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4 / 0160 ----------------------------------------------
배를 고치자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우리는 출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한 손에 종이를 들고, 옮겨지는 물건들을 체크하면서 나는 머리를 긁었다. 좋아, 필요한 물건들은 다 넣은 것 같으니까. 나는 바다를 한 번 바라보았다. 배 띄우기에는 날씨도 좋고. 이대로 출발하면 되겠지.
가르시아 해로 가는 것 보다야 좋은 이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지. 가장 좋은 점은 뭐냐하면...
"안개의 미아를 굳이 끌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
즉, 바다의 날개는 자기 속도를 마음껏 내면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가르시아 해로 안개의 미아를 짊어지고 간다고 하면 못 잡아도 한 달은 잡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개의 미아가 없는 상태에서, 가르시아 해도 아니고 로른해에 있는 그 구슬을 찾아가는 건 길어도 3일이면 충분하다.
바다의 담요에서, 도리안은 안개의 미아와 함께 기다리기로 하고, 우리는 바다의 날개에 올랐다. 타고 가야 하는 해류도 정했고... 나는 마리아를 보고 말했다.
"배 이상 없습니다."
갑판장도 엄지를 척 올리면서 말했다.
"여기도 문제 없수다."
그럼... 마리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가자, 그 구슬에 비늘 붙이러."
러셀의 검이 돌아가고, 바다의 날개가 빠른 속도로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머맨이 직접 말했던 거니까. 비늘을 붙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 애초에 그 주변으로 배들이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그 근해에 딱히 위험 같은 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눈 앞에 이전에 봤던 그 구슬을 올려놓은 섬이 보이기 시작하기 전 까지는!
"... 이 항해가 이렇게 거지같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바뀌면서 소름이 스르르 몸을 타고 올라온다. 하늘을 바라보니, 멀쩡하게 새파랗던 하늘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태양은 검게 빛나고, 구름은 잿빛.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은 말라붙은 피 처럼 붉다.
하늘이 검불게 물든 것 처럼, 눈 앞에 보이는 바다도, 저 섬에서 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점점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싱싱한 나무와도 같은 생기있는 푸른 색이 아닌, 지독한 독과 같은 녹색으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지독하게 역겨운 녹색으로 바다의 색이 바뀐다.
"이야, 역시 세상 만사 쉽게 풀리는 일이 없는 법이지."
마리아가 눈 앞에 펼쳐진 지옥과도 같은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는 없겠지. 배는 조타륜과 러셀의 검으로만 운용하기로 결정하고, 마리아는 선원들을 갑판 위에서 무기를 들고 대기하게 했다.
배의 움직임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선체의 벽면을 바라봤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콧물이 올라온다아아아아!"
진짜로, 저렇게 밖에 외칠 수 없던 나의 지식의 한계에 스스로 부끄러워질 지경이지만. 그 장면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어마어마하게 더러운 색깔의 녹색 콧물같은 것들이, 배의 옆 벽면을 스물스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외침에 그걸 바라본 선원들이 모두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토악질나오게 생긴 덩어리들이 꾸물거리면서 배의 벽면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로제가 슬쩍 그 벽면을 바라보고는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말했다.
"엄청... 엄청 보기 싫게 생겼어...!"
녹색의 덩어리들은, 꾸물꾸물 올라오면서 가끔 기포 같은 것들을 만들고 뽕뽕 터지고 있었다. 그 덩어리들 중 하나가 갑판 위로 올라오자, 마리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피스톨을 꺼내서 그 덩어리에 대고 갈겼고. 화약 연기와 함께 날아간 쇠구슬이 그 녹색 콧물 덩어리에 철벅, 하는 소리와 함께 박혀들었다.
끄이아엥에에엑 하는 소리가 들리고, 콧물 덩어리는 이내 녹아내려서 바깥의 바다 색깔과 똑같은 녹색의 물로 변하고, 이내 연기를 내면서 증발하기 시작했다. 마리아가 그걸 보고 어깨를 으쓱 했다.
"뭐, 죽일 수는 있는 모양이니까. 쫄지 말고 다 썰어버려."
그 말대로, 눈 앞에서 연기를 뿜어내면서 증발하고 있는 녹색 액체를 보니 선원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배 위로 올라오는 그 덩어리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베어내는 족족 다시 바닷물과 같은 점성이 없는 액체로 돌아가, 증발하기 시작하는 건 다행이지만.
"올라오는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나는 조타륜을 잡고 움직이면서 그렇게 외쳤다. 녀석들이 물로 바뀐 상태에서 증발하는 속도보다, 물이 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 위에는 녹색 액체의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게다가 녹색 웅덩이에 콧물 덩어리가 들어가더니 그 액체들을 빨아들여서 더 커지잖아. 이제는 거의 사람 크기까지 자랐는데.
그 때 였다. 주변의 바다가 부글거리면서 끓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바다를 뒤덮고 있던 녹색이 한 곳으로 모조리 빨려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바다의 색깔은 다시 원래의 색깔을 되찾았지만. 그 모든 녹색이 한 곳으로 뭉처서 부글거리며 들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그 녹색의 거대한 역병덩어리 같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라오기 시작한다.
"..."
모두 삽시간에 얼굴이 살색을 잃고, 시퍼렇게 또는 새하얗게 바뀐 상태로 그걸 바라본다. 거의 2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그 역겨운 녹색 덩어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몸을 이루고 있는 녹색의 점액질들은 이따끔 부글거리면서 농익은 여드름마냥 툭툭 터지면서 흘러내리고, 다시 그 덩어리 안에 하나로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무너지는 듯 다시 합쳐지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녹색으로 질질 흘러내리는 덩어리.
그리고, 뒤늦게 콧 속으로 어마어마한 냄새가 밀려들어와 머리통을 후려친다.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어마어마한 구토감. 선원들 대부분이 그 냄새를 맡고 배의 난간에 기대서 배 밖으로 구토를 시작한다. 마리아 역시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어금니를 꽉 물고 있는게. 나와 마찬가지로 토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모양이다.
엄청나게 역한 냄새다. 썩은 시체에다가 썩은 고름을 비빈 다음에 썩은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갈아버린 것 같은... 엄청난 썩은내. 눈 앞이 흔들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애써 구역질을 참으면서 그 녀석을 바라봤다.
도대체... 저건 뭐야. 녹색의 덩어리의 머리로 보이는 곳의 아가리가 쩌억 열리더니 뭐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이 그 아가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 뭔가 했더니... 펠라구사 알라였나.
말도 하는 거냐, 심지어. 나와 마리아는 모두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입을 열면 바로 토나올 것 같아. 게다가 저 펠라구사 알라라는 단어는 머맨이 바다의 날개를 일컬어 쓰던 단어였는데.
그렇다면, 최소한 저 녀석도 머맨 급으로 오래된 녀석이라는 거겠지. 마리아가 창백하게 질린 채로 한 동안 그걸 바라보다가 별 말 없이 피스톨을 꺼내서 녀석의 머리통에 갈겨봤다. 철퍽, 하는 소리가 나는 건 여전했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인다. 그걸 보던 마리아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진짜... 차마 보고 있기 힘들어.
마리아가 이를 꽉 악물고 있다가 외쳤다.
"니들, 토 그만 하고 빨리 가서 물대포 잡아!"
그렇게 말하고 마리아가 자신의 어금니를 꽉 물고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선원들도 거의 기어가다시피 갑판 아래로 내려가서 물대포를 잡았고. 나는 눈 앞의 역겨운 녹색 거인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외쳤다.
"씨팔! 저거 팔 움직인다! 물대포로 빨리 막아봐!"
잠시 뒤에 천천히 이쪽으로 뻗어지는 손을 향해서 바다의 날개가 물대포를 뿜어내기 시작하고, 푸퍼퍼퍼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녹색 덩어리가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만은...
바다의 날개 물대포를 맞으면서 형태가 무너지던 그 팔이 액체로 변해서 바다의 날개 위로 쏟아지고.
갑판 위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나와 마리아는 그 역겨운 녹색의 콧물같은 것들을 뒤집어 써야 했다. 아니야... 이건 못참겠다. 나는 조타륜을 놓고 난간으로 가서 구토를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듣던 마리아도 이내 난간으로 향해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속이 다 뒤집어지는 기분이다. 몸에서 계속해서 제로거리로 그 냄새가 때려박히고 있다고. 앞으로 거의 일주일은 아무것도 못먹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다! 갑판 아래에 있어서 그 오물을 뒤집어 쓰지 않은 선원들은 충실하게 그 거인의 몸을 향해서 물대포를 갈겨대기 시작했고, 무너지면서도 계속해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녹색 거인의 몸이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녹색 거인의 몸 주변을 타고 붉은색의 스파크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 시간이 벌써... 짜증나는군.
스파크와 함께 우리가 쏘는 물대포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이 시시각각 그 녹색의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습기를 잃어가고, 검녹색의 거대한 바위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굳어간다. 물대포를 쏘던 선원들도 그 모습을 보고 공격을 멈추고. 녀석의 몸은 그대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고, 이내 부서지면서 흩날리기 시작한다. 녹색의 먼지가 되어서 흩어지는 그 모습과 함께, 나와 마리아, 바다의 날개가 뒤집어 쓰고 있던 녹색의 점액질도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는데. 그 꼬라지도 역시 심히 보기 더럽다. 코딱지 같아!
그리고, 그 몸에 말라붙어버린 검녹색의 딱지들도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기 시작하며, 온 천지에 진동하던 그 소름끼치는 냄새도 점차 옅어지다가 이내 사라지기 시작했다.
"푸후... 냄새 때문에 죽을 뻔했다."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바다의 색깔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점차 주변의 환경이 변하기 시작한다. 잿빛의 구름들이 빨려들어가듯이 우리의 정면에 보이는 섬 안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사라지고. 그 다음으로는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던 하늘이 빨려들어가며 다시 푸른 색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석탄 가루가 흩날리듯이 검은 색으로 변해있던 태양에서 검은 가루들이 흘러내리며 태양이 원래의 색깔을 찾았다.
"... 저 새끼, 결국 뭐하는 새끼였던 거야."
나는 한탄하듯이 그렇게 말하고 눈 앞의 섬을 바라봤다. 그 모든 것들이 저 안으로 빨려들어갔는데. 저기로 들어가라고?
진짜로 저기에는 발 끝도 가져가기 싫어지는데.
============================ 작품 후기 ============================
... 쓰고 나니 더럽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