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항해 뜻밖의 해적-49화 (49/159)

0049 / 0160 ----------------------------------------------

해적 VS 해군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모자를 벗자마자 휘둘러지려고 하는 칼을 보면, 오줌을 지리지 않을 사람이 있기는 할까?

나는 그 적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가졌다. 위기에 강하다는게 이런걸까. 눈 앞에서 칼이 휘둘러지려고 하니까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목소리며 하는 행동들이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보았던 슬x이어즈에 나오는 제x스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그리하여서, 나는 지금 배 위에 타 있는데, 항해사 실에 족쇄가 묶인채로 선장실 안에 보관되고 있다.

한 이틀 정도 분주하게 로만이 움직이고, 한 동안 이 선장실은 나 혼자 쓸 수 있었다. 당연히 선장실 침대도 내 차지였고, 나오는 음식들도 어차피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중이어서 꽤 나쁘지 않게 공급받았지. 하지만 로만이 일처리를 마쳤는지, 다시 배에 오르자 나의 입장은 역동적이고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나를 거의 물건 취급하고 있잖아 이 자식들.

"... 그래도 인간적으로 침대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라는 나의 말에 해도를 보고 있던 로만의 대답은 간단했다.

"굳이 선장실에 침대 하나를 더 들이는 것은 바리스의 의심을 살 수 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지만. 머리로 이해를 했다고 해도 나의 대접이 이렇게 거칠고 빡빡한 것에는 여전히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지. 해군 항해사 정복을 차려입은 여자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경례를 한다.

"로만 제독님, 준비는 완료되었습니다."

검은 코트의 가슴 언저리에 붙어있는 푸른 약장에는, 금색의 줄이 양 옆으로 하나씩, 그리고 중앙에 금실로 박아넣은 조타륜이 새겨져 있었다. 바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끈으로 묶어놓은 여자의 말에 로만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바라봤다.

"경로는?"

로만의 말에 여성이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주르륵 펼쳤다. 거기에는 붉은색 테이프로 만들어진 항해 경로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뭐, 바다의 날개로 간다고 하면 3~4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일반적인 범선이라고 하면 내가 말한 날짜에 맞추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그래도 해군의 항해사라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경로를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진 나도 그 해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이 해적에게 보여주어도 괜찮겠습니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사슬로 묶여있는 상황이다."

뭐라고 떠들던 간에, 나는 해도를 슬슬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거기 아가씨는, 배를 얼마나 탔나?"

나의 물음을, 여자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없는건가. 나는 혼잣말을 하는 기분으로 그 해도를 보며 한 마디 했다.

"해류 고려했고, 바람도 나름대로 고려를 햇구만. 꽤나 고생한 작품이야."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공을 들인 낌세가 있고, 가는 경로도 정석적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항해사잖아 저 여자?

하지만 그러면 안돼지, 늦게 도착하는 건 몰라도 일찍 도착하게 되면 도리안의 안개를 통해서 양쪽에서 싸먹는다는 생각이 실패하게 된다.

우리가 미쳤다고 로만을 그냥 버려두냐. 로만이 나의 말을 듣고는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해적에게 칭찬받은 기분이 어때?"

라는 로만의 장난스런 말투에 여자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더럽습니다."

와, 너무하잖아. 더럽다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저 여자는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더러워지는 타입인가. 그럼 욕을 해줘야 하나.

"그래도 여전히 애송이 작품이기는 하구만."

그 말에 여자는 마침내 이쪽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당연히 따뜻한 살기가 듬뿍 담겨있었고, 지금 내 앞에 제독님만 없었으면 네 녀석의 모가지를 그대로 칼로 쳐서 상어낚시용 미끼로 써버렸을 기세로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하, 해적이 보기에는 영 별로신가?"

라는 로만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정확히는, 진짜 항해사가 보기에는 영 별로입니다만?"

나는 당당하게 그렇게 선언하고 실실 웃으면서 눈 앞의 여자를 바라봤다. 지금 머릿속에서 나를 한 삼십번은 죽였을 것 같은 표정인데. 그 말에 로만이 재밌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봤다.

"그래서, 뭐가 불만이지? 해적 항해사."

사실 그런거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데, 나를 선장실에 쳐박아놓고 며칠을 그냥 방치한 덕분에 지금 심심해서 미치겠다. 게다가 녀석들이 나를 함부로 죽일 생각도 없어보이고. 조금 혀를 더 놀려볼까. 나는 여자를 보면서 말했다.

"그 경로로 가면 속도는 빠르겠지만, 니들 지금 싸우러 가는 거 아니냐?"

그러면 저렇게 가면 힘들지 않나. 나는 사슬에 묶인채로 팔을 꼬고 해도를 바라봤다.

"겔론 일대는 바람이 세기는 한데. 바람이 자주 바뀐다고. 그러면 니들 시도때도 없이 바람 잡으려고 돛을 이리저리 돌려야 할 텐데?"

뭔 큰 일 하기 전에는 최대한 경로를 선원친화적으로 짜야 하는 법이지. 나는 말을 마치고 여자를 바라봤다.

"항해 책으로 배웠냐?"

틱, 하는 소리와 함게 검이 뽑힐 뻔했다. 그리고 로만이 분위기를 슥 보다가 말했다.

"자자, 진정들 하고. 그래서 너는 뭔 말을 하고 싶은거냐."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며칠 시간이 더 걸려도 나 같으면 겔론 일대 대신에 오르스트 해류로 엉덩이 밀면서 올라갈 겁니다."

거긴 바람이 안정되어 있어서, 한 번 잡아놓으면 틀어질 일이 없거든. 나의 말에, 여자가 이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무슨 꿍꿍이지?"

그 말에 나는 주변을 슥 둘러본 다음에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 내가 무슨 꿍꿍이가 있겠어?"

그리고 나는 오른쪽 다리를 살살 흔들어서 사슬소리를 냈다.

"보시다시피 묶여있는 입장인데."

함께 가는 상생의 길이라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로만을 바라봤다.

"어차피 정하는 건 제독의 마음이니까. 알아서 하시죠."

나는 그러고 다시 내 자리에 깔려있는 모포 위에 털썩 앉아서 하품을 한 번 했다. 내 껄로 하자, 응?

"... 일단 생각을 조금 더 해보도록하지."

================================================================

부둣가에서, 로만은 옆에 서 꼿꼿히 서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네 생각은 어떠냐, 미나."

그 말에 여자가 대답했다.

"그 해적의 말이 그렇게까지 틀린 건 아닙니다. 확실히 저희의 앞으로 행보를 생각해보면 힘을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쪽에서는 바리스의 함대를 털어버린 다음, 그 기세를 몰아서 해적들까지 정리할 생각이다. 두 녀석들 모두 그냥 둘 생각은 없고, 작센 해협이라는 곳은 입구를 틀어막아버린 상태에서 시간을 뻐겨버리면 안에 들어가 있는 녀석들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니까. 게다가 그 마리아라는 해적이 타고 다니는 배는 싸늘한 앤의 적수가 될 수 없다.

물을 얼리는 배 앞에서 물로 움직이는 배가 깝치면. 순식간에 그 잘난 빠른 다리는 잘려나가 목발 짚은 환자 꼴이 될 테니까.

문제는, 한 번의 전투를 끝내고 나서 휴식 없이 곧바로 전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저 해적의 말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인데.

본능적으로 내키지가 않는다. 저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저런 조언을 했을까. 뭔가 노리는게 있을 것이다.

"... 미나, 너의 말을 따르겠어."

로만이 그렇게 결정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 없이 조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녀석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이쪽에서 사양한다.

해적이 말한 길은 확실히 선원들이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지만 느리다. 그것이 큰 차이지. 그렇다면 녀석은 지금 시간을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이동하지."

바리스의 기함과 군함들에게도 전해놓는 편이 좋겠다. 빠르게 가서 털어버리는 쪽으로 해서 해적 놈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떤, 그 타이밍을 흐린 다음.

해적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함께 카멜롯의 해군을 공격하는 척 한다. 충분한 피해를 카멜롯에 주고 나면, 다시 해적을 공격해서 두 녀석들 모두를 제거해버린다. 로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바라봤다.

"좋든 싫든, 잘 풀리던 잘 풀리지 않던. 결전은 그곳에서 날 것 같은 기분이야."

두 사람이 부둣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동안, 바리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해도를 보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로만이 말한 장소에 해적들이 정말로 모인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의심스럽다.

"로만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거기에서 녀석들은 뭘 할 생각이지."

그 두 가지가 바리스의 머리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켜서 거대한 생각의 덩어리가 되어 꼬인다. 해적 놈들이 갑자기 자신들의 집을 떠나서 그곳으로 갈 만한 이유가 있나.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굳는다. 로만과 해적은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두 녀석들을 함께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랜트는 결과적으로 들려오는 소문으로 인해서 더 이상 이곳에 함께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소문을 듣자마자 그랜트는 곧바로, 바리스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덕분에 카멜롯의 해군들은 중요한 마음의 지지대를 잃어버려야 했다.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처리해 줘야겠군."

바리스는 말을 마치고 작센 해협의 지도를 뚤어져라 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녀석들이 저 좁은 곳 안에 진을 쳐버린다면 안으로 뚫고 들어가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지만.

그에게는 검은 어금니가 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충분히 녀석들을 공략할 수 있다.

"차라리 로만의 해군들을..."

안에 해적들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그때부터는 로만의 배들을 공격할 준비를 해야한다. 해적들은 스스로 독 안에 들어간 쥐 꼴이 될 것이니까. 이번 기회에 아이리 공화국의 해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해적들을 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카멜롯 왕국에게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두 남자의 생각은 서로 일치하면서, 점차 서로에게 칼날을 들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다음주 수요일이 되면, 그때부터는 쉬지 않고 미친놈처럼 달려보겠습니다.

당분간은, 글이 띄엄띄엄 올라와도 참아주세요 ㅠ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