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없어, 없어졌다고!”
붉은 머리 사내의 얼굴 위로 굵은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 자리에 있는 6명도 사내와 마찬가지로 얼굴색이 변했다.
분노, 당혹, 슬픔, 좌절과 같은 감정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다시 한 번 잘 찾아봐. 그게 있어야 100층으로 올라 갈 수 있잖아.”
긴 머리의 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내에게 말했다.
신화준은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 다시 봐도 없다고. 내 인벤토리에 내가 직접 넣어 놨던 열쇠야. 내가 병신 같이 이런 걸 착각하겠어?”
말을 마친 그는 눈을 번뜩이며 방 안에 모인 인물들을 하나하나 스캔 하듯 둘러 보았다. 명백하게 동료들을 의심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 누구도 나서서 토를 달지 않았다.
열쇠의 행방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10년 전.
세계 곳곳에 정체 불명의 탑이 솟아올랐다.
탑은 끊임 없이 몬스터들을 쏟아냈고 인류의 기술은 이 새로운 침략자 앞에서 무력했다.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분명 이 안에 범인이 있어.”
신화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머지 5명도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분노와 의심은 정당했으므로.
멸망의 탑 최정상까지 단 한 걸음.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탑에 도전했고, 모두 죽음을 맞이 했다.
모든 시련과 고난을 견디고 99층에 올라 온 건 고작 6명.
이 6명에게 전 세계 사람들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이제 겨우 한 층 남았는데 도대체 왜?!”
최종 생존자 중 하나인 진아람이 얼굴을 붙잡고 주저 앉았다.
탑의 공략 하나만 보고 올라 온 그녀였기에 지금 상황이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신화준은 코웃음을 쳤다.
“글쎄, 확실한 건 탑을 공략하고 생지옥이 된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보다 이곳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좋은 사이코패스 새끼가 우리 중에 있다는 거야.”
탑을 공략하면 세계는 구원 받는다.
최상층으로 향하는 탑의 꼭대기에서 바깥을 내려다보면 어렴풋이 보인다.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와,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
바깥 세상의 주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들끓는 시체들과 몬스터들에게 유린 당하는 인간들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최정상인 100층으로 올라가야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를 살펴보던 신화준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다.”
이를 악다문 채 고개를 끄덕이는 신화준.
그의 시선은 일행 중 한 명에게 머물러 있었다.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 이진영이 조용히 미간을 좁혔다.
“너희들 전부 다 나를 의심하는 거냐?”
“······.”
진영의 반문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굳이 다시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침묵은 긍정을 의미했으니까.
일행들의 분위기를 확인한 신화준이 이진영을 향해 한걸음 다가왔다.
“클래스는 개인의 성향을 반영하지. 네 녀석의 클래스는 도둑. 도적도 아니고 어쌔신도 아닌 도둑이 네 클래스잖냐. 이게 의미하는 게 뭐겠어?”
어이 없는 추리였다.
이진영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개인과 잘 어울리는 클래스가 부여되는 건 맞지만 그건 개인의 도덕성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75층까지 함께 했던 김시운은 사기꾼 클래스였고, 82층에서 죽은 유정연은 배신자 클래스였다.
그 둘은 탑을 공략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도둑 클래스라고 해서 열쇠를 훔쳐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 무엇보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
“······.”
하지만 진영은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기에.
잠시 벌려졌던 진영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변명조차 안하는 걸 보니 확실하네.”
“그게 무슨-”
순식간이었다.
신화준이 등허리에 매고 있던 대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의 클래스는 무신(武神) . 고작해야 도둑 클래스인 이진영이 공격을 피할 길은 없었다.
푸욱.
“꺄악!?”
“잠깐만 화준아!”
“야, 이 미친 새끼야!”
갑작스러운 일격이었다. 팀원들 모두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신화준의 대검은 이미 진영의 베를 꿰뚫었고, 이진영은 검에 매달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커헉.
진영이 붉은 피를 가득 토해냈다.
대검에 관통 당한 복부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건 억울함이었다.
‘시발······. 나 아니라고···.’
진영은 범인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탑에서 빠져나가고 싶었고,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탑을 공략하고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는데 도대체 왜 나를······.
우선은 이 오해를 풀어야했다.
“끄으윽···. 끄윽···.”
뒤늦게나마 입을 열어보았으나 목에 피가 고여 그르렁거리는 소리 밖에는 나지 않았다.
신화준은 처음부터 이진영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진영이 자신을 변호할 수조차 없도록 치명상을 입혔다.
“야, 신화준! 그만해. 너 미쳤어? 그렇게 할 것 까지는 없잖아!”
뒤쪽에서 진아람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성녀 클래스인 그녀가 진영에게 힐을 해주기 위해 다가왔다.
그런 그녀를 신화준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지금 상황파악이 안되나 본데. 이 새끼 안죽이면 다음엔 우리가 죽어. 100층으로 올라가서 보스를 만난다고 쳐도, 이 새끼가 우리 뒤통수치면 다 끝장이라고.”
“······.”
그의 말에 진아람은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내렸다.
신화준은 가증스럽다는 눈빛으로 대검에 매달린 진영을 노려보았다.
“98층에서 얻은 스킬 ‘진리안’으로 네 스킬은 이미 다 살펴본 상태니까 반항할 생각하지 마라.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훔쳐 갈 수 있는 스킬을 가진 건 이 중에 너밖에 없어.”
“커헉.”
신화준은 대검을 더욱 깊숙히 찔러 넣었다. 그의 말대로 이진영은 인벤토리의 물품을 가져올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진영은 범인이 아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진영 오빠 정말이에요?”
“형 대체 왜······.”
“······.”
팀원들의 마음은 신화준의 마지막 말로 인해 완전히 돌아섰다.
누명을 썼다는 사실보다 진영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그들의 태도였다.
진아람, 윤이수 너희 둘 만큼은 날 믿어줬어야하는 거 아니냐?
“넌 여기서 죽고 우리는 마지막층으로 올라 간다.”
팀원들은 더 이상 신화준을 말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다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달했을테고, 그저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일테니까.
‘살려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대로라면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하고 만다. 대단치 않은 클래스를 가지고 99층까지 올라 온 그였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기만하면 충분히 팀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터.
진영은 떨리는 손을 올려 최후의 발악을 시도했다.
“어딜 수작을 부려?”
콰득.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진영의 시도는 실패했다.
간신히 들어 올린 손이 신화준의 발차기 한 방에 산산히 으스러졌다.
신화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새끼 반항 하는 거 봤지?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다.”
상황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진영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진아람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윤이수는 입을 꽉 다물고선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화준은 난폭한 성정이었지만 모두가 믿고 따르는 훌륭한 리더였다.
그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고 좋은 결과가 뒤따랐다.
제멋대로인 듯한 행동의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있음을 직접 증명해 낸 것이 바로 신화준이었다.
99층까지 오며 그는 그것을 증명해냈다.
신화준은 틀리지 않는다.
안타까워할지언정, 신화준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촤악.
“크허억!”
대검이 빠져나가고 텅 빈 구멍으로 쏟아져 나온 피가 바닥을 적셨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진영은 힘 없이 쓰러졌다.
탑의 공략은 인류의 존망이 달린 문제였다.
겨우 하나의 층만을 남겨둔 공략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 의심스러운 요소를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방해가 될만한 것들은 모두 제거 해야했다.
“어디보자. 인벤토리 스킬은 없었을테니 열쇠는···.”
진영이 쓰러지자 신화준이 곧장 그에게로 달려왔다.
100층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쇠를 찾기 위해서.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진영은 배신감 보다는 끝없는 슬픔을 느꼈다.
‘열쇠가 나올 리 없잖아.’
세계의 유일한 희망인 탑 공략이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었다.
즉 열쇠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
남은 팀원들은 100층에는 올라가지 못한 채 계속해서 서로를 의심하며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찾았다!”
진영의 주머니를 뒤적이던 신화준이 에메랄드빛 열쇠를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팀원들 사이에서 안도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기뻐하지 못하는 건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있는 진영 뿐이었다.
‘말도 안돼······.’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영은 열쇠를 훔치지 않았으며, 누군가가 그 사이에 넣어 둔 것도 아니었다. 도둑 클래스인 진영의 감각은 누구보다 예민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영의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열쇠는 신화준의 손 끝에서, 그의 인벤토리에서 튀어나왔다.
피가 끓어오를 듯한 진실에 진영은 이를 악물었다.
신화준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누명을 씌운 것이다.
‘어째서 나한테 누명을 씌운거냐······.’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무엇을 밉보였길래. 도대체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자신을 죽인단 말인가.
온갖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후회, 원망, 분노, 절망, 의문······.
여러 감정 속에서 가장 격하게 솟아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신화준, 도대체 왜 나를?’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가며 끝을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파편적인 생각이 진영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진영은 그 파편을 놓치지 않았다.
‘설마 나한테 들켜서는 안되는 아이템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인벤토리의 물품을 훔칠 수 있는 건 자신이 유일했다.
그것말곤 떠오르지 않았다.
신화준이 자신을 죽일 이유가.
절대로 들켜서는 안되는 무언가가 인벤토리에 숨겨져 있었기에 신화준이 자신을 죽여야했던 거라면?
‘스틸······.’
끊어져가는 의식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진영은 스킬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였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무의미한 행동일지도 몰랐지만 알아내고 싶었다.
왜 거짓말까지 해가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무엇을 그리도 숨기고 싶었는지.
파앗.
꺼져가는 그의 생명만큼 작은 빛이 반짝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신화준은 놓치지 않았다.
신화준의 눈이 커졌다. 명백한 동요가 그의 동공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돌아가며 진영에게 고정되었다.
“이, 이 쓰레기 도둑 새끼가!”
당황하며 뛰어오는 신화준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히 멀어져갔다.
그의 얼굴은 본 적 없는 분노와 당혹으로 얼룩져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조금이나마 되갚아 준 것 같아 통쾌했다.
그 기분을 끝으로 진영은 정신을 잃었다.
아득히 멀어지는 어둠.
그리고 그 앞으로 떠오른 메시지창 하나.
[ ‘이계규율 - 절대회귀’를 훔쳤습니다. ]
[ 마지막 저장 포인트로 회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