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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속의 표류선 - 바다는 그 죽음을 내어주리라
입에서 군내가 부글부글 거품과 함께 끌어오르고,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을 힘도 시간도 없다. 진짜 이렇게 강한 폭풍우는 처음 영접한다. 달리고 있던 애들도 거의 맛이 가서 헐떡거리면서 가까스로 내 지시를 몸으로 따라잡으려고 노력한다.
나...? 나는 돌아버리겠다!
아주 조금은 나아진 걸 봐서는 아까 그 상황이 최악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를 으드드득 갈면서 말했다.
"야, 갑판에서 뛰는 새끼들 두 팀으로 나눈다. 하나는 갑판 제일 아래에서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어! 나머지만 계속 뛰어다니다가, 내가 말하면 아래 녀석들이랑 교대한다!
아래에 중심이라도 되고 있어라. 삭끈 다루는 건... 야 미안하다. 함께 고생 좀 하자. 니네를 쉬게 하면 우리 다 같이 바다 아래에 퐁당 떨어져서 거기서 영원히 쉴 수도 있어.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파도때문에 흔들리는 배의 모습이 진짜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다. 녀석들도 감을 잡았고, 파도 자체도 조금씩은 괜찮아지고 있다. 이 정도면.
빗물 사이를 미친듯이 달려서 나는 조타륜을 한 번 잡아봤다. 그래, 이 정도면 어떻게든...!
"갑판 위에서 뛰던 놈들 내려가고, 아래에서 기도하던 놈들 다 올려보내! 그 새끼들이 또 뛴다!"
나는 그렇게 외친 다음에 조타륜을 잡고 천천히 돌렸다. 더럽게 무겁네!
배가 높은 풍랑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천천히 방향을 잡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바다에 맞추어서 크게 팔자와 같은 곡선을 그리며.
항해는 가까스로 가능하다. 배는 바람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폭풍이 조금 조용해져서 난이도가 떨어지니까. 내가 심심해서 난이도를 올리고 있는 거다.
... 사실, 이 폭풍이 그치지 않을지도 모르겠고. 이 녀석들이 원하는게 '폭풍 중에 도달'이잖아. 그럼 지금 빨리 이동을 해야지. 그거 때문에 머릿 속에서 이 배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도 계산하느라 지금 입 열면 토 나올 것 같다. 삭끈 조종하고, 파도 파악하고, 거기에 배 위치 암기하고...
조타륜을 회전시키고, 다시 스팽커에 사람들을 배치한 다음, 방금 전까지 돛을 조정하던 녀석들을 내려가서 쉬게 하고 사람들을 갈아끼웠다. 이제 항해를 할 거면 배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필요 없으니까.
"스팽커, 바람 오른쪽으로 살짝 잡고!"
커다랗게 넘실거리는 파도들을 바느질하듯이 왔다갔다 하면서 배는 빠른 속도로 나가고 있었다. 필요한 파도만 고르고, 필요 없는 파도는 최대한 피한다!
그리고, 이 넘실거리는 파도들 위에서 얼마나 시달렸을까. 이제 슬슬... 보일 때가 되었는데. 그리고, 마침내 저편에서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는 진홍의 촛대라는 그 그지같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곱게 보내 주지를 않으려고 하는구만."
정면에 생기는 거대한 소용돌이. 이건 다분히 악의가 느껴지는데! 나는 바람 체크하고 조타륜을 휘리릭 꺾었다. 여기는 적도 위편이라 소용돌이가 도는 방향은 시계방향이다! 좋아, 원심력과 척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자!
"횡범, 접고 있다가 내가 말하면 탁 올려라. 오케이?!"
나는 말을 마치고, 게걸스러운 짐승마냥 주변의 물을 꿀떡꿀떡 집어삼키고 있는 저 거지같은 바다의 블랙홀을 바라보았다. 바다가 무슨 싱크대냐 이 개같은 새끼들아! 무슨 소용돌이가 저렇게 무서워?!
"후... 후..."
빨아먹는 힘에 따라서 배가 점차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빨려들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횡버어어어어엄! 피고 바람 제대로 받아라!"
횡범이 펼쳐지며 바람을 받고, 소용돌이가 회전하면서 배가 받고 있던 힘에 횡범이 바람을 잔뜩 머금자 그 회전력에서 살짝 벗어나 배가 소용돌이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려는 선원들을 보며 내가 소리쳤다.
"아직, 안심하지마! 바람 계속 다 잡고 있어라. 실오라기 하나 만큼이라도 흘리면 죽는다! 내가 죽이는게 아니라 저 소용돌이가 죽일거야!"
아직 세력권 안이다. 바람 놓치면 지금 버티던 힘도 다 잃고 죽는다. 조금씩 조금씩 배가 앞으로 나가면서 속력을 되찾고 그걸 확인한 나는 후욱 하고 숨을 쉬면서 다시 파도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진홍의 촛대. 거짓말처럼 멈춰버리는 거대한 폭풍우.
환호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하나씩 흐려지고. 나는 눈 앞이 깜깜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돌아온 시선 안에서, 로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방금 전에 지도가, 레이먼드에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누구는 거기에서 그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선장실 밖으로 나와 우리의 배를 살펴보았고. 방금 전까지 허공에 검을 휘둘렀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갑판 위를 걸어가 우리의 배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와 로제가 배를 옮겨 타자마자 가라앉기 시작하는 배. 나는 그 배를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바다는 그 죽음을 내어주리라. (Sea will present his death before him)"
... 내가 처음 살인을 할 때에도 했던 말. 그때는 죄책감에 했던 말이, 지금은 동정을 담고 있다.
배 위에 아직 끼어있던 안개들이 천천히 사라진다. 그리고 마리아가 나를 바라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이 항해사가 또 한 담력 하지 않습니까. 일 대 삼백으로 저 망령 친구들을 싸그리 그 분 곁으로 보내드렸지요."
크으, 엑소시스트를 해야 하나. 이 넘치는 재능. 마리아가 나를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한 대 탁 때렸고, 나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말했다.
"선장, 하루 쉽시다. 저런 거 하나 만나고 나니까 아주 소름이 다 돋는데요."
마침 수심도 적당하겠다. 나는 마리아의 허락을 받고, 배의 닻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안고 있던 로제를 천천히 항해사 실로 데려간 다음, 그녀의 발목에 박혀있는 나무조각들을 보다가 로제에게 깨끗한 헝겊을 건네주었다.
"입에 물어라."
로제가 순순히 그걸 입에 물고. 나는 럼주로 손을 닦아낸 다음에 그 나무조각들을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고개를 젖히고 끄으으으, 하는 신음을 토해에는 로제.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처 주변에서 부글거리는 거품이 일다가. 그대로 치료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바라보며 중얼거릴 수 밖에.
"거, 서비스 한 번 화끈하네 우리 유령아저씨들."
새것처럼 깨끗한 발이다. 나는 그걸 보며 어깨를 으쓱 하고 로제의 배를 한 번 살펴보았다.
"약 만들어 놓을테니까. 꼭 바르고. 잘 자라."
약을 만들고, 램프 불을 줄이고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뒤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 고마워요."
이 븅신아, 니가 지금 여기에 잡혀서 그 험한 꼴을 당한게 나 때문인데 고마워할 사람이 그렇게 없냐? 그거냐,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하는 거?
이 세상에는 아직 그 개념이 없을 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내 이름이 당당히 올라갈 수도 있겠네. 레이먼드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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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럼보틀로 좀 가 봅시다.... 언제 도착하냐 거길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