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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94화 (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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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티 크러쉬

마을 공터는 아직 해가 쨍쨍하게 떠 있었다. 선원들에게 쓸데없는 사고 치지 말라고 당부하며, 해가 질 때즈음 돌아오라고 명령한 마리아는 그대로 나와 함께 앉아서 공터에서 일하고 있는 카렌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죽여야 한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필요한 일이다. 그 카렌이라는 아가씨에게 치료를 받은 선원 정도가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 별로 내키지 않는데?"

라고 말하고 있는 마리아를 보면서 나는 대답했다.

"예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위험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 제한 상황도 없다. 그래, 가장 큰 제한은 우리의 양심. 싼 가격 또는 공짜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착한 사람을 우리의 목적때문에 죽여도 괜찮을까? 하는 이야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죽일 수 있는데 죽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 예외를 만들면 안됩니다."

할 수 없어서 못하는게 아니라,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건 절대로 안된다.

"이유는?"

마리아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죽은 무덤 삼만개가 있으면, 억울한 사람 삼만명이라고 했습니다."

동정이 가서? 불쌍해서? 착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럼 내가 처음에 이 배를 탓을 때에 죽인 사람은 뭔데. 내가 포크로 눈알을 찌르고 팔 하나를 못쓰게 한 남자는? 내 손과 마리아의 손에 엉겨붙어있는 피들 중에서, 억울하지 않은 피는 없다. 근데, 이제와서 그냥 넘어가자고.

"저 여자만을 예외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내가 한다. 나는 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리아, 당신이 내키지 않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로제한테도 했던 말인데.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용기가 필요한거야."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이게 누구를 아직 스무살도 안된 꼬맹이로 보나? 로제에게 한 말로 흐트러질 정도로, 내가 여태동안 걸어온 길들이 물러터지지는 않아.

"용기있는 선택이 나쁘게 작용하면 만용이라고 하지요. 막상 자신의 용기있는 선택으로 인해서 아는 사람들의 시체를 부여잡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하는게 사람입니다."

나와 마리아가 서로를 마주바라본다. 마리아의 눈에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들이 빙빙 돌고 있었다.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잘 보니까. 우리는 서로 반대라서 잘 맞는 거였구나?"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마리아. 해야 할 일이라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하는 나.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지만, 등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 말 없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리아, 당신의 행동은 일관성이 없어요."

나의 말에, 마리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시가를 하나 뽑아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굳이 레이먼드, 너에게 듣지 않아도 그건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데."

사실, 약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고? 라는 마리아의 말. 나는 파이프를 꺼내서 담배를 눌러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동하시면, 그 동안 살아온 자신에게 미안해지지 않습니까?"

죽였다가, 살렸다가. 공부하다가, 공부 안하다가. 죽을 만큼 좋아하다가, 금세 버리기도 하는. 그 말에, 마리아가 후우, 하고 연기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그때는 내가 그러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뿐인데."

마리아가 시가의 재를 툭 털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나도 일관성이 없는건 아니지. 일관되게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으니까."

... 나는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연기를 훅 피워 올리고는 그녀를 바라봤다. 마리아는 입에 시가를 물고 빨지도 않는 채로 카렌을 계속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그녀가 뽑아 문 시가가 무려 여덟개. 폐암 걸리겠다 저러다가.

"아직,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마리아는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카렌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완전히 뜸해지자 주변을 슥 훑어보고 나서 텐트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마리아가 나에게 말했다.

"따라와."

... 잡아 끌면서 따라와, 라고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하나만 합시다... 하나만. 카렌이 정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마리아가 그녀가 옮기던 짐을 턱 받으면서 말했다.

"늦게까지 일하네, 의사 아가씨?"

마리아의 말에, 누구?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던 카렌이 주먹으로 왼손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아, 그 다리 다치신 분 동료시군요."

좀 어떻다고 해요? 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카렌.

"뭐, 그냥저냥 괜찮은데 말이지."

마리아가 짐을 옮겨주면서 말을 걸었다.

"이 마을에 한 동안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영 쉴 곳이 없어서.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잘 곳을 조금 빌려줄 수 있을까?"

돈은 제대로 지불 할 테니까. 라는 마리아의 말에 카렌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손님들이 머무르실 만한 집이 아닌데요... 죄송해요. 차라리 다른 곳을 찾아보시는게 편히 쉴 수 있을거에요."

그 말에, 마리아가 대답했다.

"미안, 사람을 잘 믿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아가씨는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숙박비는 두둑하게 줄 테니까... 안될까?"

마리아의 말에 카렌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집이 마음에 안드시면 다시 나가셔도 상관없어요. 남들 보여주기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해서..."

나는 그 말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마리아가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일 사람의 집에서 같이 자자고?

"우리가 괜히 민폐 끼치는 것 같은데."

그 말에는 카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레인도 북적북적한 걸 좋아하니까... 오히려 제 쪽에서는 반가운 이야기에요. 하지만, 머무르실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꼭 말씀해주세요."

그러면서 미소를 지은채로 카렌이 계속해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을 다 마치고 나서. 마리아는 다시 공터로 모인 세 명을 보고 말했다.

"당분간, 이 의사 아가씨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 말에 눈에 띄게 한 선원의 표정이 밝아지시는데. 카렌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대답했다.

"... 집이 굉장히 누추해서요. 머무르시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 말에 다리를 다쳤던 선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길바닥이 아닌게 어디입니까. 이래뵈도 튼튼해서 상관 없습니다."

신났구만, 신났어 아주. 여기에서 나 혼자 마음이 복잡한 건가?! 아무래도 나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은 채로 천천히 카렌의 안내에 따라서 이동하기 시작했고.

"...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카렌이 자기 집이 누추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어, 예의 상으로 누추하다고 한게 아니라. 진짜로 누추하잖아. 이 집이 무너지지 않고 아직 서 있는게 기적이다. 게임으로 치면 지금 이 집만 물리엔진이 고장난 것 같아. 어떻게 버티고 있는거야?!

나는 충격과 경악에 싸인 마음의 동요를 가까스로 얼굴 밖으로 내밀지 않았다.

"뭐, 잘 만하겠는데?"

마리아는 말하고 나서 선원 중 한 명을 보고 말했다.

"대충 위치는 알았을 테니. 넌 가서 먹을 거랑 술 넉넉하게 구해와라."

그 말에, 선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다음 마리아가 카렌을 보면서 가볍게 윙크를 했다.

"내가 여자라서 열달이나 배부르게 해줄 수는 없고. 한 달 정도는 배부르게 해주지."

와, 저거 여자라서 다행이지. 말투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남자였다면 성추행이 따로 없겠는데. 카렌이 아니에요, 그럴 필요는! 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저었지만. 마리아가 대답했다.

"줄 때 받아.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말을 마치고 나서 마리아는 카렌의 안내를 받아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이라고 해도. 부엌과 침실과 식당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한 곳에 다 들어가 있는 대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고. 거기에는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 엄마?"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카렌이 밝게 대답했다.

"응, 다녀왔어. 레인. 착하게 있었니?"

그 말에 소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발소리가 여러개에요. 누구야?"

손님들, 이라고 말하면서 카렌이 신발을 벗고 다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 어두운 밤색의 머리가 카렌의 손에서 쓰다듬어진다. 아, 방금 전 소년의 대사로 인해서 한 명이 굉장한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몸 안에서 뭐가 끓어오르는게 느껴졌다.

여기를 오면 안됬어.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다.

저 아이,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손을 더듬거리면서 엄마의 얼굴로 손을 뻗어 천천히 쓰다듬는 아이를 보면서, 모두가 잠깐 침묵했다. 이런 씨발... 하나님, 나한테 왜 자꾸 이러십니까.

"이름이?"

마리아가 태연하게 다가가서 아이의 머리를 퍽퍽 쓰다듬었다. 말 그대로 퍽퍽이라고 할 정도로 거친 손길에 아이가 움찔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레인이에요."

몇 살이야? 라는 물음부터 시작해서 마리아가 아이와 몇 마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레인은 대충 분위기에 적응을 한 모양이었다. 약간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사람들이 온게 반가운 눈치다. 침대에 앉아있었지만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게 느껴진다.

잠시 뒤에, 먹을거리를 구해온 선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고. 카렌이 빠르게 식사를 준비했다. 마리아는 바쁘게 움직이는 카렌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미안, 마음은 돕고 싶은데. 내 인생에 있어서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본 기억이 없네."

괜찮아요. 라고 카렌은 말하고 나서 빠른 속도로 요리를 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식사가 준비되었다. 식탁 앞에서, 레인이 자신의 숟가락을 찾기 위해서 더듬거리는 걸 보고 선원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숟가락을 쥐어주려고 했지만. 그걸 마리아가 제지하면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에, 레인은 자신의 숟가락을 찾아서 집고. 조심스럽게 음식들을 떠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술이 꺼내지면서 술판이 벌어졌다. 우리들의 농담이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던 레인은, 약간 더 시간이 지나자 잠들어 버렸고. 자연스럽게 낮아진 목소리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은?"

마리아의 말에, 카렌이 약간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대답했다.

"몇 년 전에..."

결혼을 일찍 한 모양이네. 라는 말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의학 공부라는게 가난한 집에서 하는게 거의 불가능한 공부다. 근데 어떻게 카렌은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었지?

"의학은 어떻게 공부하시게 되었는지?"

집이 원래 이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카렌이 의학을 공부할 정도의 여유는 있는 집안이었고, 자기 나름대로 개업도 할 정도로 자금에는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레인이 저렇게 되고, 남편이랑 저랑 치료할 방법을 찾느라... 돈을 참 많이 썼어요. 부모 마음이라는게 그렇더라고요. 분명히 배웠던 지식에 의하면, 순 말도 안되는 엉터리 약인데도. 비싼 값을 주고 혹시 몰라. 라고 하면서 사용해보고..."

마리아가, 다시 그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기 사정도 안 좋으면서 뭐하러 그런 무료 봉사를 하는거야? 아가씨 실력이 나빠보이지는 않던데. 직접 의원을 차릴 수는 없어도, 큰 규모의 의원에 들어간다면 지금처럼 생활 안해도 되잖아."

마리아의 물음에, 카렌이 대답했다.

"아이리 공화국은, 평등한 나라니까요. 누구는 치료를 받고, 누구는 치료를 못 받는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마리아가 픽 웃었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권력자들이나 입에서 꺼낼 거짓부렁이지. 가난한 이들을 홀리는 달콤한 꿀 같은 독. 당신같은 상황의 여자 입에서 나오다니, 조금 어색하네."

그 말에 카렌이 조용히,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약를 공부하다보면 알게 되는게 있어요."

그녀가 마리아를 보는 눈은 굉장히 곧았다.

"어떤 풀은, 몇십년 전까지는 먹으면 죽는 독초로 알려져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풀에서 추출한 독으로 죽어갔죠. 제가 공부를 하기 시작할 즈음이 되어서야 그 독이 마취 효과가 있다는게 밝혀져서,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요."

카렌의 시선을 마리아는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풀은요, 사실 처음부터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었을 뿐이죠. 평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말하면서, 카렌은 자신의 양 손을 가슴에 살짝 가져가며 말했다.

"지금,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단어로 다른 사람들을 우롱하고,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악용한다고 해도. 그건 사용하는 사람들의 잘못이죠. 계속해서 우리가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제대로 된 용도로 쓰는 날이 올 거라고 저는 믿어요."

... 한 10년 만에 만나보는 어마어마하게 착한 사람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평가했다. 뭐야 저 선한 눈은. 곁에 있는 걸로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의사 아가씨는 평등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해?"

그 말에 카렌이 고개를 저었다.

"연구하는 중이라고 할까요?"

마리아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술잔을 살짝 들었다가 원샷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시가나 태워야지. 레이먼드, 따라와."

쌀쌀한 공기 안에서, 마리아는 시가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 저거 태우는데 한 삼십분은 걸릴텐데.

"내 눈이 맞았어."

나는 마리아를 바라봤다.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네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대충 이해할 수 있고. 네 선택이나 결정으로 인해서 득을 본 경우가 많으니까."

마리아의 볼이 움푹 들어가면서 시가의 연기가 빠르게 빨린다. 저걸 속담배로 하고 있었던 거냐? 피 토할 텐데.

"계속 저 카렌이라는 여자를 지켜봤는데. 익숙한 눈을 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마리아는 말했다.

"저 여자는 안... 정확히 말하자면 못 죽일 것 같아."

그러면서 마리아가 스스로의 눈을 가르켰다.

"눈이, 어릴 때 기억 속의 내 엄마랑 너무 닮았어.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인생 철학이고 지표고, 다 필요없어. 저 여자를 죽이면, 내 엄마를 죽이는 기분이 될 것 같아."

마리아는 단언했다. 못 죽이겠다고. 나는 그 말에 한숨을 깊게 쉬고 담배 파이프에 입을 가져갔다.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아, 그 번호는요.

어.... 주말에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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