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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74화 (7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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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악마

갓 닦아낸 은제 식기들이 반짝거리며 촛불을 받아 빛나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에밀 메이너스 제독."

서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말을 마치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탁한 갈색머리의,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남자는 눈을 서늘하게 빛내면서 서 있는 사람들을 슥 훑어보았다.

"앉지들."

말을 마치고 메이너스가 테이블의 상석에 앉고, 오른손을 옆으로 슥 들어올리자. 재빠르게 하녀가 넵킨을 그 손 위에 공손히 올려놓는다. 넵킨을 한 번 슥 쓸어내리며 탁 털어서 무릎 위에 올린 그가 입을 열었다.

"표정 좀 풀자고. 그냥 저녁 식사잖나. 나랑 같이 먹기 싫나봐들?"

에밀은 자신의 앞에 놓인 데운 물수건으로 손을 닦기 시작했고. 여전히 모두 침묵 속에 에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내면서 말했다.

"그래, 공화국이 입은 피해가 상당하다지. 어떻게 보면 내가 여기에 제독으로 임명된 것도 다 그 덕분이니까, 로만에게 고마워해야겠구만."

손을 다 닦은 에밀이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 제독이 되고 나서 바로 하게 된 일이 고작 저녁 식사라서 미안하지만. 일단 입 속으로 뭐가 들어가는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난 그렇던데."

에밀이 말하는 와중에 테이블의 와인잔에 와인이 따라지고, 아직 김이 올라오는 송이버섯 볶음이 올라온다. 에밀은 포크를 들어서 식사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에 맞추어서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난 송이버섯이 좋아, 이유를 짐작하는 사람 있나?"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에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포크로 버섯 하나를 집어서 바라보면서 말했다.

"버섯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것들에 기생을 하거든. 기껏해야 녀석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다른 생물들의 영양소를 뺏어먹는 것 뿐이지."

그는 버섯을 입 속으로 넣고 씹어 넘긴 다음에 말했다.

"클링턴, 제논, 보일."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 중에 몇 명이 대답을 하고. 에밀의 눈이 그들을 향했다.

"마치 네 놈들 처럼 말이야."

에밀이 포크를 내려놓자,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들어와서 세 사람을 끌어낸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식탁에 자리잡는다. 에밀이 재채기를 한 번 하고 주변을 바라보며 웃었다.

"군용 자금을 빼돌릴 용기는 있는데, 거기에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면 저런 꼴이 되는 거지. 거 보자...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의 말에 한 명이 입을 열어 대답하고. 에밀이 그렇지,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버섯을 하나 집어먹고 말을 이어간다.

"송이버섯은 조금 다르거든. 기본적으로 소나무의 영양소를 빼앗아서 자기가 쓰기는 하지만. 그 보답으로 소나무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주지."

그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서 유쾌하게 웃으면서 잔을 들어올리고. 다른 사람들도 빠르게 거기에 구색을 맞추어서 잔을 들어올린다.

"방금 전에 나간 친구들은 다시 못 볼거야. 잊자고!"

에밀은 말을 마친 다음 와인을 쭉 들이키고. 다시 버섯을 하나 씹으면서 말한다.

"역할놀이를 한다고 하면. 나는 가능하면 소나무를 하고 싶은데. 방금 전 처럼 영양소만 뺏어가는 버섯들이 있을까봐 걱정이야."

간단하게 말해서, 직위를 이용해서 나쁜 일을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그에 상응할 만한 충성심과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다. 에밀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면서 그들에게 웃음을 보냈다.

"능력주의라는거지. 원래 똑똑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약간씩 정신이 이상한 경우도 많잖아. 난 사람의 도덕성에는 신경끄고 사는 주의라. 열정도 필요없고 노력도 필요없어. 방법이야 어떻게 되었던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면 된다."

말을 마친 그가 와인을 마시는 동안 요리의 코스가 바뀌고. 그들의 앞에 다음의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아마 그들은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로 지금 당황한 상태리라. 방금 전의 그 병사들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붙들려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자, 그럼 첫번째 안건. 해적들 이야기를 해보자고."

에밀이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소시지 위에 겨자를 바르면서 말했다.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아무래도 공화국의 해군에는 없는 상태잖아?"

그는 말하면서 소시지를 나이프로 썰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이전과 같은 통제력을 해군에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현상금 제도를 고려하기로 하지."

즉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해적들과 거기에 상응하는 현상금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하고. 그는 잠깐 시간을 끌다가 말했다.

"직접 잡아오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정보에 관해 보고하는 시민들에게는 현상금의 5%를 지급한다. 시행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매일 아침 보고를 할 수 있도록."

그는 말을 마치고 소시지를 먹기 시작했다. 다음의 요리가 나온다. 붉은 소스로 양념된 고기와 곁들여진 으깬 감자가 나왔다.

"어서들 들라고. 맛이 꽤 괜찮아. 역시 어린 고기가 맛이 더 좋단 말이지."

식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 동안에 에밀은 더 이상 일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해서 에밀이 입을 열었다.

"아, 그럼 내일 오전 중으로 초안 보고를 준비해서 다시 오도록 해."

그 말에 앉아있던 사람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일 아침에 보고를 들어가야 한다면... 오늘은 잠을 못 잘 것 같은데. 에밀이 넵킨으로 입을 닦아낸 다음 자리에서 일어서고. 다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가는 에밀을 마중했다.

에밀은 밖으로 나가서 하품을 한 번 했다.

"쯧, 그나마 어려서 비린 맛이 좀 덜했구만."

이래서 길거리에서 구해온 애들을 바로 요리하면 안된다니까. 맛이 잡스러워.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가서 서류를 읽어보다가 눈이 멈추었다.

"하, 이 늙은이가?"

그렇게 말하는 에밀의 입이 길게 찢어지면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대머리 늙은이 감정 없는 목석인건 알고 있었지만. 자기 외동딸을 가문에서 제명시켜 버릴 줄이야."

그는 툭툭 그 문서를 두들기면서 웃었다.

"이러면 그냥 잡아들여서 내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상관 없는거잖아?"

카멜롯에서는 더 이상 발미온 가문의 영애도 아니니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거고. 그 로크 발미온이 제명된 가문의 사람을 안중에 둘 리 만무하다. 자기 어머니라고 해도 가문에서 제명되고 나면 집창촌에서 일을 하던 마약 중독에 걸려서 빌어먹고 살던 신경을 끊을 사람이니까.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어지는군."

에밀의 입가에서 섬뜩한 미소는 사라질 줄 모르고 있었다. 로제와 에밀의 결혼 속에서 그 늙은이가 생각하고 있는 수라는게 나름 뻔했으니까. 그 까만 머리의 쫀쫀해 보이는 아가씨가 임신을 하는 순간 내 모가지를 따버릴 생각이었겠지. 머릿 속에는 가문에 대한 것 밖에 없는 재미없는 사람이니까. 목적이 분명하면 예측하는 것도 쉽다.

그러면 로제는 카멜롯에서는 발미온 가문의 보스가 되는 거고, 아이리 공화국에서는 메이너스 항구의 주인이 되는 거니까. 로제가 낳을 자식으로 아이리와 카멜롯에 동시에 가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요량이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말하자면, 그 아가씨를 임신 시킬 생각이야 절대로 없었다.

"계집년들 몸에 달린 구멍이 씹구멍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나. 그렇게 청초하게 생긴 소녀가 서른이 넘어서까지 앞구멍은 처녀인데 뒤쪽은 너덜너덜해져서 평생 기저귀나 차고 살게 해버리는 것도. 아니면, 어차피 짐승들 정액으로는 임신이 되지 않으니까 그걸로 가지고 노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따로 사냥개랑 작은 결혼식도 열어주고 말이지.

뭐, 이제는 임신이니 뭐니 하는 귀찮은 것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더 좋네. 간만에 몸에 열정이 돌기 시작하는구만. 따로 시간을 내서 그 계집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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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방향을 바꿔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상당히 느린 속도로. 어찌되었던 간에 배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시간이 지나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추위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바다의 날개는 꽝꽝 얼어서 코감기 걸린 것 마냥 속이 꽉 틀어막혀 있다.

차라리 선실 말고 수관의 구조를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냥 가서 흑단목으로 비벼라도 보게. 근데 이게 뜯어낼 수도 없는 구조란 말이지. 아니, 뜯어낼 수는 있는데 그거 복구는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다가 잘못 건드려서 망가지면?

그냥 자연스럽게 주변 온도 올라가면서 녹기를 기다리는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 훨씬 낫구만."

갑판장이 몸에 둘러치고 있던 코트의 단추를 약간 풀면서 말한다. 지금 우리는 텔만의 영해로 가는 길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헤멜롯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겠지. 게르하르크의 행동들을 보았을 때, 우리가 다시 돌아왔다고 플래카드 들고 환영해 주지는 않을테니까. 뭐, 환영의 인사로 축포 정도는 한 아름 안겨 주겠지.

그래서 이제는 텔만을 거쳐서 다시 로른 해로 돌아가는 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있으니가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바다의 날개는 기온에 민감하다는 사실. 싸늘한 앤이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 병신이 되듯이, 이 녀석은 겨울이 되면 상당히 상태가 좋지 못해진다.

겨울이 오면 기온이 높은 아래 지방으로 향해야 하나.

배 뒤편에서 쿠르르륵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배에 갑자기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뒤편으로는 슬러시 비슷한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올랐다. 좋아! 뒷구멍은 뚫렸구나. 고생했다! 이걸로 일단 다시 평상시의 속도는 되찾았다. 혹시나 해서 물대포를 당겨봤지만. 여기는 여전히 막혀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속도를 어느정도 되찾은게 어디야.

"근데, 이제 이 흑단목은 어떻게 합니까?"

선원들의 말에 나는 그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진짜 모르겠냐? 온도는 꽤 많이 올라가서 대충 영상 5~6도 정도는 잡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한 마디 했다.

"니들 목욕탕에 잔뜩 쳐넣고. 내 욕조랑 선장실 욕조에 쓸 것들 따로 남겨놔."

이제 뜨거운 물로 목욕하자. 전염병 걱정은 이제 할 필요도 없겠네. 원래 사람이 몸을 깨끗하게 닦고 살면 병에 걸릴 일이 엄청 줄어드니까. 배 위에서 전염병 한 바퀴 돌면 그대로 표류선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야.

나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은 선원들이 곧바로 준비를 시작하고. 나는 조타륜을 슬슬 조작하면서 바다를 바라봤다. 마리아와 로제가 함께 선장실 밖으로 나오고. 로제가 마리아에게 말을 건다.

"선장님, 우리 여기에서 이제 뭐 하나요?"

나도 그건 조금 궁금하던 사항이었는데 말이야. 로제의 물음에 마리아가 대답한다.

"와인 털어야지."

아, 그 와인도 깜박하고 있었네. 가르시아 해 특산품이라고 했나? 로제가 그 말에 눈을 빛내면서 말한다.

"저기, 털어먹는데 성공하면 그거 한 병만 마셔봐도 괜찮을까요?"

와, 로제도 이제 상당히 숙성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어. 유치원생이 '나 오늘 노브라야'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질감인데. 마리아도 그렇고 로제도 그렇게 굉장히 평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로제의 말에 마리아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히 괜찮지. 니 배에서 내릴때 한 푼도 안주는 대가로."

로제가 그 말에 울상을 짓는다. 요즘 선원들이 물대포가 어는 바람에 다들 할 게 없어서 죽겠는 모양이다. 로제도 할 일이 없으면 선장실 안으로 쑥 들어가서 마리아랑 같이 노닥거리고 있고. 선원들도 뭔가 굉장히 나른하게 돌아다닌다.

"야, 힘내라."

나는 조타수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는 울상이다. 당연히, 다른 새끼들은 펑펑 놀고 있는데 혼자서 조타륜 잡고 일하려니 기분이 참 우울하겠지. 크리스마스에 혼자 출근하는 기분이려나.

나는 마리아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 와인은 어떻게 털어먹을 겁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엄지를 척 올렸다.

"지금부터 생각해보려고."

와, 엄청나게 천재적이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로른 해의 해적들을 끌어모아서 카멜롯이랑 아이리와 해전을 벌여서 승리했지? 세상은 바야흐로 대멍청시대여서 멍청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고 있는건가.

============================ 작품 후기 ============================

좋은 밤 되세요.

ps. 해피엔딩 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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