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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도둑이 아이템 다 훔침-2화 (2/152)

도둑이 양심이 없음(1)

[ 탑에 입장하신 모든 플레이어분들을 환영합니다. ]

[ 0층 : 튜토리얼 개시까지 84 / 100(명) ]

새하얀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괴수가 쏟아져 나온다고 해서 쫄았는데, 별 거 없잖아? 빨리 시작이나 해라.”

“튜토리얼이면 게임처럼 몬스터 잡고 그런 건가?”

“드디어 내 인생에도 기회가 왔다.”

멸망의 탑 최하층 튜토리얼 방.

탑에 처음 입장한 사람들에게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

대부분이 소문과는 다른 탑의 내부에 마음을 편히 한 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허억···. 허억···.”

죽음에서 살아 돌아 온 이진영만이 인파의 한구석에서 부자연스럽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틀림 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시야가 돌아왔다.

천천히 숨을 고르자 거칠었던 호흡은 금세 돌아왔다.

‘회귀한거구나······.’

상황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신을 잃기 직전, 자신이 신화준의 인벤토리에 있는 물건을 훔쳐냈다.

죽음의 문턱에서 떠오른 메시지의 내용이 아직도 선명했다.

[ ‘이계규율 - 절대회귀’를 훔쳤습니다. ]

[ 마지막 저장 포인트로 회귀합니다. ]

신화준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 중에 회귀를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스틸 스킬이 훔쳐오는 인벤토리의 아이템은 무작위.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신화준의 인벤토리 중에서 딱 회귀 아이템을 훔쳐오다니.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팔찌라······.’

이계 규율 - 절대 회귀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템은 검은색 팔찌로 변해 있었다. 진영은 자신의 손목에 매여 있는 팔찌의 정보를 확인했다.

[ 아이템 정보 ]

이름 : 이계규율 - 절대회귀

등급 : EX

설명 : 이계의 규율을 따르는 소유자에게 영원한 회귀를 제공합니다. 회귀시 사용자의 능력치와 스킬은 저장 시점에 따릅니다.

‘······.’

아이템을 살펴보던 진영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설명을 다시 읽었지만 설명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영원한 회귀?’

99층까지 올라 본 진영조차 처음 보는 사기적인 성능의 아이템이었다.

영원한 회귀를 제공한다는 아이템의 텍스트.

이계 규율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지금 이렇게 진영이 과거로 회귀해 온 것만 봐도 충분히 사기적이었다.

‘신화준 그 자식이 마구잡이로 행동한 이유가 있었군.’

녀석은 최후의 6인을 이끌면서 리더행세를 해왔다.

불안할 정도로 돌발행동이 많았고,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였지만 재밌는 건 그 선택 모두가 항상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신화준에게는 탑에 대한 사전 지식과 그것들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있었던 거다.

‘이런 아이템은 대체 어디서 난 거지?’

회귀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멸망의 탑에는 여러 능력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당연히 회귀자도 있었다.

다만 그들의 회귀 가능 횟수는 고작해야 한 두 번인데 반해 이 아이템은 영원한 회귀를 보장하고 있었다.

‘고작 이걸 지키려고 지레짐작해서 나를 죽여?’

뿌득.

진영은 이를 악물었다. 죽기 직전의 절망감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그는 도둑 클래스였지만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아이템을 탐한 적은 없다.

신화준이 먼저 자신을 공격하지만 않았더라면 진영이 신화준을 상대로 스틸 스킬을 사용할 일은 없었을 거다.

녀석은 제 손으로 자기 무덤을 판 셈이다.

‘신화준······.’

녀석이 자신과 탑에 들어 온 시기는 비슷했다.

그 녀석도 분명 이 탑의 다른 구역에 있을 거다.

녀석이 자신이 했던 짓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진영은 회귀 전 겪었던 일을 잊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강해지는 게 먼저야.’

회귀 전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어이 없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신화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강해져야만 했다.

99층까지 오르며 진영은 대부분의 전투를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

그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진영이 클래스가 D급 ‘도둑’에서 머물렀던 이유도 명확했다.

도둑 클래스를 성장 시킬 바에는 다른 주력 클래스에게 아이템을 몰아주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가 믿었던 팀원에게 살해당하는 거라니.’

진영은 씁쓸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회귀했다. 이전과 같은 허무한 결말을 맞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야했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은 0층을 클리어하고 한시라도 빨리 탑을 등반하는 것.

넓은 공터에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튜토리얼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튜토리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가벼웠다.

닥쳐 올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영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색한 일이었다.

곧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긴장하기는 커녕 들뜬 상태였으니.

‘외부에서는 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테니 당연한 일이지만.’

미래로부터 회귀한 진영이 생각하는 탑과 현재의 사람들의 생각하는 탑은 전혀 달랐다.

사람들에게 지금의 탑은 기회의 장소일 뿐이었다.

‘당신은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제한 시간 내에 탑으로 입장하세요. 남은 시간 : 16h 13m 51s’

몬스터가 쏟아지고,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무너지는 와중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눈 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은 변해버린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했다.

‘나도 처음에는 헌터가 되고 싶어서 탑에 들어 왔었지.’

탑은 선택 받은 사람들을 내부로 들여보냈고, 이따금씩 사람들을 밖으로 배출해내기도 했다.

탑에 들어갔다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헌터’라고 불렀다.

그러니 사람들은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탑에 가면 헌터가 될 수 있다!’

바깥의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헌터가 유일했다.

자연스럽게 부와 권력은 헌터에게로 이동했고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헌터가 되면 새로운 세상에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탑에 있는게 틀림 없다고.

헌터들 모두가 탑에 다녀 온 뒤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까.

더욱이 헌터들은 탑에 있었던 일에 대해 발설하는 경우가 없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건 당연했다.

“탑에서 나가기만 해봐, 사치가 뭔지 제대로 알려줄테니까.’

“여기 오면 정말로 헌터가 될 수 있는 거 맞지?”

“난 돈 벌어서 떵떵 거리면서 살거야.”

사람들 모두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저마다 기대에 부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 온 사람 모두가 그런 미래를 꿈꾸고 자발적으로 탑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만.’

헌터가 새로운 세상의 지배자처럼 생각되는 시기가 한 때 있었다.

물론 그건 잠시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강력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면 인류는 완전히 짓밟히게 된다.

‘진짜 중요한 건 탑을 어떻게 공략하느냐.’

근원인 탑이 공략되지 않으면 이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

평범했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물론 헌터가 되어 밖으로 나가려는 이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0층에서 살아남는 것만해도 충분히 벅찬 일이 될테니까.

[ 탑에 입장하신 모든 플레이어분들을 환영합니다. ]

[ 0층 : 튜토리얼 개시까지 99 / 100(명) ]

튜토리얼 개시까지 1명.

탑에 처음 발을 들인 플레이어들의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 * *

진영은 튜토리얼이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들이 모여있는 공터를 한 바퀴 돌며 기억을 떠올렸다.

이 공터의 끝은 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다. 플레이어들은 고등학교 운동장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정도 넓이였지.’

0층의 튜토리얼은 8년 전의 일이었지만 생생하게 기억났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탑에 처음 입장했을 때 겪었던 그 충격을.

허공에 떠오른 거대 홀로그램 창에는 무덤덤한 글씨체로 ‘튜토리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진영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튜토리얼은 조작법을 알려주거나 게임 방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가이드가 아니다.

삑.

홀로그램창의 숫자가 하나 오르며 100을 채웠다.

기다림에 지쳐가던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와, 드디어 시작하네!”

“얼른 시작해라.”

“더럽게 오래 걸리네.”

탑의 일은 바깥에 알려져 있지 않다. 탑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외부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그럴만도 하다.

플레이어들이 탑에서 마주하게 하게 되는 것들은 결코 외부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일들이 아니므로.

[ 0층 : 튜토리얼 개시까지 100 / 100(명) ]

[ 튜토리얼 개시 ]

[ 0층 : 튜토리얼 - 쓰리 코인, 원 라이프 ]

설명 : 플레이어에게 코인이 하나 지급 됩니다. 제한 시간 안에 세 개의 코인을 모으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보상 : 1층 입장 권한

실패 패널티 : 사망

사람들이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을 찬찬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을 확인해 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실패하면 사망이라고?”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그들의 예상은 탑에 들어오면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것 정도.

뜬금 없는 코인과 제한 시간, 그리고 사망이라는 단어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모두의 앞으로 새하얀 동전 하나가 솟아 올랐다.

탁.

진영은 가볍게 동전을 낚아채 주머니에 넣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동전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어쨌든 이걸 세 개 모으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네. 근데 어디서 코인을 찾아?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게 전부 아니야?”

“······.”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플레이어 한 명 당 하나의 코인만이 지급된다.

모두가 1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300개의 코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0층에 존재하는 코인은 총 100개.

‘모자란 코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라.’

홀로그램창은 그리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씩 거대 홀로그램 창을 향해 올라갔다.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남은 시간을 가리키는 타이머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 남은 시간 : 58m 25s ]

꿀꺽.

사람들이 곳곳에서 마른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 내에 코인 세 개를 모아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죽는다.

탑에 들어 온 이상, 홀로그램창이 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 공터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 다음층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최소한 굶어 죽는다.

“이거 완전 우리끼리 죽이라는거나 마찬가지잖아···.”

서서히 공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상황을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어린 학생부터, 성인, 노인까지 다양했다.

모두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도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 남은 시간 : 56m 36s ]

그리고 언제나 충분한 생각에 앞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있기 마련이었다.

“어차피 코인을 못 얻으면 죽어야 된다잖아. 그럴 바에는 빨리 코인 세 개를 모아서 탈출하겠어!”

성질 급한 한 남자가 근처에 있는 남학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학생의 멱살을 잡고서 다시 한 번 주먹을 말아쥐었다.

“으윽, 왜, 왜?!”

영문도 모른 채 맞은 남학생은 당황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얼굴을 보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학생을 위협했다.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코인 내놔 이 새끼야.”

“주, 줄 리가 없잖아요!”

퍼억. 퍼억.

“누, 누가 좀 말려봐요!”

“하지만······.”

학생이 반항해도 남자는 연거푸 주먹을 날렸다.

체격차가 있어서 그런지 학생은 손놓고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주먹질을 한 남자는 남학생이 가지고 있던 코인을 억지로 빼앗으려 들었다.

누군가가 말릴 법도 하건만, 사람들은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적당히 하시죠.”

“뭐야?”

누군가가 남자의 손 목을 움켜쥐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진영이 남학생이 맞자마자 달려왔던 것이다.

남자는 살기 가득한 표정으로 진영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방해하지 말지 그래? 너도 이 애새끼 꼴 나기 싫으면.”

손목을 붙잡힌 남자는 진영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바깥에서도 운동을 깨나 하던 사람이었는지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진영은 잠시 남자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멍청한 짓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영의 팔을 뿌리쳤다.

하던 일을 방해 당한 게 짜증이 난 건지 그는 진영을 향해 주먹을 뻗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드드드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터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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