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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
계속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열척 정도가 남았을 때 배들이 우리에게 너무 가까히 달라붙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배들은 물대포로 옆구리가 뜯어져 나가서 무력화 되기 시작했지만, 그 뒤편에 있던 배들이 그 망가진 배 위로 올라탄 다음에, 다시 이쪽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비가 와서 피스톨도 쓸모가 없다. 나는 주변을 파악한 다음에 머리를 짚었다. 이거 답이 없는데. 녀석들이 갈고리를 던지기 시작하고. 나는 저편에서 게르하르크가 나를 보며 뭐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녀석의 말을 몰라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쌍욕이겠지.
거의 네 척에 달하는 배들이 이 배 근처까지 와서 망가지는데 성공했고. 거기로 옮겨탄 녀석들이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파도에 배가 출렁거릴 때 마다 밧줄을 타고 있던 선원들 몇 명이 바다로 떨어지지만. 멀쩡하게 이쪽으로 오고 있는 녀석들이 더 많다.
이제 함포전의 시간은 지났다. 녀석들이 애초에 이걸 노리고 온 이상...! 나는 바다의 날개에서 러셀의 검을 뽑아내었다. 더 이상 여기에 꽂혀 있을 이유가 없다. 사방에 걸려있는 갈고리들과 그곳을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는 해적들. 마리아가 바닥에 침을 탁 뱉고 입고 있던 코트를 바닥에 던지고 선장모를 벗었다. 마리아의 손에 푸른 커틀러스가 들리고. 선원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건너오는 적들을 바라본다.
"준비해라!"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단검 하나를 던져 이쪽으로 건너오려는 선원 하나를 맞춰 떨어뜨리고 건너온 상대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들과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비와 파도 속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나에게 달려드는 상대의 검을 향해서 러셀의 검을 휘둘렀고, 검이 상대의 무기에 약간 박혀 들어간다. 계속해서 공격해서 하나를 어떻게든 처리한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하나 처리할 동안 다섯은 넘는 시체를 만들어낸 마리아가 서 있었다.
마리아는 상대의 배를 빠르게 발로 차서 날려보내며 머리통에 단검을 던져 박아넣고 빠르게 옆으로 구르며 내려찍히는 검을 피한다. 짧은 순간에 마리아에게 공격해들어간 세 명의 목이 갑판 위를 구른다.
마리아가 날아다니고 있는 건 고무되는 소식이지만... 배 자체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게. 갈고리로 이어진 상태에서 파도가 계속해서 몰아치자,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판의 난간이 뜯어지기 시작한다. 갈고리들이 풀리는 건 다행이지만.
"씨발, 이 배를 어떻게 구한건데."
나는 나를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막아내고, 러셀의 검에 절반 정도가 박혀들어간 검을 보며 멍해진 선원의 배를 차버리고 녀석의 목줄기에 검을 박았다가 뽑아낸다. 그리고 아직 걸려있는 수많은 갈고리 중 하나의 줄을 잘라내었다. 내 뒤편에서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로제가 서 있엇다.
상대의 복부에 칼을 꽂아넣은 다음에 곧바로 검을 뽑아내며 상대가 쥐고 있던 검을 빼앗아든 그녀가 내 쪽으로 빠르게 그 검을 집어 던지고, 내 뒤편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레이먼드, 정신 놓고 있지 마세요!"
뒤쪽에서 찔러들어오는 창을 로제가 살짝 피하며 몸을 회전시켜 상대의 목을 쳐내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다시 집어 던져 한 명을 더 처리한다. 그걸 보던 나도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계속해서 상대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로제와 마리아는 말 그대로 배 위에서 종횡무진하면서 상대의 목숨을 거둬가고 있지만. 상대도 계속해서 우리 선원들을 공격하면서 피해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 선원들의 피와 상대 선원들이 흘린 피가 흐르는 빗물에 뒤섞이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몸의 일부.
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은 이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거야?! 몸이 욱신거리고 입 속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분명히 차가운 온도에 비를 맞고 있지만 몸은 잔뜩 덥혀진 상태로 나는 계속해서 상대와 싸우기 시작한다.
"레이먼드, 잠깐 어깨!"
로제는 내 어깨를 짚고 훌쩍 뛰어넘어 적 한 명의 가슴팍에 검을 꽂아넣으며 말한다. 마리아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단검으로 적의 머리통을 꿰뚫고, 나는 빠르게 마리아 쪽으로 달려가서 뒤편에 있는 녀석의 가슴을 내려찍는다. 힘들어 뒤지겠다! 역시 나는 이런거 타입에 맞지 않아.
"야. 할 만하냐?"
마리아는 배 위에 많아지기 시작하는 해적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리가요. 할 만 하십니까?"
내가 달려드는 상대의 무기에 내 검을 박아넣고 주먹질로 상대의 머리통을 갈기면서 그렇게 되묻자. 마리아는 적이 휘두르는 검을 쳐내고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으로 빠르게 다섯 번 정도를 쑤셔 넣었다. 비명을 지르며 죽은 선원. 나와 마리아가 서로 등을 댄 채로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마리아가 말한다.
"그냥 그러네."
배 위에는 이제 적들의 수가 더 많아져서. 아직 살아있는 우리의 선원들과 나는 한 곳으로 몰려서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배 위에 시체가 쌓이고 있다. 마리아가 입고 있는 셔츠의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지만. 다친 곳은 없다.
세상에, 이 상황에서 안 다치고 살아 숨쉬고 있다니. 나는 군데군데 생겨난 검상 때문에 온 몸이 욱신거리는데 말이야.
로제도 여기저기가 찢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멀쩡하다. 어떻게 우리 배는 여자들이 더 쎄냐?
우리 쪽 선원은 척 봐도 이제 열 명도 남지 않았다.
더 넘어오는 선원은 없었다. 배 위에는 시체가 가득해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지경이다. 로제가 휙휙 움직이면서 적을 처리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팔에 걸려서 넘어지고 그녀를 향해서 선원 하나가 달려들려고 한다.
마리아가 단검을 던져서 녀석의 목을 꿰똟고, 곧바로 달려가서 로제와 함께 싸운다.
"... 손해 심하군."
그 목소리에 나는 뒤편을 돌아보고. 갈고리로 이어진 배 너머에서 적군과 함께 있는 게르하르크가 있었다. 마리아가 흘러내리는 핏물을 슥 닦아내며 그를 바라봤다.
"배만 묶어놓으면 쉬울 것 같았냐?"
그 말에 게르하르크가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마리아를 봤다.
"200명이 죽었다. 네 몸이 정상은 아니겠지."
그 말에 마리아가 빗물에 축축하게 젖어 속옷이 비치는 모습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척 올렸다.
"200명 정도는 더 데려와도 괜찮아. 이 씹새야."
뻥치지마.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게르하르크를 바라봤다. 우리 선원들 중에 지금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다들 다리나 팔 한 군데 정도는 다쳐있고. 나는 지금 등짝을 할퀴고 지나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나마 비가 와서 갑판 위에서 화기를 쓰지 못하는 바람에 가능한 상황이다. 마리아는 아직 배 위에 남아있는 녀석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우리 선원들은 이미 거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직 남아있는 적 몇 명이 싸우고 있는 마리아 쪽으로 향한다.
로제와 나는 순식간에 서로 나란히 선 채로 다섯명이 마리아에게로 가는 길을 막아선다. 등 뒤로 마리아가 계속해서 검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 레이먼드랑 함께 싸워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이럴 땐 차라리 선장님이 든든한데."
와, 이 상황에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나는 로제의 말에 대답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는 고백을 하는게 정석 아니냐?"
로제는 곧바로 대답햇다.
"이미 하지 않았어요? 난 말했었는데. 레이먼드 좋아한다고. 그리고 이게 무슨 죽을 상황이라고."
마리아는 싸우는 와중에도 이쪽을 보면서 외쳤다.
"그래! 니들 거기서 신파극 찍어라! 로제 이 도둑고양이가 어디서 고백질이야?! 여유가 넘치냐?"
선장님은 그럴 여유가 있나보네요. 로제가 웃으면서 말한다.
나에게 찌르고 들어오는 창대를 잘라내는 걸 시작으로 다섯명이 이쪽으로 공격을 시작하고. 로제가 나에게 말했다.
"레이먼드, 발판!"
그 말에 나는 빠르게 양 손으로 발판을 만들고 로제가 그 위에 발을 올린다. 그 상태에서 내가 힘을 주어서 로제를 위로 띄우자 로제가 곧바로 검을 던져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남자의 머리통에 검을 박아넣는다. 로제 무기가 없잖아. 나는 빠르게 러셀의 검을 위로 살짝 던졌다.
로제가 그걸 공중에서 받아들고 상대의 뒤편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내 쪽으로 다가오며 녀석들을 공격한다. 나는 죽은 녀석의 검을 챙겨들고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젠 무기빨도 없으니까. 나는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들의 공격을 막기만 하고, 그 사이에 뒤쪽으로 넘어간 로제 쪽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린다. 내가 들어도 좋은 검인데. 로제가 들면 더 장난이 아니겠지.
마리아는 검을 엎드려 있는 상대에게 박아넣은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게르하르크가 서 있던 배를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창을 던질 준비를 하는 게르하르크가 있었다.
"마리아! 조심해요!"
마리아가 고개를 들어 게르하르크 쪽을 바라보지만, 이미 창은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로제가 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가서 마리아의 앞을 막아서고 던져진 창을 받아내어 한 바퀴 돌리고는 그대로 다시 게르하르크에게로 되던졌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게르하르크의 오른쪽 장딴지를 로제가 던진 창이 꿰뚫어 버린다.
자신의 장딴지를 바라보면서 으아아아! 하는 비명을 지르던 게르하르크가 옆의 선원들 부축을 받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걸로 끝인 모양이지. 나는 로제에게 다가가서 양 손을 살펴봤고, 급작스럽게 창을 받아낸 로제의 양 손바닥이 찢어져 있었다.
"어찌저찌 살아남은 모양이네요."
소매의 천을 찢어서 로제의 양 손을 급한데로 감싼 나는 마리아를 보며 말했다.
마리아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 그래."
나는 로제가 바닥에 버려두었던 러셀의 검을 줍고, 천천히 조타륜 쪽으로 향했다. 등에 난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모양인데. 약간 어지럽다.
조타륜 옆에 다시 러셀의 검을 박아넣은 나는 몸이 성한 곳이 없는 선원들을 보며 말했다.
"아픈 와중에 미안하지만 우리 오른쪽에 있는 배 빨리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다! 물대포 잡아라."
그 말에 선원들이 천천히 움직여서 물대포를 잡고 오른쪽을 향해 발사한다. 내가 말한 배 하나가 박살나면서 바닷 속으로 가라앉고. 길이 뚫린다. 나는 러셀의 검을 약간 회전시킨채로 조타륜을 돌렸고. 배가 천천히 움직이며 뱃머리를 그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나는 러셀의 검을 끝까지 돌려넣었고. 배가 속력이 붙으면서 드디어 이 지옥같은 포위망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게르하르크 새끼..."
나는 욱신거리는 온 몸의 상처를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아픈 거 이상으로 손해가 심했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더 지나고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많은 선원들이 죽었다. 배 위에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 비가 그치고, 침묵 속에서 우리는 묵묵히 죽은 사람들의 육신을 바다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체를 방치할 수도 없었다.
시체가 치워진 갑판 위에는 피가 말라붙기 시작했고, 그것을 닦아내는 것도 하루 종일이 걸릴 일이었다. 이 배 위에서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빗물에 흘러내린 피를 제외하고도 무수히 많은 피가 갑판 위에 흐르고 있었다. 누가 할 것이냐라는 구분 없이 우리는 모두 갑판 위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선원이라고 해봤자 다섯이 약간 넘는 수준. 보통의 배라면 이걸로 항해가 불가능하겠지만. 러셀의 검을 돌리는 것 만으로도 일정 속력이 보장되는 바다의 날개는 아직 어떻게든 항해는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불가능하다. 대포를 잡을 선원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다.
정리를 마친 뒤에, 마리아는 갑판 위에서 뜯어져 나간 난간들과 갑판을 바라봤다.
"사람이 이래서 남한테 원한을 사면 안되는 건데."
마리아는 죽은 우리 선원들의 시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입에다가 달란트를 하나씩 물려주고 머리에 럼주를 뿌린 다음 하나씩 바다 속으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잘가라."
한 명 한 명, 선원의 이름을 부르고 입에 달란트를 물린채로 배로 밀어넣기를 얼마나 했을까. 배 위에 더 이상의 시체는 없다. 마리아는 잠깐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고, 남아있는 선원들 모두가 그 상태에서 잠깐의 침묵을 지켰다.
Lacrimosa dies illa,
눈물 겨운 그 날이 오면,
Qua resurget ex favilla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Judicandus homo reus.
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Huic ergo parce, Deus
하오니 그 사람을 어여삐 여기소서, 신이시여.
바다를 보면서 로제가 말을 마쳤다.
잠깐 시간이 지나고, 마리아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죽은 사람은 죽었고. 산 사람은 계속해서 가야지."
마리아는 말을 마치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조타륜을 바라봤다. 그렇게 조져대던 자식이 죽어버리다니. 나는 조타륜을 잡고 러셀의 검을 돌렸고, 바다의 날개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로제의 말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다리가 묶인 상태에서 바다의 날개는 생각보다 더 무력했고. 결정적으로 다른 배들에 비해서 이 배는 시야가 나쁘다. 높이 솟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다른 배들이 우리를 발견하는게 우리가 상대를 발견하는 것 보다 빠르다.
무거운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계속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타륜을 조종하는 가운데에 마리아가 옆으로 와서 말했다.
"새로 선원들을 뽑는다고 해도 물대포에 적응하려면 힘들거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의 날개에 제법 익숙하던 녀석들 대신에 새로 선원들이 들어오면 한 동안 힘들겠지. 그리고 게르하르크는 아직 살아있고 우리에 대한 원한이 더 깊어지면 깊어졌지 옅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녀석은 무지막지하게 많은 배와 선원들을 잃었으니까.
"일단, 나머지는 돌아가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마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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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
아... 써놓고 보니까 라크리모사가 너무 오글거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