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 0160 ----------------------------------------------
바운티 크러쉬 - 쥐와 고양이
내 방 안에는 지금 나 혼자 뿐이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펜대 굴리는 소리 뿐이다. 이렇게 조명이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종이에 뭔가를 쉼 없이 그리고 있다보니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그리고 있는 해도 자체는 착착 진행 중이다. 주석을 달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이걸로 완성이 가까워졌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이 수많은 숫자들과 그림들, 글자의 회오리와도 이제는 안녕인 것이다.
"매 돌아왔어. 호른 항구까지 성공했다고 하는데."
마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는..."
나의 말을 자르고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로제한테 한 동안 숨어있으라고 할거야."
갑자기 왜? 나는 의자에 앉아서 마리아를 바라보았고. 그녀가 천천히 다가와서 책상에 턱 걸터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호른 항구 인근의 어촌에서 이삼일 머무르고, 밤에 빠르게 어촌을 떠나는거지."
마리아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수령소는 이제 해군들이 배치되었잖아. 리스크가 너무 커."
계속해주세요. 나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스르륵, 하면서 미끄러지듯이 책상 위에서 내 무릎 위로 자리는 옮기고 나를 마주본다.
"우리 제법 아이리 공화국에서 유명해졌잖아. 어촌에 우리가 머무르면 분명히 보고가 들어가겠지. 그리고 로제는 한 동안 활동을 전혀 안하고."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면서 마리아가 내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씨익 웃었다.
"우리가 로제를 다시 그 어촌에서 태워간걸로 판단할거야."
이해가 간다. 그러면 아이리 공화국 쪽에서는 더 이상 수령소 쪽에 도난 맞을 만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러고 나면 다음으로 녀석들이 취하게 될 행동은...
"수령소에 있는 해군들을 다시 빼내서 바다로 돌릴거야."
그렇게 될 것이다. 수령소의 명단을 도둑질하던 녀석이 배에 탄 이상, 더 이상의 도난은 없다고 보는게 맞을테니. 계속해서 바다를 싸돌아다니면서 현상금 사냥꾼들을 제거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집중하고 싶겠지.
"바다를 돌아다니는 해군들이 많아졌다 싶으면, 로제를 다시 움직이면 되겠군요."
그래, 라고 마리아가 말하면서 내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맞추었다.
"어때?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아?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 딱히 내가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대답했다.
"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
그 말에 마리아가 픽 웃으면서 내 허벅지 위에서 허리를 살짝 움직였다. 이유는 뻔하겠지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지금 자치령이 고개를 들었거든.
"우와, 이게 바짝 약이 오른 걸 보니까 고자는 아닌게 확실한데... 이 분위기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
뭐, 고자라는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는 없지만. 나는 마리아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말했다.
"그 말, 기억해두세요."
이거 끝나고 나면 아주 허리 관절이 나가게 해드릴테니까.
무서워라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마리아는 왼손가락으로 내 뺨을 쿡 찌르고는 내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그럼, 고생하라고."
마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입에 물고 있던 시가에 불을 붙이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 하려다가 짜증을 냈다.
"이런 씨... 일부러 저런거지?! 일 하는거 방해하려고!"
나는 마음 속으로 양을 하나씩 세기도 해보고, 염불을 외워보기도 하면서 마음 속을 침범하는 오욕칠정을 다스리며 펜을 다시 잡았다.
"믿음이 씨발 나의 방패라...."
방패가 너무 약해.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계속해서 서류들을 붙잡은 상태로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뜨고, 그 해가 다시 한 참을 허공에 머무르고 있다가 이제 슬슬 달이랑 위치교대를 해볼까 싶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일을 마칠 수 있었고,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한 숨 자고 난 다음, 나는 마리아에게 찾아갔다.
"지금 바다의 담요에 있는 선장들을 모을 수 있을까요?"
마리아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긴 한데. 왜?"
당연히, 이 지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배껴가게 해야지. 나의 설명을 들은 마리아가 흐음, 하는 묘한 소리와 함께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해봐."
뭐가 불안하다는 걸까? 라는 생각은 선장들이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에, 내 말을 듣고 있는 선장들이 점점 불쾌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면서 드러났다.
내 말이 뭐 이상한가? 왜 다들 저렇게 띠꺼운 표정을 짓고 있는거야.
생각보다 이야기는 유쾌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전혀. 오히려 수많은 시선들이 불쾌함을 띄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톡톡 치면서 선장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은 지들 좋은 일을 시켜준다고 해도 표정이 저 모양이냐?
그리고, 선장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레이먼드 항해사, 우리가 이래야 하는 이유는?"
대가리에 피스톨을 맞았나. 설명을 해 줘도 또 말해달라고 하면 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뭔가 본능적으로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눈치챘다. 저것들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말했지 않습니까? 해군들이 바다의 담요를 찾기 위해서 방랑자를 풀었다고."
다른 선장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그쪽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가?"
와, 더 이상 분위기가 험악해 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이상으로 험악해 질 수도 있구나.
"...제가 지금 한 말 중에 뭐 틀린거 있습니까?"
내 말에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리고 자시고를 떠나서. 조금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한쪽 눈에 안대를 메고 있는 선장이 일어나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캔트 롱리버라고 한다."
애꾸눈 해적이라. 정석적인 코스프레잖아. 나는 그를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말해보시지요, 캔트 선장. 뭐가 기분이 더럽다는 건지."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통제받는 걸 싫어해. 그래도 요즘 마리아 해적단의 명성도 있고 해서 왠만해서는 좋게좋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는 주변을 슥 둘러보면서 말했다.
"댁들이 우리를 통제하려드는 이 상황을 우리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줬으면 하는데. 당신들이 뭐, 바다의 담요 주인이라도 되나?"
그러니까, 씨발 지금 저 새끼께서는 기분이 나쁘다 이건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 뭐 나 좋으라고 밤 새가면서 그 지도 만들어서 니들한테 주려고 하는 줄 아나. 꼭 저런 새끼들이 있단 말이야.
그때였다. 익숙한 금발 여선장 한 명이 테이블에 턱 하고 걸터앉아서 선장들을 슥 둘러보았다.
"이야, 뭐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고 있나? 분위기가 왜 이렇게 좋아."
마리아를 한 번 슥 바라본 캔트가 입을 열었다.
"아, 그 유명한 여선장 마리아군."
마리아가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땅콩을 하나 툭 튕겨 입 안에 넣고는 말했다.
"그래, 그 유명한 여해적 마리아시다. 뭔 이야기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나 궁금해서 와봤더니만."
그녀는 주변을 슥 훑어보고는 히죽 웃었다.
"왜들 그렇게 목에 핏줄을 울룩불룩거리면서 우리 항해사를 괴롭히고 있어?"
마리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지도를 두어번 팔랑거리고는 그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당신들을 통제하려고 들겠어. 우린 그냥 이 바다의 담요에 도움이 좀 되고 싶을 뿐이라고."
마리아는 다시 땅콩 하나를 입에 쏙 넣고는 그 지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일단, 방랑자가 바다의 담요를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는 건 확실하거든. 근데 바다의 담요는 우리도 자주 애용하는 곳이라서 아이리 해군들이 박살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 우리 항해사도 그래서 이 지도를 만든 거고."
아아, 오해 금지. 라면서 마리아가 검지를 몇 번 까닥이고는 걸터앉아있던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켰다.
"선택은 선장인 당신들이 해야겠지. 거기까지는 우리가 뭘 할 생각도 없다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안이니까."
마리아는 자신의 선장모를 살짝 까닥 하고는 말했다.
"이 지도에 나온 해역을 한 번 거쳐서 바다의 담요로 향하면, 왠만하면 방랑자에게 이 장소는 걸리지 않을거야. 거치지 않고 들어오기로 선장들이 결정했다면야... 거기에 대한 책임은 선장인 니들이 져야 할 문제겠지. 그거까지 우리가 손을 댈 생각은 전혀 없어."
거듭 말하지만, 이 지도가 가리키는 해역을 들를지, 들르지 않을지는 알아서 하라고.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를 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쪽은 할 말 다 했으니 가보겠어. 좋은 해적질 되라고 동무들."
마리아는 나를 끌고 나와서 잠깐 걷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레이먼드, 우리 똑똑한 항해사씨. 아직도 해적들이랑 협상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로만 제독은 어떻게 구워삶은거야?"
저것들이 너무 이상하잖아. 까놓고 말해서, 지들 목숨이 눈 앞에서 달랑달랑 거리는 상황인데 누가 자기한테 명령을 했다, 지시를 했다하는게 그렇게 중요해!?
"해적 선장이라는 것들은 모두 자존심이 쓸데없이 쎄단 말이야. 거기에서, 이 해역을 거쳐가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하면 자기한테 명령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저 새끼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부러 시비를 건다고."
그래, 너무 급하게 진행했다. 나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해군들이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저 새끼들은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해!' 라고 말해도 '싫어!' 이러고 자살하러 뛰어들어갈 정신병자 새끼들이라는 거다. 어차피 해적질이라는게 목숨 내놓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뭘 길게 설명을 하고 있나.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저 새끼들은 대부분이 또라이다.
마리아가 오지 않았으면 내가 며칠동안 노력을 들인 지도가 저 또라이들의 비위에 거슬려서 쓰여보지도 못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거지. 이래서 마리아가 처음에 선장들을 모아달라고 했을 때 묘한 웃음을 지은거고. 결과적으로는 마리아가 찾아와서 이 또라이들과의 협상의 문을 닫아주었다.
마리아는 니들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말을 했지만, 녀석들은 저 지도를 배껴서 들고다닐 수 밖에 없다.
저 녀석들도 방랑자가 여기 위치를 알아내면 어떻게 될 지 뻔하게 알고 있으니까. 거기에 초점을 맞췃으면 실수를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야.
"요점은, 사실 선택지는 하나 뿐인데 여러개 처럼 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내가 저 잉여들 데리고 아이리 카멜롯 연합이랑 싸울때 얼마나 대가리가 깨졌는데."
나는 픽 웃었다. 조삼모사 같은거냐. 무슨 원숭이 다루는 것도 아니고.
"저 녀석들도 자기 배에서는 아래에 수십명의 선원들을 두고 있는 선장들이라. 자존심이 쎄단 말이지. 그걸 건드리면 다들 비딱선을 타려고 들어."
왠만한 사항이 아니면, 명령하듯이 이야기를 풀어가면 말을 듣지를 않아요.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를 바라봤다.
"... 감사합니다."
뭘 감사까지. 마리아는 내 어깨를 턱 하고 치고 말했다.
"딱히 내가 뭘 한 건 아니야. 어찌 되었던 네 말을 듣는게 자기들한테 득이 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을 테니까. 자기들한테 명령하는게 기분 더러워서 시비를 약간 건 것 뿐이야."
결과적으로는 약간 시간이 걸려도 니 말대로 했겠지. 마리아는 실실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연인이랑 같은 방 쓰면서 이미 몸도 박박 씻어놓고, 마음의 준비도 완전히 끝낸 주제에 선 그어놓고, 여기 넘어오면 비명지를거에요! 라고 말하는 여자 같은 느낌이려나. 그리고는 넘어오면 비명같이 날카로운 교성과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는 거지."
... 마리아의 말이 길었지만. 내가 저 설명을 듣고 새롭게 해석한 바에 따르면 해적 선장이라는 녀석들은 대부분 츤데레라는 거다. 앞에서는 '흥! 니 말 따위 따를까보냐!' 하고는 나중에 '딱히, 니가 명령해서 듣는건 아니니까!' 하는.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우와, 말해놓고 보니까 이 새끼들 되게 소름끼친다. 그 면상들을 하고는 츤데레라니. 완전 병신들이잖아...
마리아가 내 앞으로 슥 와서 나를 마주보고 어깨를 턱 잡는다.
"그럼, 이제 일은 다 끝난거지?"
그렇습니다. 라는 나의 말에 마리아가 씨익 웃었다.
"목욕재계하고 기다리라고. 거 무슨 실수 한 번 한 거 가지고 축 늘어져 있지 말고."
야호, 신난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