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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37화 (3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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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VS 해군

파스텔 톤으로 노을이 막 번져가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에 육분의를 가져가고, 크로노미터를 체크한다. 이 위치라면 내일 아침에 다시 항해를 시작해도 해가 저물 때 즈음이 된다면 토르소 항구 인근에 도착할 것이다.

배는 오늘 여기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로제는 닻이 내려지는 걸 확인하고 혼자 얕게 한숨을 쉰 다음 배를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선장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고. 마리아는 그걸 무시하고 갑판 위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기어나오기들 시작하는 구만."

마리아는 픽 웃으면서 갑판 위로 슬며시 기어나오기 시작하는 선원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선원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해가 다 져서 바다 위가 어두워지자. 마리아가 선장실을 향해 말했다.

"로제! 잠깐 나와봐라!"

그 말에 방 안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에 선장실 문이 끼이익 열렸다. 거기에는, 눈물 자국이 약간 남아있는 로제가 서 있었다.

"... 이건?"

잠깐 멍한 표정으로 눈 앞의 광경을 바라보는 로제.

"토르소가 그렇게까지 먼 곳은 아니라서 다행인줄 알아라. 원래는 짤 없이 그냥 육포랑 건빵이다."

마리아가 씨익 웃으면서 갑판 위에 양반다리로 턱 앉아서 손으로 자신의 옆 자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와 앉아. 가기 전에 술은 한 잔 하고 가야지."

로제가 자리에 앉자, 선원 두어명이 갑판 아래로 내려가서 커다란 대접 하나를 들고 온다.

거기에는, 떡 하니 큼지막한, 그리고 엄청나게 투박한 갈색의 덩어리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물론 모양도 엉망 진창에다가... 도대체 이 새끼들 초콜릿은 어디서 구해온 거야? 그거 더럽게 비쌀 텐데.

당연히 저게 뭔 지는 알고 있다. 케이크겠지.

"이 새끼들 배 위에서 불 피웠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새끼들을 바라봤고. 녀석들이 병신처럼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배 위는 아니고, 아래에서 피웠습니다."

그 말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야, 거기에서 피웠다가 불 나면 어쩌려고. 잘했다 새끼들.

저 케이크에 들어가는 재료로 말할 것 같으면. 병조림 연유, 마요네즈, 설탕, 밀가루, 녹인 초콜릿.

연유에다가 물 섞어서 희석시키고 다 때려박고 그냥 미친놈 마냥 휘젓는다. 정신없이 휘젓다가 그거 그대로 뭐든지간에 모양 낼 수 있는 철 그릇 비슷한 거에 때려박고 불 피운 곳에다가 쳐넣는다.

그러고 나면 완성되는 녀석이다. 이름하여 똥덩어리 케이크. 말이 초콜릿 케이크지. 그냥 존나 커다란 브라우니 덩어리에 가깝다 저건. 게다가 이름이 저렇게 더럽게 붙은 이유는. 저건 절대로 귀족들이 자주 가는 제빵집에서 나오는 이쁘장한 모양의 비주얼이 나올 수가 없는 물건이니까.

초콜릿은 언제 실은거야? 그거 더럽게 비싸잖아. 나는 어이가 없어진 채로 마리아를 보았고. 그녀가 히죽 웃는다.

"초콜릿이 비싸긴 하지만, 진주만큼 비쌀까."

그 말에 나는 수긍했다. 그래도, 진주 하나면 저런 케이크 대 여섯개는 구워낼 수 있으니까. 로제가 그 거대한 갈색의 덩어리를 보면서 눈을 크게 뜬다.

"이거... 저 때문에?"

그 말에 마리아가 말한다.

"잘 가라."

로제가 천천히 포크를 들고 그 거대한 덩어리를 찍자...

그 초콜릿 케이크가 전사했다. 옆구리를 찔린 곳에서 뜨거운, 게다가 아직 덜 익은게 분명해 보이는 걸쭉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린다.

"아아아악! 맥! 내가 더 굽자고 했잖아!"

그러면서 선원 하나가 자기 옆에 있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그 녀석이 대답한다.

"그럼 씨발 바닥이 다 탄다고!"

로제가 그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버린 조각을 한 입 먹고 고개를 숙인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로제가 자신의 눈가를 슥 비벼서 닦는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거기에 포크를 찔러넣기 시작하고.

초콜릿 케이크가 굉장한 모습으로 바뀐다. 곳곳에 고통스럽게 입을 벌리고 걸쭉한 갈색의 내용물을 토해내는 케이크. 그걸 보면서 마리아가 히죽히죽 웃는다.

"야, 저거 너 닮았다."

그러네, 입을 열고 토하는 모습이 꼭 누구 닮았네. 로제가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마리아를 잠깐 보면서 볼을 부욱 하고 부풀리다가 이내 그냥 히힛 하고 웃어버린다.

나도 포크를 들고 녀석을 한입 먹어보았지만. 덜 익어서 날밀가루 냄새도 나고, 제대로 섞이지 않아서 맛도 엄청나게 엉망 진창이다. 이게 맛있다고 하는 걸 보니, 로제도 혀가 많이 이상한 모양이지.

그래도, 그 날밀가루와 걸쭉하게 흘러내리는 익지 않은 반죽들 안에는, 케이크를 제법 맛있게 해주는 뭔가가 들어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 새끼들 여기에다가 뭐 마약같은 거 쳐넣은거 아니야? 양귀비 씨앗이라던가.

... 예전에 먹던 거랑은 맛이 조금 다른데.

그 엉망진창의 케이크를 앞에 끼고 선원들이 모두 둘러 앉아서 술을 까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이 거대한 크기의 초콜릿 케이크에는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대기 꺼려했지만, 로제는 계속해서 아깝다고 하면서 그 녀석을 조금씩 먹어치우고 있었다. 나는 약간 취한 상태에서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씨발, 앞으로 배에다가 불 피울거면 말해라. 니미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 새끼들이 미쳐서 갑판 아래에서 불을 피워?! 결과적으로 사고도 안나고 해피엔딩이었지만. 나무 투성이인 배 위에서 불을 피우는건. 나는 떠다니는 바다의 화장터가 되고 싶어요 라고 하늘의 신과 바다의 여신에게 기원을 바치는 꼴이다.

"됐어, 내가 허락한 거야. 갑판장이 직접 불 피우는 것도 감독했고."

뭐, 선장이 허락했다고 하면 별로 할 말은 없지만 말이지. 나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고 다시 축축한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씨발, 이거 식으니까 더 맛이 없잖아."

그 말에 선원들이 우우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이건 원래 정성과 열정, 우리들의 피땀으로 만드는 겁니다!"

씨발, 피땀이 섞여서 맛이 이따위인가. 어쩐지 맛이 잡되더라. 라는 나의 말에 선원들이 충격먹은 표정으로 로제를 보았다.

"맛없냐?"

그 말에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너무 맛있어요."

거보십쇼! 라면서 로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에게 항의하는 녀석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그래, 맛있다."

그렇다고 치자고. 딴지 거는 것도 이정도만 해야지. 괜히 녀석들이 존나 신경써서 만든 건데 더 뭐라고 하면 이 새끼들 럼주병으로 내 대갈통을 후릴 것 같단 말이지. 안 그래도 내가 럼주병 들고 달려들어도 지지 않을까 싶은 살벌한 녀석들 뿐인데. 몸 사려야지.

평안한 바다였다. 하늘에 별들도 제법 반짝거리고 있는데다가. 바다도 대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바도가 잔잔하다.

"그냥, 많은 걸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로제가 자신의 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해적이라고 하면, 그런 사람들로 알았거든요. 커다란 금목걸이나 귀고리를 하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상선들을 습격해서 물건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인 다음에, 그 시체에서 살을 발라내서 먹어치우거나 하는 야만인들."

그 말에 몇명이 멍해진다.

"그건 도대체 뭐야?! 우리가 사람을 왜 먹어?"

로제가 그냥 픽 웃고는 대답한다.

"동화책이나, 소설같은 것들이에요. 눈 하나가 없거나, 팔 대신에 갈고리를 끼고 다니거나, 한 발에 의족을 한 채로 입에서 불꽃 같은 걸 내뿜고, 밤이 되면 사람의 피로 이상한 마법진 같은 것을 그려서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

야, 뭐에다가 뭐가 섞인거냐? 대충 비슷한 것들도 있기는 한데 입에서 불꽃을 뿜고 사탄 숭배를 하는 건 뱃사람들이랑 전혀 관련이 없는데.

"몇 가지는 사실이었죠.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강탈하는 건 맞았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해적들도 사람들이었을 뿐이네요."

============================ 작품 후기 ============================

마요네즈를 활용해서 만드는 케이크.

원래 기원이 전쟁 중인 군인들 중에서(약간 후방으로 빠졌을 때겠죠) 기념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만들어 먹던 녀석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가정에서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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