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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32화 (3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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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녹슨 면도날

간밤에, 바다의 날개에 다른 해적놈들 몇 명이 들어온 모양이다. 목적은 하나. 훔치려고. 뭐, 그거야 당연하다. 여자 보면 자고 싶고 치킨 보면 먹고싶다고, 떡 하니 저기에 배가 있는데 명색이 해적이라는 친구들이 저걸 훔치지 않고 싶어할 리가 없지.

"그래서, 이 아가들을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아가 로제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 로제가 움찔 한다.

어제, 배를 지키는 불침번들에게 마리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한다. 굳이 생포를 해 놓을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이렇게 밧줄로 꽁꽁 포장해 놓은 걸 보면.

로제에게 죽이게 할 생각이다.

나는 슬쩍 로제를 바라봤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무구한 아가씨가 과연 죽일 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을?

로제가 마리아의 눈을 보다가 침묵하다가, 슬쩍슬쩍 눈치를 보면서 말한다.

"... 회, 회초리?"

그 한 마디에 주변 선원들과 마리아의 진지한 표정이 무너졌다. 그렇게 말하고 자기도 자신이 없는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로제. 회초리라니, 헛소리 컨테스트 창의력 부문 1위감이다. 거기에서 회초리가 나올지 누가 알았을까.

이 녀석들이 무슨 시험 성적표 들고 온 학생들도 아니고, 회초리를 왜 때려.

"아쉽게도 오늘은 회초리를 안 가져 와서 말이야."

마리아가 얼굴을 고치고 천천히 해적 하나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단검으로 목줄기를 그었다. 곧바로 눈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선원을, 그대로 바다로 차 던져넣는 마리아. 그리고 그걸 보면서 로제가 입을 막고 눈을 떤다.

그리고, 아직 핏방울이 타고 흘러내리는 그 시퍼런 단검을 툭 하고 로제 앞에 던져주었다.

"저건 니가 처리해라."

자기 앞에 떨어져 있는 단검을 멍하니 바라보던 로제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뭐라고 하려고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와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저럴때는 더럽게 무섭거든.

그리고 로제가 고개를 슥 돌려보며 눈가를 적신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물론, 선원들이 꽤나 로제를 귀여워라 하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눈빛에는 분명히,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라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나조차도. 로제가 마지막 기대를 가지고 나를 바라봤지만. 이내 나의 표정을 보고 당황하다가 눈 앞에서 으읍거리는 선원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킨다. 천천히, 로제는 칼을 집어들지만 그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고, 단도를 잡고 있는 손은 하얗게 마디가 질린채로 바르르르 떨고 있었다. 그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직전까지 차오른다.

로제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휙휙 젓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후욱, 후욱 로제가 거칠게 숨을 쉬면서 앞에 묶여있는 녀석과 눈을 마주친다. 당연히, 저 상황에서 남자는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처로운 눈빛을 로제에게 보내고 있을 것이다.

로제가 그걸 바라보고 한 동안 있는다. 우리는 거기에서 시선을 때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 미안해요, 나를 용서하지 마세요."

나는 바다의 진혼시를 외웠었지. 로제는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로제가 남자의 어깨를 붙잡자, 부르르 떨면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하는 남자. 하지만, 로제의 힘은 쎄다. 그 저항 속에서 로제가 남자에게서 눈을 슬쩍 돌리고 그대로 그의 목줄기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깊숙하게, 자루만 남기고 들어가서 바르르 떨리는 단검과, 숨이 끊어지는 남자. 로제가 눈을 질끈 감고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 단검을 뽑아내고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외쳤다.

"해적이 된 걸 환영한다. 로제!"

그리고 로제가 울먹거리다가 자리에 주저앉아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리아가 로제에게 돈주머니를 건네주고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나를 바라봤다.

"이거 좀 달래줘라. 어차피 한 둘 죽일 것도 아닌데. 한 명 죽였다고 저러기는."

로제의 표정이 약간 굳었지만. 일단 로제가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마리아는 피곤하다면서 숙소로 먼저 가고. 나와 로제는 이전처럼 둘이 남았다. 멍하니, 부둣가에 앉아있던 로제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저도, 확실하게 해적인 된 건가요."

그렇게 로제가 말하는데. 그 말하는 투가 나와는 다르다. 나는 처음에 그 일을 겪고 나서, 내가 해적까지 되어버리다니 하는 한탄이었는데. 로제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안심이 담겨 있었다. 내가 가만히 로제를 바라봤고. 로제가 입을 열었다.

"저 이제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하지 않겠죠? 토르소의 성으로 돌아가지도 않을테고."

로제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성은요, 좋은게 하나도 없어요. 돌은 축축하고 차가운데다가. 시중드는 하녀들과 하인들은 저만 보면 도망가요. 유모는 젖을 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저를 교육시키는 교사들은 딱딱하게 와서 가르칠 것만 가르치고 돌아가요. 성 안에서 나와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외로웠어요. 죽을 만큼. 로제는 그렇게 말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슥 쓰다듬어 정돈했다.

"여기에서는, 그래도 서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었지만. 저도 알고 있었는걸요. 아, 뭔가 이 사람들이랑 나 사이에는 벽이 있구나."

그야, 아직 신고식을 하지도 않은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슬펏어요. 나 여기에서도 외면받는걸까. 나는 같이 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항해를 하는데. 나를 동료로 생각해주지 않는걸까."

그래서 나만 주머니를 못 받았을 때 사실은 엄청 슬펐거든요. 라고 말하면서 로제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바라봤다.

"이제는, 다르겠죠? 나 분명히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거죠?"

그 말에 나는 로제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우리는 존나 좋은 자식들이 아니야. 사람도 밥 먹듯이 죽이고, 나쁜 일도 툭하면 하지. 이기적인 개새끼들이라고. 우리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만, 남이 우리의 물건을 훔치는 건 참지 못하는."

그러면서 나는 그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하지만, 같이 배를 타게 된 이상 너는 '우리'다. 네가 그 신고식을 끝내기 전 부터. 너는 우리였다."

그 말에 로제가 희미하게 웃다가 말했다.

"레이먼드도 했었어요? 그, 사람을 죽이는 일이요."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그래."

그 말에 로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 술 마시고 싶어요."

그건 내가 싫은데. 씨발,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 날 술을 엄청 먹어서 꽐라가 되지 않았었나?

마리아...! 내가 그렇게 로제 술 버릇 개같다고 말했는데 일부러 나한테 맡겼어?!

항상 로제가 술을 마실 일이 있으면 내가 제지했지만. 저 음울하면서도 뭔가 안심하고 있는 애매한 소녀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절로 나오는 깊고 진한 한숨을 굳이 막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제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세웠다. 양 어깨가 거의 귀 밑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나를 올려다 보는 로제. 나는 씨익 웃으면서 그 소녀에게 말했다.

"한 잔 하자."

그리고 술집, 나와 로제는 눈 앞에 독한 럼주를 한 병 두게 되엇다. 여기는 리사의 술집. 그리고 리사는 이쪽을 보고는 히죽 웃는다.

"오오, 기 빨렸으니까 다시 채우는 거야?"

그런거 아니야 닥쳐. 나 지금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란 말이야. 이 소녀가 술을 마시면 야수가 된다는 걸 니들이 알기는 하냐. 나는 눈 앞에 놓인 럼주 병을 보면서 로제에게 말했다.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그래, 한 번에 쭉 마셔. 잘 마시네."

나는 럼을 태연하게 따라서 쭉 들이키는 로제를 보며 속으로 한 숨을 쉬었다. 망했다. 오늘 정신 놓을 생각 만땅이잖아. 한 잔을 비우고 곧바로 다음 잔을 따르는 로제. 나는 그걸 보면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위해서 그녀의 입에 고깃덩어리를 하나 밀어넣었다.

"먹으면서 마셔라. 속 버린다."

아, 라는 감탄사 비슷한 거와 함께 로제는 그 고기를 씹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꿀떡 넘긴 로제가 다시 럼주를 입 안으로 털어넣는다. 벌겋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로제의 살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몸 속에 봉인되어있던 악마가 풀려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했다.

약간 시간이 지났다.

"레이먼드, 레이먼드."

실실 쪼개면서 나를 보며 몸을 흔들거리는 로제.

"레이먼드는 상냥해요."

그렇게 봐준다니 정말로 고맙다. 그럼 상냥한 이 몸이 부탁 하나만 하자.

"뭐요? 다 들어줄게요."

그러면서 히죽히죽거리는 로제를 보며 나는 말했다. 술 그만 마셔라. 그 말에 로제가 고개를 젓는다.

"아으, 그건 말고. 후."

손부채를 흔들면서 로제의 입 속으로 다시 럼주가 한 잔 들어가고. 나의 마음 속에 경고음이 조금씩 커지는 것을 느꼈다. 술을 마시면 안주를 넘겨주고. 로제가 받아먹는다. 그렇게 여섯 잔 정도가 로제의 몸 속으로 들어갔을까.

히끅거리면서 게게 풀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로제.

"어제 마리아랑 잤죠!"

모처럼 입 속으로 들어간 나의 첫 잔은 로제의 그 한 마디에 쿨럭, 하면서 길을 잘못 찾아들어가 사레가 걸려버렸다.

"그건 무슨 소리야."

태연한 나의 말에 로제가 잉잉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잤잖아요! 침대에서 막 물고 빨고 핥고 돌리고 다 했잖아요! 나도 알 건 다 알아!"

알 건 다 알아서 배 훔치려다가 걸린 해적들을 회초리로 때리자고 하냐? 참 대단한 지식이시네요. 게다가 뭐냐 그 물고 빨고 핥고 돌리는건. 너 생각보다 특정한 방향에 대한 지식이 비상하다?

"좋았어요?"

어, 두번째 잔이 너 덕분에 사레걸린다. 나는 쿨럭거리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로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로제가 나를 보다가 자신의 가슴 앞섶을 가리면서 말한다.

"저는 안돼요. 나는 상냥하고, 나한테 잘해주고 따뜻하고 약간은 무뚝뚝한데 같이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이 아니면 잠자리를 같이 할 생각이 없어요."

취하더니 자기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걸까. 이 아가씨는.

그러고는 한 동안 침묵하다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한다.

"아, 생각해보니 레이먼드는 합격이구나. 그럼 같이 잘래요?"

내가 술 마실때마다 자꾸 이상한 개소리하지 말라고! 씨발 또 사레걸렸잖아 이 년아! 나는 켈록거리면서 로제를 바라봤고. 로제는 홍당무처럼 시뻘게진 얼굴을 하고 히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럼주 한 잔을 더 마셨다.

"너 잠자리를 같이 하는게 뭔 지는 아냐."

그 말에 로제가 태연하게 말했다.

"발기한 남자 고추가 내 질 속으로 들어가서 사정하는거잖아요."

...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태연하게 굉장히 정확하고 직설적이며, 본질을 간파하는 로제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존경심을 표하며 그녀의 입을 내 손으로 틀어막고 고개를 슥 돌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번에는 내 살점을 물어 뜯더니, 오늘은 내 정신을 물어뜯기로 작정한거냐?

축축하고 따뜻한 살점이 내 손바닥을 핥는다.

손 핥지마 미친년아!

"짜다... 짠맛나... 맛있다."

그러고는 내 손을 턱 하고 붙들고는 손가락을 핥아대는 로제. 그리고는 입이 찝찔하다면서 다시 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손가락을 핥는다. 게게 풀린 눈으로 몇 번 핥던 로제가 멍한 눈으로 말한다.

"이거 이제 안 짜요. 다른 손 줘요."

싫어! 내 손에서 럼주 냄새랑 니 침냄새 섞여서 괴랄한 냄새 나잖아!

으으, 줘요오오오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비틀거리던 로제가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통을 쳐박고 기절하고. 나는 오른손 하나를 희생해서 로제를 침묵시켰으면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스스로 자축하면서 그녀를 업고 거리를 걸어서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따뜻하....으...우..."

뭐, 정신이 유체이탈 비슷한 상태인 모양인지 말을 하면서 코를 고는 기행을 하는 로제.

"부...웨에에에엑...."

... 등이 따듯한데. 이거 기분탓이겠지. 이거 로제 체온일거야. 이 등에 느껴지는 따뜻하면서 축축하고 눅진거리는 감촉이 절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행위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해줘.

등 뒤에서 바람을 타고 스윽 내 코를 스치고 지나가는 알콜 냄새와, 부비부비거리면서 등 쪽에 걸리적거리는 감촉을 남기는 건더기들.

"우...에에엑.."

또 나오는거냐?! 나는 등 위로 다시 한 번 끼얹어지는 그 따끈한 부침개의 느글거리는 감촉을 음미하면서 숙소로 가는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랬더니 내 몸이 심하게 흔들거리면서 로제의 속이 더 안좋아진 모양이다.

두 번의 토를 더 등에하고, 자기 얼굴을 거기에 부비적거리면서 뜨끈하니 어쩌니 중얼거리는 로제.

나는 등에 술과 안주, 위액의 범벅이 된 상태로 초췌하게 마리아의 숙소 문을 두들겼다.

"크... 하하하하하하핫! 뭐야 로제! 화장 새로 했냐?! 잘 어울리네! 이쁘다!"

마리아가 토사물에 비비적거려서 개판이 된 로제의 얼굴을 보면서 마구 웃지만. 나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셔츠를 타고 흘러내려간 건더기가 바지까지 적셨으니까. 이 옷은 못쓰는 옷이 되어버렸다.

"서언자앙..."

토사물이 달라붙어서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마리아를 확인한 로제가 게걸거리고.

나는 떨어지기 싫어어어웨에에에엑

라고 오바이트와 땡깡을 동시에 하는 로제를 가까스로 등에서 때어내느라 셔츠 깃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토사물의 감촉에 몸을 떨었다. 그래도 건더기가 몸에 묻지는 않았었는데! 방금 전까지는 국물로 더럽혀졌을 지언정! 건더기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었는데!

젠장! 더럽혀졌어! 목욕 다시해야겠네...! 내 등을 타고 다리로 흘러내리는 그 건더기와 액체의 감촉에 나는 속으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순서대로 하나씩 읊고, 다시 거꾸로 한 번 읊었다.

============================ 작품 후기 ============================

브웨에에에에에에에에엑

써놓고 보니까... 로제가 더러운 여자가 되었다.

... 항상 그렇듯이, 자정에 하나 더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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