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 / 0160 ----------------------------------------------
뻐꾸기
나는 선원들과 함께 심심풀이, 라고 되어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수많은 쇠사슬로 묶여있는 소년이 한 명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것은, 나 뿐이 아니었다.
미나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저 얼굴은 알고 있는 얼굴이다.
"밖이 왜 이렇게 소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들었고. 그 눈동자는 흰자가 없이 온통 검은 색이었다.
레인 시트러스. 아이를 묶고 있던 쇠사슬들이 강하게 요동치면서 끊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레이... 레이먼드으으으으으! 아... 아아아아악!"
한 동안 잊고 지냈던 그 이름이 내 머리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카렌 시트러스. 한없이 착하던 의사 아가씨, 그리고 그녀의 장님 아들. 그 아들은, 지금 에밀의 방 안에 가두어진 채로 우리를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소년의 주변에서 시커먼 기운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쇠사슬들이 부서져나가고 있었고. 레인의 거친 몸부림에 사슬들이 부서지면서 레인의 팔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박살나 살을 뚫고 나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사슬들이 모두 끊어지자. 레인은 나를 향해서 달려들었고.
무언가에 막힌 듯, 그는 허공에 몸을 강하게 들이 받고 다시 엎어졌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두어지기라도 한 듯이 소년은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허공에 들이받았고, 그럴 때 마다 들릴리가 없는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너를... 너는... 너 만큼은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네 녀석 만큼은!"
자신의 입술을 질근질근 씹자 레인의 입가에서 피가 터져서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손이 돌바닥을 벅벅 긁자 레인의 손톱이 부서지면서 피가 튄다.
"더러운 살인자 새끼야아아아아!"
그렇게 말하면서 레인은 발작을 하듯이 허공에 막힌 채로 그 벽을 밀어내듯이 자신의 몸을 밀기 시작했고, 레인의 몸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검게 물든 흰자위는 나만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시커먼 증오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절대로,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겠어. 살점 한 조각 한 조각을 남김없이... 그 입에서 수백만번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고, 제정신이 아니게 되고. 완전히 미치고 망가져서 완전히 병신이 되어도 죽이지 않는다! 사지를 잘라내고, 눈알을 파내고, 혀를 뽑아내고!"
레인은 온 몸에 시퍼런 불꽃이 일어나는 가운데에서도 나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런 레인의 앞에서 어떤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 순수한 증오의 덩어리를 피할 수 없었다.
살갖이 시커멓게 타서 떨어져 나가고, 새하얀 뼈가 드러나고 다시 타들어간다. 레인의 얼굴이 녹아내리고, 몸의 형태가 무너지고 있었다. 살갖에 수포가 부글부글 일어나는 가운데에 레인의 손끝이 나에게 거의 다 다가갔을 때. 레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나에게서 물러났다.
내가 들고 있는 러셀의 검이 진동하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푸른 불꽃이 붙은 채로 나에게로 뻗어지고 있던 새햐안 손뼈는 시커멓게 숯덩이가 되어서 부서져내렸다.
"어째서... 어째서! 지금에서야 만났는데. 지금 눈 앞에 두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벽은 더 이상 레인을 막지 않는지. 그는 이를 악물고서 일어났고. 녹아내리고 화상을 입어서 무너지고 있던 레인의 몸은 다시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단 한 군데, 나에게 뻗고 있던 손을 빼고.
레인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자신의 몸을 남아있는 하나의 손으로 마구 할퀴고 있었다.
"원망스러워.... 원망스러워... 죽여버리고 싶어... 이 세상에 저 새끼가 살아있는게 혐오스러워."
그리고 레인의 고개가 그대로 내 쪽으로 향하더니 그는 나에게 외쳤다.
"왜 죽인거야? 우리 엄마를, 너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죽인거냐고!"
나는 대답 할 수 없었다. 내가 스스로 행했던 그 모든 더러운 죄악이 나의 몸을 꿰뚫는 듯한 감각에.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으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인은 이를 끊임없이 갈면서 나를 보고 말햇다. 말을 할 때 마다, 부서진 이빨 조각들이 레인의 입 밖에서 토해졌다.
"얼마 남지 않았어. 한 명... 한 명만 더 있으면 모든게 끝나. 그 때가 되면, 내 몸을 불태우는 듯 한 이 고통과 분노를. 너에게도 느끼게 해주겠어.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 모든 것들을 네 앞에서 부수고, 네가 비명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의 살점을 씹겠어!"
그 말을 끝으로, 레인의 몸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벽에 몸을 기대었다.
"항해사님... 방금 그건..."
나는 새하얗게 질린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선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의 아들이었어."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참으면서 가까스로 말했다.
"... 돌아가자. 시간이 없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비틀거리면서 지하실을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에밀을 보고 정신병자라고, 천하의 쓰레기 새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인을 보고 나니. 나는 침묵해야했다.
나는 누구에게 개새끼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개새끼다. 나는 무슨 착각을 잠시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쁜 개새끼를 조지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와 에밀은, 그냥 둘 다 개새끼였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 투쟁하던 개새끼였다.
다만, 내가 조금 더 머리가 굴러가는 개새끼였을 뿐.
나는 에밀에게 분노를 느낄 자격이 없겠지.
에밀은 사람들을 가두어놓고 그들의 몸을 병신으로 만들어놓았지만.
나는 멀쩡하고 순진하던 한 아이의 마음을 병신으로 만들어놓았다.
둘 중에 어떤 새끼가 더 개새끼인가?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돌아왔고. 마리아는 기절한 로제를 옆에 두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표정들이 왜 그래, 귀신이라도 본 거야?"
나는 조용히 마리아를 보고 말했다.
"...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는편이."
나는 그렇게 말하다가 다리에 힘이 플려서 주저앉았고, 미나가 나를 황급히 부축했다.
"돌아가자."
마리아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일단은 돌아가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명령을 내렸고. 우리는 에밀의 저택을 빠져나와서 다시 바다의 날개로 향했다.
바다의 날개로 돌아온 나는, 미나에게 부탁해서 조타륜을 잡게 하고. 선장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거기에는, 아직 정신을 놓고 있는 로제가 있었다. 마리아가 아직 기절해 있는 로제의 몸을 다 닦아낸 모양인지, 로제의 몸에서 피딱지와 같은 오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메이너스 항구에서 멀어지자, 나는 배를 정박시키고 선원들을 쉬게 했다. 거의 며칠을 잠도 제대로 못자고 움직였으니까. 벗어난 것이 확실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그 치료방법이라는 거. 말해봐."
마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로제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지금 바로. 구할 수 있는 가장 두꺼운 밧줄로 로제의 몸을 꽁꽁 묶어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마리아가 나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입에는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혀를 깨물거나, 이가 상할 수 있습니다. 재갈은 면 재질로."
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자력으로는 절대로 탈출할 수 없는 마약입니다. 아마, 로제는 그 약을 다시 하려고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할 겁니다."
약기운이 모두 풀리고, 금단 증상이 끝날 때 까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게 묶어놓아야 한다.
"식사는, 면 재갈 위에다가 소금과 설탕을 섞은 물을 계속 뿌려주는 걸로 대신합니다."
나의 말에 마리아가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 확실한 방법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치료가 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으니까.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얼마나 걸려?"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2주에서 한달은 걸립니다."
그 말에 마리아의 안색이 다시 굳었다.
"그렇게나..."
나는 그리고 나서 마리아를 바라봤다.
"소변은... 미나나 마리아가 번갈아 가면서 받아주어야 할 겁니다. 묶을 때에 고려해주세요."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밖에 나가더니. 밧줄과 내가 말한 물건들을 가져와서는 로제를 묶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일을 마치고 나서 숨을 내쉬고 나를 바라봤다.
"로제의 몸이 회복될 때 까지는 출항을 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리아는 이마의 땀을 닦아낸 다음에 나를 바라보며 말햇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어서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에밀이 지하에서 하고 있던 일과, 그 방들 중 하나에서 발견한 레인. 그리고 그가 나에게 쏟아내었던 이야기들을 모두. 마리아는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숨을 내쉬었다.
"우리 엄마는 내게 말하곤 하셨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선장실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고개를 깊게 숙이고 있는 미나 웨스트우드. 그녀는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그대로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미나는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고. 마리아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로제는 위험을 알고 찾아간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구하는데 성공했어. 게다가 너의 남동생까지 구하는데 성공했지."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엎드려있는 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간첩으로 왔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을 생각이야."
그 말에 미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말했다.
"제가 이미 밝혔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와 나는 몸을 굳혔다.
"모두 말했습니다. 제가 간첩으로 왔었고, 로제가 저렇게 된 것이 다 저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밀 메이너스와 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미나는 자신의 고개를 들었다. 미나의 얼굴의 왼쪽이, 시뻘겋게 부어오른 상태로 흉하게 멍들어있었다. 아마도, 갑판장이 때린 것이 분명하다.
자세히 보니 몸도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선원들이 그 사이에 분노해서 엄청나게 때린 모양이다. 바로 엎드리는 바람에 제대로 못 봤지만 옷에는 먼지와 신발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 너의 잘못 만은 아닐텐데."
마리아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고,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로 인해서 비롯된 일입니다.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고. 도망칠 생각도 없습니다. 선원들이 저를 어떻게 보던, 뭐라고 말하던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잠깐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건 싫습니다."
마리아는 천천히 미나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뺨을 한 번 어루만지고 살짝 웃었다.
"배에 남아라."
그럴 생각입니다. 미나는 단호하게 말했고, 마리아는 그 말에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 나서 말했다.
"그거면 충분해."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서 미나의 뺨을 한 번 다시 살펴보고 한숨을 쉬었다.
"상처가 오래 남아있겠네.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고 있지."
뺨 맞아서 입이 터졌을 때는, 독한 럼주로 소독하면 좋던데.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애들 안 자고 있으면 갑판 위로 나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전해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갑판 위에는 우리의 영원한 친구인 육포나 건빵들과 함께 언제나 배 안에 실려있는 럼주 두 드럼이 올려졌다. 아직 자고 있던 선원들은 없는 모양이었고, 술을 먹는다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날 녀석들이 태반이었기에. 갑판 위에는 어느사이에 모든 선원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오늘 하룻 밤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
마리아는 말하면서 선장모를 벗어놓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결과적으로는 다 잘 풀렸어. 우리는 로제도 구해내는데 성공했고, 아이리 공화국의 군항에 무사히 들어가서 공화국 제독의 집을 뒤졌고, 미나 웨스트우드 항해사의 남동생도 구했지."
선원들은 모두 다 갑판에 주저앉은 상태로,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마리아를 주시했다.
"결과가 아무리 좋았어도, 오늘 하루가 아주 좆같았다는 거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거다. 우리는 며칠 간 잠도 못 잤고, 미나 웨스트우드 항해사는 스스로가 간첩이었다고 밝혔고, 로제는 심하게 다쳤어."
마리아의 말에 선원들이 몸을 잠깐 흠칫했다.
"그래... 미나 웨스트우드가 스스로 너희들에게 자신이 간첩이었다는 걸 밝혔다고 들었다."
그 말에 선원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마리아는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니들이 흠씬 때린 것 같던데."
선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니다, 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그걸 보고는 한 마디 했다.
"그래, 속은 시원하드냐?"
모두가 침묵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모습에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시팔, 시원 할 리가 없지. 븅신들. 왜 애꿎은 미나는 패고 지랄이야? 걔가 로제 저 꼴로 만들었냐? 저 꼴로 만든 새끼들은 로제가 이미 다 모가지를 땃는데 왜 애꿎은 미나를 때려?"
말을 마치고 나서 마리아는 미나를 가리키고 말했다.
"일어나서 이리로 와라."
그 말에 미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약간 절뚝거리며 마리아의 옆에 섰다. 한밤 중에, 반달과 별빛들 만으로도 미나의 얼굴 한 쪽은 보기 흉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해봐."
그 말에, 미나는 고개를 숙인채로 말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로제가 다친 일에 대해서는... 죄... 송...합니..다."
심하게 부은 미나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마리아는 한 동안 미나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선원을 가리켰다.
"너, 미나 웨스트우드에게 할 말 있음 떠들어봐."
그 말에 잔을 들고 있던 선원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나서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서 한 동안 침묵하면서 미나를 바라봤다. 미나는 그 선원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걸 보던 선원이 조용히 말했다.
"생각해보면 항해사도 피해자인데. 때려서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마리아는 일어나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고. 일어난 선원들은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가, 때려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원들의 마음 속에 죄책감이 자라나기 시작하는게 보인다. 때릴 때는 정신줄을 놓은 상태여서 몰랐겠지만. 막상 멀쩡하던 여자의 한쪽 뺨이 퉁퉁 부어올라서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걸 보면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죄책감이 생기게 마련이지.
한 명 한 명 지나갈 때 마다 미나에게 선원들이 하는 말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선원들이 말을 마치자, 마리아는 그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븅신들, 때리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면 끝나냐. 와서 미나한테 술이나 한 잔씩 따라줘."
상황은, 마리아가 통제하면서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고, 저거는 내가 아니라 마리아의 특기였기에 나는 따로 간섭하지 않고 얌전히 갑판에 앉아서 육포를 질겅거리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턱 갑판장이 앉았다.
"... 로제는 좀 어떻습니까?"
갑판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치료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한 달 안에는 나아질거다."
그 말에 갑판장이 끄으응, 하는 소리를 내고는 내 옆에 앉아서 술잔의 내용물을 비웠다.
"... 그, 미나 항해사한테는 미안했다고 전해주십쇼.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라."
그 말에 나는 픽 웃으면서 말했다.
"미나는 직접 말했는데, 자기가 간첩이라고. 흠씬 맞을 줄 알면서도."
그 말에 갑판장이 잠깐 고민하다가, 에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서 술병을 들고 미나에게 다가갔다. 미나의 앞에 선 갑판장은 그 앞에 털썩 주저 앉아서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나도 한 잔 좀 주쇼, 항해사."
그 말에 미나는 물끄러미 그 잔을 보다가 갑판장에게 럼주를 따라주었고. 그는 그 잔을 그대로 비우고 나서 미나의 잔을 가리켰다.
"비우고, 잔 내미쇼."
미나는 잔을 비웠고. 내밀어진 잔을 갑판장이 채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너무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수다. 선장의 말대로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고.... 그..."
갑판장은 아 씨이발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자신의 잔을 내밀었고. 미나는 다시 그 잔을 조용히 채워주었다.
"때린건 아무리 봐도 내가 너무했어. 그러는게 아니었어! 애새끼들이 때리려고 해도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언더테이커가 얼굴이 붉게 변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저 갑판장 얼굴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거 이제보니까 더럽게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네 저거. 궁시렁거리면서 다시 갑판장이 자신의 잔을 비우자. 미나는 부어오른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화를 내시는 게 당연했고, 저는 맞을 짓을 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싸움은 봤는데.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말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또 처음본다. 미나와 갑판장은 계속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면서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었고. 다른 선원들도 그 사이로 끼어들어와서 미나와 술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 작품 죽이지 않냐?"
마리아는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히죽거리면서 내 잔에 술을 채워주었고. 나는 마리아를 보면서 말했다.
"작품 죽이네요."
그치?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앞에 놓여있는 육포를 질겅거리기 시작했다.
"레인 일은 우리 잘못이야."
마리아는 육포를 씹다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죽을 때 까지 쫒아다니겠지. 아니, 죽고 나서도 쫒아다닐거야."
마리아는 말하고 나서 술을 쭉 들이키고 입가를 슥 닦아낸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그 아이만 쫒아다니는게 아니지. 너는, 아마 니가 처음 죽인 사람의 눈동자를 기억하고 있을거야."
나는 카렌을 기억하고 있거든. 마리아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자신의 술잔을 바라봤다.
"내가 차라리 그 레인의 얼굴을 바라봤어야 했어. 카렌 시트러스의 목줄기를 그은건 나니까."
나는 내 술잔을 비웠고, 마리아는 다시 내 잔에 술을 채웠다.
"우리는 뻐꾸기 같은 새끼들이야."
뻐꾸기 알아? 라고 마리아는 말하고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굴러떨어뜨려서 박살내고 내 행복만 챙기는. 우리는 그런 새끼들이지."
이 배의 선원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던 카렌 시트러스와 레인 시트러스의 행복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박살낸. 마리아는 자신의 술잔을 채우고 나서 나를 보며 말했다.
"좆같은 뻐꾸기끼리, 건배하자고."
나는 그 말에 조용히 잔을 마리아와 부딪치고 잔을 비웠다.
============================ 작품 후기 ============================
코멘트를 확인했어요!
삼연참이라니요. 단정짓지 말아주세요(흥)
제가 이래뵈도, 한 때는 그러다가 몸 상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는데!
그러니까... 12시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