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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미나는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탔던 배의 선장이자, 제독이었던 남자.
"잘 지내셨습니까."
미나의 말에 그녀의 앞에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로만이 말했다.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지."
그 말에 미나는 그렇습니까. 라고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눈 앞에 서 있는 자신의 과거 상관을 보면서 미나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대가 해적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성격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
로만의 말에 미나는 대답했다.
"...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가. 로만은 자신 앞에 있는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왜 배신한 건가?"
그 말에 미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 라고 말하고 로만은 조용히 자신의 물잔을 잡았다. 그리고 미나는 에밀 메이너스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고. 말하는 와중에도 시시각각으로 그녀의 표정은 굳어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로만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안 좋은 기억을 들춰서."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로만은 미나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그대의 잘못은 극히 적어. 애초에 그 싸움에서도 그대가 배신한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아이리 공화국을 위해서 간첩을 자처했던 것이니."
미나는 그 말에 로만을 바라봤다.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로만이 미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시 해군으로 복귀시켜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거네."
그 말에 미나가 침묵하고 있었다. 더 이상 에밀이 제독이 아니다. 로만이라고 한다면, 함께 일할 때에도 신뢰할 수 있었던 상관이었다.
하지만... 미나의 머릿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대의 성격이, 해적들과 어울리지 않지 않나."
그 말에 미나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그대를 위해서 하는 말이네. 이전보다 나은 대우를 약속하지. 자네같은 인재가 있으면 아이리 공화국은 더 나아질 수 있어."
미나는 로만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로만은 일단 그걸로도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기는 하지. 기대하고 있겠네."
로만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일어나 나갔고. 미나는 혼자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왜 해적들 사이에 남아있어야 하는 걸까. 왜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을까?
원래 해적과 함께 일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몸에는 해군의 버릇이 박혀있다. 아마, 죽을 때 까지는 이 버릇들이 사라지지 않겠지.
나는 해군이 체질이지만.
"레이먼드."
미나의 입에서 조용히 한 마디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가 로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
해군으로 간다면, 다시는 레이먼드를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적이 될 것이다. 미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지었다.
"죽여버리겠다고 하던 때가 얼마전인데."
그녀가 주저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해적들도 잘 찾아보면 괜찮은 점들도 있었고. 다들 사람 냄새가 나는. 먹고 자고 웃고 우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게 마리아 해적단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지.
근데 레이먼드.
그 인간과 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든다. 미나는 조용히 테이블 위의 물잔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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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이 바다의 날개에서 내리고, 자신의 배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거저거, 예전에 나한테 했던 거 또 하러 왔었구만. 하여튼 지 버릇 개 못준다고. 괜찮은 인재 있으면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건 끝까지 고수해요.
밤이 깊어지고 있었지만. 잠이 별로 오지 않았다.
선원들은 모두 배 아래에 잠들어 있었고. 로제와 마리아가 들어가 있는 선장실에도 불이 꺼진지 오래.
나는 혼자 갑판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먼드."
뒤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고. 거기에는 미나가 서 있었다.
"잠시, 시간이 있나?"
지금이야 넘치는게 시간이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미나를 바라봤다.
"그럼, 잠시 항해사실로 와라."
갑자기 왜? 라는 물음에 미나의 표정이 이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리저리 변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오라고 하면 그냥 와."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미나의 뒤를 따라서 항해사실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로만이, 나에게 다시 해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쓰게 웃엇다. 역시, 지 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걱정이었짐나.
"그 말을 나에게 하는 건...?"
이런 이야기를 나한테 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나의 말에 미나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돌아가는 편이 좋다. 나는 해군 생활에 익숙해져 있고, 아는 사람들도 거기가 훨씬 더 많다. 마리아 해적단에 있으면서 정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전에 몇 년을 살아왔던 해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
나는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미나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근데,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군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이유를 아나?"
흔들리는 램프 불 아래에서 미나는 나를 바라보고 잇었고. 그 눈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
나의 침묵을 기다리고 있던 미나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녀석 때문이다. 레이먼드!"
나는... 나는.... 이라고 말하면서 미나가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바라봤다.
"싫다. 내가 다시 해군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너와 적이 되고. 서로 총과 검을 맞대고 다른 배 위에서 조타륜을 잡겠지. 그게 싫어서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군으로 돌아가는걸 주저하고 있다."
나는 미나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짓씹으면서 말했다.
"해군으로 돌아간다면 나만 더 편안해지는게 아니다. 남동생한테도, 해적 소굴인 바다의 담요보다 아이리 공화국이 훨씬 좋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멍청하기 짝이 없어서 스스로 망가졌었다. 게다가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더 나은 선택이 눈 앞에 떨어졌는데. 고작 남자 한 녀석 때문에 주저하는 내가..."
너무 병신같아.
말을 마친 미나는 양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스스로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속으로 실소했다. 아,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자식인가?
두 명이나 나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있는데도. 나는 미나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그럴 때 마다 미나의 발걸음은 약간씩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서로 춤이라도 추는 듯이 한 발짝 다가가면 한 발짝 멀어지던 상황에서. 미나의 등에 벽이 닿고. 나와 미나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여전히 미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마리아 해적단을 나가는게 주저된다면..."
미나의 턱을 조심스럽게 오른 손으로 받쳐들고, 나는 미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짓씹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내 입 안으로 흘러들어와 비릿한 맛을 퍼뜨린다. 잠시 뒤에, 나와 미나의 입술이 서로 떨어지고. 피가 약간 섞인 타액이 길게 실을 잇다가 끊어진다.
"그 이유 하나가, 나머지를 잊게 하고도 남으면 되지 않을까?"
미나가 그 말에 나를 약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 지워줘."
미나는 말하고 나서 나에게 다가와서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해군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들을 모두 지워줘."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른 곳보다 여기에 남고 싶도록 만들어. 미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가슴에 이마를 가져갔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해라. 오래 세월이 지나고 나서. 내가 늙고, 네가 늙고... 시간이 지나 되돌아 보았을 때. 역시 내가 여기에 남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게 해줘."
알아들었는지?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말했다.
"노력해볼게."
그 말에 미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나에겐... 확신이 필요하다. 레이먼드. 노력으론 부족해."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미나가 내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확신, 그게 오늘 내가 필요한 거다."
풀어진 셔츠를 앞에 두고 미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입을 꽉 다문 채로 자신의 옷으로 손을 가져가고. 나는 그 손을 막고, 천천히 내 손으로 그녀의 옷을 풀어해치기 시작한다.
단추가 하나 하나, 풀어질 때 마다 미나의 몸이 움찔거린다. 흘러내리는 옷. 그리고 드러난 서로의 상반신을 바라보았다.
"..."
미나가 이내 자신의 손으로 몸을 가리고. 나는 손을 뻗어서 그 손을 조심스럽게 치우면서 입을 맞추었다. 힘이 들어간 채로 굳어있던 미나의 팔에서 힘이 빠지고, 천천히 그녀의 손이 내 등을 감싼다.
"보지 말아라. 왜 자꾸... 뚫어지게."
나는 그 말에 살짝 웃었다.
"왜?"
그 말에 미나가 조용히 대답했다.
"... 자신이 없으니까. 선장과 로제랑 비교하고 있는 거 아니냐?"
바보냐? 나는 어이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가슴 크기나 비교하고 있을 정도로 내가 병신으로 보이나. 오히려 니가 지금 그 말을 하니까 갑자기 비교하게 되잖아.
확실히... 작긴하다. 높게 쳐 줘도 A컵이겠지. 그것도 꽉찬 A컵도 아니다. 그래도...
"아름다워."
앙증맞잖아.
나는 말을 마치고 그녀를 안아올려 항해사 실에 있는 침대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다음,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귓볼을 살짝 물었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굉장히 걱정되는 장면이 등장할 차례인데요.
어...
보기에 따라서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 취향이라는게 그렇잖아요?
따라서, 다음 화를 스킵하시고 싶으면 하루 참으시고 다다음 화부터 읽어주시면 됩니다.
그냥, 그날 밤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흐뭇) 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셔도 이야기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하, 베드씬 지지리도 못쓰는 글쟁이가 이런 고난도의 과제를 하겠다고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