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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 쥐와 고양이
에밀이 받은 보고는 네르펜 항구 대신에, 호른 항구의 현상금 수령소가 털렸다는 보고였다. 그 내용을 서류로 받자마자 에밀은 벌떡 일어나서 문을 잠근 다음,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미쳤다기에는 에밀은 이미 미쳐있는 상태였으니까 말할 수 없겠지. 웃음에는 분노가 분명히 들어있었지만, 동시에 그 분노를 누르고도 남는 유쾌함이 가득했다.
"그래... 그래그래! 이거지."
평상시에 전원을 꺼놓은 것 처럼 정지되어 있던 에밀의 머리에 피가 잔뜩 쏠리면서 간만에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킥킥거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쓸어올린 에밀이 테이블을 양 손으로 쿵 내려찍으며 말했다. 흐트러진 머리와 약간 핏발이 서기 시작하는 눈. 그리고 악 문 이 사이로 끼어들어간 입술이 뜯어져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제대로 엿을 먹였어."
에밀은 지도 위에서 빠르게 손을 놀리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네르펜 항구 대신에 호른 항구라. 그러면 숲을 가로질러 간 건가. 에밀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빙빙 방 안을 돌면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머리 굴러가는 수준은 이제 검증되었으니까..."
요즘 너무 다른 녀석들에게 기대를 하면서 살지 않다보니까. 당연히 통하겠지 생각하고 움직인게 실책이라면 실책이다. 에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숨을 깊게 내쉬며 진정하려고 했지만, 자꾸 입에서 바람 세어나오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흘러나온다.
상황이 돌아가는 건 뻔하다. 일단 다른 해적들도 정보 제공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로 마리아 해적단에서 처음에 원했던 일은 성취한 거겠지. 그리고 나면 다음으로 노리게 될 것은 해적 사냥꾼들이다. 다른 해적들이 거기까지 상대를 하기는 힘들테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배를 활용하려고 들겠지.
뭐 상관없다. 에밀은 턱을 살짝 쓰다듬고는 해도를 바라봤다.
어찌 되었던 현재 방랑자는 바다 아래에서 해적들의 근거지를 찾아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녀석들의 머리 위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단두대가 떨어지고 있는 중이지. 결국 저번에 있었던 아이리 공화국과 카멜롯 왕국이 해적과의 싸움에서 진 이유 중 가장 큰 건 해적들의 근거지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아낸다면, 그걸로 끝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군함들이 그 장소로 향하리라. 자기들 집이 한 번 털리고 나서도 도둑질과 암살을 계속할 수 있을지 보도록 하지.
그 때까지는, 다소의 피해는 감수한다.
에밀이 그렇게 결론내리고 자리에 앉았을 당시에, 레이먼드는 바다의 담요 안에 있는 로트와일러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는 해적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태동안 단 한 번도 방랑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건데..."
레이먼드는 맥주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건 RPG 게임에서 온갖 고생을 해서 유니크 템을 얻었는데 쓰고 있지 않다는 소리다. 그럴리가 없어. 분명 어딘가에 그 배를 쓰고 있을 것이다. 바다의 날개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확실한 이상 로만의 싸늘한 앤은 활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방랑자까지 쓰지 않을 가능성은 없지. 그 잠수함으로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 레이먼드는 한참을 끙끙거리면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 방랑자는 지금 해적들의 근거지를 뒤지고 다니는 중일 가능성이 매우 높군."
가장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른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니까. 방랑자는 바다 아래로 은밀하게 다닌다. 다른 배들과는 다르게, 방랑자는 다른 배들에게 들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 바다 아래에서 해적선들을 몰래 쫒아가는 건 식은죽 먹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아직까지 방랑자가 바다의 담요를 찾아내지 못한거지?"
무언가 제한점이 있는 거다. 레이먼드가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선원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마리아가 히죽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말한다.
"다시 소개하지, 바다의 날개 항해사 레이먼드다. 혼잣말이 취미지."
우와, 지금 엄청 머리 아프게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고작 그딴 표현으로 끝내는겁니까? 레이먼드는 한 마디 하고 선원 한 명을 바라봤다.
"가서, 해도 가져와."
잠수함이 가지고있는 단점이라고 한다면... 일단 레이먼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였다.
해저지형. 수심이 깊지 않거나, 바다 아래가 거친 환경이라고 한다면 제대로 운용하는데 제한이 생길거다. 수심이 30m도 되지 않는 얇은 연안들은 육지와 맞닿는 곳들 중에서 바다 아래가 개판인 곳이 드물지는 않으니까. 잠수함이 시발 그렇 곳을 돌아다니려면 천상 어쩔 수 없이 해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즉, 방랑자는 바다 아래 지형이 개판이면 골리앗 한 부대 사이에서 클로킹 풀린 레이스 꼴이 난다는 것이다. 레이먼드는 혼자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고. 그걸 보는 선원들의 표정이 더 애매하게 정신이 이상한 사람 보는 표정으로 변했다.
잠시 뒤에, 선원 한 명이 레이먼드에게 해도를 넘겨주었고. 레이먼드는 빠른 속도로 지도를 살펴보면서 빨간색으로 영역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바다 아래가 엉망진창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바다의 담요로 다시 오기 위해서는 한 일주일 정도는 항해를 다시 해야 하는 지역이지만. 이 안으로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게 된다면 그 안으로 쫒아갈 수 없는 방랑자가 바다의 담요를 찾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해지겠지.
어디로 튀어나오는 지도 모르고, 언제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이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방랑자는 추적을 포기해야 할 거다.
해역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좁은 편도 아니니까... 배 한 척이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키는 건 불가능하지.
"모든 해적들은, 바다의 담요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 지역을 거쳐서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이 일대는 아래 바닥이 걸레짝이기로 유명한 곳이고. 수심 자체도 20~30m 언저리에서 놀고 있는 얇은 바다다. 쫒아올 수 있을리가. 물론, 암초가 무지무지하게 많은 곳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나오기는 힘든 장소지. 레이먼드는 간만에 목을 풀고는 하품을 한 다음 말했다.
"일단, 바다의 담요 언저리에서 며칠 머물러야 할 것 같군요."
간만에 한 번 일 좀 해볼까. 레이먼드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가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뭐하게?"
레이먼드가 일어난 상태로 맥주잔을 손에 움켜쥐고 그대로 들이킨 다음, 나무잔을 턱 하고 테이블 위에 놓았다.
"지역 해도 그리려고요."
해적들이 퍽이나 저곳으로 가서 돌아다니라고 하면 돌아다니겠다. 지형 자체가 영 유쾌하지 못해서 군데군데 암초도 있는데다가, 기요(바다 아래에서, 기둥처럼 쑥 돌출되어있는 지형)와 해령(기요만큼 솟구치지는 않았지만, 울룩불룩하게 엠보싱 처럼 들쑥날쑥 거리는 해저지형)들이 모여서 파티 열고 있는 곳인데.
지도를 그려 준다고 해도 읽을 수 있는 해적 놈들도 없을테니. 아예 네비게이션처럼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레이먼드는 머리를 긁고는 선원들을 바라봤다.
"야, 오늘 쉬고. 내일은 배 타고 나간다."
레이먼드의 말에 선원들이 모두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보던 레이먼드가 한 마디 했다.
"저녁에는 다시 돌아올거야."
나름 위로라도 해준답시고 한 말이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소리. 레이먼드는 선원들을 해 뜨고 나서부터 해 질 때까지 부려먹을 마음을 만땅으로 채운 채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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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바다의 날개에 타서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게 되었다. 지역 해도 그리는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나는 주변을 슥 훑어보면서 종이에 빠르게 글자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가는거면야 적을 필요도 없지만...
"이야, 이것도 또 일이네."
나는 가만히 머리를 긁으면서 계속해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시작하고 보니까. 이거 약간 그런 느낌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편미분 교과서를 만드는 기분이야. 써내려가다가 배를 이동시키고, 다시 써내려가고를 반복한게 얼마나 되었을까.
큰 지역을 하는 건 아니다. 이 근방 만을 측량 할 뿐이지.
하지만, 이렇게 확인한 자료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지역 해도를 읽는 새끼들이 다름 아닌. 저 멍텅구리들이라는게 문제다. 보통 해도를 보는 항해사들은, 이곳은 이중 기요 뒤편으로 이어지는 암초지대가 있다. 라고 기록해두면. 아, 유속이 빨라지고 소용돌이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바람 확인해서 톱 세일 접고 스팽커 활용해서 천천히 진입해야겠구나. 하는걸 대번에 판단하지만...
퍽이나 저 새끼들이 그게 가능하겠다. 애초에 그런거 할 줄 알면 내가 무인도에서 마리아한테 구조받을 가능성이 없었겠지.
그러니까, 주석이 엄청 달리는거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해라 같은거 말이야. 바다의 날개 속도가 워낙 잘 나오다보니까 내일까지 바다를 보러 나와야 할 필요는 없겠어. 나는 해가 저물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선원들을 보고 말했다.
"돌아가자."
처음에야 내가 하는 걸 슬쩍슬쩍 보면서 흥미를 보이던 녀석들이지만 당연히 이 종이에 써져있는 것들을 저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었고. 그 이후로는 선원들이 엄청 지루해했기에, 돌아간다는 말에 녀석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물론 나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지. 바다의 담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다시 여관 방에 쳐박혀서 빠르게 일을 시작했으니까. 흔들리는 촛불들 아래에서 나는 음침하게 앉아서 해도나 그리고 있는 기구한 팔자다. 그것도,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이걸 팔아먹어서 돈을 챙길 수 있으면 모른다.
근데 이건 그냥 무료 봉사잖아. 내 월급이 이런다고 변하는 것도 아니고. 궁시렁거리면서 펜을 놀리고 있는데 내 양 어깨에 올려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꼭 돈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마리아구나. 나는 고개를 슬쩍 뒤로 돌려서 그녀를 바라봤다.
"... 설마, 무슨 마음의 만족 같은 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소리는 아니겠지요."
그거 열정페이잖아. 내가 이 세계로 넘어와서까지 열정페이 소리를 들어야겠냐. 나의 말에 마리아가 픽 웃고는 말했다.
"후딱 끝내라고. 오랜만에 한 번 몸 풀어야지? 로제도 없는데."
그거 신경쓰고 있었냐. 마리아가 내 귓가를 살짝 문 다음에 속삭였다.
"바라는거 다 해줄게."
그 말에 나는 펜을 놀리는 속도가 약간 빨리지는 걸 느끼면서 말했다.
"밧줄로 묶고 엉덩이 때려도 됩니까?"
그 말에 내 어깨에 올려져있던 마리아의 손 감촉이 슥 사라지고는 저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런 취향이었어?"
아니, 그런 취향은 아닌데. 가끔 별식 느낌으로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잠깐 고민하던 마리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내가 너를 묶고 때리는 것도 오케이 해주면."
나는 그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없던 일로 하지요."
미쳤냐. 머맨이랑 일대일을 하고, 혼자서 오십명은 넘게 배 위에서 해치우는 괴물같은 여자한테 엉덩이를 맞게. 한 서너대 맞으면 바로 뼈가 보일걸!? 거의 곤장 급이라고. 나의 말에 마리아가 칫, 하는 소리를 냈다.
이 여자 지금 뼈를 취하기 위해서 살을 내줄 생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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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
ps. 저번화의 코멘트들에, 변태들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