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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56화 (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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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롤로지움 - 모먼트

시퍼런 방벽, 비명을 지르지도, 피를 흘리지도 못하는 것에다가 방망이나 계쏙 휘두르는 것은 별로 취향이 아닌데. 에밀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눈 앞의 시퍼런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의 너덜너덜해진 그 벽을 바라보며 그는 히죽 웃었다.

"지겨운 일에는, 즐거운 기억들이 도움이 되는 법이지."

그는 계속해서 벽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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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이 짝이 없는 것들.

-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스스로 불러일으키는군.

에밀은, 이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들이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두 번째의 악마까지 잡히고 나면 두 마리가 서로 한 자리에 뭉칠 수 밖에, 시간을 일부러 약간 끈게 다 니들 모이라고 기다려 준 거니까. 녀석들이 함께 있지 않았으면 잡는 것은 더욱 쉬웠겠지만. 에밀이 그 이후에 기회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미 악마의 힘이는데 성공한 녀석들이 슬슬 위험수위 근처까지 올라왔다.

녀석들이 애초에 에밀을 믿고 있을 리도 없으니까. 녀석들도 적당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녀석들을 제거하고 에밀처럼 모든 것들의 힘을 먹어치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눈 앞에는, 거대한 산 정도의 크기로 계속해서 형태가 무너지는 거대한 녹조 덩어리와, 바다 아래에서 머리만을 해수면 위로 내놓고 시뻘건 눈으로 에밀과 계약자들을 바라보는 문어 대가리가 있다. 한 번에 둘을 처리하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두 번째의 악마를 먹기로 되어있었던 녀석은 레기온이었고. 녀석은 두 번째의 악마를 먹어치웠다. 게르하르크는, 아직 해전의 문제가 남아있는 데다가, 악마들과 싸우기에는 그 능력이 합당치 못하니까 당연히 여기에 오지 않았다.

두 마리의 악마, 두 마리의 악마의 힘을 먹어치운 두 명의 계약자.

"... 젠장,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에밀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 두 악마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신중하게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에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만의 능력은, 한 명을 대상으로 쓸 수 밖에 없다. 레기온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에밀의 능력과는 다르게 두 명 이상의 존재들에게도 쓸 수 있으면. 그때는 계획을 바꾸어서 다같이 하하호호 웃는 사이좋은 계약자 관계를 구축해야겠지.

"둘 다, 구속 할 수 있냐?"

에밀의 말에, 레기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에밀은 속으로 호재를 불렀다. 완벽해, 그야말로 완벽하구만. 레기온의 대답을 듣고 에밀은 다급하게 외쳤다.

"젠장, 레기온과 내가 한 마리를 잡고 시간을 벌고 있을테니까...! "

이번에 성공하고 나면... 복수의 준비가 끝난다! 에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레기온을 바라봤다. 그는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등 뒤에서 사슬을 풀어내었다.

바다 위에서 일어나서,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수십가닥의 살아있는 물기둥들이 레기온과 에밀, 레인을 향해서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담고 있었고, 빗나가서 해수면에 내려꽂히는 것 만으로도 수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물기둥들이 마구 솟구친다.

쇠사슬을 꺼내는 것을 보는 순간, 문어는 가지고 있는 액체 촉수들을 레기온을 향해서 휘둘렀고. 레기온은 그 때문에 번번히 쇠사슬을 뽑아내어서 문어를 묶는 걸 실패한다. 결국, 레기온은 자신을 후려치기 위해서 다가오는 액체 촉수를 몸으로 받아내면서 사슬들을 뽑아내어 문어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슬들을 꽉 붙들고 있는 레기온의 입가에 가느다랗게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그걸 보면서 에밀이 어금니를 물고 외쳤다.

"젠장, 젠장!"

젠장, 너무 잘 풀리고 있잖아. 에밀은 입으로는 다급한 소리를 내면서 계속해서 교묘하게 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저 거대한 녹색 덩어리가 레인의 몸을 망가뜨려 놓아야하고. 레기온이 사용하는, 상대의 힘을 끌어내리는 사슬은 저 거대한 문어새끼한테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에밀의 능력도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자식들.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거대한 녹조류가 레인을 그대로 뒤덮고 동그랗게 뭉쳐서 계속 압축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녹조류가 폭팔하듯이 터져나가면서 사방으로 뿌려지고. 입에서 약간 피를 흘리며 헐떡거리는 레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수백, 수천개가 되는 녹조류 덩어리들이 레인을 향해서 쏟아지고,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의 바닷물들을 빨아올린 레인이 마찬가지로 수천, 수백개에 달하는 물줄기들로 그것을 요격한다. 겉보기에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계속해서 공방이 오갈 때 마다, 최종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레인이었다.

레인은 살이 녹아내리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근육을 다시 매만져 가리고는 이를 갈았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코 앞이다. 조금만 더 하면, 이 녀석들까지 정리가 끝나고 난다면...! 그 생각 하나로 레인은 이를 악물었고,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이빨 조각들이 레인의 입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레인을 향해서, 마치 폭포처럼, 하나의 거대한 흐름처럼 엄청난 규모의 녹조류가 일렁거리며 쏘아지기 시작한다.

"곱게... 죽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어어어!"

녹조류의 쇄도를 향해서 레인은 거대한 해류의 쇄도를 부딪쳤고, 사방팔방으로 질척거리는 녹조류와 물방울들이 튀어나가기 시작한다.

"아... 아... 아아아!"

레인의 얼굴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입술이 문드러지고, 잇몸과 이빨들이 드러난다. 코뼈가 무너지고, 얼굴이 소름끼칠 정도로 흉측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로 부딪치고 있던 거대한 쇄도들과는 별개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거대한 녹조류의 온 몸을 수십개의 거대한 물기둥들이 꿰뚫어버린다.

급격하게 약해지는 녹조류의 쇄도를 밀어내면서 마침내 레인이 만들어낸 거대한 해류의 쇄도가 녹조류의 몸통을 강타한다. 순식간에, 더러운 오물들이 씻겨져 나가듯이 인간 형태를 하고 있던 녹조류가 쓸려나가고. 그 가운데에 있던, 작은 검은 구슬 하나가 드러났다.

그걸 보던 에밀이 스치고 지나가는 서너개의 물줄기를 가까스로 피하며 나가가, 그 구슬을 그대로 꽉 붙들었다. 그리고, 구슬 주변에서 일렁거리고 있던 검은 기운들이 천천히 에밀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건, 네 순서가 아니었다."

레기온의 말에 에밀이 목에 핏줄을 세우며 외쳤다.

"씨팔,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게르하르크를 기다리고 있냐!? 지금 중요한 건 약속이 아니라 일단 저 새끼를 잡아내는거다!"

어차피 한 방에 두 마리를 잡게 되었으니 순서 따위는 상관없잖아! 에밀은 그렇게 외쳤고. 뭐라고 말하려고 하던 레인은 그대로 입을 다물고 필사적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좋아, 다 되었다!"

에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곧바로 다시 뛰어올라와서 목을 풀었다. 그리고는 진이 쫙 빠져서 비틀거리고 있는 레인을 부축하면서 문어를 보고 히죽 웃었다.

"자, 문어 새끼. 이제 너 하나 남았는데..."

자신의 끝을 알기라도 한 것 처럼, 문어는 점점 더 저항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수백개의 물기둥들이 치솟고, 그대로 레기온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이미 사슬로 문어를 옭아매는데 성공한 레기온은 그 촉수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기 시작했다.

이미, 레기온의 사슬에 묶이기 시작한 문어가 만들어내는 촉수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어들었다. 물론, 레기온 자체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닌지 사슬들이 이따끔 끄드득거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부들부들 떨린다.

그 사이에, 에밀은 자신을 향해서 휘둘러지는 거대한 액체 촉수들을 피하며 계속해서 문어의 몸을 자신이 만들어낸 날카로운 물의 칼날들로 후려치기 시작한다. 레기온이 조종하는 쇠사슬들이 비명을 지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문어의 시뻘겋게 빛나고 있던 눈동자에서 조금씩 힘이 빠진다. 그걸 보던 에밀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문어, 잠깐 쉴까? 역시 사슬이 영 입맞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

에밀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슬로 문어의 전신을 꽉 내리누르고 있던 레기온의 머리통을 오른손으로 잡고 그대로 터뜨리면서, 왼손은 레인의 가슴팍에 박아넣었다.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부들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 에밀은 흠흠흠, 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단 간식 먹고 시작하자고. 난 이 순간이 제일 좋던데."

이걸로 세마리, 에밀은 서늘하게 웃으면서 레기온과 레인의 몸 주변에 일렁거리는 검은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에밀이 잡고 있는 손을 놓자, 기운이 모두 빨려나간 두 사람의 시체가 그대로 바다 아래로 떨어진다.

그것 보면서 에밀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으하, 하핫,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뷰웅신 같은 새끼들! 딱 거기까지가 네 놈들의 한계였지! 악마 녀석들 힘에다가, 지들 힘까지 나한테 건네주다니. 이자를 붙여 준 거냐! 푸하, 이거 은행이 따로 없구만?!"

그렇게 웃던 에밀은 웃음을 딱 멈추고 나서 머리를 쓸어올렸다. 새하얗게 뼈만 남아있던 에밀의 얼굴 위에 천천히 근육이 생겨나고, 눈이 생겨나고, 그 위를 다시 살이 덮는다.

"사람 심리라는게 좀 웃겨. 서로 배신할 마음을 먹고 있어도. 왠만해서는 모든게 확정지어진 중반 이후에 실행을 하고 싶어하거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세 번째 녀석을 잡고 났을 때겠지?

"이런건 원래 선수를 치는게 유리한데..."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싸우는 동안에 깊은 상처를 많이 입어서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는 문어를 보며 에밀이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거의 하나의 산 만한 크기의 물로 만들어진 대검이 문어의 머리통을 그대로 반으로 가른다.

"자세한 건, 나중에 지옥에서 물어보면 가르쳐주지. 내가 좀 바빠서."

거기 갈 일이 있을까는 잘 모르겠다만! 에밀은 어깨를 으쓱 하고는 머리통이 그대로 쪼개져버린 문어에게 다가가, 주변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기운들을 빨아드린다.

"후우... 아, 이거 배 터지겠는데."

이제 남은 자식은 하나지. 게르하르크. 그냥 버려두었다가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확실하게 정리를 해두자고.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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