ]

    [ 제한 시간이 사라집니다. 살아남은 모든 플레이어가 1층으로 통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습니다. ]

    [ 가장 많은 피해를 가한 플레이어 : 이진영 ]

    [ 결정타를 가한 플레이어 : 이진영 ]

    [ 멸망의 탑 최초의 튜토리얼(히든) 클리어! ]

    [ 기여도에 따라 적절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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