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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20화 (12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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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털어라

바다의 날개와 함께 숨은 상태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인 규모의 호위선들을 보던 나는 허허허허 웃었다. 어차피 상선들과 비슷하게 안정성을 기해야 하는 뇌물선들이 아이리 공화국의 수도로 가기 위해서 잡을 항로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굳이 메이너스 항구에서 녀석들을 뒤쫒을 필요도 없는데다가...

마스트가 없어서 시계가 좁은 바다의 날개는 미행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녀석들을 발견하면, 마스트 위에 올라서 있던 녀석들은 이미 우리를 발견한 다음이 될 거다. 그러면 우리가 오기 전에 싸울 준비를 끝낼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녀석들이 따라갈 항로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고.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뇌물선과 그 뇌물선을 호위하는 배들은 예상했던 대로 움직여주었다. 다만, 그 호위함들의 규모라는게...

"씨팔. 지금 저 배들로 해전을 벌여도 되겠네. 뇌물을 바치러 가는 거야 아니면 해전을 벌이러 가는거야? 당분간 해전을 벌일 가능성이 없어서 다행이네."

아이리 공화국은 여론이 중요하고, 그 중요한 여론이 지금 전쟁 금지! 를 외치고 있었기에 해적들에게로 쳐들어오는 게 아닐 뿐이지... 에밀은 도대체 어디에서 또 저 정도의 배를 끌어모은거냐. 여자들 가슴 끌어모으듯이 영혼까지 박박 긁어모은 모양이네. 물론 해군의 군함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중소규모의 해전에서 활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 그런 저 배들을 우리는 한 척으로 다 밀어버릴 예정이고요."

로제는 난간에 턱을 올려넣고, 난간의 틈새로 다리를 밀어넣고 까닥거리면서 내 옆에 앉아있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아."

일단, 이 배는 존나 빠르고, 존나 쎄잖아.

... 딱히 다른 더 쉽들에 비해어 엄청나게 강한지는 이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반 배들이고 우리가 선공을 취하게 된다면 이 정도의 숫자로는 질 리가 없다. 좋아, 1대 10이라!

"준비하자."

마리아의 명령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다를 한 번 바라봤다. 바람 북서로 흘러가고 있고. 그러면 녀석들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각지대는 뻔하지. 나는 러셀의 검을 돌리면서 말했다. 배 뒤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가면서 바다의 날개가 빠른 속도로 호위함들을 향해 돌진한다. 나는 러셀의 검을 돌려 속력을 줄이면서 외쳤다.

"왼족으로 2초!"

빠르게 무력화 시켜야한다. 바다의 날개의 속력이 올라가면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린다. 간만에 해적의 본업에 충실할 시간이 왔으니까. 녀석들도 우리의 접근을 눈치 까고 배의 측면을 급하게 우리 쪽으로 가져가려고 하지만, 바람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근처에 다가간 바다의 날개 양 쪽에서 물대포가 뿜어지면서 측면을 상대의 호위함들에 향한 채로 미끄러지고. 그대로 다시 러셀의 검을 돌려 속력을 높힌다.

"우현, 발사!"

그 말에 바다의 날개 양 쪽에서 물대포가 발사되면서 호위함 한 척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그 사이에 끝까지 돌려진 러셀의 검에 속도를 받은 바다의 날개가 빠르게 나아가며 거의 다 돌아간 다른 배들의 측면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크게 호선을 그리면서 다시 호위함들의 꼬리를 잡고. 다시 물대포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그냥 배로는 안된다. 가서 렛잇고 데려오렴."

나는 큭큭거리면서 조타륜을 빠르게 이리저리 돌리다가, 조타륜을 탁 놓고 바다의 날개가 쭉 밀려나는 걸 구경한다. 세 척 정도가 뒤통수를 쳐맞고 선장실이 박살나자. 녀석들도 바다의 날개를 따라서 배의 측면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그래, 안 돌아가는 머리로 애썼다."

호위 대상인 뇌물선을 중심으로 해서 호위함들이 둥글게 말리기 시작하자. 나는 히죽 웃었다. 저러면 굳이 측면을 우리에게 향할 필요는 없겠지. 녀석들은 뇌물선을 지키는게 목적이지. 바다의 날개를 침몰시키는게 목적이 아니다.

근데, 우리도 니들을 꼭 이 해전에서 다 전멸시켜야 하는 건 아니거든.

"우회전 반바퀴!"

나의 외침에 배 양쪽에서 물대포들이 발사되면서 바다의 날개가 반바퀴 핑그르 회전한다.

"뒤쪽으로 다 뿜어!"

녀석들은 원형으로 뇌물함을 감싸자마자 우리를 향해 대포를 발사했지만. 우리는 이미 녀석들이 달고 있는 대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 자, 이제 어쩔래?"

그대로 평생 있을거냐? 니들 지금 어디 가고 있는거 아니냐? 그것도 나름 타임어택일텐데. 새해 선물은 새해 당일에 배달 되어야 의미가 있잖아. 머릿 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시작된다. 녀석들의 배 무게. 달고 있는 돛들의 종류. 바람의 세기. 계산을 끝낸 나는 그대로 웃으면서 녀석들의 시야에서 이탈했다.

나중에 또 보자고. 그 때는 호위함이 7척이려나.

"... 녀석들이 갑자기 항로를 바꿀 가능성은 없어?"

마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항로를 바꿔서 가려고 하면 이틀은 더 가야 가능합니다. 이틀이면 저 호위함을 다 벗겨버리고 속에 꽁꽁 숨어있는 우리의 아가씨를 겁탈하는 건 일도 아니지요."

게다가 설사 녀석들이 이틀을 버티는데 성공해서 항로를 바꾼다고 해도...

"항로를 바꾸려고 해도 이 근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들은 한정되어있지요."

선택할 수 있는 길들이 뻔한데. 항로를 바꾸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우리가 오프로드도 포장도로고 쌩까고 달리는 최고급 랜드로버면. 저 녀석들은 포장도로 벗어나면 바로 뻗어버리는 가냘픈 영혼들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녀석들이 지나쳐 갈 경로에 다시 배를 숨겨두고 있다가 날아가서 또 뒤통수를 빡 갈기고 사라지면 됩니다."

왜, 벨 누르고 튀는 장난처럼 말이야. 해전에서는 이런 운용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한 척으로 돌아다니는 약탈이라면. 이 이상가는 방법이 없지. 그런 의미에서 러셀이 배 하나는 잘 잡았단 말이야. 이렇게 해적질에 최적화된 함선이 또 있을까?

검은 어금니는 약탈할 수도 없게 배를 망가뜨리고, 방랑자도 망가뜨리고. 싸늘한 앤은... 느려 터졌고. 안개의 미야? ... 그건 해적질에 써먹을 수 있겠네.

그래서 그 녀석도 해적 비스무리한 일을 하는 상태잖아. 이게 다 적성따라 직업이 정해지는거야. 사람이랑 똑같지.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던 장소에 숨은 우리는 다시 배를 기다리기 시작했고.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한 삼십분? 정도 지나면 올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난간에 기대어서 입맛을 다셨고. 정확히는 한 시간 정도 뒤에 아까 봤던 그 친구들이 여기를 다시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리아가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봤고. 나는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아, 이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도착 예정시간을 말하면, 거기에서 오차는 어느정도 생기는 법입니다."

이 정도 적중률이면 거의 시모 사이하 급의 저격이구만. 마리아가 내 표정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즐거워 보인다?"

그 말에 나는 마리아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그래 보입니까?"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러셀의 검을 돌려서 다시 우리의 불쌍한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별로 즐겁지는 않습니다."

이쪽을 보면서 뭐라고 절규하는 호위함의 선원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고이 접어 나빌레면서 나는 히죽 웃었다.

"그냥... 요즘은 너무 제약이 이것 저것 있는 상황에서 바다의 날개를 굴리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그런거 없잖아. 이게 얼마만에 바다의 날개가 멋대로 다른 배들을 휘젓고 다니는 상황이야?

...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 있기는 했나? 검은 어금니 달라붙고, 싸늘한 앤 달라붙고, 포위 당하고...

이런 씨,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짜증나네. 이렇게 좋은 배를 가지고 왜 그렇게 곤란한 상황이 많았던 거야? 이래서 못해, 저래서 못해!

이번에는 녀석들 반응이 빨라서 한 척만 무력화 시키고 빠져야 했지만. 저 호위함들이 네 척이 되는 순간부터는 치고 빠질 필요도 없이 덮쳐서 먹어버리면 끝난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냐.

그럴 수 있을리가 없잖아.

물론 출발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 그래도 출발은 할 거고. 녀석들은 우리가 숨어있는 장소를 지나갈 거고.

개껌이구만.

그렇게, 하루 하고도 한 나절이 지나가자. 저물어가는 해 가운데에 우리는 박살난 호위함들을 사이로 다가가 뇌물을 잔뜩 선적하고 있는 배 근처로 다가갈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새끼들 포도 안 달았네.

"... 그래도 영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인데요."

배 위에는, 아마도 다른 호위선에서 끌어모아놓은 것이 분명한 선원들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로제를 보면서 나는 대답했다.

"생각이 없는게 맞아."

대포도 없는 배의 갑판 위에 선원들이 멍하니 있으면 무슨 꼴이 날까요?

"물청소 당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실 웃었고. 마리아의 명령에 따라서 발사된 물대포가 갑판 위에 있는 선원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어우, 뼈 맞은 것 같은데. 저건."

물대포를 맞고 바다로 떨어지던 선원들이 갑판 아래로 숨어들어갔다. 어차피 약탈이 목적인 해적선인 이상에야 배에다가 대고 물대포를 갈길리는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배를 약탈하려고...

"건너간다!"

마리아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그렇게 외쳤고. 이내 해적들의 전매특허인 밧줄 달린 갈고리들이 상대 배와 우리를 엮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로 걸어가는 마리아와 함께 선원들이 저쪽 배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피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로제가 휙 하고 날아가듯이 상대의 배로 건너가며 히히힛 하는 웃음을 남겼다.

우리 선원들이 배로 건너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갑판 아래에서 선원들이 뛰어올라왔다. 우리 선원들이 저리로 간 이상 물대포를 갈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탕. 하는 소리들과 함께 우리 선원들의 피스톨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 선원들을 향해 발사되고. 대 여섯 명의 선원들이 몸의 온갖 부분들을 붙잡고 쓰러진다. 저 녀석들도 한때는 피스톨을 갈길 수 있었을 거다.

"지금은 아니지."

물 먹었잖아. 어차피 장전이 오래 걸려서 한 번 쏘고 나면 끝이지만. 그래도 한 바탕 피스톨을 갈기고 시작하는 우리랑 그렇지 못한 녀석들과의 차이는 크다. 나는 갑판에 기대어서 담배를 피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빠르게 하얀 아대를 활용하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상대편을 베어내는 로제와. 그딴거 필요 없이도 상대를 압도하는 마리아. 크하핳 하는 소리와 함께 커틀러스를 들고 휘두르는 갑판장.

그리고 나머지 선원들. 싸움을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리아는 상황을 파악하고 외쳤다.

"여기서 다 뒤질래, 아니면 곱게 선물상자 비우고 구차한 목숨을 더 이어갈래? 반응 없으면 다시 물어보지는 않는다."

설사 위를 굴러도 이승이 심연보다야 훨씬 낫지. 상대편은 마리아의 외침에 얼마지나지 않아서 무기를 내려놓았고. 마리아는 푸른 커틀러스에 달라붙어 있는 피를 휙 휘둘러 털어내고 말했다.

"저 친구들 꽁꽁 묶고, 물건 빼라."

지시는 빠르게 이행되었고. 밧줄에 묶인 녀석들은 음울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애지중지 보호하던 장물들이 싸그리 털리는 걸 구경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선원 한 명이 위로 올라와서 외쳤다.

"여기, 뭐 이상한게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갑판 아래로 내려갔고. 잠시 뒤에 올라와서 바다의 날개 위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레이먼드! 이쪽으로 넘어와봐, 여기에 너를 아는 녀석이 가두어져 있는 모양인데."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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