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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59화 (5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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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이야기

항구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는 날이다. 밖으로 나온 나는 전방에 펼쳐진 바다 너머로 보이는 항구를 확인하고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무조건 저기에서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 해서 호른 항구로 향하는게 좋을까.

바다를 통해서 가야 하나?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호른 항구로 가는 배를 구해야 하고, 그 배를 구한다고 해도 여기에 있는 선원들과 선장들도 곧바로 배부터 수배하기 시작할 텐데.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라. 육로로 갈 수 있으려나.

선장실에 놀러가는 척 해서 확인한 결과, 다음에 도착하는 항구에서 육로를 통해 호른 항구로 가는 길도 다행이 있었다.

당연히 시간을 오래 걸리겠지만. 그 편이 훨씬 안전하지 않을까? 일단 내려서 파악을 해보도록 하자.

항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는 부둣가 근처에 정박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후드를 뒤집어 쓰고 배에서 내렸다. 내가 얼굴을 가린 것에 대해서 선원들은 궁금한 눈치였지만.

그걸 물어볼 정도로 깡이 좋은 사람들은 없었다. 선장에게도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 보여주기 창피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대충 이야기를 해 두었고.

내 얼굴을 많은 사람들이 봐버리면, 여기에서 도망 칠 때 힘들테니까.

항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새벽 일찍 밖에 나가서 잡아온 해물들을 내리고, 옮기는 사람들과, 설탕이나 찻잎, 커피콩 같은 물건들을 배에 올리고 내리는 사람들. 해적들의 부둣가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약간 활력이 떨어지지만 훨씬 밝은 분위기다.

항구를 감독하고 있는 뭐시기 귀족의 저택에 마련된 숙소에 짐을 푼 나는 밤이 올 때까지 저택 주변을 확인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가는 편이 가장 좋을까 계속 고민하면서.

밤이 되고 나서 저택 주변을 바라보자 탄식이 절로 나온다. 경계를 서? 병사들이?

뭐 대단한 사람이 나셨다고... 나는 창 밖에서 피스톨이나 검을 챙겨서 경계를 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숨을 쉬었다. 빠져나가는 것도 꽤나 애를 써야 할 것 같잖아. 아무래도 그 때에 내가 해적들에게 납치 된 이후로 경계를 단단히 서는 모양이다. 다시는 내가 그곳에 가서 결혼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도록.

나는 테이블 위에다가 내가 써 놓은 편지를 두고 창 너머를 살펴보았다.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횃불을 챙겨서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고, 문 너머에서는 방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불을 끈 상태에서 창문을 살짝 열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커튼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와, 개도 풀었어?!

냄새를 지우는 것도 생각해야겠네. 개들은 냄새로 나를 쫒는 거니까. 아마 나에게서 나는 냄새를 쫒을텐데.

나는 옷을 갈아입고, 등에 짐을 챙긴 채로 심호흡을 했다. 여기는 이층이니까. 그냥 뛰어내리면 어디 한 군데 다칠수도 있다. 아니 다치지 않을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보면서 내 몸무게와 나무의 가지들이 버텨 줄 수 있는 무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 없어. 소리 날 것 같아. 아니면 가지가 부서질 수도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밖을 바라보다가 창틀에 발을 올려놓고, 위를 바라봤다.

차라리 벽을 타고 내려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어디 오르내리는 건 이제 자신 있으니까. 힘도 좋고. 그렇게 하자. 일단은 내 방 주변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지붕 위로 올라가서 사람이 조금 적은 곳을 찾아보자.

나는 창 틀과, 건물 군데 군데에 있는 틈새 같은 것들을 손으로 잡고 벽을 올랐다. 가까스로 위로 올라간 나는 지붕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래를 슥 바라보고는 숨을 내쉬었다. 이 건물에서 내려가는 건 안될 일이네. 무슨 병사로 벽을 만든 것 같잖아. 나는 시선을 약간 높여서 저택의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저 지붕으로는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볼까. 하나... 둘...!

나는 그대로 지붕 위에서 몸을 날려서 건너편으로 점프했다. 몸이 허공에 붕 뜨고 나는 날아가는 속도를 보면서 속으로 좋아, 라고 외쳤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저기까지!

어... 어?!

아니, 이거 잘못된 선택이었어! 뻗어진 손이 약간의 공간을 두고 건너편의 지붕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내 몸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떨어지면 개죽음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손을 휘젓자, 가까스로 튀어나온 돌조각에 손이 닿는다. 가죽 장갑 아래의 손 끝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잔뜩 넣은 상태에서 나는 속으로 신음했다.

역시 내 몸 엄청 무거워!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아...!

재빨리 한 손을 또 뻗어서 양 손으로 창틀을 잡은 채로 나는 밑에 있는 다른 창틀을 확인하고 다시 손을 놓았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다시 손가락에 확 하중이 걸리고 다시 속으로 신음한다. 이제 바닥으로 떨어지면...

바닥에 떨어져서 숨을 죽인채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나는 코너 너머에서 조명이 밝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반대편에 있는 코너로 향했다.

여기도 밝아지고 있잖아.... 소리가 들린 걸까?

불빛이 밝아져오고,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에 맞추어서 내 심장도 쿵쾅거리면서 안 그래도 당황스러운 나의 정신을 더 혼잡하게 만든다.

다시 위로 올라갈까!? 그럴 시간이 충분할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는 빠르게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 올라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높이에 도착하자,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방금 전에 내가 있던 자리로 오기 시작했다.

더 움직이면 들킬거야. 나는 양 손의 손가락들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숨을 죽이고 그대로 버티기 시작했다. 제발 여기를 올려다 보지마.

주변을 천천히 횃불로 살피던 사람들이 이내 다시 천천히 방향을 돌려서 사라진다. 나는 후우, 하고 가늘게 숨을 내쉬고 다시 벽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으그극, 하는 소리와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간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슥 훔치고 올라간 건물의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을 확인한다. 아까보다 더 멀다. 못 건너 저거 넘으려고 하면 바로 추락사야. 차라리 이 건물의 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는게 좋겠네. 여기는 그래도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없으니까.

나는 천천히 건물의 반대편 벽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슥 둘러본 다음. 짐과 함께 등 뒤로 매달아 놓았던 검을 다시 허리에 고정시키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벽. 생각보다 더 높잖아.

게다가 이 벽에는 오를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올라가는 건 포기해야하나.

어떻게 하지, 하고 벽과 뒤에 보이는 건물 사이에 선 채로 고민하고 있는데, 뒤편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맥, 오늘은 귀한 분도 오셨는데, 위험하지 않아?"

여자의 목소리. 어디서 본 것도 없는데 나는 벽에 바싹 붙어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기 시작했다.

"괜찮아, 오늘 비번이니까. 게다가 한 두번 해본 것도 아니잖아? 사라. 너도 원하지 않아? 원래 위험한게 더 좋은 거라고."

아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추르르릅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의 안색이 움찔거리며 깨졌나갔다. 뭐, 사람들 사는 곳이니까 남자랑 여자가 만나서 연애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럼, 오늘도 거기에서?"

라면서 앙큼한 목소리로 여자가 이야기하자, 남자가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핀즈베리 여관에 미리 이야기를 해놓았다고. 가실까요, 마이 레이디."

나간다고? 문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 있는걸까? 나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기 시작했다.

걸음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멀어지는데 거기는 문 방향이 아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코너 너머를 보았고,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뒤를 조심스럽게 쫒아가기 시작했다.

이거 좋은데. 어차피 저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 눈에 들키면 안되는 입장이니까.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서 움직일 거 아니야. 그 말은, 여기 빠져나가기 최적의 경로로 가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뒤를 쫒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나 횃불을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은 벽의 한 곳에 멈추었고, 나는 그대로 허리를 낮추고 나무 뒤편에 쪼그려서 두 사람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개구멍, 애매한 표정이 절로 지어진다.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이는 벽돌들을 남자가 슥슥 밀자,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이 하나 나왔고. 두 사람은 그곳을 통해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벽의 바깥 쪽에서 두 사람이 벽돌을 정돈하는지 다시 벽이 막혔다.

저기면 나갈 수 있겠는데. 나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 그곳의 벽돌들을 밀었다. 쑥쑥 밀려나가서 구멍을 만들어내는 벽. 나는 그곳을 통과해 빠져나온 다음 다시 벽돌을 원래 모양대로 해놓았다.

벽 너머에는 곧바로 작은 골목이 보였다. 빠져나왔다. 무사히! 두 사람의 사랑하는 관계에 앞으로도 영원히 뜨거운 열정과 부드러운 인연이 함께하길 빌어요.

나는 옷에 묻은 먼지들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거리 밖으로 걸어나오며 후드를 벗었다. 어차피 후드를 쓰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 아직 모를 거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내 몽타주 같은 걸 그린다고 해도 그 전에 나는 여기를 떠날 테니까. 오히려 쓰고 있으면 더 수상해보이지 않을까.

나는 거리를 걷다가 순찰을 도는 병사 두 명을 발견하고 잠깐 고민했다. 내 얼굴을 알아볼까?

아니야.

이 사람들이 나의 얼굴을 알 리가 없어. 나는 단정짓고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가까워 질 수록 심장이 함포소리처럼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심장소리 이거 들릴 것 같은데.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무시한 채로 나는 천천히 두 병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두 병사가 내 복장을 슥 확인하고 별 말 없이 이쪽을 바라본다.

"실례지만..."

일단, 내 복장을 본 병사가 상당히 공손한 말투로 나를 멈추어 세운다. 아! 악! 악! 들킬 거 같아!

천천히 그쪽을 바라보며 약간 싸가지 없는 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병사 중 한 명이 나를 바라보다가 말한다.

"밤거리는 숙녀분이 다니기에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 사람들 아직 내가 누군지 몰라. 나는 약간 기분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안전하게 만드는게 그대들이 할 일 아닌가요?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건 댁들 아니라도 할 수 있을텐데요."

나의 말에, 병사들이 잠깐 움찔 하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틱 하고 쏘아붙였다.

"잠이 안와서 가볍게 산책이라도 할까 나왔는데. 그냥 다시 들어가라는 건 아니죠?"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라고 병사가 말하고 나는 계속 고생하라고 말한 다음 태연하게 둘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충분히 걸어가고 난 다음에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

오늘 밤은 꼼짝없이 이 항구도시에 갇혀있거나... 몰래 빠져나가야 한다. 항구에서 육지로 통하는 곳에 있는 문에는 병사들이 있을테고, 이 밤에 그 문을 열어주지는 않을테니.

당연히 오늘 하루 종일 이 항구 도시에 있으면 큰일난다! 그대로 나는 다시 붙들려서 저택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고, 게다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경계 방침도 바뀔거다. 다른 사람들의 침입을 막는게 아니라. 내가 밖으로 나가는 걸 막는 걸로.

그럼 다시는 못 빠져나올거야.

이 성벽도 몰래 넘어가야 하나. 아까처럼 우연이 겹쳐주지는 않겠지. 이건 성벽이잖아. 아까처럼 벽돌 슥슥 민다고 구멍이 나올리는 없어. 벽돌 하나가 거의 큰 강아지 만한 걸.

빠져나갈 방법이... 성문 근처에 도착한 나는 나도 모르게 주변의 건물들을 확인해보고 거기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냥, 높은 데 있으면 뭔가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사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올라간 건 아니다.

============================ 작품 후기 ============================

써놓고 보니 로제가 닌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에요.

좋은 밤 되세요.

ps. 많은 조언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더 나은 소설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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