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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소녀와 해적과 검과... 여튼 이것 저것
아가씨, 시간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이 들린다! 드디어 그 시간이 된 것이다. 가슴 안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남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드디어 바다로 나가 볼 수 있게 되었어!
거대한 범선, 바람, 씩씩한 선원들과 반짝이는 태양! 나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빨리 가요! 배가 떠나버리면 어떡해요?"
그 말에 늙은 나의 집사가 대답한다.
"배는 아가씨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하지만, 뱃사람들 성격이 급할지도 모르잖아.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와중에, 나는 가벼운 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둘렀다.
나의 이름은 로제 발미온 오피우스 크락세 데...
아 이름이 뭐였더라.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을 다른 하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고 꼬박꼬박 부르는지 모르겠다니까.
찬 검을 천천히 뽑아본다. 반짝이며 빛나는, 곧게 뻗은 검신의 여기저기에 뚫려있는 네모난 구멍들과 군데군데 네모나게 이가 나가있는 검. 내구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멍이 숭숭나 있는 검이지만 이래뵈도 엄청나게 튼튼하고, 날카롭다. 검의 손잡이 부분에는 원래 뭔가가 끼워져 있었을 거라고 추정하는데. 아쉽게도 그건 가문에서 이 검을 찾았을 때 부터 실종되어있었다.
재빨리 마차에 오른 나는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따.
"항해는 얼마나 걸릴까?"
나의 말에 집사가 천천히 대답한다.
"40일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마차의 소파에서 가볍게 몸을 떨엇다. 40일이나! 신난다! 열여덟의 나이가 되기까지 항상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성 안에서만 지났던 나에게 있어서 40일의 항해는 하늘에서 굴러떨어지는 수천개의 사탕만큼이나 멋진 일이라고!
마차 더 빨리 갈 수는 없으려나. 나는 불만어린 표정으로 마부를 다그치지만, 마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가고 있다고 말할 뿐이다.
얼마나 마차가 더 달렸을까, 아침 일찍 출발한 마차는 점심을 먹고 나서 한참을 더 달려 토르소 항구에 도착했고. 나는 곧바로 마차에서 내려 배를 바라봤다.
"아..."
커다랗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더 거대했다. 이 넓은 바다에 비교해 보면 저 거대한 범선도 호수에 떨어진 나뭇잎 같겠지. 저런게 정말로 바다를 가르고 여행을 할 수 있다니. 마법같아.
"처음뵙겠습니다, 영애. 토르소에서 마이안까지 함대를 지휘할 로만이라고 합니다."
허옇게 센 턱수염과, 한 손에 들고 있는 파이프 담배, 머리에 쓰고 있는 근사한 선장모. 빳빳하게 다린 제복과 가슴팍에 달려있는 수많은 훈장들까지. 한 눈에 봐도 뭔가 베테랑 느낌이 드는 선장이다. 나는 약간 넋을 놓고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긴 항해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만 경."
그리고 그가 웃으면서 나를 보며 말한다.
"타실 배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바다 황새 함입니다. 쉽 급이지요."
그리고, 그가 항구 뒤편에 떠 있는 커다란 배를 가리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 있는 세 개의 기둥과, 거기에 달려있는 커다란 천막. 하얗게 칠해놓은 몸통까지.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워요. 믿음직스럽네요."
그렇습니까, 라고 말하던 로만에게 옆에 있는 집사가 말한다.
"아가씨가 입맛이 까다로우신 편입니다."
그 말에 로만이 대답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섯 척의 함선 중 3개의 함선에 신선한 음식 재료를 가득 넣었습니다. 항해하는 동안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집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부디 건강히 다녀오시길 바라겠습니다."
뭐, 그거야 당연한 일이겠지. 저렇게 크고 멋진 배가 위험해 질 리가 없잖아. 저 정도면 폭풍도 비켜갈 정도라고! 나는 집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로만의 안내에 따라 배 위로 올랐다.
"일단은 이 배를 통해서 바다 황새 호 까지 다가가고, 거기에서 옮겨 타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빛내면서 배를 살펴보았다. 그 와중에, 로만은 자신의 입가에 파이프 담배를 가져가 한 번 빨고는 말했다.
"출항한다!"
그 말에 선원들이 예! 라는 말과 함께 분주히 움직이며 커다란 기둥에 걸려있던 천을 주르르 내린다. 그리고 부풀어오르는 천막과 함께 바다로 밀려가는 배. 나는 항구에 서서 나를 마중하는 집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걱정 하지 말고! 집에 있는 라라 밥 잘 챙겨주고!"
그리고 세 시간 정도가 지났다.
돌아가고 싶어.
나는 미슥거리는 속을 붙들고 우욱거리면서 침대 옆에 쓰러지듯이 기대어 있었다. 온 몸이 무겁다. 숨을 쉬는데 한숨이 절로 나오고 손가락을 까닥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 이미 먹은 건 다 토했잖아! 근데 왜 또 구역질이 나는거야. 이제 나올 거라고는 액체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우욱,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누워 있으면 조금 나은가 싶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곧 토악질이 솟구친다. 온 몸의 땀구멍까지 다 토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책에는 이런 내용 없었다고! 나는 거의 기어가듯이 선반 위의 물통을 집고 약간의 물을 마신다음.
다시 토했다.
살려줘... 이런건 내가 예상했던 게 아닌데에에...
그래도 배는 흔들린다. 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어! 그냥 죽어버리는게 편할 것 같은데! ... 사람 살려. 집사가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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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밖에 비 온다!"
주륵주륵 시발. 나는 그 소리에 항해사의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기어나왔다. 아, 바다의 여신이시여. 왜 하고 많은 날 중에 이 깊은 밤 오줌을 싸고 그러십니까.
나도 잠 좀 잡시다.
비가 오고 있다. 그냥 비가 오고 있다 정도로 끝나면 그렇게 나쁠 것도 없지만. 바다에서 비가 오면 필연적으로 바람이 좀 심하게 불고, 바람이 좀 심하게 불면 파도가 높아진다.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흔들린다. 나는 주변을 확인하고 잠옷바람으로 조타륜에 달라붙은채로 외쳤다.
"야, 샤워하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비가 올 정도로 여기는 습한 곳이라서, 비가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놀랄 일이 아니지만 피곤한 일이지! 파도가 높아지면 생각해야 할 게 아주 많아진다.
"폭풍우라고 할 것도 없는 녀석이니까, 농담따먹기 하듯이 가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조타륜을 조종하면서 돛을 다루는 선원들에게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 러셀의 함인지 지랄인지 하는 함을 챙긴 녀석들이 지나갈 예정인 장소에 도착한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 동안 항해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던 나는 닻을 내린 김에 조금 자려고 들어갔었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서 지랄같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닻은 올렸지?"
그 말에 선원들이 대답하고 나는 한숨을 쉬며 조타륜을 휘리리릭 돌리고 말했다.
"돛 반만 펴라! 앞에 암초 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전방을 바라보지만, 녀석들의 눈에 뭐가 보일리가 없다. 나는 그걸 보고 신경질을 내면서 외쳤다.
"아 씨바 있다고 하면 그냥 있나보다 믿고 시키는거나 해 새끼들아! 니들 눈으로 바다를 보면 뭐가 보이냐!?"
배가 가까스로 꺾여서 방향을 바꾸는데 성공하고.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중얼거렸다.
"거참, 오는 녀석들도 고생하겠구만."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은 아직 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때 저 멀리에서 자그마한 오랜지 색 불빛들이 알랑거리는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두 개가 아니다. 마리아도 그걸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 했다.
"어떻게 생각해?"
그 말에 내가 대답했다.
"글쎄요, 대충 틀려도 털면 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한다.
"그건 그렇겠네."
그리고 마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자신 있나?"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해가 쨍쨍하고 파도 잔잔한 상황에서는 역시 쳐발리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선장님은 이런 상황에서 싸운 경험이 좀 계신지요?"
그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이 정도는 농담 따먹기지. 배나 잘 움직여."
뭐,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타륜을 붙들었다.
"오래갈 녀석은 아닙니다! 길어야 한 시간 정도? 그 안에 승부 못 보면 저희 개발립니다!"
빗줄기는 엄청 굵은데, 이 정도에 비해서 파도가 엄청 심한 편이 아니다. 물론 약간 애는 먹을 수준이지만 이 정도의 비라면 원래 제정신도 못 차리고 있을 정도로 파도가 높아야 정상이다. 요점은 소나기.
마리아가 내 말을 듣고 외친다.
"충분하고도 남지! 해적기 올리고 준비해라!"