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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악마
로른 해로 바다의 날개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접했다.
예를 들면, 싸늘한 앤에서 그를 본 기억이 있던 미나 웨스트우드. 그녀가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자들에게로 향했다.
"자세히 말해라."
그 명령조의 어투에 남자는 불만이 있는듯이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미나가 군말 없이 마시고 있던 맥주와 음식을 계산하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미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자신의 자리에 가서 눈에 힘을 주고 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럼보틀 만..."
해적들의 항구들 중에 꽤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위치는 모르고 있다. 미나는 고민하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 마디 중얼거렸다.
"만나서 뭘 하고 싶은건데."
그 말대로, 미나는 아직 방향을 잡지 못했다. 그를 죽여야 하나? 그러기에는 마음 속에서 뭔가 거부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살려놓을 거라면, 나는 그를 왜 찾으려고 하는 건가? 미나는 머리를 휘휘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소식을 듣기 전에, 바리스 또한 바다의 날개가 로른 해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은 상태였다. 그는 살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카멜롯 왕국의 제독이 아니다. 제독일 때에는 그의 마음대로 검은 어금니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 자신 대신에 그랜트가 제독을 맡게 된 이상, 바리스는 그랜트의 허가가 없으면 함부로 배를 움직일 수가 없다.
"불허해야겠구나."
그랜트는 자신의 하얗게 세기 시작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개인적은 욕심은 덮어두어라. 검은 어금니가 도와야 할 일이 아직 많다."
바리스는 그랜트의 말에 깊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느정도 해군이 정상화가 된다면, 그떄는 가능한 겁니까."
바리스의 말에 그랜트가 대답했다.
"그래, 어찌 되었던 그 여해적은 제거되어야 할 테니. 해군과 해적은 항상 다투는 사이다. 그렇게 성급하지 않아도 기회는 다시 찾아올게야."
그걸로, 그랜트와 바리스의 대화는 끝나고. 바리스는 그랜트의 집무실을 나섰다.
게르하르크는, 자신의 절단된 다리를 대신해서 자리잡고 있는 딱딱한 의족을 보면서 말했다.
"말한 건 구했나?"
나가의 유물이라고, 경매에 올라갔던 물건이 있다. 그를 속여먹었던 그 자식들은 게르하르크에게 큰 피해를 주었고, 게르하르크는 입에 재갈을 문 채로 창에 꿰뚫렸던 자신의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그리고, 바다의 날개라고 하는 거지같은 배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하다가 그가 생각해 낸 것은 하나. 그들이 이상한 배를 타고 있다면, 이쪽에서는 인간의 물건이 아닌 것으로 대항하겠다는 의지.
게르하르크의 말에, 남자가 천천히 은색의 상자를 열었고, 거기에는 산호 조각이 하나 놓여있었다. 게르하르크가 남자에게 나가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그 산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마음에 드나?
뒤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게르하르크는 침대에서 몸을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검은 형체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 갑자기 강렬한 비린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선이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해초의 비린내 같기도 한 비린내와 함께. 스산한 한기가 느껴지고. 급작스럽게 방 안의 습기가 높아지기라도 했는지, 창문에 물방울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대는?"
그 말에 검은 형체가 흐느적거리면서 웃었다.
- 그 물건의 주인.
그 말에 게르하르크는 그 형체를 보며 말했다.
"그대는 나가인가?"
그 말에 검은 형체가 강하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 저런, 내가 누구인지,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나는 심연에서 꿈꾸는 자. 통일된 하나, 또한 나누어진 여럿의 하나. 그 물건은 나와 우리의 것이다.
게르하르크는 그 일렁거리는 형체를 보면서 말했다.
"돌려 받기라도 원하나?"
그 말에 형체가 다시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 질문은 이쪽에서 해야겠지. 힘을 원하나? 그대의 마음 속 탐욕과 증오심의 원인을 산산히 박살내기를 원하나?
게르하르크는 그 형체의 말에 이끌려서 대답했다.
"해 줄 수 있나?"
그 말에 검은 형체가 대답했다.
- 세상 바다의 모든 잔혹함이 나에게 있지! 못 해줄리가 있나.
게르하르크는 대답했고, 검은 형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흩어졌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가 다른 장소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에밀은, 자신의 저택 지하실에서 피비린내나는 취미생활을 하던 도중 자신의 그림자에 생겨난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실 아래에 가득하게 차오르는 썩은 생선과도 같은 비린내와, 스산한 냉기와, 천장에 물방울이 맺혀서 뚝뚝 떨어질 정도로 심한 습기. 에밀은 그 와중에 별로 동요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자의 붉은 시선이 꽉 묶인채로 반쯤 배가 열리기 시작하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군.
그림자의 말에, 에밀은 주변을 슥 둘러보고 말했다.
"뭐, 보통이지."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웃었다. 이 작지 않은 지하실 전체에 울려퍼지는 낮고 차가운 웃음소리. 그리고, 지하실 안에 켜져있던 램프의 색이 모두 검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에밀이 그 램프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바뀐 인테리어 마음에 드는데. 여기에는 어떻게 찾아왔지?"
에밀의 느긋한 말에, 그림자가 대답했다.
- 너의 광기가 나에게 길을 보여줬지. 나는 바다의 악마, 심연에서 꿈꾸는 자.
그림자는, 게르하르크에게 검은 형체가 말했던 것과 같은 내용을 에밀에게 말하고 있었다.
- 힘을 원하나?
그 말에 에밀이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싸구려 비극에서 나올 법한 대사잖아. 악마라면 조금 더 고풍스러운 어법을 배우지 그래."
그 말에 그림자가 멋대로 쭉 늘어나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에밀을 마주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밀의 눈 앞이 일렁거리며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가 바라고 있던 모든 것들, 그가 원하고 있던 모든 쾌락들. 그가 원하고 있던 스스로는 채울 수 없었던 갈망들이 충족되는 기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일순간 바다 위로 쏟아지던 소나기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져내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보고 있었다.
-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한 여름 바다 위에 눈보라를 불러내고, 태양이 떠 있는 가운데에 해일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힘.
에밀은 자신의 몸 속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강한 공허감 속에서도 여전히 덤덤하게 말했다.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는데 그래."
에밀의 말에 그림자가 약간 흔들린다. 그리고 에밀이 섬뜩할 정도로 올라간 입꼬리로 웃었다. 방금 전까지의 냉담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광기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바다의 악마라고?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말을 마치고 나서 킬킬거리는 에밀의 웃음소리는, 아까 그림자의 웃음보다, 어쩌면 더욱 더 섬뜩하고 소름끼쳤다. 에밀이 습기 때문에 이마에 달라붙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슥 쓸어올리고는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다시 물어보지.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했나?"
그 말에 그림자가 그렇다, 라고 대답했고. 에밀은 그런 그림자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오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그러는 에밀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고, 에밀의 대답에 그림자는 눈에 띄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 내가 갈망하는 것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 그대 혼자서는 그 갈망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에밀은, 침대에 묶여서 복부가 반쯤 열린 채로 그렁그렁 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의 몸 속에 손가락을 찔러넣었다가 뽑은 다음에 손에 딸려 붙은 피를 핥으며 말했다.
"꼴에 악마라는 친구가,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를 못하나?"
그림자는 침묵한 채로 일렁거리고 있는다. 에밀이 그걸 보다가 얼굴을 확 구겼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가?! 라는 에밀의 외침이 지하실에 울려퍼진다.
"하, 크하하핫! 아하하하하핫!"
에밀이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미친듯이 웃기 시작하고. 오히려 멋대로 움직이는 붉은 눈의 그림자가 풍기는 분위기가 에밀의 광기에 밀리는 느낌까지 들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림자가 지배하고 있던 지하실의 분위기가, 에밀에 의해서 다시 점령당하기 시작한다.
"나는 결과가 필요한게 아니야! 나는, 내가 직접 죽이는 그 과정이 필요한거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최고의 결과에 무슨 성취감이, 희열이 있겠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원한다. 에밀은 그렇게 선언하듯 말하고 계속해서 날카로운 메스를 놀려서 아직 숨이 붙어서 그르륵거리는 여자의 몸에서 장기들을 적출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눈에는 붉은 눈을 가진 그림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여자의 몸 안을 뜯어내며 혼자 정신없이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못먹어도 상관 없어. 길에서 잡아온 암사슴이 알고 보니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어서 먹지 못하는 녀석이라고 해도 상관 없지. 중요한건, 내 손으로 살려달라고 비명지르는 그 짐승들의 목을 따고, 도축하는 과정이다. 내 손에서 비롯된, 나로 인해서 끝나게 되는! 그 느낌이야 말로 마치..."
몽롱한 눈으로, 와인을 잔뜩 먹고 취해서 음악을 듣는 듯한 도취된 표정으로 에밀이 빙글 하고 몸을 돌려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뜨겁고 끈적거리는 피가 가득 엉겨붙어 있었다.
그건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들이지. 에밀은 메스를 휙 뒤로 던지고, 벽에 부딪친 메스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붉은 눈의 그림자가 다시 무겁게 입을 연다.
- 내가 그 과정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숨 쉬고 심장이 뛰는 것 조차도 괴로워 어쩔 줄 모르는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되면서 네가 느낄 희열을 생각해봐라...
그 말에 다시 에밀이 미친듯이 웃으면서 말한다.
"으하, 아하하하핫 걸작이구나! 화가에게 가서 말해봐라! 니 그림을 내가 더 완벽하게 그려줄 테니 나에게 붓을 달라고! 소설가에게 가서 말해봐라! 내가 더 재미있게 써줄테니 펜을 나에게 달라고!"
병신같은, 안쓰러울 지경의 악마 아닌가. 에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뺨을 손으로 슥 문질렀고, 그 움직임에 따라서 에밀의 뺨에 붉은 핏자국이 그려진다. 얼굴에 핏자국이 선명한 에밀의 눈은, 지독하리만큼 끔찍한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살살 흔들며 에밀이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지, 그림자 친구. 그게 아니야! 중요한건, 내가 했다는 거다. 결과가 더 나아질 수 있었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아. 그 과정을 온전히 내가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지!"
끝에 가서는 완전히 광기에 젖어서 외치는 에밀의 목소리. 그리고 잠깐 숨을 고르기 시작하는 에밀을 그림자가 바라보고 있는다.
그러니, 라고 쉼호흡을 마친 에밀은 말을 이으며 선언하듯이 팔을 꼰 채로 그림자를 바라봤다.
"다시 가서 심연인지 뭔지에 쳐박혀서 잠이나 자라 악마.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니. 나중에 지옥 가서 보자고. 나 예약석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에밀의 선언과 함께 그림자가 울렁거리더니, 주변에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불타던 램프들이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고, 에밀의 그림자에서 붉은 눈이 흐려지다 사라진다.
알콜을 바른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과 손을 닦아낸 에밀은 흠, 하는 소리를 내고는 중얼거렸다. 그의 표정에는 방금 전까지 끓는 역청처럼 드글거리던 광기는 싹 지워져 있었다.
"그래도 램프 색은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지. 그냥 그렇게 해두고 갈 것이지."
에밀은 악마를 이겨먹었다. 독실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견실한 인간이어서도 아니고 도덕적인 인간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는 악마조차 뚫고 들어갈 구석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미쳐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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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의 교훈 : 악마도 미친놈은 못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