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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27화 (12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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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 down

섬에서 보이는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물 아래로 가라앉은 정도를 보니, 안에 선원들도 얼마 없고. 망원경으로 대포들도 잡히지 않는다. 별 다른 장난을 배에 해놓은 것 같지는 않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사이에도 배는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섬 근처에서 멈춘 갤리온이, 바다 아래로 돛단배를 던지고, 그 위로 사람이 타기 시작한다.

"거, 더럽게 오래 걸리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해야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 수 있을까. 젠장, 이게 무슨 여자랑 데이트 하는 것도 아니고 첫 만남 인삿말까지 생각해야하냐.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다가오는 돛단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돛단배가 모래사장 앞에서 멈추고, 차가운 바람이 휭 하니 날리면서 우리와 해군들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명나게 치고 박던 두 조직의 머리들이 만난 장소는 바람이 쌩쌩부는 모래사장 위.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동자는 별로 즐거워보이지 않았다. 열 명의 해적과 열 명의 해군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에 선장모를 쓰고 있는 남자가 마리아 쪽으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아이리 공화국 해군 제독, 에밀 메이너스입니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아, 우리 이러지 마시죠."

이 새끼가 어디서 쌍팔년도에나 할 법한 애들 장난같은 수작을 거냐. 나는 어이없어서 웃으면서 뒤편에 서 있는 해군 하나를 가리켰다.

"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는 선원은 손이 정말 고운데, 제독씩이나 되시는 분의 손이 왜 이렇게 거칩니까?"

꼭 갑판 위에서 삭끈이라도 다루는 사람처럼 말이야. 나는 서늘한 눈으로 문제의 선원과 눈 앞의 짜가를 번갈아서 바라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원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저런, 장난을 받아주지 못하는 성격인가보지."

그러면서 뒤편에 있던 선원이 약간 식은 눈빛으로 턱짓을 한 번 했고, 곧 앞에 서 있던 남자는 경례를 하고 나서 뒤로 빠졌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남자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장난을 쳐도, 조금 조잡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 말에 에밀이 흠흠... 하는 소리를 내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그럼, 그쪽이 레이먼드 항해사겠군."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서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밀어넣으면서 장난스럽게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까?"

내가 담배를 눌러 넣고 있는 동안, 에밀은 고개를 돌려서 마리아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마리아 해적 선장."

마리아는 그 말에 팔을 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 메이너스 제독, 이쪽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담배에 불을 붙인 나는 연기를 한 번 훅 뿜어내고는 뒤편으로 손을 까닥거렸고, 럼주 한 병이 나에게 던져졌다. 에밀은 마리아가 서로를 지켜보는 가운데에,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정확하게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그 말에 에밀이 입을 열었다.

"적혀 있던 데로인데. 아이리 공화국과 마리아 해적단 사이에 이어지는 조약."

마리아는 흠... 하고 생각을 하다가 웃었다.

"글쎄, 일단은 나와 이야기를 해보지 말고, 우리 항해사랑 한 번 이야기를 하라고."

마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에밀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고. 나는 천천히 마리아의 옆으로 가서 입을 열었다.

"가장 중요한거! 지금 이 이야기, 아이리 공화국에서는 인지하고 있는 내용일까?"

그럴리가 없겠지? 나의 말을 듣고는 에밀이 대답했다.

"아니, 국민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협약이다보니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사항이지."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파이프에서 담배연기를 약간 뿜어내었다.

"그럼, 그쪽과의 협약에 무언가를 담보로 걸어야 할 것 같은데."

나의 말에 에밀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꼬리에 불이 붙은 건 우리 쪽 뿐이 아닐텐데."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말인가본데. 나는 에밀을 바라보았다.

"카멜롯 왕국과 게르하르크의 연합? 별로 위협적일 것도 없지."

나는 태연하게 말을 하고 나서 그를 바라봤다.

"검은 어금니로는 바다의 날개를 제거하기 힘들어. 게르하르크의 함대가 규모가 아이리 공화국이 가지고 있는 전함들 만큼이나 많다고 해도. 도망치는 건 문제가 아니야."

나의 말에 에밀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허세 부리는 걸 좋아하는 건 나 뿐이 아닌것 같군."

에밀의 눈이 똑바로 나를 향했다.

"게르하르크와 카멜롯이 그걸 모를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인가. 친절히 가르켜주지. 레이먼드, 너희들이 도망치면 녀석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다의 담요를 노릴 것이다."

그들이 쳐들어오면. 해적들은 어떻게 서로 뭉쳐서 대항하지? 에밀은 그렇게 물어보면서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저 말은 맞다.

다른 해적들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역할이 있고, 거기에서 얻는 이득이 있는 한에는. 우리는 이번에도 발을 빼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잠깐 침묵하고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 잔재주는 서로 그만하자고 제독."

나는 말을 마치고 그를 바라봤다.

"요점은, 우리는 확실한 담보가 필요하다는 거야."

나의 말에 에밀이 웃었다.

"그건 우리도 필요하겠는데. 우리가 곤란할 때에 너희들이 돕지 않으리란 법 있나. 애초에, 해적과 해군의 은밀한 동맹이라는 건 해적들 사이에서도 환영받을리 없지."

이 새끼가? 뭘 바라는 거지.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마음 속으로 작게 느낌표를 띄웠다. 그래서 계속 저러고 있었나.

"로제는 빼고 말했으면 하는데."

나의 말에, 에밀이 잠깐 멍해졌다. 그리고는 허, 하고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무슨 소리기는 이 새끼야.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에밀의 눈동자를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파이프 담배를 빨았다.

"그 눈동자가 아까부터 빠르게 움직이면서 뭔가를 찾고 있어. 근데,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질 않았거든? 다만, 오지 않은 사람들은 몇 명 있지."

사람을 찾고 있는 거겠지. 나는 후욱 하고 연기를 내뱉으면서 말했다.

"에밀 메이너스 제독, 우리 선원들 중에 로제와 면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약혼 이야기까지 오갔다지."

나의 말에 에밀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히죽 웃었다.

"좋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짐작하고 두고 온 건가?"

어,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이걸로 로제는 어디있는가, 에 관한 의심은 대충 거둬지겠지. 그냥 두고 온게 아니라. 지금 즈음이면 니 집을 신나게 뒤지고 있을거야. 에밀 메이너스. 이제 로제가 없는 것에 대한 의심거품을 걷어냈으면 낚싯밥을 뿌릴 시간이다.

"우리는 많은 걸 원하지 않아."

이전에 로만이 제독일 때 하나 주워들은게 있거든. 이라고 하면서 나는 에밀을 바라봤다.

"아이리 공화국에서 개발 중인 함포에 대한 이야기였어. 사거리가 꽤 나간다고 하던데?"

그 말에 에밀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그 함포 설계도의 사본 정도면 담보로 적당할 것 같은데. 에밀 메이너스, 그쪽의 인장도 이쁘게 한 방 콱 박아서."

여기까지 배 타고 오면서 내가 놀고 있었던 것 같냐? 그냥 댁의 인장 정도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애초에 그런 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면 분명히 그 초안 설계도는 에밀이 가지고 있을 거다. 게다가 왠만한 수준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함부로 그 문서에 손을 댈 수도 없겠지.

게다가 원본도 아니고 사본이다. 이 경우에는 원본보다 사본이 더 효과가 강력하다. 배꼈다는 건,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볼 수가 있었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원본은 여전히 에밀이 가지고 있게 된다.

우리가 그 설계도의 사본을 가지려면. 한 밤 중에 몰래 침입해서 그 사본을 손으로 스캔한 다음에, 다시 원본을 이쁘게 원래 장소에 돌려두고 에밀의 인장을 배껴내야하는 것이다.

또는, 진짜로 에밀과 우리가 서로 손을 잡거나. 보통 이럴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은 손을 잡았었다고 보겠지.

즉, 저 녀석이 나중에 가서 '저건 녀석들이 훔친 다음에 내 인장을 배껴서 만들어낸 가짜다.' 같은 주장을 할 수는 없어진다. 다시, 파이프 안의 담배가 빨갛게 타들어가며 내 폐 속을 채운다.

...정도 까지는 저 녀석도 생각이 닿아 있겠지.

근데 이거 사실 다 필요 없는 행위야. 어차피 다 연기거든. 그럴 듯한 담보를 요구하지 않으면 저 녀석이 의심할 것 같아서 만들어낸 때깔 좋은 핑계.

에밀이 턱을 쓰다듬다가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쪽에서도 담보를 제시하지."

오냐, 물엇구나. 한 번 말해봐. 나는 연기를 뿜으면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에밀이 입을 열었다.

"이 동맹의 담보로 레이먼드 항해사, 그대가 접시 위에 올라오면 기꺼히 개발 중인 함포의 설계도를 넘겨주지."

그 말에 마리아의 표정이 험하게 변하면서 에밀을 바라봤다.

"내가 귀가 잘 안들려서 그런 것 같은데. 다시 말해봐."

에밀은 마리아의 말에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레이먼드 항해사를 담보로 하겠다고 말했는데."

하, 이 새... 까지 말한 다음에 마리아가 쉼호흡을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는데."

마리아의 말에 에밀이 대답했다.

"그 반응을 보니, 역시 레이먼드 항해사가 담보가 되는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에밀의 눈이 미나 웨스트우드에게로 향했다.

"대체할 만한 항해사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오랜만이군 미나 웨스트우드."

그 말에 이번에는 내가 약간 굳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에밀이 무심하게 말했다.

"저렇게 굳은 자세로 서 있는 여자를 한 명 알고 있지. 게다가, 그 여자는 내가 수도로 보내는 배에 태워서 이송 중이었거든."

팔을 꼰 채로 에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거기에 때려 박은 돈이 상당한데, 그걸 너희들이 홀라당 집어먹었다는 거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더군."

에밀이 어깨를 으쓱 하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미나 웨스트우드는 쓸만한 항해사지. 내가 보증해. 그러니까, 배에 항해사가 없다고 해서 마리아 해적단이 입을 피해는 크지 않다는거다."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서 에밀을 바라봤다.

"제안에 대해서, 이틀 정도만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그 정도 기간은 머무를 식량이 그쪽의 배에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말에 에밀이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는 기다려주지."

그럼 됐어 새끼야. 나는 속으로 웃었다. 나를 담보로 넘기라고. 그래, 우리가 진짜로 너와 협약을 맺기 위해서 왔다면... 내가 넘어가는 것도 나는 진지하게 고려할 옵션 중에 하나야.

근데, 사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거든. 어차피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로제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생각하라고 주어진 여유시간 이틀에다가 너희들이 배 타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로제에게 필요한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어.

물론, 게르하르크와 카멜롯 왕국의 동맹은 물론 우리에게 있어서도 조만간 뜨거운 감자가 되겠지.

하지만, 네가 다시 너의 항구로 돌아가고, 우리가 다시 로제를 바다의 날개에 태우게 된다면.

그 이후에 나는 너를 협박해서 움직이게 할 거야. 미나 웨스트우드의 남동생에 관한 자료를 로제가 찾아내는 순간. 너는 코뚜레가 꿰인다, 에밀 메이너스.

그때 가서는 담보고 지랄이고, 우리 쪽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할 테니. 두근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다음은 에밀 시점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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