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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119화 (11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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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털어라

뭐, 새해 선물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고 해도 뇌물이라는 본질을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편하게 새해 선물들을 바리바리 올리고 항해를 하는 배들을 뇌물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호른 항구에서 출발하는 뇌물선이 세 척. 켈리커 만에서 출발하는 뇌물선이 다섯 척... 선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바다의 담요에 있는 해적들에게 정보를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물론, 실제로 출발하는 배들은 이것보다 훨씬 많겠지. 두 국가를 통틀어서 귀족들이 아무리 적어도 수백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애초에 들려오는 정보들을 같은 해적들에게 의존하기로 마음먹은 이상에는, 먹기 좋게 익은 뇌물선들의 정보는 없다고 보는 편이 좋다. 녀석들도 땅 파먹고 졸리로져 다는게 아니니까. 이렇게 좋은 사냥 시즌을 놓치고 싶지는 않겠지. 안그래도 현상금 사냥꾼이니 뭐니 해서 한 동안 약탈을 뜸하게 했으니까. 이번 시즌에 그 피해를 복구하고 싶을거다.

즉,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들은 최소한 호위함들이 네 척 이상 달라붙는게 확실한 무식할 뇌물선들 뿐이다.

"하지만 보수는 이런 것들이 더 좋을텐데요."

로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별 거 없는 배에다가 호위선을 그렇게 많이 붙일 이유는 없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정보들을 확인하다가 입을 헤벌렸다.

"메이너스 군항... 한 척?!"

나의 외침에 마리아와 선원들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톱을 깍고 있던 마리아는 자신의 손톱을 촛불에 비춰 깎으면서 말했다.

"뭐가, 한 척이면 별 볼일 없는 거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거다. 과일을 하나하나 두고 보면 부피가 엄청 나가지만. 정작 그 액기스를 쪽쪽 빨아낸 비타민제는 별로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는 진리.

"다른 녀석들이 우유가 담겨있는 병이라면. 에밀이 보내는 배는 분명히 연유를 잔뜩 담은 병입니다."

가치가 다르다는거지. 진귀한 물건들은 부피가 생각보다 적게 나간다. 코딱지만한 무게에 그 몇 배의 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보석류, 장인들이 신경써서 만들어낸 세공품들. 나의 설명을 듣고 마리아가 눈을 빛냈다.

"그럴듯한데."

게다가 어차피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배는 한 척. 바다의 날개다. 그렇다면 같은 무게로 최대한 가치가 나가는 걸 쓸어담는게 중요하지. 즉. 그 뇌물선 한 척을 털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막대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에밀 메이너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패장입니다. 아이리 공화국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는 걸 막으려면 분명히 금으로 높으신 분들 입에 바느질을 해야 할 텐데..."

대충대충 적당한 것들로 한 척을 꾸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만약의 만약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메이너스 항구의 뇌물선은 출발하지 않은 상태니까... 나는 잠깐 턱을 쓰다듬는 동안 마리아가 초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네 말이 그럴듯해. 에밀이 보내는 배에는 호위선이 열 척이 붙는다고 했으니까."

한 척에 열 척의 호위선. 호위선들과 뇌물선의 생필품을 챙긴 보급선들이 또다시 열두 척.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도 수상스럽기 짝이 없는 구성. 마리아가 결론을 내리고 말했다.

"그 녀석으로 하지."

마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선원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싸늘한 앤이나, 방랑자가 붙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어찌되었던 그 에밀이라는 작자는 아이리 물개 두목이 아닙니까."

그 말에는 로제가 고개를 저으며 마리아를 바라봤다.

"그럴 가능성은 없을거에요. 선물이라고 포장을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뇌물인걸요. 그런 구린 일에 국가급 전력을 사용하는 건 자살 행위에요."

그 말에 나는 놀란 표정으로 로제를 봤다.

"귀여운 척만 할 줄 아는게 아니잖아."

그거 잊어요! 라고 말하며 로제가 럼주 잔을 테이블에 쾅 찍고. 마리아가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럼, 얼음덩어리랑 물귀신은 신경 꺼도 된다는 거지?"

그런 셈이지. 로제의 말에 틀린 건 없으니까. 나는 손톱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출발은 언제라고 합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삼일 뒤."

좋아. 출발 시점도 안정적이다. 나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파이프에 담배를 눌러넣고 불을 붙였고. 갑판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야겠군. 녀석들이 장난을 쳐놓았을 수도 있지 않겠수?"

뭐, 배 안에 화약 쌓아놓고 배 위로 올라가는 순간 터뜨려버리거나. 병사들을 배 안에 넣어놓고 덮치는거? 나는 갑판장의 말에 대답했다.

"안에 장난을 쳐놓았으면. 배의 흘수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간파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바로 배 돌려서 다른 배 노리면 그만입니다."

내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항해사거든. 배 안에 실려있는 녀석들이 이상하면 대번에 흘수면이 차이가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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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는 지하 감옥 안에 가두어져 있었다. 흔들거리는 화톳불 몇 개가 조명의 전부인 그 어두운 방 안으로 사람 한 명이 다가온다.

"... 제독,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미나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고. 에밀은 쇠창살 아래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 스테이크와 스프, 하얀 빵과 술 같은 음식들을 건네주었다. 아이리의 선장이 되었던 미나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고급스러운 요리.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이야. 먹고 기운을 내게. 이런 꼴로 만들어서 미안하군. 특별히 공을 들였으니. 맛은 좋을거야."

알겠습니다. 라고 미나는 작게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온 음식을 한 입 먹었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맛이 괜찮은 모양이군."

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할 수 없을 정도로 에밀이 넣어준 음식의 맛은 뛰어났다. 감옥에서 주는 식사라는게 워낙 형편없기도 하지만. 이건 그런 단순한 차이로 인해 느껴지는 맛이 아니다.

"직접 요리를 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뛰어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고기도... 처음 먹어보는 맛입니다."

미나의 말에 에밀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가르시아산 극지 멧돼지네. 추위 때문에 육질에 기름이 많지."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미나는 별 다른 의심 없이 처음 맛보는 진미들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개구멍으로 빈 그릇들이 나왓다. 에밀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이런 일을 시켜서."

미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사실 조금 불안합니다. 제독이 만약에... 저를 그대로 처형시키려고 하신다면 그러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에밀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쇠창살 너머로 양 손을 내밀었다.

"부디 잡아주게."

그 말에 미나가 천천히 에밀의 손을 잡았고. 그 위에 남은 손 하나를 포개 잡고 꽉 누르면서 에밀이 말했다.

"어떻게 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분명히 말해두지. 내 가문의 영광과 내 명예를 걸 수 있네. 나에게 있어서는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네."

그 모든 걸 걸고.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대를 구해내겠네. 라고 말한 다음 손을 다시 한 번 꽉 잡은 다음 에밀이 자신의 시선을 미나에게 향했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초라한 제독을 용서해주게."

그 말에 미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 배 안에 함정을 설치하지 않는 겁니까?"

녀석들이 미나가 타고 가는 배를 노릴 것은 분명하다. 에밀의 계획에 대해서 미나도 어느정도 설명을 들은 상태이니까. 녀석들이 덮치는게 확실하다면. 하다못해 배 안에다가 폭약을 쟁여놓고 녀석들이 배를 넘어오면 그대로 터뜨리는 단순한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 못해 배 안에 병사들을 잔뜩 채워넣던가.

그 말에 에밀이 미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째로, 싸워본 결과 마리아 해적단은 감이 상당히 좋네. 쓸데없이 의심을 사게 된다면 그대를 실은 배는 그대로 수도로 향하겠지. 그러고 나면 정말로 내가 손을 써서 그대를 구할 방법이 없어져버려. 그래서... 배 안에는 진짜로 귀중한 선물들을 잔뜩 채워넣은 상태라네."

그 말에 미나가 약간 당황한다. 마리아 해적단이 노린다면 그 모든 진귀한 물건들은 마리아 해적단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결코 작은 손해가 아닐텐데. 미나의 눈을 가만히 보던 에밀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 선물들의 회수는 포기한 상태야. 이번 해에는 어떻게 애를 써도 적자를 메꿀 수는 없겠더군.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해적들이 더 이상이 해상에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거 아니겠나. 대의를 위한 사소한 출혈이라면 오히려 기꺼울 따름이지."

미나의 눈이 약간 흔들렸다. 결코 사소한 출혈은 아닐거다. 아니, 메이너스 항구의 관리자에다가 제독의 역할까지 겸임하고 있는 에밀이 한 해 동안 끌어모으는 수입은 막대하다. 그 막대한 수입으로도 적자를 면할 수 없다면... 그건 굉장히 큰 출혈이 분명하다. 희미해지던 미나의 신뢰에 다시 불꽃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번째로, 그렇게 죽으면 의미가 없네. 아이리의 소중한 해군들이 덧없이 죽어간 그 해전에서처럼. 우리는 녀석들을 해전에서 박살내야하네. 그 편이 심연에 잠겨있는 아이리의 해군들에게 더 위로가 되겠지."

... 그렇습니다. 라고 미나는 대답했고. 에밀은 다시 손을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얼마나 걸린다. 라고 단언은 못하지만. 분명히 그 날은 올 걸세. 믿고 기다려주게."

에밀은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그릇들을 챙겨 감옥을 나섰다. 감옥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면서 에밀은 픽 웃었다.

"이건 어린애 가지고 노는 기분이구만."

아, 이미 가지고 놀고 있는 애도 하나 있지만 말이야. 에밀은 빈 그릇들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역시, 취미를 공유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알게 된다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뭐, 이룰 수 없는 작은 소망이지만. 에밀은 계단을 미소를 띈 채로 계단을 올라가다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인상을 다시 굳혔다. 에밀이 메이너스 항구에 있는 수용소를 나서자. 병사들이 경례를 하고. 그들 중에 꽤 직위가 있어보이는 남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에밀에게 물어본다.

"... 어떻습니까?"

병사들의 말에 에밀이 고개를 저었다.

"반성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까운 인재가 길을 잘못 들어버렸어."

그리고는 빈 그릇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 때 크게 기대를 걸고 있던 자였는데...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어버렸군. 어쩔 도리가 없나."

그러면서 서글픈 표정을 짓는 에밀은 분명히 소중한 부하를 포기해야하는 안타까운 상관의 마음을 듬뿍 포함하고 있었다. 에밀의 말에 질문을 했던 남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해군을 배반한 여자입니다. 지나치게 과분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에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알고 있네. 웨스트우드 선장은 자신의 죗값을 치르겠지. 하지만, 그게 옳다고 해도 사람 마음이 항상 옳은 것만을 바라 볼 수는 없지않겠나. 나도 사람이라서 한 때의 정을 외면할 수는 없었군 그래. 제독 씩이나 되어서 약한 모습을 보였어. 조언 고맙네. 내 세겨 듣지."

주제 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어깨를 몇 번 두들긴 다음 에밀은 다시 마차에 올랐다.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마차 안에서 에밀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뭐, 이건 잡혀 들어가고 싶어도 이젠 들어갈 수도 없겠구만."

세상살이가 어쩜 이렇게 간단한지. 사람들은 어찌 이리 멍청하기 짝이 없는지.

============================ 작품 후기 ============================

똑똑한 설정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글을 쓰다보면 항상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지요.

너무 멍청해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ㅠㅜ 항상 확인을 해보는데 그래도 자신이 없네요.

에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의 생각은... 그랬어요.

머리도 엄청 똑똑하고, 일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취미도 고급지고, 다른 사람들을 잘 홀리는 거의 완벽한 녀석이지만 미친 개새끼. 누가 뭐라고 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아주 미친 개새끼.

그런 개새끼를 한 번 만들어보자!

잡설이 길었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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