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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무능한 새끼들이 모여서 유능한 일을 해보려고 하는 상황은 얼마나 답이 없고, 또한 답답한 상황이란 말인가. 에밀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반짝이는 달란트 화를 손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앞에서 보고하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집무실 안의 큰 테이블에 앉은 에밀은 보고를 듣다가 서류를 살펴보았다. 지들이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뭔가 화려하고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려고 한 보고서. 그 노력은 가상하지만. 에밀의 시선에서 그 보고서는 단 하나의 말 만을 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두 개의 단어만으로도 충분한 보고를, 자그마치 8장에 다다르는 분량으로 만들어낸 재능은 분명히 대단하지만. 에밀이 제독으로 취임해 있는 동안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재능이다.
최초의 정보제공자 사망 이후로,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제공했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에밀은 입을 열었다.
"... 현재까지, 마리아 해적단에 당한 사람이 여덟 명이라고."
마리아 해적단에게 당한 사람은 여덟명이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해적들끼리 정보공유를 하고 있는 건지 마리아 해적단이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건들도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그렇게 도합 삼십 명이 넘어가는 정보 제공자가 죽었고, 열 다섯의 현상금 사냥꾼 집단이 공격당했다. 현상금 사냥꾼들이야 기본적으로 싸울 줄 아는 녀석들이니까. 개 중에서 크게 피해를 입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는 녀석들은 다섯 집단 정도였지만.
중요한건, 그들이 먼저 공격한 것이 아니라. 녀석들을 찾아내서 해적들이 오히려 공격을 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에밀은 보고를 듣고나서 조용히 말했다.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령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령자 명단 도난 사건과 연계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조사를 해 봐야 아는거냐. 참 대단한 조사 하셨구만. 에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 처음에는 해군을 노리다가 이제 그게 안될 것 같으니까 현상금 사냥꾼들과 정보 제공자들의 손발을 묶어놓겠다는 건가. 명단을 털고 있는 녀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여해적 마리아가 끌고 다니는 해적 놈들 중에 하나다. 최초에 일어난 살인은 처음 도둑맞은 명단에 적혀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후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마을 시민들의 증언이 그 여해적과 그 일행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녀석들도 이미 아이리 공화국에서 방랑자를 손에 넣은 걸 확신하고 있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방랑자의 존재를 모른다면, 녀석들의 행보는 훌륭한 성과를 낼 예정이었으니까.
누군가 수령자 명단을 훔치고,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동료들이 제거하고 있다. 한 달 사이에 여덟명. 그것 만으로도 소문은 꽤 빠르게 퍼져버려서 수령소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녀석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각 수령소가 위치한 장소의 검문을 강화하고, 수령소에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지만.
그걸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은 수백명이 넘어간다. 당연히, 한 척의 배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도 녀석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이 확보한 명단을 다른 해적들과 공유했을 것이고, 그 전에 이미 해놓은 성과들을 보여주면서 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겠지.
에밀은 다시 상황이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냥, 방랑자의 정체를 모르고 있던 해적들이 틈새를 찔려서 당하는 그림이 아니게 되었다.
다시 제대로 머리를 굴려야 할 시간이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다가 병력들을 배치하고, 시민들도 자체적으로도 경계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해."
그건 그렇고, 도대체 누가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걸까. 마리아라는 여해적은 선장이다. 선장이 배를 이렇게 오래 비울 수 있을리가 없지. 머리를 굴리는 건 그 항해사 레이먼드라고 하는 놈이 주로 하는 모양이다. 로만의 보고에 따르면 녀석이 해적과의 싸움에서 머리를 굴려서 결정타를 먹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배를 비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인상착의에 그 항해사로 보이는 녀석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녀석은 마리아와 함께 행동하고 있다.
에밀의 머리 속에 한 가지의 샛별처럼 반짝이고 유쾌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가능성이 높은 생각이 하나 들었다. 분명히, 여해적 마리아와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의 모습에는 검은 머리의 소녀에 대한 진술이 없었다. 물론, 배 안에 남아서 바다의 날개를 지키고 있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후로도 마리아 해적단이 들렀던 일곱 군데의 장소에서도 검은 머리 소녀에 대한 진술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로제 발미온을 공주님처럼 소중하게 모실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배 안에 들이지를 않았겠지.
혹시나, 에밀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던 장난감 중 하나인 로제가 지금 길거리를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면.
현재까지, 두 군데의 수령소가 명단을 도둑맞았고. 그 경로를 따라보면 다음으로 그 도둑놈이 향하게 될 곳은 짐작이 간다. 에밀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네르펜 항구에 있는 현상금 수령소는 어떻게 되고 있지?"
이전 보고를 듣고 명단 도둑의 짐작이 가자마자 에밀은 네르펜 항구로 병력들을 몰아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어차피 배를 타고 움직이지 않고 육로를 사용하고 있으니까. 충분히 다음에 들를 지역을 예측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도착했고, 보고에 따르면 어제부터는 검문을 시작했을 겁니다. 특별히 주의해서 검사하라고 지시도 해놓은 상태입니다."
에밀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의심가는 사람이 도난 사건을 일으킨게 확실시 된다면, 이쪽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하고."
에밀은 말을 마치고 입맛을 다시면서 잠깐 생각했다.
"바다의 날개를 발견하면 포위망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의 교전은 금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다의 날개는 마스트가 없다. 그렇다면 속도는 몰라도 시계 자체는 보통의 범선들 보다 떨어질터. 이쪽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
에밀은 회의를 끝냈다.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뱃 속이 텅 빈 것 같은 공허감을 느끼면서 에밀은 중얼거렸다.
"아, 요즘 허기져서 큰일이군."
집에 가서 빨리 뭐라도 먹어겠어.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식사를 해도 한 것 같지가 않다. 그가 원하는 고기는 이런 고기가 아니라는 것 처럼. 몸은 고깃점을 넣어주어도 전혀 만족하지를 못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는 대체로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음울한 비들 중에서도 가장 음울한 비는 역시 차갑게 식어가는 겨울의 공기 속에서 추적추적 엉겨붙듯이 흘러내리는 겨울비가 아닐까. 비가 내리기 시작한 숲 속의 토지가 물기를 빨아들여서 질척거리기 시작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 사이로, 로제의 입김이 후우, 후우 하고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바닥에 눌어붙기 시작하는 진흙들과, 바닥에 생겨나는 물웅덩이, 그리고 그 물과 진흙들 사이로 스며들듯 핏줄기가 섞여들어 휘돈다.
"... 나를 용서하지 마세요."
로제는, 자기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면서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축축한 나무에 등을 기댄채로 숨을 골랐다. 숲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가 만난 무장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소녀에게 친절하게 대할 확률은 상인들이 돈을 마다하는 경우 보다 낮겠지만, 그래도 곧바로 싸움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로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가 다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방수포를 한 번 털고 땅을 바라봤다.
한 명 놓쳤다. 그녀를 본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 이동하다가 들킬 수도 있다. 로제는 곧바로 자신의 칼을 검집에 집어넣고 시체들의 무기 한 자루를 챙겼다. 그리고는 자신이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를 빠르게 올라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찍혀 있는 발자국들. 로제는 나무 위에서, 빠른 속도로 다른 나무들로 건너가기를 반복하면서 이동했다. 어떤 나무가 더 튼튼한지. 어떤 가지가 로제가 올라가도 큰소리를 내지 않을지. 모든것들이 로제의 머릿 속에서 빠르게 계산되고. 그와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십분 정도를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로제의 눈에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로 달려가고 있는 남자 한 명이 잡혔다.
곧바로, 로제는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던졌고. 남자의 뒷목으로 날아간 날붙이는 그대로 깊숙하게 박혀들었다.
"..."
죽었다. 로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체를 잠깐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가야 할 장소는 네르펜 항구였지만. 최근에 레이먼드가 다시 매를 보냈다.
[네르펜 항구로 향하고 있지? 내가 눈치 챌 수 있으면, 해군도 그럴거야. 그곳은 나중에 하고, 호른 항구로 향해라.]
호른 항구라면, 이미 어느정도 로제에게도 익숙한 장소다. 마리아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 있었던 항구니까. 그리고 레이먼드의 말도 퍽 설득력이 있었기에. 그녀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네르펜 항구로 향하지 않고 호른 항구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 와중에 산적들을 만났었다. 네르펜 항구로 향했더라면 지금쯤 로제는 뜨끈하게 데운 목욕물 안에서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오리나 가지고 놀았겠지만.
그 대신 작은 가죽 물통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신 로제는 다시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힘들어..."
작은 한마디를 끝으로. 로제의 모습이 빠르게 숲 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굉장히 부끄럽고 기분 좋은 묘한 일이 생겼어요. 조아라's 스토리의 2016년 기대작에 뜻밖의 해적이 올라가 있네요(자랑하고 싶어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있어서 솔직히 여기에 제 이야기가 끼는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