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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오징어들이 지키는 것
다음날,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오자 로제가 대뜸 내 맞은편에 앉아서 주인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훈제 청어 작은거 한 마리, 베이컨 새까맣게 태워서. 달걀은 반만 익히고, 샐러드에 오이 빼주고요."
주문을 마친 로제가 나를 바라본다.
"이야기 좀 해요."
나는 곧바로 한 마디 했다.
"있다가, 내 방에서 이야기 하자, 로제."
니가 보고 있는 그게 진짜 그게 아니야. 그때 호른 항구로 오는 과정을 잠깐 들었었는데 로제도 연기 실력이 뛰어난 모양이었으니까. 함께 할 패거리가 많은게 좋겠지. 나는 뜨거운 찻물과 섞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빵을 뜯어서 씹었다.
로제는 뭐가 불안한지 계속해서 그녀의 앞으로 건네진 음식들을 포크로 꾹꾹 누르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방으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고,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레이먼드 말대로, 왔어요."
나는 로제를 안으로 들이고 문을 잠그고 주변을 슥 둘러본 다음 작게 말했다.
"로제, 내가 마리아랑 싸우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나의 말에 로제가 대답한다.
"그럴리가요.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로제의 눈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나는 로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말했다.
"잘 들어 로제. 한 번만 말해줄거야."
나는 내가 마리아와 싸우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고, 마리아와 나의 약장사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제 게르하르크의 저택에 가서 확인한 내용들을 들려주었다. 그걸 듣고 있던 로제는 이미 나와 마리아가 진짜 싸운게 아니라는 대목을 듣자마자 숨을 후우 내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을 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대왕 오징어와 셀키에 대해서 말을 하자 다시 놀란 눈이 되었다.
"맙소사, 그럼 게르하르크라는 남자는 그 셀키를 노예로 삼을 생각인 거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의 예감이 적중한 거지."
그러네요. 로제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다시 살짝 웃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두 사람 싸운게 아니었군요."
우리가 싸울 일이 뭐가 있겠냐.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의 말에 로제가 바로 대답했다.
"저도 낄까요?"
로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제가 가만히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제가 뭘 하면 될 지 말해주세요."
나와 마리아는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거든. 나랑 마리아가 지금 직접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게르하르크의 괜한 의심을 살 수가 있다. 그에 비해서 로제는 이미 이전에 계속해서 나와 마리아의 문을 두들겼으니까.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방을 왔다갔다 하는 건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로제가 나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네요. 할게요. 다른 선원분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하나요?"
힘든 건 알겠지만. 부탁한다. 로제는 알았어요 라고 말한 다음 웃었다.
"마침내, 탈출하면서 갈고 닦은 연기 실력이 빛을 발할 때가 왔네요."
듣자하니 그 성벽을 넘어서도 대충 서너 개의 역할을 더 수행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역할들 중에는 창녀까지 있었다고. 로제가 내 눈치를 보면서 그래도 진짜로 밤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뭘 그런걸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해.
"그럼, 부탁할게."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제에게 뭔가를 써주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마리아가 그 이전에 단칼에 거절했던 흑주목이 있는 오징어 바다로 향하게 하는 거다.
나는 글을 다 쓰고는 로제에게 건네주었다.
"바로 찾아가지는 말고, 서너 시간 틈을 두고 전해줘."
로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결 밝은 표정으로 일어났지만. 문 앞으로 가면서 로제의 표정은 시시각각 초단위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 표정이 왜그래?"
그 말에 다시 활짝 펴지면서 뒤를 돌아보는 로제.
"아, 밖에 나갔는데 밝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수상할 거 아니에요."
로제는 해적이 되지 않았는데 집을 뛰쳐나갔으면 분명히 극단에 들어갔을거다. 뭐야 저 엄청난 표정 전환은. 다중인격인가? 다시 문고리를 잡고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거, 어디 가서 나는 연기 좀 할 줄 안다고 이야기도 못하겠는데.
무서운 여자였어...
내가 마리아에게 보낸 쪽지는 마리아와 함께 그 오징어들의 바다로 가기 위한 방법이 적혀있었다. 마리아는 이미 그 바다로 가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부정을 게르하르크에게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약을 또 팔아야 하는 거지.
내가 해적질을 하는 건지... 약장사를 하는건지 모를 지경이다.
요점은, 흑단목을 이 항구에 넘기기 위해서 가는게 아니면 되는 거다. 그 녀석을 우리 배에서 쓰기 위해서 마리아가 가자고 한다면. 게르하르크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납득은 가능하겠지.
그리고 배 위로 옮겨가게 된다면 그때는 모든 선원들에게 이야기를 해 줘도 상관이 없을거다. 거기에는 게르하르크의 귀가 없을테니까.
나는 시간을 한 번 체크하고 자리에서 밖으로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노예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선원들에게 잠시 바람쐬러 간다고 말한 다음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일부러 노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입맛도 다시다가 노예 시장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노예 시장답게 이 안의 식당에서는 노예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서빙을 하기 위해서 다가온 여자 노예에게 음식을 시켰다.
"맥주 한 잔 이랑 오리구이."
그렇게 주문을 하면서 태연하게 서빙을 하러 온 여자의 엉덩이나 가슴을 주물렀고. 여자는 별 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남자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가운데에서 주문을 적고 인사를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라고 말하면서 여자의 엉덩이를 탁 때린 나는 식사를 기다렸고. 식사를 마친 다음 다시 노예시장을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야 이것도 못해먹을 짓이구나. 방으로 돌아가고 있던 나를 마리아가 붙잡았다.
"게르하르크가 말했던 바다 갈거다."
그 말에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 마디 했다.
"하, 국가 상대로 일하지 않겠다더니만. 무슨 바람이 부셨습니까?"
나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마리아가 인상을 한 번 쓰고 말했다.
"항구에서 팔려고 가는게 아니야. 그 흑주목들을 가져오는데 성공하면 굳이 땔감을 배에 선적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그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잇다가 말했다.
"지금 땔감 아끼려고 대왕 오징어들 서식지로 들어가자는 겁니까? 정신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 알겠습니다."
좋아. 라고 마리아는 말하고 곧바로 나를 떠났다. 찬바람이 씽씽부는 분위기에 선원들이 어색한 가운데에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로 나와 마리아를 바라보았고. 나는 쯧 하고 혀를 찬 다음 내 방으로 올라가려다가 잠깐 멈추고 그대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물론, 선원들의 대부분이 선장의 편이다. 당연한 일이지. 왜냐하면 나도 마리아 편이니까. 녀석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내가 굉장히 거북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 아니야."
말을 마친 다음 나는 숙소를 떠났고. 곧바로 게르하르크의 저택으로 향했다. 한 번 시험해 볼 일도 있고. 과연 게르하르크의 귀는 얼마나 빠를까? 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향했는데도 게르하르크가 이 소식을 이미 알고 있다면 녀석도 보통은 아닌 놈이라는 거겠지.
저택의 문지기에게 말을 건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이 열리고 나는 저택의 응접실에 자리를 잡았다.
"왔는가."
게르하르크가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마리아가 먼저 말을 꺼내더군요. 대왕 오징어들이 있는 바다로 향하자고."
내 말에 게르하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식은 들었다."
그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했고, 게르하르크가 씨익 웃었다.
"이 항구 내가 지배자다. 시장 간 거 안다. 노예에 관심 있나?"
나는 그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부끄럽군요."
괜찮다. 라고 말하면서 게르하르크가 웃으며 말했다.
"계획 준비. 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바다의 날개는 저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항해 도중에 선원들을 한 번 떠보고, 영 안되겠다 싶으면 음식에 독이라도 풀죠."
그 말에 게르하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나면, 좋은 노예 삼명도 더 주지. 호의다."
그 말에 나는 씨익 웃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음 일도 생각해야 한다. 어찌 되었던 나와 마리아는 녀석들이 셀키를 가지게 할 생각이 별로 없다. 일단 마리아도 입으로는 다른 녀석들이 어떻게 살든 신경 안써. 라고 말했지만 셀키를 사냥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머메이드를 봤을 때 처음으로 마리아가 존대말을 쓰는 걸 봤을 정도니까. 애초에 그런 전설들에 대한 동경이 로제만큼이나 심한게 마리아다. 근데 바다의 요정을 노예로 삼는다는 게르하르크의 생각이 마음에 들리가 만무하다.
나? 나는 뭐... 이래뵈도 한때 자유민주주의의 세상에서 살았던 남자라는 말이지. 사람이 사람 파는 것 따위는 영혼과 유전자의 레벨에서 거부감이 올라온다. 그건 이미 노예제가 없어진 국가에서 살고 있던 로제도 마찬가지일 테고.
"내일 바로 출항하겠습니다."
그 말에 게르하르크가 입을 열었다.
"아니, 셋일 쯤 기다려. 우리 준비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게르하르크가 입을 열었다.
"좋은 구경 하지."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게르하르크는 나를 데리고 노예시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노예시장의 건물 중 하나로 들어갔고. 그를 알아본 상인이 곧바로 뒤편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 문 너머에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하에 만들어놓은 시설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번듯한 구조의 공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화강암으로 기둥을 세우고 바닥에 대리석을 깔아놓은 그곳의 중심에는 꽤 높은 단상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 있는 안락 의자에 게르하르크가 나를 앉히고, 그 옆에 앉자 잠시 뒤에 거의 헐벗은 미녀가 다가와서 술과 안주를 준비해준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 위로 남자 한 명이 올라와 뭐라고 외쳤다. 대충 경매를 시작한다는 말이겠지.
게르하르크와 나의 옆에 벗느니만 못한 얇은 네글리제 하나를 걸친 여자들이 앉고. 게르하르크는 자연스럽게 그 여자의 몸을 이리저리 주무르면서 말했다.
"여기, 아무나 못온다."
그래 보이네. 나는 내 옆에 공손이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탄식을 내뱉으면서 손을 뻗어 여자의 허리를 감고 끌어당겨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나의 손이 움직일 때 마다 미소를 짓고 이런 저런 신음소리 같은 걸 내지만...
우와, 예전에 보던 일본 성인 동영상 같은 데에 나오던 교성이잖아. 굉장히 작위적인데. 나는 그거에서 신경을 끄고 사슬에 묶인채로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단상 위에 잇던 남자가 설명을 시작하고, 그걸 게르하르크가 번역해서 들려준다.
"굴텐바르크의 탈출 노예군. 애를 가진 상태다. 나오면, 그 녀석도 노예로 가진다."
여자의 얼굴 여기 저기에는 멍자국이 있었고 눈이 이미 빛을 잃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 처음에 50 칸두스로 시작된 경매는 120 칸두스에서 끝났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경매가 이어지고. 남자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시작하고 뭐라고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듣던 주변의 사람들이 뭐라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한다. 게르하르크는 따로 번역을 하지 않고 이쪽을 보면서 씨익 웃는다.
"이게 그거다."
단상 위의 남자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셀키!' 라는 단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고 나는 고개를 돌려서 게르하르크를 봤다.
"두 날 전에, 셀키 하나 구했다. 어린 년이다. 호기심에 그 바다 나온 모양이지."
============================ 작품 후기 ============================
오늘 이야기를 쓴 사람의 생각.
1. 독자님들은 셀키가 선원이 되었으면 하는 것 같다.
2. 크리스마스에는 외전을 쓰는게 좋을지 그냥 연재를 하는게 좋을지 모르겠다.
3. 셀키와 대왕오징어를 같이 출격시키는 건 실수였다. 셀키가 나오자 아무도 오징어따위는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 좋은 밤 보내세요.
셀키는, 기본적으로는 바다의 요정입니다. 바다표범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가죽을 벗고 월광욕을 하지요. 여자 요정은 셀키, 남자 요정은 론이라고 불립니다만...
어차피 시커먼 남자 요정따위 필요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